이쁘다! 4 (끝)
송이와의 관계는 랜스포드가 미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6년 동안 계속 이어졌다.
랜스포드는 결혼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녀를 재촉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기에 안타까운 속만 태울 뿐이었다.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고, 선물 공세를 펼치기도 했고 반 협박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변하지 않고 그의 결혼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송이의 친구는 랜스포드가 소개해 준 미군 동료와 결혼해서
미국 코네티컷주로 남편 따라 이민 가버렸다.
랜스포드는 미국으로 돌아오기 전, 중대한 결심을 했다.
그는 농장을 사기 위해 군대생활 동안 꾸준히 푼푼이 모아온 통장을 들고 송이 네 집을 방문했다.
송이와 부모님이 계신 자리에서 그는 그 통장을 내밀었다.
“송이 씨가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를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나는 송이 씨를 사랑하고 때문에 송이 씨의 의견도 존중합니다. 나의 마지막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나의 꿈이 담긴 이 통장을 송이씨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송이 씨의 마음이 바뀌던 안 바뀌든 이것은 내 마음에서 우러나는 선물이고 혹시 생각이 바뀌면 미국으로 건너오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제 바람입니다.”
송이는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그건 받을 수 없어요.”
랜스포드는 아버지에게 드리면서 또 부탁했다.
항상 랜스포드 편이 돼 주던 아버님도 이번만큼은 난처한 표정을 보이며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랜스포드는 이번에는 어머님을 붙잡고 사정 했다.
어머니는 어쩌지 못하고 아버님 눈치만 살폈다.
이때 아버님은 슬그머니 일어나서 방으로 들어 가버리셨다.
그제야 어머니는
“그럼 일단은 내가 맡아 두겠네.” 하며 받으셨다.
송이는 펄쩍 뛰며 나가버렸다.
그 후 랜스포드는 한국에서의 군 복무를 채우고 전역과 동시에 쓸쓸하게 미국으로 돌아왔다.
물론 수중에 가진 돈은 하나도 없는 빈털털이었다.
그는 다시 농장 살 돈을 모으기 위하여 트럭운전사를 시작하였다.
다시 세월은 흘러 또 6년이 지났다.
송이를 만난 지 어느덧 12년의 세월이 흘러버렸다.
랜스포드가 열심히 트럭운전을 하면서 지내고 있는 어느 날,
코네티컷주의 옛 전우로부터 연락이 왔다.
바로 송이의 친구와 결혼해서 사는 그 친구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송이가 미국에 온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코네티컷 주의 친구 집에 방문하러 오는 것이라고 했다.
랜스포드는 뛸 듯이 기뻤으나 그 기쁨도 잠시뿐, 친구의 말은 송이씨가 랜스포드의 근황을 물어 오긴 했지만 자기가 미국에 온다는 소리는 하지 말아 주었으면 하고 부탁했단다.
하지만 옛 전우의 의리상 연락을 안 할 수 없어서 몰래 연락하는 것이니까 알아서
하라고 덧붙였다.
아무리 송이가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랜스포드는 당장 코네티컷으로 날아갔다.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팠고 또 한편으로는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데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처지다.
13년의 세월이 지났으니 랜스포드가 서른여섯이고, 그리고 송이 씨는 랜스포드보다 다섯 살이 위니까 벌써 마흔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한 가닥 희망을 건 것은 아직도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있다는 그 친구의 귀띔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태도를 염려했었지만 막상 랜스포드를 만난 그녀는 무척 반가워했다.
물론 랜스포드 또한 더할 나위 없이 기뻤고 사랑이 불이 다시 피어오르는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결혼문제에 대해서는 역시 고개를 돌려 피하는 그녀였다.
랜스포드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기는 분명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고 그녀 또한 랜스포드가 싫은 눈치는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질 수 있지만 결혼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받아줄 의사가 없는 것은 랜스포드로서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얼마 후,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갔고 랜스포드는 다시 트럭운전으로 돌아왔다.
랜스포드의 가슴 한구석에 지울 수 없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는 채로······.
***
던캔과 나는 랜스포드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서 뭐라고 위로 해 줄 말을 찾지 못했다.
“여보게 친구, 나는 어떡하면 좋은가?”
랜스포드가 트럭 창문 쪽으로 바짝 다가와 나를 바라보면서 한숨조로 조언을 요청했다.
나는 그에게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아무 말도······
한가지 밝혀 둘 것은 그의 이름은 랜스포드가 아니다.
그의 이름을 제대로 물어보지 않아서 내가 임의로 붙인 이름이다.
본명은 나도 모른다.
켄터키가 고향이고 지금은 P모 트럭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그녀 또는 그녀의 가족과 함께 갔다는 지명, 인천 부두의 횟집에 갔다거나, 한강 고수부지를 데이트하느라고 함께 걸었다 등등의 이야기와 함께 그의 말하는 태도에서 절대 거짓이 없고 진실하게 보임을 확신한다.
아마 송이씨 자신이나 그녀의 가족 또는 그녀의 주변 사람들이 이 글을 읽게 되면 이 사실을 증명해 줄 것이다.
다만···.
다만 한가지,
송이 씨가 랜스포드의 사랑을 거절한 이유가 랜스포드가 흑인이라는 이유가 아니었기를 감히 기대해본다.
그러면서도 나 자신 다양한 국제문화 속에 어울려 살면서도 강한 단일 민족성을 가진 한국적인 주체의식이 혼동되는 괴리감에 견딜 수 없도록 혼란스럽다.
왜냐고?
나는 미국에서 태어난 두 딸을 둔 아버지이니까......
이쁘다
끝
나는 이 글을 그 송이라는 분이 우연히 읽을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천만분의 일의 확률이라도 그녀가 마음이 바뀌기를 기대해보고 싶다.
그런 의미로 여기에 사진 한장을 올린다.
트럭 창문을 사이에 두고 한창 군대 이야기를 할 때 찍은 사진으로 뚜렷하지는 않지만 송이씨라면 한눈에 알아 볼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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