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하이웨이 13 (끝)
‘그놈은 죽었을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다시 돌아가서 현장을 확인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제는 경찰들이 있으니까 그놈이 살아 있다 하더라고 나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돌아가자!’
나는 즉시 트럭을 돌려 소방트럭을 뒤따라 다시 그 현장으로 달려갔다.
새벽이 밝아 오면서 비도 그치고 시커멓게 보이던 숲이 파랗게 생명의 활기를 비추기 시작했다.
나는 사고현장에서 멀찍이 트럭을 세워 놓고 지켜보았다.
경찰이 내려가고 소방대원은 소방 호스를 꺼내 놓고 앰뷸런스에서는 구급요원 두 명이 나와 구급 장비와 들 것을 꺼내 폈다.
그리고 조심조심 언덕을 내려가 숲 속으로 갔다.
그들이 가까스로 트럭 문을 열고 운전사를 내려 들것이 옮겨 싣는 것을 보고 나서야 나는 트럭에서 내려 가까이 갔다.
응급처치를 하는 것으로 보아 죽지는 않았지만, 중상일 것으로 짐작되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습니까?"
길을 막고 서 있는 경찰이 내게 물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나는 대답 대신 질문으로 답하였다.
“어젯밤에 빗길을 과속으로 달리다 미끄러진 것처럼 보입니다.”
경찰은 나를 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어젯밤 비슷한 시간에 누군가 비상전화를 사용하려고 시도했었다고 하던데 아마 저 운전사가 아니었나 추측합니다.”
나는 속으로 뜨끔했다.
비상전화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수화기를 들고 있다가 그 트럭이 되돌아서 오는 것을 보고 끊지 않고 그대로 내던지고 왔기에 누군가가 늦게 응답을 하였다면 뭔가 이상하게 생각하였을 것이다.
사고처리 담당자와 토우 트럭이 도착했다.
곧 트럭과 트레일러를 끌어내고 견인해 갈 것이다.
길에서부터 언덕 아래까지 잡풀 사이로 흙을 파헤치고 길게 트럭 바퀴 자국이 나 있고 트럭은 언덕에 반쯤 파묻힌 채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나는 트럭의 바퀴 자국을 따라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내가 안전 조끼를 입고 있어서 사고 처리 담당 직원으로 알았는지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내 트럭하고 부딪혀서인지 아니면 나무에 긁혔는지 트레일러의 옆면은 크게 찢어져 있고 그 틈새로 보이는 트레일러의 안은 화물이 없이 비어 있었다. 트럭 앞쪽은 엉망으로 부서졌다 .
켄워스KW 롱 노우스 트럭이 심하게 찌그러진 후드 전면에 해골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추격전을 벌일 때부터 그놈일 거라고 예상하였지만 이제 확실해졌다.
바로 어제 트럭휴게소에서 만난 그 트럭이다.
연료를 훔쳐 갈 것으로 의심하였다가 시비가 붙었던 바로 그놈이 확실해졌다.
내가 저녁에 세운 트럭 휴게소까지 따라와 일부러 내 옆자리에 주차했음이 분명하다. 내가 CB라디오로 길을 묻는 것을 엿듣고 내가 과적 차량검문소를 피해 이 한적한 하이웨이 301로 오는 것을 알고 쫓아 왔을 것이다.
몸서리칠 만큼 독한 놈이다.
양쪽에 우뚝 솟은 배기관 중 오른쪽 것은 떨어져 나가고 없다.
정면 유리창은 산산이 부서졌고 사이드미러는 부서진 채 보기 흉하게 찌그러졌다.
반쯤 열려 있는 문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트럭 안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각종 물건이 쏟아져 나오기도 하였지만 빈 병 과자 봉지 담뱃갑 꽁초 비닐 백 종잇조각 ······. 냉장고 TV 선풍기가 바닥에 떨어져 깨졌고 옷가지 등 온갖 잡동사니가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다.
얼마나 지저분하게 타고 다녔는지 알 수 있다.
아마도 1년 365일을 트럭 안에서 사는 놈일 것이다.
이때 대시보드에 있는 서랍이 덜컹 열리면서 그 안에 있던 물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수십 개의 약병이었다.
그중 몇 개가 문밖에까지 굴러떨어졌다.
옆에 서 있던 앰뷸런스 구급요원이 약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하! 여기 정신장애 트럭운전사가 또 하나 있었군."
그는 약병에 쓰여 있는 라벨을 읽으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나에게 들으라는 듯 설명하였다.
"이 항신경안정제는 최근에 많은 부작용이 보고된 약으로 현재 집단 소송이 진행 중에 있는 약입니다. 일시적인 신경 안정 효과를 주지만 장기적으로 복용하였을 때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미치광이로 변해 버려 심하면 자살을 하기도 하고 또 분노 억제를 못 하고 감정이 폭발하여 아주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최근 여러 명의 트럭사고의 원인이 바로 이 신경 안정제의 복용에서 기인한다고 보고 조사 중입니다."
나도 약병을 하나 집어 들고 라벨을 읽어 보았다.
순간 전기에 감전된 듯한 짜릿한 충격이 온몸에 저며 왔다.
Antidepressants. SSRIs. Dextromethorphan, Escitalopram Paroxetine, Fluoxetine, Sertraline
얼른 주머니에서 약병을 꺼내보았다.
약병에 쓰여 있는 이름이 내가 처방받아 가지고 있는 약 이름하고 똑같다.
가정의가 처방이 적힌 종이를 건네주면서 했던 마지막 말이 생각났다.
-혹시 복용 중에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분이 들면 즉시 복용을 멈추세요-
여러 개의 빈 약통으로 보아 이 트럭운전사는 상당히 오래 복용하였을 것이라고 생각 들었다.
얼마나 심각한 상태였을까?
오죽하였으면 분노억제를 하지 못하고 조그만 시비에 목숨 걸고 덤벼들었을까?
빈 트레일러로 본인이 가야 할 방향과 반대로 가는 나를 이틀 동안이나 쫓아와 괴롭혔을까?
들것에 실려 누워 있는 그 트럭운전사를 바라보았다.
피투성이가 되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그가 측은해졌다.
조금 전까지 죽이고 싶도록 미워했었지만, 막상 피를 흘리며 기절해 있는 얼굴을 보니 불쌍해 보였다.
그런데 그 피투성이가 된 얼굴이 많이 본 얼굴이다.
눈에 익은 얼굴이다.
바로 나! 울프, 나 자신의 모습이다.
내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들것에 누워 있다.
내가 바로 저놈이고 저놈이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다.
트럭 운전으로 백만 마일을 향해 달려온 지난 9년 동안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가 화산처럼 폭발할 것이고 어느 한순간에 미치광이로 변해 저와 같은 처참한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매사에 분노를 일으키고 신경질을 내며 부부싸움까지 하였고 죽음의 경주를 하였다.
단 몇 초의 차이로 서로의 운명이 뒤바뀌었을 뿐이다.
‘오 미오 바비노 카로’ 음악이 들리지 않았다면, 내가 먼저 이 지점에 도착하였다면, 하고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 오는 끔찍한 일이다.
나는 손에 든 약병을 노려보다가 있는 힘을 다하여 야구공 던지듯 숲 속을 향하여 힘껏 던져 버렸다.
푸드덕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 사이에서 날아오른다.
숲 속의 싱그러운 나뭇잎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영롱한 보석처럼 반짝인다.
가자! 집으로 가자.
그리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호숫가로 캠핑을 떠나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오, 미오 바비노 카로’를 들으며······.
[분노는 어리석음에서 시작하여 후회로 끝난다.]
분노의 하이웨이
끝
- 작가의말
트럭 드라이버 울프는,
지금 이 순간에도
분노를 삭이며
황량한 광야를 달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고를 기대하며 산을 넘어 달립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닥칠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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