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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F 님의 서재입니다.

무공으로 내 인생 만만세!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무협

공모전참가작

HBF
작품등록일 :
2024.05.09 15:56
최근연재일 :
2024.06.28 00:30
연재수 :
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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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166
추천수 :
3,811
글자수 :
257,284

작성
24.05.09 16:01
조회
8,998
추천
123
글자
12쪽

돌아오다

DUMMY

.



“고봉아, 엄마 갔다 올게.”


어두운 방안으로 들어온 이미선의 시선이 침대 위로 향했다.

스마트폰을 손에 든 아들이 별다른 대꾸 없이 웹소설을 읽고 있었다.


“아침 차려놨으니까 약이랑 꼭 먹고.”


대답하기도 싫은지 육중한 몸을 벽 쪽으로 돌려 누웠다.

크게 출렁인 뱃살이 잠옷 밖으로 삐져나와 축 늘어졌다.

그 한심한 작태에 체한 것처럼 가슴이 턱 막혀온 이미선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남몰래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문을 닫았다.

우두커니 방 앞에 서서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밖에라도 나가면 좋을 텐데······.’


4년 째였다.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방안에서만 보낸 세월이.

대체 왜 그렇게 사냐고,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소리칠 수도 없었다.

중 3때 놀림과 학교폭력을 당한 뒤로 고봉은 극심한 우울증과 과도한 폭식, 자살시도에 입원 등의 큰일을 겪으며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채 반 년도 못가 잔혹한 불행은 한꺼번에 밀려왔다.

새벽녘 출근한 애 아빠마저 졸음운전으로 곁을 떠난 것이다.

아들의 시간은 그때 멈췄다.

마치 갓난아이가 된 것처럼 먹고 자기를 반복하면서 어두침침한 방안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다.

고등학교 1학년 중퇴.


이미선은 이 모든 비극이 자신의 잘못인 것만 같았다.

엄마 아빠도 알아보지 못하던 아이를 충분히 감싸주지 못하고 다그친 일도.

극도의 스트레스에 불면증에 걸린 애 아빠를 챙기지 못한 것도.

분명히 피의자들이 반성하고 있을 거라고 착각한 나머지 공제회 신청을 회수한 일도.

모든 일이 후회로 얼룩져 큰 상처로 남아 있었다.


4년이나 흐른 지금에 와서 후회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지만 무기력한 고봉의 모습을 볼 때면 그때의 실수가 쓰나미처럼 밀려와 가슴을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많은 것을 바라진 않았다.

다만 저 아이가, 감옥 같은 방안에서 나와 주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방문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녀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며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기울어진 가세를 지탱해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기 때문이었다.



*




죽은 듯이 고요해진 방안에 홀로 남은 나고봉은 시체처럼 누워 입속으로 음식을 계속해서 밀어 넣었다.


“쩝쩝쩝!”


시선은 스마트폰 화면에 고정돼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대왕 짬뽕을······.


각종 먹방과 국내외 유명 셰프들의 요리과정 영상을 시청하다가 웹소설 어플을 클릭했다.

그러자 정갈한 글씨체가 빼곡하게 나열되었다.

단순히 활자의 모임이 아니라 그 안에는 화려한 세상이 담겨져 있었다.


[권왕패월도]


악에 맞서 싸우는 권왕의 호쾌한 일대기를 그린 무협소설이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늘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끝없이 악에 맞서 대항하는 그런 이야기였다.

벌써 수십 번이나 읽었는데도 나고봉의 메마른 눈동자는 더욱 집요하게 활자를 탐했다.

꽉 막힌 이 좁고 어두운 방안에서의 우울함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기에.

그 집착에 가까운 탐독의 행위를 절대로 멈추지 않았다.

권왕패월도 같은 웹소설을 읽을 때면 나고봉은 늘 생각했다.


‘나도 주인공처럼 강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욕하고 때리고 침을 뱉으며 괴롭히던 그 악마들을 단숨에 해치우는 꿈을 꾸곤 했다.

헛된 망상이라도 그 시간만큼은 언제나 지금의 비참함을 잊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읽는 것을 멈추는 순간, 지옥 같은 악몽이 떠올라 온몸을 물어뜯고 할퀴며 그 끔찍한 공포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럴 때마다 나고봉은 권왕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악당들을 물리쳐나갔다.

1시간, 2시간, 3시간······ 끝없이.

그 무의미한 행위를 반복하다가 잠이 들었다.

오직 그것만이 자신을 지킬 수 있기에.

비참하게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눈을 뜨면 그 악몽은 다시 시작됐고 왈칵 두려움이 차올라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허기가 졌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보고 먹고 자고 읽고, 보고 또 먹고 자고 읽고.

그렇게 4년을 버텼지만 이젠 좀 지치는 기분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하는 걸까?

도대체 언제까지 이 지긋지긋한 시간을 되풀이해야 할까.

이젠 그만 끝내고 싶었다.

삶 자체가 공허해진 나고봉의 손에서 스마트폰이 떨어졌다.


‘그냥······.’


죽을까?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도 이젠 지겨워졌다.

그냥 다 잊고 편해지고 싶었다.

가만히 눈을 감았다.

짙은 어둠이 찾아와 세상을 집어삼켰다.

의식 깊은 곳, 심연 속에 숨어 있던 그림자들이 아지랑이처럼 넘실거렸다.

이윽고 형체를 갖춘 악당들이 달려들어 목을 조여 왔다.

극도의 공포에 숨이 턱턱 막히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커, 컥!”


간질에 걸린 것처럼 몸을 파르르 떨던 나고봉은 자괴감 섞인 눈물을 흘리다가 정신을 잃고 말았다.



*



“헉, 헉, 헉!”


스트레스성 실신을 경험한 나고봉은 거친 숨을 토해내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뭐, 뭐지?’


한바탕 꿈을 꾸었다.

권왕패월도의 주인공과 함께 25년의 일생을 살아가는 허무맹랑한 꿈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나고봉이 느끼기엔 단순히 꿈이라기보다 실제에 가까웠다.

너무 생생해서, 지금은 이제껏 경험한 그 사건들이 현실인지 아닌지 분간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마치 정말 권왕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함께 살아온 것처럼, 그 치열한 삶의 기억이 명확하게 남아 있었다.

가문의 멸문지화 이후의 비참한 삶도.

지독한 무공 수련을 견디며 점차 강해가던 모습도.

처절하고 치열한 싸움 속에서 내면의 성장을 거듭하던 권왕의 인생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았다.

심지어 그동안 만나 인연을 쌓았던 사람들의 얼굴도 또렷하게 기억이 났다.

실제로 경험한 것처럼.

그때 눈동자가 저절로 움직여 방안을 훑었다.


“이곳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말투에 나고봉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내, 내가 지금 뭐라고 한 거야?’


이젠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장자의 호접몽처럼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내가 나고봉인지 아니면 권왕인지 명확하게 구분이 되질 않았다.

감당키 힘든 큰 혼란을 느낀 나고봉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감싸 안고 뒹굴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두통이 가시질 않았다.

권왕과 나고봉이 서로 육체를 놓고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머리가 펑하고 터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으으윽! 아, 아파!”

쿵!


침대에서 굴러 떨어진 육중한 육체가 바들바들 떨렸다.

간질 환자처럼 계속해서 격하게 몸이 흔들렸다.

그렇게 나고봉은 밀려드는 두통을 견디지 못하고 두 번째 기절을 하고 말았다.



*



저녁 무렵 퇴근버스에 올라탄 이미선의 곁으로 직장 동료가 다가와 앉았다.


“고봉이는 좀 어때?”

“아직.”

“병원은 다니고?”

“약만. 병원은 안 가려고 해서.”

“언니도 고생이 참 많다.”

“고생은 무슨. 언젠가는 좋아지겠지.”

“분명히 좋아질 거야. 그래도 옛날엔 걔가 눈치도 빠르고 공부도 잘했잖아.”


이미선은 더욱 씁쓸해졌다.


‘그랬었지.’


그러나 학폭을 당한 뒤, 그 아이의 재능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심각한 마음에 병을 얻은 채로.

속이 답답해진 그녀는 자신의 속내를 감추며 말을 돌렸다.


“혜림이는 대학교 잘 다녀?”

“아주 신났지 뭐. 요즘은 집에도 잘 안 온다니까? 그 앙큼한 계집애, 혹시 남자 생긴 건 아닌지 몰라.”

“한창 그럴 나이잖아.”

“하이고, 두 번만 그러면 애 배서 오겠네.”

“설마 혜림이가 그러겠어? 공부하느라고 그런 거겠지.”


살짝 공감해주자 동료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게 자식을 자랑해대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묵묵히 들어주던 그녀가 고개를 돌려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공장을 벗어나 톨게이트를 진입한 버스가 고속도로를 빠르게 질주하고 있었다.

희뿌옇게 물든 주변 풍경이 휙휙 지나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4년의 세월도 저렇게 빨리 지나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유수한 흐름은 잔인하게도 고봉이만 쏙 빼놓고 빗겨나갔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비극이 반복될지도 몰랐다.

늘 제자리에 갇혀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채 그 아이는 여전히 중3으로 남아있겠지.

애 아빠라도 곁에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녀의 얼굴에 수심이 깃들었다.


‘약은 먹었겠지?’


예전에 한 번 항우울제를 복용하지 않아 공황발작을 일으켜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인 적이 있었다.

발작과 함께 찾아온 호흡곤란에 얼마나 놀랐는지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이후로 신신당부하며 꼭 약을 챙겨먹으라고 잔소리처럼 말했으니 잊지 않고 복용했을 것이다.

그렇게 믿으며 양손을 꼭 잡았다.

어서 버스가 집근처에서 멈춰서기를 바라면서.

드디어 도심외각에 들어선 버스가 멈춰 섰다.


“내일봐.”

“어, 들어가.”


버스에서 내린 이미선은 종종 걸음으로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비탈길을 올라갔다.

오래된 주택가로 진입하자 외벽 페인트칠이 벗겨진 삼호빌라가 보였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 50만 원짜리 월세였다.

아들에게 좋은 집과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기는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다.

작은 한숨을 불어낸 그녀가 심호빌라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올라 3층에 도착해 문을 열었다.

어둠에 물든 적막한 실내의 전경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불도 켜져 있지 않은 광경에 이미선은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서, 설마?’


신발도 벗지 못하고 급히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황급히 방문을 열자 침대 밑에 떨어진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 아들!”


깜짝 놀란 그녀가 허둥지둥 다가가 고봉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호흡은 있었다.

심장도 멀쩡히 뛰고 있었다.

식은땀으로 범벅돼 축축한 상의를 제외하면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발작 이후 잠이 든 것 같았다.

긴장이 탁 풀린 그녀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은 채 주저앉고 말았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습관처럼 기도하며 죽은 듯 누워있는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앞머리가 모두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 안쓰러운 모습에 이미선은 순간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흐흑!”


한 번 터진 눈물은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도무지 멈추질 않았다.

한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그녀는 숨죽여 격한 감정을 토해냈다.

돈도 명예도 다 필요 없었다.

저 아이만 괜찮아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제발 이 아이에게 평범한 시간을 선물해달라고 기도한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



유난히도 어두운 방안에서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달빛처럼 따스한 온기도 손끝을 타고 부드럽게 전해져왔다.

낯선 감각에 눈을 번쩍 뜬 나고봉은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손을 꼭 맞잡은 어머니가 지친 듯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엄마가 여기엔 왜······.’


의문이 들기 무섭게 불쑥 소름 끼치는 감각이 전해져왔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육체가 제멋대로 움직여 일어나고 있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맨바닥에서 잠든 어머니에게 이불까지 덮어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뭐, 뭐야?’


상식을 아득히 벗어난 이질적인 현상에 화들짝 놀랐다.

마치 정신과 육체가 서로 분리돼 따로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그 가설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입술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야 깼군.”

‘히익!’

“선택해라. 이대로 쭉 패배자인 나고봉으로 살아갈 것인지,"

'······.'


서로 대화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정신이 멍해지자 제 2의 인격체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아니면 네가 그토록 갈망했던 권왕으로 살아볼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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