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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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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최근연재일 :
2024.06.22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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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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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0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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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3. 연습 시합

DUMMY

맥도넬은 실로 간만의 공허함을 느끼고 있었다.


적막한 펍의 공기는 익숙했던 터인데 그는 정말로 얼마 만에 자신과 마음이 잘 맞은 남자였던가. 즐겁지만 짧았던 대화 이후 홀연히 떠나버린 탓에 더욱 아쉬운 것이리라.


하지만 참견쟁이 해리 윌슨이 곧 신문을 들고 찾아와 무료함을 조금이나마 달래주겠지.


오늘은 로스 카운티가 새로운 감독을 발표한다고 선언했던 그 날이다.


신문배달부인 해리는 그의 관심사와 동떨어져 있더라도 이슈거리만 있으면 가져와 떠들기를 좋아하는 성격의 소유자다. 그 친구가 축구를 좋아했다면 좀 더 즐거웠을 텐데. 한 번은 같이 로스 카운티 경기를 보다가 따분하다고 손사래를 쳤던 녀석이니 별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해리뿐만이 아니었다. 함께 서포팅을 했으나 생계 등의 여러 이유로 인해 포기하고 돌아선 친구들도 있었고, 그나마도 버텼지만 데렉이 떠나자마자 축구를 끊어버린 이들도 있었다.


맥도넬 곁에는 이제 사랑하는 지역팀을 가지고 수다를 떨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 오는 감독이 끔찍한 행보라도 보여준다면 자신도 마찬가지로 서서히 멀어져서 생업에나 종사하는 따분한 삶이나 보내게 되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맥도넬은 다시금 착잡한 기분이 되고 말았다.


떠나간 영웅을 잊게 해줄 뛰어난 인물이 오는 것은 그저 희망사항일 뿐이니까.


그리고 그 기분은 그의 친구가 들어오면서 잠시 뒷전으로 미뤄졌다.


“이봐, 조지. 오늘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었다는 눈빛인데?”


“당연하지, 해리. 자네가 소식을 가져다주길 기다리느라 잠도 지새워버렸어.”


“그렇다면 내가 괜히 미안해지는걸.”


맥도넬은 그 말에 눈썹을 찡그렸다.


“결국 시원찮은 나부랭이를 앉혔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글쎄, 난 그쪽 바닥을 잘 모르지만 자네가 실망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드는군.”


일말의 기대심마저 무너지는 한 마디. 맥도넬은 어두운 얼굴로 한숨을 길게 내쉬며 신문을 받아들었다. 딩월의 지역지, 스포츠 1면에는 로스 카운티에 부임한 새로운 감독의 사진과 함께 큼지막한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 무명의 안토니오 델 레오네, 로스 카운티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하다 ’



“이탈리안 감독이라는데. 이 스코티시 판에서 애초에 외국인이 부임한 전례가 없는 거로 아는데 말이야. 뭐, 그럴 수밖에 없지. 유명세나 있는 감독 양반들이 촌구석 팀을 맡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이번에 부임한 그 무명 형씨는 내가 볼 때 자국의 얼간이들보다도 신뢰가 안 가는 것 같은데······.”


신나게 떠들던 윌슨은 자신의 친구에게서 아무 대꾸가 없자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신문에 눈이 고정되어 있는 맥도넬은 얼굴이 굳어서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조지?”


“맙소사!”


마침내 그가 입을 열며 외쳤다.


“저번에 그 남자잖아?”


*******


“결국 불러주실 줄 알았습니다.”


델 레오네는 환하게 웃으며 구단주가 건넨 손을 잡았다.


“이렇게 선임을 결정한 이상 우리는 델 레오네 씨를 적극 지지하고 밀어줄 생각입니다.”


베넷은 그렇게 말하더니 다소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단, 우리에게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말이오.”


“물론이지요. 저 역시 충분한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그 각오에는······위약금을 받지 않겠다던 약조 또한 들어있겠지요?”


살짝 떠보듯이 물어보았지만 이탈리안 감독은 태연한 표정이었다.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나중에 가서 딴소리할 생각은 없으니 걱정 마십시오. 그 전에 그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없겠지만 말이죠.”


“뭐, 좋소.”


베넷은 살짝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리고 델 레오네 씨도 알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재정이 여유로운 구단이 아닙니다. 새로운 선수단을 꾸리는 데 많은 지원은 불가하다는 걸 염두에 두셨으면 좋겠군요.”


아직 감독의 경력으로 따지면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설령 여유가 있더라도 아직 검증도 되지 않은 이에게 기꺼이 예산을 내어줄 생각은 없었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이방인은 조금의 불안함도 없어 보였다. 자그마한 규모지만 나름 거물이 전임자로 있었던 팀이다. 그 짙은 그림자를 벗겨내기엔 여러모로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일 텐데.


어린 애들만 지휘해봤던 작자라면 더더욱.


‘뭐,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베넷은 사실 반쯤은 내려놓은 심정이었다. 어쨌건 선택 사항은 없다. 부디 이 남자가 보여준 그 불가사의한 포부가 증명되었으면 하는 바람일 뿐.


“그럼 이제 수석코치를 만나보셔야겠군요. 대런 코너 단장이 안내해줄 거요. 난 그동안 작성할 계약서를 준비해두고 있겠소.”


*******


새로운 감독이 일할 사무실까지 이동하는 거리는 그리 멀지도 않았다. 로스 카운티는 무척이나 작은 팀이었고, 클럽 하우스조차 변변찮은 곳이다. 데렉 아담스 또한 선수 시절 그가 몸담았던 팀이었기에 그렇지, 그게 아니라면 맡을 생각이나 했을까?


코너는 그와 함께했던 영광의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옆에서 따라오는 남자를 슬쩍 훑어보았다. 적극 추천을 하긴 했으나 그 또한 확신이 안 서기에는 마찬가지였다. 사실 흡족한 인물이 없었을 뿐이다. 과연 이 남자가 전임자의 아성을 깰 수 있을까?


과연······.


사무실 문 앞에서는 짧은 주황색 머리에 넓은 이마를 가진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감독님. 저는 수석코치 닐 스튜어트라고 합니다.”


“반갑네, 닐. 앞으로 함께 머리를 맞댈 사이가 될 테니 바로 편하게 대해도 되겠지?”


스튜어트는 대답 대신 침묵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서른둘의 젊은 나이의 그로서는 당연 깍듯한 대접을 할 생각이었지만 초면부터 당당한 접근에 당황해버린 까닭이었다.


‘겉보기엔 이탈리안 신사의 전형 같은데, 아직 모를 일이군.’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안으로 안내했다.


오기 전부터 미리 정리해 둔 감독실을 보며 델 레오네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깔끔하군. 청결한 환경 속에서 일해야 능률도 좋은 법이지.”


“만족하신다니 다행입니다.”


“내가 오기 전에 코너 씨를 통해 부탁해둔 게 있었는데 혹시 준비해두었나?”


스튜어트는 대답 대신 책상에 올려놓았던 서류를 건네주었다.


“고맙네.”


부탁했던 것은 이번 시즌 새로 구성된 팀의 전력 보고서.


로스 카운티는 감독직이 공석으로 된 후 3개월 간 대체자를 구하지 못하면서 시즌 준비를 제대로 못 했기에 급한 대로 스카우트 팀과 아담스의 조언을 구하여 몇몇 선수를 임대하거나 자유계약으로 데려왔다.


델 레오네 또한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을 들었고 그 때문에 보고서 요청을 했던 것이다.


감독은 의자에 앉아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찬찬히 훑어보았다. 코치는 옆에서 조용히 그를 지켜보았고 방 안은 상당히 오랫동안 사락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기존에 있던 선수들은 역시 예전과 별 차이가 없군.”


마침내 모든 것을 정독 완료한 감독이 입을 열었다.


“브리튼을 핵심 선수로 지목한 것까지 말이야.”


“그는 감독님의 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겁니다.”


“나 역시 동의하네. 그의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싫어할 감독은 없지.”


스튜어트는 속으로 한숨을 놓았다. 혹여 새로운 감독이 팀의 대들보인 그를 이적 시장에 내놓는 게 아닐까 노심초사했었기 때문이었다. 브리튼은 현재 여러 스코티시 구단은 물론, 잉글랜드 쪽에서도 눈독 들이고 있는 선수다.


반드시 그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던 스튜어트로서는 걱정을 한시름 덜 수 있었다.


기분이 한결 편해진 그는 신이 나 한 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합류한 캐리도 주목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렉산더 캐리(Alexander Carey), 세인트 미렌에서 로스 카운티가 유일하게 이적료를 지급하여 데려온 좌측 윙이다.


세트피스 킥 전담뿐만 아니라 슈팅이나 패스 등 다방면으로 뛰어난 왼발을 지니고 있어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스튜어트는 굳게 믿고 있었다. 그건 적극 추천했던 전임 감독이 했던 말이기도 했다.


새로운 감독은 그 말에는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직접 봐야겠지. 좋아, 우선 자네는 내일 바로 1군과 2군의 시합을 준비해주게.”


“1군과 2군의 시합이요?”


“이 팀은 처음부터 모든 걸 다 점검해볼 필요가 있어. 건물을 새로 지으려면 탄탄한 지반부터 다져놔야 하는 법 아니겠나?”


그건 맞는 얘기지만 왜 하필?


스튜어트는 감독의 말에 의아해하면서도 흔쾌히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내일이 무척 기대되는군.”


델 레오네는 여유롭게 의자에 누워 서류를 다시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


빅토리아 파크(Victoria Park).


작고 가난한 팀에 속하는 로스 카운티는 별도의 연습구장이 없어 그들의 홈구장을 훈련 공간으로 삼아야만 했다. 그곳에서 선수들은 자신의 새로운 감독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다수가 미묘한 긴장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자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지도자와 함께하는 건 그들의 커리어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후줄근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나타난 외국인 감독은 팔짱을 낀 채로 정갈하게 다듬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좌우를 훑어보고서는 절도 있는 목소리로 첫마디를 열었다.


“만나서 반갑다. 내 이름은 안토니오 델 레오네. 이탈리아에서 왔고, 나이는 서른넷. 여러분들과 앞으로 좋든 싫든 함께 지내게 될 감독이지.”


‘엄청 젊잖아.’


선수단을 장악해야 하는 감독은 보통 적어도 서른 후반은 되어야 안정적이다. 그 부분에서 이미 눈앞에 있는 남자는 정상적인 범주가 아니었다. 저렇게나 젊은 감독이라니. 여차하면 팀 내 선수가 맞먹을 수 있는 나이 아닌가?


다행스럽게도 로스 카운티엔 그 정도의 연장자는 없었다.


“기왕이면 서로 사이좋게 가는 게 가장 좋겠지만.”


선수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보다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조용할 수밖에 없다는 게 맞을 것이다. 감독은 그에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계속했다.


“아마 내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없을 거다. 사수올로 유소년 팀을 맡았던 게 전부니까.”


“······.”


“그 말은 곧 나의 본격적인 커리어가 자네들과 함께 시작된다는 얘기지.”


여기까지 말을 마치자 선수들 속에서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는 스튜어트 코치가 핵심 선수로 추천했던 로스 카운티의 주장, 리차드 브리튼(Richard Brittain)이었다.


“저희도 감독님 밑에서 좋은 경험을 쌓길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삼류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태리 꼬마들이나 데리고 놀다가 온 감독에게 어떤 존경심을 가질 수 있겠는가? 하지만 감독으로서의 예우를 갖춘 한 마디였다.


어수선한 시기에 팀을 빠르게 융합시키기 위해서는 대표인 자신부터 솔선수범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법이니까. 확실히 한 팀의 주장을 맡을 만한 자격이 있는 남자였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이탈리안 감독은 그런 브리튼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좋은 경험이라······그러면 자네들은 그 경험을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군.”


그리고 선수들을 한번 크게 돌아보더니 다시 말했다.


“셀틱을 잡을 각오 정도는 되었나?”


“셀틱이요?”


이번엔 놀란 브리튼 쪽에서 되물었다. 선수단 역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방금 나온 말의 의미를 곱씹어 보았다. 단순히 셀틱의 발목을 잡아보자는 소리인가? 아니면,


“그들의 자리를 쟁취해 볼 각오가 되었냐는 얘기네.”


다시 한번 술렁였다. 옆에 있던 수석코치 역시 본인도 전혀 예상치 못한 발언을 듣고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첫 만남부터 파격적인 발언을 내뱉은 외국인만이 유일하게 차분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포부는 마음에 드는데.’


브리튼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사실 팀이 한 발자국 나감을 주저하는 것에 못마땅하고 있던 참이었다.


아담스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팀을 승격시켰던 그 영웅조차도 셀틱은 꺾을 수 없는 존재로 규정짓고 승부를 피하곤 했다. 실리적인 계산 끝에 내린 판단이었겠지만 그 점에 여러모로 불만이 많았다. 다만 내색하지 않고 프로답게 처신하며 맡은 바에만 책임을 다해왔다.


그나마 팀을 유지해주던 감독마저 떠난 뒤로는 진심으로 이적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그에게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몇몇 잉글랜드 2부 구단, 그들은 모두 승격을 목표로 하는 팀들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England Premier League), 브리튼도 뛰어난 선수들이 즐비한 그런 무대에서 뛰고 싶은 야망이 있었다.


수년간 헌신해온 정든 구단을 떠나는 것은 원치 않는 일이었지만 남들의 발밑에 엎드려서 무의미하게 선수 생활을 전부 마감하는 건 더더욱 원치 않는 일이었다.


중대한 결정의 시기, 그래서 브리튼은 새로 온 감독을 만나본 뒤에 자신의 거취를 결정하려고 생각 중이었다.


물론 생각보다 더 골 때리는 발언을 들었지만 말이다.


로스 카운티로 스코티시 우승이라니. 이건 과감함을 넘어서 정신 나간 발언이라고 봐도 이상할 게 없지 않은가. 그러나 그게 마냥 싫지는 않았다. 브리튼은 신사적인 것 같으면서도 괴상하기도 한 저 독특한 분위기의 남자를 좀 더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물론 모두가 그처럼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스코티시의 정점. 그건 로스 카운티에 몸담고 있으면서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영역 아닌가?


그저 안정적인 현재 위치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 혹은 더 수준 높은 팀으로 둥지를 옮기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인데, 여기서 셀틱을 잡고 우승컵을 들어 올린다?


불가능한 일이다.


“흐음······왜 그런 표정들이지?”


서로 입을 다물고 눈치를 보는 선수들을 보며 감독이 물었다.


“하고 싶은 말들이 있는 것 같은데. 괜찮으니까 의견이 있다면 말해봐.”


“그···진심으로······하신 말씀은 아니죠?”


그러자 누군가가 천천히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조심스레 반대 의견을 내민 건 아담 해틀리(Adam Hatley)로 로스 카운티에서 3년간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던 골키퍼였다.


“감독님이 이탈리아에서 오셔서 잘 모르실 수도 있지만 셀틱을 꺾기에 우리 팀은 여건이 열악합니다. 그들은 규모, 재정, 인재풀 모든 면에서 상대할 수 있는 팀이 없거든요.”


“감독님 뜻은 이해하지만 여기서 셀틱을 상대해 보신다면······.”


“우선은 작은 목표부터 잡고 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해틀리의 용기 있는 발언에 동조하는 이들이 하나둘 나서며 힘을 실어 주기 시작했다. 모두 스코티시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 셀틱의 위압감을 몸소 느꼈던 선수들이다.


두려움이 각인되어버린 그들에게 있어 프로 선수라는 건 과감하게 대항하는 도전자가 아니라 현상 유지를 위해 조용히 묻어가는 그런 의미에 가까웠다.


농담으로도 쉽사리 할 수 없는 말이다. 한 팀을 지휘해야 하는 책임을 짊어진 수장이라면 더더욱.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인 감독의 만용에 가까운 발언으로 인해 선수들의 신뢰감은 이미 깎여나가고 있었다.


“그래, 이 정도 반응이군.”


잠자코 듣고 있던 감독이 웃으며 말했다.


“그들의 명성을 모를 리가 있겠나? 나 역시 첫 시즌부터 몰아붙일 생각은 없다네. 다만 자네들이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었는가를 알고 싶었을 뿐이야. 결과적으로 살짝 실망했지만.”


그의 얼굴이 점차 진지하게 굳어져 가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가기에 앞서 내가 선호하지 않는 부류를 짚고 넘어가야겠군. 그래야 앞으로 수월하게 진행될 테니 말이야. 우선 첫째는 스스로 한계선을 그어놓고서 앞으로 나아갈 생각이 없는 부류.”


델 레오네의 눈이 해틀리를 시작으로 반론을 제기했던 선수들을 한번 훑고 지나갔다.


“둘째는 상대에게 지레 겁먹고 무작정 고개를 숙이려는 녀석들이다. 혹시라도 그런 친구들이 있다면 지금 당장 여기를 나가도 좋아. 그리고 빠른 시일에 다른 팀을 알아봐야 할 거야. 난 그런 나약한 선수들과 시즌을 치를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


선수단은 다시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짧은 정적을 들이마신 델 레오네는 다시금 장난인지 진심인지 모를 웃음을 지었다.


“그게 아니라면 다들 셀틱을 때려눕힐 각오를 단단히 해두는 게 좋을 것이네.”


감독의 말이 충격적이면서도 무척이나 단호했기에 더 반박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불만이 사그라든 건 아니었다. 선수들은 각자의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적을 모색해야 하는지, 팀에 남아서 저자를 따라야 하는지. 물론 브리튼처럼 새로운 의욕이 치솟아 오르는 선수들도 있었다.


“그러면 지금 바로 시작하도록 하지, 닐.”


“예? 아······예!”


잠깐 정신을 놓고 있던 스튜어트처럼 그저 벙쪄버린 이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허둥대며 대답한 수석코치는 이내 머리를 긁적이더니 손에 든 판을 보며 선발로 필드에 나설 선수들을 호명했다.


“첫날부터 연습 시합? 그것도 1군과 2군끼리 붙이다니.”


“큰소리는 실컷 쳐놓고 이번 경기에 개입조차 안 하는 거야?”


몇몇 선수들이 작은 소리로 속닥거렸다. 이탈리안 감독은 어느새 저만치 벤치에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특별한 전술 지시 또한 없었다. 2군은 물론이고, 1군조차 전부 코치진이 판단해서 내세운 명단이었다.


‘우리를 시험해보려는 건가?’


브리튼은 직감적으로 단순히 아무 목적 없는 시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표면적으로는 팀 내부에서 치르는 몸풀기 정도의 시합이겠지만 저 감독의 의도가 과연 그것뿐일까? 애초에 부임 첫날부터 1군과 2군의 정식 시합을 요구하는 저 괴짜가 말이다.


보통 연습 시합을 할 땐 양 팀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주전과 후보를 적절히 섞는다. 기량 차를 고려하여 중요 시합을 앞두고서는 1군과 2군이 따로 그룹을 지어 훈련한다.


정확히 무슨 목적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가지 만큼은 알 수 있었다.


실전에 임하듯이 최선을 다해서 뛰어야 한다.


작가의말

등장인물에 한국 사람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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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9

  • 작성자
    Lv.39 맘속
    작성일
    18.01.02 09:10
    No. 1

    매끄럽게 잘 보고 있습니다.

    꾸준히 쭉 연재하셨으면 하는 마음에 응원댓글 남겨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3 윤제나
    작성일
    18.01.06 08:35
    No. 2

    추천글 보고 왔는데 글 너무 좋네요~~!
    글이 깔끔해서 집중도 잘되고 술술 읽히는거같달까.. 나머지편도 계속 읽으러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9 별빛바람이
    작성일
    18.01.08 20:00
    No. 3

    주인공이 한국인이 아니다 보니 몰입감은 좀 덜하지만 그만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네요.

    기분 좋은 건조함이 느껴집니다. 현재 계속 주행중입니다.

    찬성: 3 | 반대: 6

  • 작성자
    Lv.49 모르기
    작성일
    18.01.08 20:41
    No. 4

    스포츠물은 처음 보는데 재밌어보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Bhagavat
    작성일
    18.01.22 10:23
    No. 5

    한국인이 없어서 오히려 좋네요.

    찬성: 3 | 반대: 1

  • 작성자
    Lv.57 [탈퇴계정]
    작성일
    18.01.28 14:35
    No. 6

    풋볼매니저 처음 시작하는 느낌이군요ㅋㅋ

    찬성: 1 | 반대: 1

  • 작성자
    Lv.46 Judi
    작성일
    18.02.03 00:00
    No. 7

    없어도 글만 재미있으면 되죠.

    찬성: 1 | 반대: 1

  • 작성자
    Lv.25 th***
    작성일
    18.02.09 09:56
    No. 8

    국뽕. 애국심. 문화 차이. 인종차별 클리셰 없어서 더 담백한데요

    찬성: 8 | 반대: 0

  • 작성자
    Lv.51 [탈퇴계정]
    작성일
    18.02.11 15:50
    No. 9

    사실 한국에서 한국인이 한글로 한국독자들 겨냥해서 쓰는 장르소설에 외국인 주인공이면 보기싫어지긴하는데 오히려 젊은나이에 별다른 커리어없이 감독하는것에 대한 개연성을 따지면 어쩔수없을듯.
    한국인이 유럽축구감독 그것도 젊은나이의 커리어도 없는 한국인감독이라면 프롤로그보자마자 실망할것도같고..

    찬성: 5 | 반대: 0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8.03.11 00:01
    No. 10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52 군림동네
    작성일
    18.04.02 20:08
    No. 11

    한국인이 아니라 국뽕에 취할일이 없겠네요..다행이네요.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47 인생의보물
    작성일
    18.04.04 10:02
    No. 12

    좋기만 합니다. 추천 꽝!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0 수건
    작성일
    18.04.06 13:58
    No. 13

    글에 '남자' 라는 단어가 너무나 많이 나오네요.
    더군다나 우리 나라에선 상대적으로 쓰일때나 쓰지 사람을 지칭할때는
    그냥 '사람'으로 쓰지 굳이 '남자'라는 한정적인 단어는 잘 안 쓰는데요.
    3류 쪽바리 번역물에 영향을 많이 받은듯 합니다.
    예) 우리나라--> 대단한 사람이다.
    쪽바리----> 대단한 남자다.

    찬성: 1 | 반대: 8

  • 작성자
    Lv.60 코끼리손
    작성일
    18.08.27 15:26
    No. 14

    FM 하는 기분이 물씬드네요.
    쥔공이나 구단주 면접 대화도 그렇고요.
    시즌 초에 선수단과 면접할 때 시즌 포부를 묻는
    장면 생각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EX급불편러
    작성일
    18.10.14 13:25
    No. 15

    수건 // 일본어 할 줄은 알면서 일본어 번역물 같다고 하는 건가? 난 일본에서 유학했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일본어 번역투의 글이라는 느낌을 전혀 못 받았는데, 어디서 어줍지않은 쥐밤톨만한 지식으로 일본어 냄새가 나느니 마느니 나불대는 건지...

    찬성: 4 | 반대: 0

  • 작성자
    Lv.44 다케군
    작성일
    19.01.11 16:50
    No. 16

    몰입되는 글입니다

    찬성: 0 | 반대: 2

  • 작성자
    Lv.56 검은사하라
    작성일
    19.01.17 03:35
    No. 17

    한국인이 아니라는 점이 상당히 의외지만, 스토리는 매력적입니다

    마이너스 요소일 순 있지만 저는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3

  • 작성자
    Lv.56 검은사하라
    작성일
    19.01.17 03:37
    No. 18

    아, ( 수건 ) 님, ㅎㅎㅎ 아닙니다

    착각이세요

    악플입니까?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흑돌이
    작성일
    21.06.29 13:01
    No. 19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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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 신뢰하다 +16 18.01.03 9,890 277 13쪽
22 22. 발화점 (2) +20 18.01.02 9,984 270 15쪽
21 21. 발화점 +6 18.01.01 10,262 264 14쪽
20 20. 징조 +6 17.12.29 10,355 300 16쪽
19 19. 의지를 시험하다 (2) +4 17.12.28 10,427 277 14쪽
18 18. 의지를 시험하다 +9 17.12.27 10,420 300 16쪽
17 17. 그의 움직임을 봤지? +8 17.12.26 10,843 310 13쪽
16 16. 알렉산더 캐리 +9 17.12.25 11,149 305 16쪽
15 15.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 (5) +4 17.12.22 11,111 279 13쪽
14 14.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 (4) +10 17.12.21 11,767 305 14쪽
13 13.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 (3) +4 17.12.20 11,589 300 13쪽
12 12.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 (2) +5 17.12.19 11,790 330 13쪽
11 11.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 +8 17.12.18 11,798 339 12쪽
10 10. 개막전 +10 17.12.15 11,898 315 12쪽
9 9. 아서라는 이름의 청년 +9 17.12.14 11,846 319 14쪽
8 8. 프리시즌 (3) +10 17.12.13 11,925 289 13쪽
7 7. 프리시즌 (2) +14 17.12.12 11,841 302 11쪽
6 6. 프리시즌 +10 17.12.11 12,881 275 15쪽
5 5. 첫 기자회견 +6 17.12.08 13,170 312 12쪽
4 4. 연습 시합 (2) +8 17.12.07 13,735 315 16쪽
» 3. 연습 시합 +19 17.12.06 16,303 30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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