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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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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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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2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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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5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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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118. 임시방편 (2)

DUMMY

< Scottish Football Day >


[ 스티브 맥멀런(Steve McMullen : 진행자) : 알렉산더 캐리를 잃어버린 로스 카운티가 세인트 미렌전에서 꺼내 들었던 대안은 4-2-3-1 이었습니다. 그리고 에드빈 데 루어를 중앙 2선에 세웠는데요. 두 분 생각은 어떤가요? 옳은 선택으로 보이나요? ]


[ 조니 밀러(Jonny Miller : 고정 패널) :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것 같아요. ]


[ 에릭 프레스턴(Eric Preston : 축구 평론가) :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주어진 게 한정된 상황에서 최선을 찾는 과정에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동안 로스 카운티는 볼 배급자 캐리를 중심으로 엄청난 운동량의 에이든 딩월과 파트너 리차드 브리튼이 부지런히 뛰어다니면서 그를 보조해주는 식의 축구를 했었는데요. ]


[ 조니 밀러 : 아니면 아예 미드필더 두 명을 앞에 세우거나 했었죠. ]


[ 에릭 프레스턴 : 맞아요. 그런데 이제 그 방식을 쓰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다른 팀원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그렇게 했던 이유는 빌드업에 뛰어난 캐리의 존재 때문이었거든요. 근데 그가 부상을 당했고, 현재 대신해서 나올만한 선수는 대런 케틀웰과 맷슨 클락인데, 둘 다 그 빈자리를 채우기에는 역량이 부족합니다. ]


[ 스티브 맥멀런 : 빌드업 부분에서 말인가요? ]


[ 에릭 프레스턴 : 네, 우선 맷슨 클락은 패스에는 재능이 있는데 다른 것들이 취약해서 주전으로 고정해 쓰기 어려워요. 결국 남는 건 케틀웰인데, 그는 수비에 강점이 있지만, 워낙 투박한 타입이라 빌드업 면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


[ 조니 밀러 : 이미 우리는 케틀웰과 브리튼이 함께 출전한 몇 번의 경기에서 얼마나 흐름이 답답해지는지를 목격했었죠.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전진 패스나 좌우로 크게 전환되는 공격 패턴. 최근 기억 속 로스 카운티의 그런 플레이들은 대부분 캐리의 발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


[ 에릭 프레스턴 : 현시점에서 에이든 딩월을 활용한 로스 카운티식 변형 4-4-2는 그 북아일랜드 선수가 돌아오기 전까진 폐기되었다 봐도 무방하죠. 적어도 델 레오네 감독이라면 그렇게 결정을 내렸을 겁니다. ]


[ 스티브 맥멀런 : 전술적인 결함을 가벼이 넘길 사람이 아니니까요. ]


[ 에릭 프레스턴 : 문제는 4-1-4-1 역시 마찬가지예요. 제임스 블랜차드를 중앙 미드필더로 배치하던 그 전술 말입니다. ]


[ 조니 밀러 : 중앙에 더 힘을 실어주는 괜찮은 플랜B였죠. 그걸로 올림피아코스와 잘츠부르크를 때려잡으면서 유럽 무대에 계속 도전해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


[ 에릭 프레스턴 : 그랬죠. 하지만 그것도 뒤에서 팀을 조율해주었던 캐리가 있었기에 가능한 포메이션이었어요. 지금은 그 역할을 맡길만한 선수가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맷슨 클락은 그 자리를 유지하기 버거울 테고요. ]


[ 스티브 맥멀런 : 그렇다면 이제 4-4-2도 안 되고 4-1-4-1도 못 쓴다는 얘기인가요? 듣고 보니 상황이 보통 심각한 게 아닌 것 같은데요. 그래서 델 레오네 감독이 최선의 방안으로 4-2-3-1을 꺼내 들었다는 거군요? ]


[ 에릭 프레스턴 : 그렇습니다. 3선을 단단한 선수들로 구성하여 간단한 역할만 수행케 하고, 2선에 힘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간 겁니다. ]


[ 스티브 맥멀런 : 마침 데 루어가 또 중앙 2선에 익숙하기도 하고 말이죠. 셀틱전에서도 그 자리에서 멋진 골을 넣었고요. 하지만 저번 시합에서는 그렇게 잘 돌아가는 느낌은 아닌 것 같았는데요. 선수들에게 적응 기간이 필요한 걸까요? ]


[ 에릭 프레스턴 : 적응 기간이 필요한 것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못했어요. 후방 빌드업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수비가 자리 잡았을 때는 어떤 식으로 공격 작업을 해서 뚫어낼 건지. 로스 카운티는 이제 캐리가 없는 동안 이러한 부분들을 계속해서 연구해야만 할 겁니다. ]


[ 조니 밀러 : 데 루어는 캐리처럼 중심이 되기는 어려워요. 직접 골문을 노리는 킥력은 좋지만, 창의성을 불어넣어 주는 선수가 아니거든요. 아마 그는 2선에 정적으로 머물기보다는 아래까지 내려가 볼을 받아주고 주변과 연계를 통해 위로 운반하는 역할을 맡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


[ 에릭 프레스턴 : 그 말씀대로입니다. 플레이메이커라기보다 쉐도우 스트라이커 같은 느낌의 성향이 강한 선수죠. 그래서 로스 카운티는 또 하나의 딜레마를 앓고 있을 겁니다. ]


[ 스티브 맥멀런 : 무슨 딜레마 말이죠? ]


[ 에릭 프레스턴 : 공격수에 관련한 딜레마죠. 데 루어가 만일 찬스 메이킹에 능한 전형적인 10번이었다면 잭 마틴과 호흡이 괜찮았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이 빈틈을 파고들어 슈팅을 노리는 스타일입니다. 이론상 두 선수의 조합은 최악이에요. 가뜩이나 원 스트라이커 체제에서 존재감이 미미했던 잭 마틴인데요. ]


[ 스티브 맥멀런 : 과연 그럴 수도 있겠네요. ]


[ 에릭 프레스턴 : 세인트 미렌전에서 에이든 딩월이 선발로 나온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그는 활동 범위도 넓고 팀플레이에 강한 선수니까요. 데 루어와 서기에 적합하죠. 문제는 이 선수의 마무리 능력입니다. 잭 마틴에 비하면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수준이잖아요? ]


[ 조니 밀러 : 하하하. ]


[ 에릭 프레스턴 : ······오, 이런. 전 딩월 선수를 좋아합니다. 오해하지는 마세요. 하지만 냉정히 말해서 그의 골문 앞 영향력은 프리미어십 공격수들을 전부 통틀어서도 하위권에 속할 거예요. 전 그저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


[ 스티브 맥멀런 : 큼큼······. 네, 계속 말씀하시죠. ]


[ 에릭 프레스턴 : 그렇기에 4-2-3-1 포메이션에서 전방의 1자리를 딩월에게 맡길 경우 자연스레 화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어요. 저번 경기에서도 그 문제가 여실히 드러났죠. 그날 딩월이 시도한 다섯 번의 슈팅 중 수비 몸을 맞고 나온 게 네 번, 골대 바깥으로 벗어난 게 한 번입니다. 키퍼를 위협한 유효 슈팅 자체가 없었어요. ]


[ 조니 밀러 : 말씀하신 대로 로스 카운티는 후방 못지않게 전방에서도 고민거리가 많은 상태입니다. 에이든 딩월이나 잭 마틴이나 팀에 드러난 단점을 완벽히 보완해주지는 못하고 있으니까요. 어쩌면 이쪽이 당장은 더 급한 과제가 될 수도 있다고 봐요. ]


[ 에릭 프레스턴 : 그 말에 동감합니다. 이 팀이 평범한 목표를 가졌다면 그냥 그대로 가도 돼요. 상관없어요. 하지만 셀틱과의 경쟁을 이어나갈 거라면 짚고 가야 할 부분입니다. 방법이 없다면 남은 선수로 어떻게든 풀어나가야겠지만 일단은 겨울 이적 시장이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여러 곳에서 해답을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


[ 스티브 맥멀런 : 새로운 공격수를 영입하라는 말인가요? ]


[ 에릭 프레스턴 : 리그 하나만 치르고 있는 게 아니니까요. 단순히 지금 플랜만을 위한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공격 옵션을 늘려둘 필요가 있어 보여요. 캐리의 대체자를 구하는 건 당장 어렵겠지만, 이쪽에서는 해결책이 분명 있을 겁니다. 물론 선택은 로스 카운티의 몫이겠지만요. ]


*******


“그런 이유로 공격수를 꼭 영입해야 합니다.”


비슷한 시각, 폴 몽고메리 수석 스카우트는 다시 감독실을 방문하여 한창 자신의 주장을 펼치던 중이었다.


“세인트 미렌전을 지휘하면서 감독님도 느끼셨겠죠. 교체로 투입한 부팔의 원맨쇼가 없었다면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 경기였다는 걸 말입니다.”


책상에 양 손바닥을 짚고 온갖 근거를 대며 설득하는 모습은 반드시 동의를 얻어내고 나서야 발걸음을 떼겠다는 각오까지 보이는 듯했다. 감독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편안한 자세로 앉아 그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말이다.


“필립 로스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면 저도 더 얘기를 드리지 않겠지만, 감독님이 아직도 정규 리그에 데뷔시켜주지 않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결국 우리가 보유한 공격수는 둘 뿐입니다. 그것도 현 포메이션에 녹아들기 어려운 선수들뿐이고요.”


“······.”


“캐리가 돌아온다면야 다 해결될 일이겠죠. 하지만 무려 삼 개월입니다. 리그 테이블이 여러 번 뒤 바뀌고도 남을 기간이에요. 설정하신 목표치가 여전히 높은 곳에 있다면 있는 자원들로만 버텨낼 생각을 버리셨으면 합니다. 여기서 다른 부상자가 안 나오리라 단언할 수 없잖습니까?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제 남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감독이 천천히 말했다.


“상황이 아무리 다급해도 일회성으로만 쓰고 버릴 선수라면 기용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음 시즌이 되어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돌아와도 로스 카운티의 일원으로 전혀 어색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 정도 수준을 마감일 안에 구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힘이 닿는 데까지 노력해봐야지요. 이미 직원들을 영국 곳곳에 파견하여 물색하고 있습니다. 그중 몇몇 눈이 가는 대상을 찾아 관찰 중이고요.”


“좋습니다.”


이탈리안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였다.


“안 그래도 이 부분에 대해서 함께 상의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저 또한 공격수를 보강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얘기가 빨라지겠군요.”


몽고메리 역시 환한 얼굴로 대꾸했다.


“감독님이 승인하신다면 이 일에 더 박차를 가할 수 있지요. 제가 강하게 주장했던 만큼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구해오겠습니다.”


“기대하지요.”


“그리고 저번에 말씀드린 존 맥긴 있지 않습니까? 그 선수에 대한 정보도 계속 수집 중에 있습니다.”


스카우트 팀장이 신이 난 어조로 말했다.


“우리가 그를 영입해 오는 데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두고 있죠. 설령 실패하더라도 대신해서 올 만한 후보군까지 여럿 조사 중입니다. 여름 시장이 오기까지 꽤 괜찮은 성과를 얻어낼 수 있을 겁니다.”


“······몽고메리 씨께서는 정말로 팀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시는군요.”


이탈리안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과감한 추진력에······ 언제나 앞장서서 논쟁을 불사하지 않고 꿋꿋이 주장을 내세우며 굽히지 않는 모습, 좋습니다.”


“아······.”


난데없는 칭찬에 몽고메리는 머쓱해진 표정을 짓고 말았다.


정말로 칭찬인 건지, 아니면 그것을 가장하여 거슬리는 감정을 넌지시 던진 것인지. 약간 모호하게 들리는 말이다. 순간 목구멍을 통해 마른침이 흘러내려 갔다.


‘너무 나갔나?’


생각해 보면 요새 들어 좀 과격하긴 했다. 초조함에 몰아세운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기분이 언짢았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며, 권력을 앞세우길 좋아하는 인물이라면 진작 화를 내고도 남았을 것이다.


팀장의 직책으로 있지만 그래 봐야 감독이란 이름 앞에서는 일개 스태프일 뿐인데.


“이제야 제대로 굴러간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정말로 훌륭합니다. 언제든 받아들일 테니 계속 이렇게 의견을 제시해주시길 바랍니다.”


“······.”


“앞으로도 스카우트 팀을 잘 이끌어주시길.”


하지만 호의적으로 내미는 그의 손을 보고서야 아무런 의도가 담겨 있지 않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저 순수한 의사를 내비친 것뿐이다.


몽고메리는 속으로 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악수를 받았다.


“로스 카운티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바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시간이 한참 지나도 언론의 관심사는 오로지 한 곳에 쏠려 있었다.


꿀단지가 깨져서 달콤한 냄새가 계속 풍겨 나오고 있으니 벌떼들이 쉽사리 지나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비단 언론뿐만은 아니었다. 모두가 장기 부상으로 이탈한 캐리에 관해 얘기하기 바빴고, 그것을 대처할 델 레오네 감독의 방식에 주목하고 있었다.


긍정적인 반응은 극히 적었지만 말이다. 특히 여론은 악화되는 수준에 이르고 있었다. 평소에 로스 카운티를 희망적으로 바라보던 사람들마저 암울한 전망을 내놓을 정도였다.


“진정한 시련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지금 로스 카운티에서 대체 불가능한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알렉산더 캐리였어요. 다른 이는 몰라도 이 선수의 부상만큼은 반드시 피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삼 개월이라니.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말았어요.” - 스코티시 스포츠 해설자 ‘롭 맥케나(Rob McKenna)' -


“셀틱은 지금 웃고 있을 겁니다. 그들에게 캐리의 결장만큼 좋은 소식이 또 있을까요? 그만큼 그는 핵심적인 존재였고, 다른 팀에게는 두려운 대상이었습니다. 로스 카운티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완성하기 직전에 펜이 부러졌어요. 그들이 계속 기적을 써나갈 수 있을까요? 세인트 미렌전에서도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였는데 말이에요. 회복하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 더 스코츠맨, 로스 카운티 담당 기자 ‘제임스 맥렐랜드(James McLelland)’ -


*******


< 14-15 Scottish Premiership 23 Round >

로스 카운티 : 마더웰

2015년 1월 21일 (수) 19:30

빅토리아 파크 (관중 수 : 6,083명)



[로스 카운티 / 4-2-3-1]

FW : 에이든 딩월

AM : 제임스 블랜차드 / 에드빈 데 루어 / 소피앙 부팔

CM : 대런 케틀웰 / 리차드 브리튼

DF : 리 월리스 / 폰투스 얀손 / 스콧 보이드 / 스티브 샌더스

GK : 마크 브라운



“내려놓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지.”


여전히 희망을 놓지 않고 기대를 거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존 프리먼처럼 ‘안토니오 델 레오네 신봉자’에 한정된 얘기지만.


평론가들의 태도가 바뀐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다. 그가 생각해도 알렉산더 캐리의 공백은 보통 문제라 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럴수록 이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 이탈리안이 어떤 타개책을 꺼내놓을지 내심 기대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는 별다른 점이 보이지 않는다.


코너킥 상황에서 스콧 보이드의 뒤통수를 스치듯 맞은 볼이 골망을 흔들었고, 마더웰이 기습적인 중거리 골로 동점을 만들며 서로 한 차례씩 주고받은 이후 양 팀은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답답하게 진행되는 공격. 로스 카운티의 진영에서 전개되는 볼의 순환부터 혈관이 턱 막혀버린 듯이 시원찮게 돌아가고 있다.


“캐리의 빈자리가 확실히 크긴 크구나.”


프리먼은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내저었다.


원래대로라면 물 흐르는듯한 짧은 패스들이 빠른 템포로 돌다가 보기만 해도 시원한 롱패스가 좌우 전방으로 뿌려졌어야 했는데.


빌드업을 주도하던 지휘자가 필드에 서지 못한 이후로 계속 이런 상태다.


“예전처럼 롱볼에 기반을 둔 축구로 돌아가자니, 요앙 아르킨처럼 전방에서 제공권 다툼을 해줄 선수도 없고······.”


에이든 딩월은 파이팅이 넘치지만, 공중볼을 잘 따내는 선수까진 아니다. 잭 마틴은 그 분야에서 딩월보다도 떨어지니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면 제임스 블랜차드는 어떨까? 186cm의 키에 제법 단단한 체격을 갖추고 있는 데다가 실제로도 공중볼에 강한 면모를 보이는 편이니, 당분간 중간을 생략하고 그를 겨냥하는 식의 축구를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에 빠져 있던 중, 주심의 휘슬 소리에 프리먼은 다시 필드로 시선을 돌렸다.


후반 57분의 이른 교체.


“어? 또 블랜차드를 뺀다고?”


교체 판에 빨간 불로 표시된 숫자는 10번이었다. 그리고 앤드류 톰슨이 대기심 옆에 서서 들어오길 준비하고 있었다.


“셀틱전부터 해서, 세인트 미렌전······ 이번 마더웰전까지 하면 세 경기 연속 교체로 불려 나오는 건데.”


이때까지 교체되어 나오기보다 오히려 풀타임을 소화한 횟수가 더 많았던 선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세 번이나 연달아 교체 대상으로 지목되다니. 어쩌면 느끼기에 따라서 굴욕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왤까? 남겨서 손해 볼 타입의 선수는 아닐 텐데.”


블랜차드 또한 지시에 순응하면서도 섭섭한 감정을 전부 감출 수 없었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 필드를 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또 부팔을 왼쪽에 놓는 건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필드를 훑어보던 프리먼의 눈에 새로운 변화가 들어왔다.


“얀손이 보이드와 자리를 바꿨어.”


폰투스 얀손은 주로 왼쪽 센터백으로 출전해 왔고, 이번에도 선발 라인업엔 분명 그렇게 표기되어 있었다. 그런데 블랜차드가 나가고 부팔이 들어온 순간부터 두 선수가 위치를 바꿔 서고 있다.


“저번엔 잭 마틴의 자리를 바꾸더니.”


단순히 마더웰 공격수의 전담 마크 대상을 바꾸기 위한 지시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또 하나의 변화를 발견하며 프리먼은 전술적인 이유임을 확신했다.


“월리스의 위치도 많이 내려와 있어.”


리 월리스는 빌드업 시에도 높은 라인에 올라가서 볼을 받는 경우가 많았고, 거의 윙에 가까운 플레이로 공격 위주의 역할을 수행하는 풀백이다. 가끔 오버래핑을 자제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개는 그의 가담으로 인해 로스 카운티의 공격이 완성된다.


그랬던 그가 중앙선을 넘어서는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뒤에 빠져 있다는 건 역시 감독의 지시가 들어갔다는 것 외에 설명할 길이 없다.


“폰투스 얀손을 왼쪽에 세웠던 이유는 주력이 느린 스콧 보이드보다 좀 더 빠른 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지. 월리스가 나간 자리를 메워주기에는 제일 적격이니까.”


델 레오네 감독이 직접 밝힌 사항은 아니지만, 그게 오른발을 주로 사용하는 얀손을 굳이 왼쪽에 배치하는 이유라고 프리먼은 추측하고 있었다. 든든한 스웨덴산 센터백이 위치를 바꾸자마자 월리스에게 변화가 간 것만 봐도 얼추 들어맞는다.


“월리스의 오버래핑 횟수가 낮아지면 블랜차드가 안으로 파고들어 갈 때 왼쪽 공간을 활용하지 못하고 버려지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그래서 측면을 선호하는 부팔로 바꾼 건가?”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게다가 앞선 두 번의 경기에서 대신 투입된 데 루어와 부팔이 성과를 내기도 했으니 결과적으로 감독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블랜차드는 여전히 팀 내에서 높은 공격 포인트 지분을 가지고 있다. 전술적인 이유로 플랜에서 제외해 버리기에는 지니고 있는 가치가 너무나도 아까운 선수인데.


그걸 알기에 이탈리안도 선발 라인업에 그의 이름을 적어 넣은 거겠지만.


“······모르겠군.”


프리먼은 턱을 긁적이며 생각을 미뤄두기로 했다.


지금은 폰투스 얀손이 오른쪽으로 배치된 이유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말뫼에서도 오른쪽에서 뛴 횟수가 더 많은 거로 알고 있기는 한데······.”


오른쪽으로 서는 것에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것과 수비수치고 발재간이 좋은 편이라 전진이 가능한 선수라는 것. 유추해볼 수 있는 실마리는 여럿 있다. 어느 정도 예상되는 그림 또한 머릿속에서 그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와아아 -


마더웰이 길게 찔러보려 시도한 롱볼이 얀손을 뚫지 못하여 그의 가슴팍에 막혔고, 이어서 그 거구의 센터백이 볼을 직접 몰며 앞으로 나가더니 달려드는 선수 한 명을 부드럽게 제쳐내면서 관중들의 함성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가 앞으로 밀어준 패스는 데 루어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데 루어가 주저하지 않고 우측으로 찔러준 볼이 수비의 다리를 간발의 차로 피하며 뒷공간으로 빠져나갔다.


“오오.”


최종 방어선에서 패스를 끊어내려는 시도를 실패하는 순간 위기가 찾아오게 마련이다. 준족, 그것도 후반에 투입되어 체력이 팔팔한 앤드류 톰슨이 무주공산의 우측을 질주하는 걸 제어해낼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톰슨은 볼을 잡아내기 전까지 쫓아오는 마더웰 선수들과 30m 정도만큼 거리를 벌려내고는 낮게 깔린 크로스를 길게 문전 쪽으로 날렸고, 반대편 측면에서 쇄도해 들어가던 부팔에게 정확히 도달했다.


문제는 슈팅을 시도하기엔 너무 각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깡 -


부팔의 무리한 슈팅이 왼쪽 골대 상단을 강타하면서 튕겨져 나왔다. 다행히 세컨드 볼을 잡은 건 마더웰 수비와 함께 열심히 뒤따라왔던 데 루어였다.


데 루어는 달려오는 속도를 이용해 가슴으로 트래핑하며 박스 안까지 들어가 오른쪽 하단 구석을 노리는 날카로운 슈팅을 시도했다.


“또 막혔어!”


이번엔 키퍼의 선방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다음 볼의 행방을 인식하기도 전에 한 명의 선수가 맹렬히 달려들어 그물을 찢을 듯한 기세로 다리를 휘둘렀다.


박스 바깥으로 완전히 굴러 나온 것도 아닌데, 어찌나 강한 슛이었는지 아직 일어나지 못한 키퍼가 볼을 막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양팔로 자신의 얼굴을 먼저 가릴 정도였다.


철썩 -


“······진짜 저 슈팅은 쉽게 교정이 안 되나 보군.”


프리먼은 키퍼의 바로 앞에서 무자비한 슈팅을 날려버린 에이든 딩월의 천진난만한 셀레브레이션을 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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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 카운티 2 : 1 마더웰 >

스콧 보이드(16‘)

에이든 딩월(72‘)

+++++++++++++++++++++++++++++

이아인 비거스(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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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일랜드, 벨파스트(Northern Ireland, Belfast).


이곳에서도 한창 리그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같은 지역을 연고로 삼고 있는 클리프턴빌(Cliftonville)과 린필드(Linfield)의 치열한 더비 다툼.


“좋아.”


그리고 그것을 유심히 지켜보는 이가 있었으니. 로스 카운티 스카우트 팀의 일원인 그레이엄 홀(Graham Hall)이었다.


더 스코츠맨의 담당 기자, 제임스 맥렐랜드에 버금가는 푸짐한 몸집의 소유자였지만, 저녁을 먹어야 하는 이 시간에도 그의 배를 채워주는 건 조촐한 달걀 샌드위치 두 덩이가 고작이었다.


다이어트를 하려는 의도가 있는 건 아니었다. 홀은 스카우트 팀장인 폴 몽고메리의 지시에 따라 몇 달간 북아일랜드에 머물고 있었는데, 몇몇 지목된 특별 대상들을 주시하는 중책을 맡고 있어 경기장에서 간단한 음식으로 때우는 버릇이 생긴 것이었다.


덕분에 근래 들어 6kg을 감량하는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말이다.


“여기서 뭔가를 보여준다면······.”


홀은 손에 든 샌드위치를 전부 입속에 집어넣으며 골문으로 쇄도하는 선수 한 명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철썩 -


그리고 클리프턴빌 쪽에서 골이 터졌다. 아직 젊어 보이지만 살짝 M형 탈모 증세가 보이는 공격수가 양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과격한 셀레브레이션을 보여주었고, 팀원들이 그를 쫓아가 함께 열광하고 있었다.


경기를 뛰느라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 귀 쪽부터 길게 이어지는 턱수염과 어우러져 호탕한 북아일랜드인의 기상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했다.


[린필드를 무너뜨리는 환상적인 헤더 골! 그 골의 주인공은 바로 리암!]


보이스 -


[리암!]


보이스 -


장내 아나운서와 관중들이 그의 이름을 외치며 열띤 환호성을 보내주고 있었다. 중대한 더비 경기에서 역전 골을 터뜨려내는 공격수라면 사랑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홀은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접니다.”


그리고 경기를 계속 주시하며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찾은 것 같습니다.”


작가의말

12시 안에 올릴 수 있었는데 글을 다듬는 동안...

주말 인사도 못 드리고 말았네요..

그래도 조금씩 연재 속도를 붙여나가고 있습니다.

열심히 방법을 찾고 노력 중에 있습니다.

항상 제 글을 기다려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언젠가는 빠른 연재를 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며...

편안하고 행복한 한주가 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이풍 님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_ _)


그리고 추천글을 올려주신

idbank97 님

연재도 느린 글을 추천해주셔서 감사하면서도 죄송하네요.

추천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께도 모두 감사드립니다. (_ _)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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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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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122. 사냥개와 들개들 (3) +13 19.09.14 2,757 114 26쪽
121 121. 사냥개와 들개들 (2) +6 19.09.05 2,829 102 23쪽
120 120. 사냥개와 들개들 +8 19.08.25 2,952 100 26쪽
119 119. 임시방편 (3) +8 19.08.16 2,968 108 27쪽
» 118. 임시방편 (2) +9 19.08.05 3,054 97 24쪽
117 117. 임시방편 +10 19.07.24 3,064 118 25쪽
116 116. 셀틱은 셀틱 (2) +9 19.07.08 3,136 115 23쪽
115 115. 셀틱은 셀틱 +5 19.06.25 3,198 111 18쪽
114 114. 인식 변화 (2) +9 19.06.10 3,360 116 20쪽
113 113. 인식 변화 +12 19.05.24 3,542 134 20쪽
112 112. 던디 쇼크 (2) +11 19.05.07 3,463 126 22쪽
111 111. 던디 쇼크 +7 19.04.21 3,699 134 21쪽
110 110. 역이용 +12 19.04.02 3,580 137 22쪽
109 109. 키포인트 +10 19.03.17 3,681 146 25쪽
108 108. 상관없어요 +16 19.03.01 3,854 144 21쪽
107 107. 고난의 6연전 (6) +11 19.02.17 3,802 143 24쪽
106 106. 고난의 6연전 (5) +10 19.02.02 3,860 122 22쪽
105 105. 고난의 6연전 (4) +16 19.01.20 4,035 149 21쪽
104 104. 고난의 6연전 (3) +23 19.01.09 4,295 145 26쪽
103 103. 고난의 6연전 (2) +16 18.12.26 4,297 141 18쪽
102 102. 고난의 6연전 +10 18.12.08 4,619 147 22쪽
101 101. 전조 +17 18.11.25 4,580 173 19쪽
100 100. 단체 면담 +26 18.11.12 4,682 182 21쪽
99 99. 밀집과 전환 +18 18.10.16 5,035 173 18쪽
98 98. 천재의 가치 +10 18.10.05 5,124 181 20쪽
97 97. 사용 설명서 +17 18.09.26 5,204 203 26쪽
96 96. 프리먼의 인터뷰 (2) +15 18.09.16 5,444 184 19쪽
95 95. 돈 값하네 +18 18.09.04 5,426 183 21쪽
94 94. 알려지는 이름 +21 18.08.25 5,475 195 19쪽
93 93. 이끌리는 사람들 (2) +18 18.08.19 5,424 208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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