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일반소설

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최근연재일 :
2024.05.02 21:14
연재수 :
204 회
조회수 :
1,085,273
추천수 :
33,874
글자수 :
1,891,834

작성
18.09.16 10:56
조회
5,395
추천
183
글자
19쪽

96. 프리먼의 인터뷰 (2)

DUMMY

“그럼 갔다 오겠습니다!”


“에이든, 저 녀석 너무 신난 거 같은데?”


“오늘은 그럴만하잖아. 내버려 두자고.”


빅토리아 파크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가 넘쳤다.


짜릿한 꿈과도 같았던 유로파 리그 예선을 포함해 구단 역사상 유례가 없는 최고의 시즌 출발, 거기에 던디 유나이티드를 홈에서 다시금 크게 대파하기까지. 팀이 이토록 거침없는 상승세를 타고 있는데 다운되어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8월은 로스 카운티의 달이라 봐도 무방했다.


이달의 선수는 제임스 블랜차드가, 이달의 감독상은 안토니오 델 레오네가 선정되면서 모든 명예를 쓸어오는 기염을 토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블랜차드와 끝까지 수상을 놓고 경합하던 2위마저 다른 팀 소속이 아닌 잭 마틴. 이번 시즌 조커를 벗어나 주전으로 발돋움 중인 그는 알게 모르게 개막 이후 리그 6경기 연속 득점을 터뜨리며 7골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쌓아나가고 있었다.


단지 전 경기 출장에 4골 5어시스트, 총 9개의 공격 포인트를 한 달 동안 만들어낸 블랜차드의 임팩트에 약간 빛이 바랬을 뿐이었다.


두 선수의 퍼포먼스는 경쟁이 성립될 수 없는 수준이었고, 로스 카운티는 이 둘의 활약에 힘입어 최고의 8월을 보냈다.


하지만 오늘 빅토리아 파크에 모인 이들이 유독 더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이유는 한껏 빼입은 정장 차림과 한 손에 캐리어를 들고 있는 몇몇에게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제법 잘 어울리는군.”


그리고 한편에서 후줄근한 트레이닝복을 입었지만, 품격은 정장 입은 그것에 못지않은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들은 지금 국가를 대표하러 가는 것이지만, 동시에 로스 카운티를 대표하는 선수이기도 해. 기왕 발탁된 이상 제대로 그 실력을 증명하고 와.”


“빨리 뛰고 싶어서 온몸이 근질거릴 지경이에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에이든 딩월이 들뜬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21세 대표로 나갈 수 있다니! 절 뽑은 게 얼마나 최고의 선택이었는지 제대로 느끼게 해줄 거예요! 전 그럴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어요!”


“기합이 잔뜩 들어갔군.”


“물론이죠, 감독님! 전 지금 어느 누가 와도 전혀 두렵지 않다고요. 온몸에서 자신감이 마구 들끓어 오르는 기분이에요! 정말 뭐든지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이번에 멋진 모습을 보여준 다음 반드시 성인 대표까지 올라가서 스코티시 주전 스트라이커가 되어 보이겠어요! 그리고 제임스보다 많이, 훨씬 더 많이 활약할 거예요!”


“······.”


“기다리라고, 제임스! 내가 곧 따라 올라갈 테니까! 그때까지 국가대표에서 탈락하거나 하면 안 돼, 알겠지? 그리고 긴장해야 할 거야! 8월의 선수가 된 건 정말로 축하하지만 9월은 에이든 딩월의 달로 만들 거니까!”


“그래, 그럼 나도 네가 올라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가지 조언 하나 할게.”


잠자코 지켜보기만 하던 블랜차드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열심히 뛰는 건 네 특기니 알아서 잘하겠지만 그 포부를 이루려면 어느 정도 자제할 필요가 있을 거야.”


“응? 자제하다니, 뭐를?”


“제대로 조준하지도 않고 성급하게 골대 밖으로 뻥뻥 날려대는 거 말이야. 여기서는 감독님이 용인해줬지만, 다른 곳에서는 아마 그렇지 않을걸. 괜히 뭔가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자멸하지 말라는 소리야.”


“뻐······ 뻥 안 찰 거야! 안 찰 거라고······.”


아픈 곳을 가차 없이 찌르는 듯한 말에 의기양양하던 딩월은 급격히 조용해지고 말았다. 괜히 깐죽거리다 한 방 먹은 셈이다.


“하하, 그래. 좀 까칠해서 그렇지, 제임스가 괜찮은 충고를 해줬군. 국가대표는 다른 환경이야. 로스 카운티에 있을 때처럼 플레이해선 안 돼. 그쪽 감독이 원하는 바를 빠르게 파악하고 적응하는 게 중요할 거야. 뭐, 새로운 경험을 쌓으러 간다고 생각하는 게 편하겠지.”


감독은 웃으며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 딩월을 보다가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누차 얘기하는 거지만 가장 중요한 건 안전이다. 최선을 다하되 무리할 필요는 없어. 의욕을 지나치게 앞세우다 다치기라도 하면 그건 구단에도 크나큰 손실이니까. 우리는 아직 시즌 레이스를 한창 달리는 중이라는 걸 잊지 말도록.”


“최선을 다하면서 사릴 건 사리라는 겁니까? 꽤나 까다로운 조건인데요.”


이번엔 캐리의 말이었다.


“적당히 잘 조절하라는 뜻이지. A매치이긴 해도 친선 경기일 뿐이잖아?”


“저어, 감독님. 저랑 대니는 대회 예선전인데······.”


딩월이 소심하게 꺼내든 발언이었지만 딱히 의미는 없었다. 청소년 선수권 대회 예선이긴 하나 상대는 7전 7패를 기록 중인 안도라였고, 스코틀랜드는 이미 5승 2무로 다음 라운드 진출이 확정된 상태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르는 것뿐이었으니 말이다.


“잘하고 와! 올 때 선물 사 오고!”


“에이든! 가서 뻥뻥 날리면 안 돼, 알았지?”


“안 그런다니까요! 마지막까지 놀리지 말아요, 스콧!”


그렇게 가벼운 환송이 끝나고,


“그럼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하자고, 닐. 우리도 할 건 해야지.”


“예, 감독님. 그런데 오늘 인터뷰 일정이 잡혀 있는 것 들으셨습니까?”


포포투에서 요청해 온 단독 인터뷰 얘기다.


“며칠 전에 코넬 양이 알려주었네.”


본래는 묀헨글라트바흐와의 경기가 끝난 후 바로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비교적 여유가 있는 A매치 기간에 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판단하에 일정을 연기했었다.


“오후에 만나기로 했으니 아직 시간은 충분하지 않나?”


“그게······.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한 기자가 지금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벌써 말인가?”


“일정을 당기려는 건 아니고 오전 훈련을 관전하고 싶어서 왔다고 합니다만. 동시에 취재도 가능한지 여부를 물어왔다는데요.”


델 레오네는 그 말에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까지 로스 카운티가 제법 적지 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지만, 내부의 세세한 것들까지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이는 손가락을 꼽을 수준이었다.


이 나라의 언론들은 대부분 이런 정보에 시간을 쓰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껏 하라고 전해주게.”


감독이 말했다.


“이런 건에는 기꺼이 협조해줘야지. 아침 일찍 방문한 손님을 위해서 우리도 심심치 않은 볼거리를 제공해드려야겠군.”


*******


당연한 얘기지만 델 레오네가 로스 카운티 선수들과 소통하는 언어는 영어다.


그는 이탈리안이지만 영어에도 능숙하며 그 덕에 자신의 축구 철학을 주입하거나 전술 지시를 내리는 것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먼 나라에서 왔음에도 빠르게 적응하여 팀을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던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선수들조차 가끔씩 이탈리아어가 섞인 대화를 듣게 되지 않을까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드물게 사적인 전화를 받을 때나 몇 번 들어볼 수 있는 수준이었고, 필드 위에서는 철저하게 로마의 법을 따르는 사람처럼 영어만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몇 가지 예외가 있었는데,


“알토!”


터치라인에 서서 묵묵히 지켜보던 감독이 휘슬을 길게 불며 큰소리로 외치자 한쪽 진영의 선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라인을 높이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미디오!”


한동안 상황을 주시하다가 이어 새로운 지시를 내리니, 이번엔 높이 올라가서 압박을 가하던 선수들이 라인을 중앙선 부근까지 가라앉히고 있다.


“압박 훈련인가?”


그리고 존 프리먼은 이 용어들을 잘 알고 있었다.


프레싱 알토, 미디오, 바소(Pressing Alto, Medio, Basso).


압박을 형성하는 위치를 가리키며 각각 상대 진영까지 강하게 올라가는 압박 형태, 중앙 지역에서 저지하는 형태, 수비 진영까지 내려간 뒤 방어하는 형태를 뜻한다.


그리고 모두 이탈리아에서 쓰이는 말이다.


굳이 영어로 풀어쓰자면 하이, 미드필드, 로우(High, Midfield, Low)가 된다. 하지만 문제는 실제로는 잘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지금 저 감독이 외치고 있는 명칭은 이탈리아를 넘어서 독일, 스페인 등 각 나라에서 통용되어 있고 최근에는 영국의 전문가들까지 종종 쓰기 시작하고 있다. 프리먼이 단번에 알아차린 것도 그 까닭이다.


“이 나라에 전문적인 용어가 많이 부족하긴 하지.”


잉글랜드를 대표로 영국 사람들은 단순한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같은 미드필더를 놓고 보더라도 그저 공격적인 역할과 수비적인 역할로 크게 나눌 뿐이다. 반면 모든 걸 세분화하길 좋아하는 이탈리아에는 레지스타, 트레콰르티스타 같은 전문 용어가 존재한다.


영어에 능통한 그가 특별히 이탈리아 용어를 사용하는 건 불가피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 척박한 전술의 불모지에서 한줄기의 싹을 틔워내려면 말이다.


“바소!”


이탈리안 감독이 다시 한번 외치자, 예상대로 선수들은 거의 그들의 박스 부근까지 내려가서 진형을 구축하고 있었다. 작년 로스 카운티가 주로 구축해왔던 라인 높이다.


그 일련의 과정을 보며 프리먼은 일찍 빅토리아 파크를 방문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형태로 가든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반복 훈련하는 건가?”


올 시즌 로스 카운티가 리그에서 선보인 형태는 중앙 압박을 근간으로 하고 있지만 분명 시즌을 진행하다 보면 계속 그런 일관된 방식만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반 싸움을 피해서 웅크리려고만 드는 팀들도 있을 것이고, 그 압박이 통하지 않을 만큼 강력한 팀을 상대할 땐 작년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유연함이 필요할 수 있다.


“저 감독은 분명 미래까지 내다보고 있는 거야. 배리 씨, 이건 정말 중요한 거니까 하나도 빠짐없이 카메라에 담아줘요!”


프리먼은 함께 온 카메라맨에게 중요함을 거듭 강조하며 자신의 눈에도 빠짐없이 그 장면을 담아두기 위해 시선을 떼지 않았다.


몇 년 전만 해도 스코티시 리그 같은 곳에서 이런 식의 체계적인 훈련을 볼 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건만. 지금 그가 보고 있는 건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는 물론이고, 독일이나 스페인 리그 팀에 못지않은 세밀함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드디어 만나 뵙게 되는군요.”


서로 간단한 악수를 나눈 뒤 자리에 마주 앉고 나서 프리먼이 꺼낸 첫마디였다.


처음엔 단순히 호기심과 흥미로 관심을 가졌던 인물이었지만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감탄을 자아내는 매력이 있었고, 묀헨글라트바흐와 치렀던 두 차례의 경기 이후에는 경외심 비슷한 감정이 느껴지기에 이르렀었다.


그동안 이 사람과 얼마나 이렇게 대면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었던가.


“지난번 일은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워낙 중요한 사안이 있었던지라.”


“괜찮습니다. 저번 선수들과의 인터뷰도 성공적이었고, 일정이야 다시 잡으면 되는 것이니까요. 오전에 보았던 훈련도 인상 깊게 잘 봤습니다. 로스 카운티가 계속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경우 이 모든 것들이 다큐멘터리의 자료로써 활용될 겁니다.”


“다큐멘터리?”


“아, 제가 아직 말씀 안 드렸었군요. 말 그대로 로스 카운티의 성공 신화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죠. 구단과 선수들, 그리고 감독님만 괜찮으시다면 거기서 주연으로 나오실 수도 있습니다.”


“그거 좋군요.”


받아들이기에 따라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말이었음에도 눈앞의 감독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너스레를 떨 뿐이었다. 그런 특별함 때문에 진작 눈여겨보게 된 것이지만.


“그럼 인터뷰를 진행해볼까요? 그냥 편하게 답해주시면 됩니다.”


“답변해 드릴 수 있는 건 성실하게 답해드리지요.”


프리먼은 어느새 부풀어 오른 기대와 흥분을 애써 가라앉히며 질문을 시작했다.


첫 부임 당시 있었던 연습 경기와 블랜차드, 딩월 등 젊은 선수를 콜업하게 된 계기, 이번 시즌에 영입한 선수들에 대한 일화 등. 그동안 직접 물어보고 싶었던 것들을 차례대로 질문해나갔고, 감독은 성심성의껏 응답해주었다.


알렉산더 캐리를 갑자기 주전으로 기용하게 된 일에 대해서는 선수와 마찬가지로 시원한 답변을 받아낼 수 없었지만.


그렇게 분위기는 무르익었고, 인터뷰는 점차 핵심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유로파 리그 예선 플레이오프 경기, 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죠. 정말 대단했습니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는 결코 호락호락한 팀이 아니었거든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로스 카운티가 결국 꺾이지 않을까 생각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예상을 완전히 뒤집고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어요.”


“환상적이었죠. 저 역시 잊지 못할 경기로 남을 겁니다.”


“무엇보다 제가 놀란 건 단순한 경기력뿐만 아니라 묀헨글라트바흐를 대처해냈던 전술이었습니다. 자카와 크라머를 묶어내고 역으로 카운터를 노리던 그 전술 말이죠. 그 작전을 고안해낸 건 역시 감독님이시겠죠?”


“코치진과 끊임없이 논의를 거치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저번 인터뷰에서는 선수들 모두가 감독님이 매번 상대를 철저하게 분석해낸다고 입을 모아 얘기해주던데요. 묀헨글라트바흐 역시 그런 분석 과정을 통해서 대응책을 만든 건가요?”


“말씀하신 대로 만만치 않은 팀이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 건 사실입니다. 작년 시즌에 묀헨글라트바흐가 치른 핵심 경기들을 꼼꼼히 훑어보고 분석을 좀 더 깊이 해볼 가치가 있는 경기는 거듭해서 돌려보았죠. 며칠간 밤잠을 설쳐가며 파헤치기는 했었습니다. 그럴 필요가 있는 상대였고요.”


프리먼은 느긋한 어조의 답변을 들으면서 새삼 4부 리그 팀도 철저하게 분석할 거라고 하던 브리튼의 말을 떠올렸다.


‘하긴 그만큼의 노력도 없이 파브르의 묀헨글라트바흐를 무너뜨리는 건 불가능했지.’


그리고 그 노력이라는 것은 열정적인 저널리스트인 그 또한 자신 있는 부분이었다.


“오기 전에 미리 조사해 온 게 있습니다. 감독님의 커리어죠. 세리에 C의 비첸자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하다가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지도자의 길을 선택하셨던데요. 이때 나이가 25세, 굉장히 젊은 나이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혹시 재활이 불가능한 수준의 부상 때문이었나 싶었지만 그런 경력은 없었고요. 혹시 왜 그런 선택을 한 건지 알려줄 수 있나요?”


“뭐, 선수로서는 그다지 재능이 없었죠.”


이탈리안은 짧게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스물 중반까지 필드를 누비면서 자문해보았습니다. 과연 여기서 선수 생활을 계속 이어나가면 최고 위치에 도달할 수 있는가? 답은 아니오였죠. 그 확신이 드는 순간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감독이 되기로 결심하신 건가요?”


“그런 셈이죠.”


“최고가 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이번에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웃기만 하였다. 프리먼은 그 웃음을 대답이라고 생각하며 다음으로 넘어갔다.


“이후 코치 라이센스를 취득하는 과정을 거친 뒤 사수올로 U-19 유소년팀을 2년 동안 맡으셨는데, 그 마지막 년차에 우승컵을 들어 올린 이력이 있던데요.”


“여러모로 행운이 받쳐준 결과였습니다. 비록 유소년이었지만 한 팀을 지휘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은 것도, 선수들이 잘 따라주며 좋은 성적을 낸 것도 말이죠.”


“하지만 그런 성과를 냈음에도 사수올로 측에서 1군까지 맡길 의향은 없었고, 결국 감독님은 여기 스코틀랜드로 건너와 로스 카운티를 지휘하게 되었죠.”


프리먼은 질문 사항들을 정리해둔 용지를 보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당시 세리에 B의 몇몇 팀에서도 감독직 제의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굳이 자국 이탈리아 팀을 마다하고 스코틀랜드까지 건너온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가요? 냉정하게 봤을 때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은 세리에 B보다 낫다고 평하기 어려운 곳입니다.”


“······.”


“그리고 그 많은 스코티시 팀 중에서 왜 로스 카운티를 택하신 건지도 궁금합니다만.”


“그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동일한 답변을 드릴 수 있겠군요.”


그는 잠깐 말을 멈추고는 의자 등받이에 편하게 몸을 기대었다.


“개인적인 견해이긴 합니다만, 저는 스포츠계에서 절대 강자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팀이든 강자가 될 수 있고, 높은 위치에서 안주해도 되는 팀은 없다는 주의죠. 감독이 된 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신념이기도 합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그런 생각은 누구든 할 수 있지요. 그 신념을 이어나가려면 당연히 입증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하면서 그 증명의 첫 무대로 스코티시만한 곳이 없었죠. 그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여기엔 올드 펌이라는 전통 강호가 존재하니까요.”


프리먼은 맞장구를 치며 그의 말을 계속 경청했다.


“올드 펌, 스코티시 리그의 독식 체제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비록 레인저스가 추락하기는 했어도 여전히 셀틱은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있지요. 판은 충분히 깔렸고, 감독으로서 그럴 수 있는 능력이 되는지 시험해 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럼 로스 카운티를 선택한 것도······.”


“이미 앞서 말씀드린 부분에서 모든 답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에는 프리먼도 동의했다.


요컨대 절대 강자가 없다는 신념으로 셀틱이 있는 스코티시 리그를 선택했으며, 어떤 팀이든 강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로스 카운티에 부임했다는 얘기다.


‘진작 느끼고는 있었지만, 확실히 보통 야망을 지닌 사람이 아니야.’


전문가들이 강등권으로 예측하던 팀을 맡아서 이런 생각을 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스코티시 리그는 고사하고 잉글랜드 리그의 감독들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든 발상과 포부다. 거기에 정말로 그게 허언이 아니라고 느껴질 만큼의 거침없는 추진력까지.


“감독님의 야심을 느낄 수 있는 답변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당장 이번 호 매거진에 실어도 될 만하군요.”


그 말에 진심이 담겨있지 않은 건 아니다. 그래도 매거진에 한 번 올리고 마는 것보다는 다큐멘터리를 완성할 조각으로써 남겨두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그래야 안토니오 델 레오네라는 인물의 스타성이 더 부각될 테니까.


그리고 프리먼은 앞서 그가 했던 말 중 한 가지 단어를 기억해냈다.


“제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분명 감독님은 ‘증명의 첫 무대’라고 언급하셨습니다. 과도한 해석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첫 무대라는 건 곧 다음 무대가 존재한다는 얘기죠.”


“······.”


“그렇게 받아들여도 되는 건가요?”


사실 이 정도의 원대한 목표를 품고 있는 인물이 스코티시 리그에서 커리어를 끝낼 리가 없지 않겠는가. 이미 확신하고 있었지만 프리먼은 짐짓 떠보듯이 물었고,


“글쎄요.”


이탈리안은 미묘한 표정으로 모호한 답변을 내놓았다.


“지금은 로스 카운티에만 집중할 뿐입니다.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 표정만으로도 충분한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역시 내 감은 틀린 적이 없다니까.’


프리먼은 그렇게 생각하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작가의말

공지한 것보다 늦게 올려서 면목이 없습니다.

이번 편은 제가 아주 예전부터 스토리를 구상할 때부터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라고 생각해왔고, 

시간이 좀 많이 들여질 거라 예상했었습니다.

그 예상보다 훨씬 늦어져버렸습니다만..

프리먼과 델 레오네의 첫 대면을 최대한 잘 표현해보고 싶어 

썼다 지우고를 반복하다보니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다시 한번 죄송하단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 이야기는 너무 늦지 않도록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모두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못난 글쟁이에게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ei23 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_ _)

제 글을 기다려주시는 분들 덕분에 감사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9 119. 임시방편 (3) +8 19.08.16 2,924 107 27쪽
118 118. 임시방편 (2) +9 19.08.05 3,010 96 24쪽
117 117. 임시방편 +10 19.07.24 3,012 117 25쪽
116 116. 셀틱은 셀틱 (2) +9 19.07.08 3,089 114 23쪽
115 115. 셀틱은 셀틱 +5 19.06.25 3,154 110 18쪽
114 114. 인식 변화 (2) +9 19.06.10 3,315 115 20쪽
113 113. 인식 변화 +12 19.05.24 3,497 133 20쪽
112 112. 던디 쇼크 (2) +11 19.05.07 3,422 125 22쪽
111 111. 던디 쇼크 +7 19.04.21 3,658 133 21쪽
110 110. 역이용 +12 19.04.02 3,535 136 22쪽
109 109. 키포인트 +10 19.03.17 3,634 146 25쪽
108 108. 상관없어요 +16 19.03.01 3,811 143 21쪽
107 107. 고난의 6연전 (6) +11 19.02.17 3,761 142 24쪽
106 106. 고난의 6연전 (5) +10 19.02.02 3,815 121 22쪽
105 105. 고난의 6연전 (4) +16 19.01.20 3,991 148 21쪽
104 104. 고난의 6연전 (3) +23 19.01.09 4,252 144 26쪽
103 103. 고난의 6연전 (2) +16 18.12.26 4,253 140 18쪽
102 102. 고난의 6연전 +10 18.12.08 4,569 146 22쪽
101 101. 전조 +17 18.11.25 4,531 172 19쪽
100 100. 단체 면담 +26 18.11.12 4,633 181 21쪽
99 99. 밀집과 전환 +18 18.10.16 4,987 172 18쪽
98 98. 천재의 가치 +10 18.10.05 5,072 180 20쪽
97 97. 사용 설명서 +17 18.09.26 5,149 202 26쪽
» 96. 프리먼의 인터뷰 (2) +15 18.09.16 5,396 183 19쪽
95 95. 돈 값하네 +18 18.09.04 5,377 181 21쪽
94 94. 알려지는 이름 +21 18.08.25 5,426 194 19쪽
93 93. 이끌리는 사람들 (2) +18 18.08.19 5,374 207 23쪽
92 92. 이끌리는 사람들 +19 18.08.10 5,464 190 20쪽
91 91. 예상 밖 +20 18.08.05 5,544 218 22쪽
90 90. 방심하면 안 됩니다 +17 18.07.29 5,630 206 1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