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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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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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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2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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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08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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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116. 셀틱은 셀틱 (2)

DUMMY

“이거 참······. 구단 최초로 전 좌석 매진이란 성과를 올린 기념비적인 시합에서 이렇게 패배해버리면 영 체면이 안 설 텐데.”


모든 이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는 셀틱전. 이곳에는 당연히 존 프리먼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오늘 상당히 이를 갈고 나온 느낌이긴 하지만.”


전반전에 보였던 셀틱의 모습은 그야말로 필사적이었다. 구성한 라인업부터 로스 카운티를 의식하고 나온 티가 다분했으며, 선수들 또한 어떻게든 승리를 쟁취하려는 투사들 같았다.


특히 선제골을 빠르게 내준 이후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장면은 정말 매섭기까지 했다.


“지지 않겠다는 열의가 느껴질 정도의 공세였어.”


무엇보다 윌프리드 자하, 그는 저번에 로스 카운티를 상대하면서 호되게 당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았는지 그 울분을 풀어내려는 양 필드를 미친 듯이 휘젓고 있다.


1차전 당시에는 에이든 딩월이 그에게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아무것도 못 하게 했었다. 오늘은 제임스 블랜차드가 그 역할을 비슷하게 부여받은 모양이었지만, 확실하게 제어해내지는 못하고 있다. 오히려 질질 끌려가는 느낌이다.


프리먼은 그 로스 카운티의 에이스가 전반전 최악의 퍼포먼스를 보인 선수라 생각했다. 폰투스 얀손이 페널티킥을 내주긴 했으나, 측면에서 허무하게 무너지지만 않았어도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공격에서 활약 중이냐면 그것도 아니다. 오늘 경기만큼은 그저 무색무취의 평범한 선수로 보일 뿐이었다. 이러다가도 한방의 파괴력을 보여주는 게 블랜차드란 선수의 특징이긴 하지만.


더 큰 문제는 1차전에 가장 돋보였던 딩월마저 이번엔 반대로 스콧 브라운의 거친 견제를 받아 별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이대로는 힘들어. 계획을 바꾸지 않는 이상 계속 휘둘리게 될 거야.”


전술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 로스 카운티는 밀리는 양상에서 보통 딩월을 전방에 올린 뒤 잭 마틴 대신 미드필더를 하나 더 투입하여 중앙에서의 수적 우위로 해결을 보곤 했었다.


그 방식이 과연 이번에 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 셀틱이 더 간결하게 허리를 생략하여 곧장 자하에게 연결해주는 플레이로 대응한다면 스스로 함정을 파는 꼴이 되고 만다.


그만큼 오늘 저 셀틱의 윙어는 볼만 잡았다 하면 위협적이며, 최대한 그에게 볼이 쉽게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게 급선무일 것이다.


“그렇다고 딩월을 다시 측면으로 빼면 잭 마틴이 전방에서 고립되겠지. 수비는 단단해질지라도 공격이 안 풀리게 될 텐데.”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지난번처럼 핵심 선수인 블랜차드를 빼고 딩월과 캐리를 측면에 배치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건 어디까지나 불리한 조건에서 내세운 임기응변에 지나지 않았으니.


그때도 자하는 잘 막아냈지만, 공격이 제대로 되지 않아 결국 서로 점수를 내지 못하여 무승부로 만족해야 하지 않았던가.


현재 로스 카운티는 점수를 쫓아가야 하는 처지이고 말이다.


“어렵다, 어려워.”


프리먼은 깍지 낀 양손을 머리에 얹으며 절레절레 흔들었다.


늘 꾸준하던 블랜차드가 의외로 부진한 상황, 결코 무시할 수가 없는 자하의 존재, 그리고 추격해야 하는 점수 차까지. 쉽지 않은 경기다.


그럼에도 내심 기대가 되는 건 지금 로스 카운티를 지휘하고 있는 감독이 안토니오 델 레오네이며,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 있어서일 것이다.


“그 감독 성격에 손을 놓고 있지만은 않겠지.”


이윽고 선수들이 하나둘씩 나와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프리먼은 멍하니 터널 쪽을 응시하며 양 팀의 등번호를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그리고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과 함께 천천히 깍지 낀 손을 풀어야 했다.


“데 루어?”


그의 눈에 들어온 건 11번, 에드빈 데 루어. 후반전 시작하자마자 교체를 감행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프리먼이 이상하다고 느낀 이유는 그 전에 앞서 잭 마틴이 나오는 걸 봤기 때문이었다.


소피앙 부팔 또한 마찬가지였고, 딩월의 경우는 가장 먼저 터널에서 뛰쳐나왔던 선수다.


그렇다면 누가 교체되어 나갔단 말인가?


“블랜차드가 없어. 진짜로 뺀다고?”


뒤이어 모습을 드러낸 블랜차드가 트레이닝 점퍼 차림으로 터치라인을 따라 벤치 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를 오늘 경기에서 보는 건 이제 불가능한 일이다. 사태를 파악한 주변에서도 작게 술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쩔 셈인 거지?”


언제나 재미있는 수를 들고 나와 자신을 즐겁게 해주던 이탈리안이었지만, 설마 로스 카운티의 10번을 이렇게 과감히 빼버릴 줄이야. 그래도 블랜차드 정도 되는 선수면 적어도 몇 분은 더 지켜볼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보다도 더욱 신경 쓰이는 부분은 교체되어 나온 대상이 데 루어라는 점이었다.


대런 케틀웰이나 맷슨 클락이 투입되었다면 저번과 유사한 방식으로 자하를 묶는데 집중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으나, 공격적인 2선을 투입했다는 건 점수를 되찾아오기 위해 무언가의 수를 두었단 뜻이지 않을까?


일단 후반전이 시작되고, 그 윤곽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좌측면으로 빠진 딩월이 자하에게 접근하는 걸 보며 프리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더 딩월 찬스를 쓰는 건가? 하기야 브라운이 저기까지 쫓아갈 순 없을 테니 자연스레 견제도 풀릴 테고. 블랜차드가 제 역할을 못 해주기도 했으니까 이해가 되기는 하는데······.”


딩월을 저렇게 깊은 곳까지 내려서 수비적으로 활용할 때 발생하는 빈약한 공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아직 풀어내야 할 주요 과제가 남았다.


리 월리스 역시 후반전 들어서는 오버래핑을 자제하고 자리를 지키려 하고 있어 왼쪽은 제 기능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데 루어를 넣은 건가? 딩월을 대신해서 잭 마틴을 보조할 수 있게······.”


필드를 열심히 살펴보던 프리먼은 문득 시야에 들어오는 생소한 광경에 하던 말을 멈추고 말았다.


“가만, 저건 뭐지? 부팔이 왜 안쪽에? 마틴의 위치도 바뀌어 있고······. 이래서는 저 두 명이 전방 공격수가 된 것처럼 보이는데.”


오른쪽으로 출전했던 잭 마틴은 왼쪽 영역에 있었고, 그 빈자리를 부팔이 들어가 자리 잡고 있었다. 딩월은 움직이는 활동 반경만 보면 아예 미드필더로 분류해야 할 것만 같았다.


처음엔 4-4-2를 유지한 상태에서 선수들의 위치만을 바꾼 건가 싶었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데 루어의 위치가 설명되지 않는다. 교체로 들어간 11번은 정확히 잭 마틴과 부팔의 뒤를 받쳐주는 중앙 2선에 서 있었으니까.


“어어?”


그리고 프리먼은 정확히 로스 카운티가 셀틱의 공격을 막아내고 볼을 가져온 뒤에 형성되는 진형을 보고서야 알아챌 수 있었다.

14-15 2차 셀틱전 01.jpg

“이건 4-3-1-2 아닌가?”


착각이 아니었다. 2선의 데 루어와 후방에 위치한 캐리 사이에 딩월과 브리튼이 안으로 좁혀 들어와 마름모꼴을 만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곧이어 또 하나의 다른 변화를 관찰할 수 있었다.


“이번엔 4-2-3-1이라고?”


프리먼은 흥분한 어조로 시선을 경기 상황에 고정한 채 노트북 위에서 부지런히 손가락을 놀려대었다. 잘 모르겠지만 뭔가가 먹혀들어 가고 있다.


“그 무서운 기세를 단번에 꺾어버렸어.”


흐름이 뒤집어졌다. 전반전에 맹공을 퍼붓던 셀틱 선수들은 혼란에 빠져 갈팡질팡하는 중이었고, 그건 벤치 쪽의 코치진 또한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오오 -


먼 거리에서 날린 캐리의 슈팅이 왼쪽 골대 옆을 아슬아슬하게 빗나가자 관중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완벽한 로스 카운티의 분위기.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나?”


프리먼은 한 편의 마술쇼를 감상하듯 연신 놀라워하다가 이내 입을 다물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몇 번의 공방전을 반복해서 지켜본 결과, 로스 카운티의 작전은 이러했다.


우선 후반전의 주 포메이션은 4-3-1-2가 맞는 것으로 보인다. 빌드업 단계에서부터 그들은 캐리를 중심으로 중앙에 숫자를 많이 두면서 볼을 전개하고 있다.


“예전부터 느낀 건데 저 이탈리안 감독은 숫자 싸움에 누구보다도 집착하는 것 같아. 물론 현대축구에서 한 명이 더 많다는 게 작은 의미는 아니지만.”


제아무리 셀틱이라도 세 명이 네 명을 당해내기는 힘든 법. 브라운이 딩월에게 붙으려 해도 뒤에 있는 데 루어의 존재가 신경 쓰이는 순간 이미 그건 실패한 압박이나 다름없게 된다.


프리먼은 계속해서 분석을 이어 나갔다.


로스 카운티가 빌드업에 성공하여 공격 작업 단계로 들어선 뒤에는 딩월과 부팔이 좌우로 넓게 퍼지면서 4-2-3-1로 전환한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적극적으로 안까지 파고드는 부팔과 달리 딩월은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 날개의 형태가 비대칭으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것. 그 때문인지 데 루어가 좌측면과 중앙을 오가면서 패스를 받는 상황이 자주 나오고 있었다.


“이건 자하를 의식해서 그런 거겠지. 언제라도 내려가서 합류할 수 있게.”


사실 이다음부터가 중요하다.


공격하다가 실패하여 볼을 셀틱에게 내줬을 경우, 혹은 셀틱이 볼 소유권을 가져온 뒤 그들의 진영에서 빌드업을 시작하는 경우.


로스 카운티는 상대 수비라인부터 강하게 압박해 들어가기 시작하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4-3-1-2로 돌아온다.

14-15 2차 셀틱전 02.jpg

잭 마틴과 부팔, 데 루어를 이용하여 상대 수비라인을 강하게 몰아붙이는 동시에 딩월과 브리튼은 3선 미드필더에게 볼이 바로 전달되지 못하도록 붙어준다. 계획적인 팀 단위 압박을 실행함으로써 상대가 쉽게 전진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셀틱은 앞으로 전개할 때 반다이크 선수의 발을 거쳐 가는 비중이 높아. 브라운과 요한센은 의외로 영향력이 적은 편이고. 그래서 이런 진형을 꺼내 든 걸까?”


전반에 내세운 4-4-2보다는 지금이 수비진을 압박하기에 더 용이한 구조로 되어 있는 건 분명하다. 실제로 셀틱이 빠져나오는데 좀 더 애를 먹고 있는 거로 봐서는 효력이 발휘되고 있다는 거다.


“아직까지 상대에게 슈팅 한 번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면 어쨌든 성공이라 볼 수도 있긴 한데······.”


상대가 1차 압박을 풀어 나오면 태세 전환하여 빠르게 뒤로 물러서는데, 이때 중앙에 있던 딩월이 측면으로 빠지면서 자연스레 캐리와 브리튼도 나란히 일자 라인을 구성하게 된다.


중앙선을 넘어 위험 지역까지 접근해 오는 상황이 되면 3선이 완전하게 내려앉으면서 수비적인 진형을 구축한다.


“다 좋은데 여기서부터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단 말이야.”


4-3-1-2 시스템은 측면보다 중앙을 확실하게 장악하려는 특성이 있고, 일자 수비를 택할 경우에는 네 명이 나란히 서서 지역을 사수하는 4-4-2를 가동하는 게 보편적이다.


그런데 로스 카운티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다.


수비라인 압박을 수행했던 세 명의 선수가 여전히 전방에 머물러 있으면서 기형적인 형태의 포메이션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왜지? 왜 저렇게 두는 거지?”


프리먼은 안경을 벗으며 콧등을 어루만졌다.


불가피한 선택? 본래대로라면 왼쪽 중앙 미드필더처럼 서 있어야 할 딩월이 측면으로 이동하면서 4-3-1-2의 대형을 유지하는 게 어려워지기는 한다.


하지만 그럴 거면 부팔이나 데 루어를 우측으로 내려서 안정화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왜 저 비정상적인 진형을 고수하려는 걸까?


“시간이 갈수록 단점이 명확하게 드러날 텐데.”


당장 눈에 보이는 문제점이 두 군데 있다.


첫째는 상대의 오버래핑을 막을 수단이 빈약하다는 것. 딩월이 자하를 집중 견제하면서 라이트백인 미카엘 루스티그에게 좀 더 넓은 공간이 확보되고 있다.


반대쪽은 더욱 심각한 것이 4-4-2 진형으로 수비하고 있는 게 아니라서 레프트백 에밀리오 이사기레를 마크하고 있는 사람이 아예 없는 상황. 요컨대 셀틱의 양 풀백은 그들이 원하는 만큼 전진해도 큰 방해를 받지 않는 최적의 환경이 주어진 셈이다.


둘째로는 중앙도 딱히 로스 카운티가 점령하고 있는 모양새가 아니라는 것.


캐리와 브리튼이 페널티 박스 부근까지 가라앉은 상태에서 전방의 세 명이 아래로 내려오는 것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니 스콧 브라운과 스테판 요한센에게도 공간이 생겨나고 있다.


“셀틱 진영에서는 잘만 압박했으면서 수비는 왜 이런 식으로?”


측면 풀백의 전진을 허용하면서, 중앙은 또 중앙대로 상대에게 내주고 있다. 모호하게 세워놓은 포메이션 탓에 4-3-1-2와 4-4-2의 단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상태.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셀틱이 그 부분을 효율적으로 이용해먹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보기에 좋은 그림은 아니다.


이러다가 추가 실점을 내주기라도 하면 앞서 보인 좋은 모습도 전부 무용지물이 된다.


적어도 스코티시 리그 내에서는 전술이란 것을 이때까지 가장 잘 활용해 왔던 감독 아니던가? 그런 그가 이토록 허술한 방안을 꺼내놓았다? 그것도 전방 압박까지는 훌륭하게 보여줬으면서 수비에서 허점투성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뭔가 한 가지를 놓치고 있단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아니면 단순히 지난 시합에서 부족했던 화력을 보완해야 한다는 강박감과 점수를 추격해야 한다는 초조함 때문에 공격에 눈이 멀어버린 것인가? 겉으론 태연해 보이지만 저 이탈리안 역시 어디까지나 사람이니 말이다.


“저래서는 전술을 변화한 의미가 없어지는 거 같은데. 점수를 만회해야 한다지만, 그냥 대놓고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들어오라 손짓하는 꼴이니······.”


그 순간 프리먼의 뇌리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잠깐만······. 들어오라 손짓한다?”


이어서 그의 시선이 한곳을 향해 꽂혔다.


“설마!”


순간적으로 내뱉은 외침이 제법 컸는지 앞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전부 뒤돌아 그를 쳐다보았지만, 프리먼에게 그런 것 따위는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다.


“설마······ 속공?”


그러나 그의 말은 묻혀버리고 말았다.


와아아 -


페널티 박스 안으로 들어가려는 침투 패스를 차단해 낸 브리튼이 직접 오른쪽 측면을 향해 긴 패스를 찔렀고, 그 공간으로 부팔이 질주하는 모습에 경기장이 달아올랐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눈치를 채고 뒤따라온 요한센이 볼을 빼앗으려 경합을 걸어왔지만, 발바닥으로 볼을 잡아 멈추면서 가볍게 떼어내는 플레이를 보여주자 함성은 더욱 높아졌다.


“왼쪽!”


프리먼의 말을 들은 건 아니겠지만, 부팔이 크로스처럼 길게 휘어지는 볼을 날린 방향은 잭 마틴이 앞으로 내달리고 있는 왼쪽이었다.


여기까지 진행되는 동안 로스 카운티 진영에 깊게 들어가 있던 셀틱의 선수들은 이제 막 중앙선을 넘어 있는 힘을 다해 쫓아오는 중이었다.


잭 마틴은 박스 앞까지 근접한 상황이었고 말이다.


허겁지겁 뒤로 물러서던 암브로스가 낮은 자세로 눈앞의 스트라이커를 주시하면서 최대한 슈팅할 수 있는 각도를 몸으로 막아서려 하고 있었다. 나름 시간을 벌려는 판단이었겠지만, 헛수고일 뿐이었다.


이미 볼은 잭 마틴의 발을 떠나 가운데에서 함께 속도를 맞춰 올라오던 데 루어에게 굴러가고 있었으니까.


패스가 들어오자마자 오른발로 살짝 감아 찬 슈팅이 크레이그 고든 골키퍼의 손을 피해서 골대 하단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래, 이거였어.”


프리먼은 이제야 만족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허점을 일부러 노출하면서 그곳에 함정을 파두었던 거야.”


어쩌면 이게 4-3-1-2를 채택한 진짜 목적일지도 모른다.

14-15 2차 셀틱전 03.jpg

“마틴과 부팔이 전방 공격수처럼 서 있던 건 상대 풀백이 자리를 비우길 기다렸다가 속공 찬스가 왔을 때 빈 측면을 후벼 파려는 전략이었던 거군.”


셀틱의 양 풀백과 3선을 자유로이 놔두었던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 전진해 올라오도록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이들이 공격에 가세하면 위험해지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생각해 보면 로스 카운티는 수비 블록을 미리 탄탄하게 쌓아두고 각자의 마크 대상까지 철저하게 책임지고 있었다.


“자리를 잡고 있는 이상 쉽게 뚫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는 거고, 한편으로는 가만히 두어도 크게 위협적이지 않은 요소들이라 판단한 거겠지.”


멸시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당사자들이야 분노할 수 있겠지만, 애석하게도 경기의 각본은 이탈리안 감독이 작성해두었던 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의도적으로 방생해 놓은 네 명은 작은 균열조차 내지 못하고 단순한 숫자 채우기에 그치면서 로스 카운티에게 역으로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마틴을 왼쪽으로 옮긴 건 역습이 주로 오른쪽에서 이루어질 걸 염두에 둔 배치였을 테고.”


아무리 자하의 폼이 좋다 한들 딩월과 월리스로 굳게 잠가 버리면 자연스레 좀 더 열려있는 곳을 찾게 되고, 이사기레 앞에 놓인 공간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힘들다.


셀틱은 그 계산대로 순순히 움직여주었다. 그리고 로스 카운티는 그들이 비워놓은 오른쪽을 공략해 들어갔는데, 그 공간으로 개인 돌파 능력이 뛰어난 부팔을 두어서 역습의 기점을 확실히 세우려 했던 것이다.


덤으로 반다이크에게 전반 내내 시달렸던 잭 마틴은 반대편으로 빠진 덕분에 그에게서 벗어나 움직일 수 있었다.


“데 루어는 자신들을 잡으려고 내세운 4-2-3-1에 대한 로스 카운티의 대답이었던 거고.”


전반전까지만 해도 셀틱은 분명 니르 비톤을 제외해서 한 방 먹였다고 생각했겠지만, 후반전 델 레오네 감독이 준 과감한 변화에 그를 제외한 것이 도리어 독으로 작용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만일 평소처럼 비톤이 수비 앞에 머물러 있었다면 적어도 조금 전 역습 상황에서 최소한 데 루어를 자유롭게 놔두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허점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것이 하나하나 치밀한 설계였다.


그러면서 상대의 허점을 공략했고, 예상 못 한 부분의 허까지 찔렀다.


모두가 잊고 있었지만 데 루어는 선수 생활을 통틀어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뛴 횟수가 훨씬 많았던 선수고, 잭 마틴 역시 왼쪽 윙으로 뛰어온 전력이 있었다.


단지 델 레오네 체제에서 활용된 적이 없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셀틱은 그 부분을 점검할 필요성까지 느끼진 못했을 테고, 로스 카운티는 이를 보기 좋게 이용해냈다.


프리먼은 사실 블랜차드를 교체하지 않고 데 루어의 역할을 그대로 맡겼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어쨌든 그 11번 선수의 발에서 동점이 만들어졌으니 이의를 제기하는 건 의미 없는 짓이다.


“이제 눈치는 챘겠지만, 과연 대처할 수 있을까?”


셀틱의 벤치 쪽을 보니 어느새 로니 데일라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뒷모습만으로도 심각한 표정을 읽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제 와서 경기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려 해봐야 이미 원점으로 돌아와 버린 승부. 여기서 승리를 가져올 마음이 있다면 그 또한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분위기가 로스 카운티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버린 흐름 속에서 말이다.


와아아 -


동요하기 시작한 셀틱 선수들의 집중력이 크게 흐트러지고 있었다. 급기야 중앙선 부근에서 목표가 없는 부정확한 패스 실수가 나오면서 다시 한번 로스 카운티의 매서운 역습.


주인이 없는 볼을 번개같이 달려들어 낚아챈 선수는 알렉산더 캐리였다.


“오호.”


속력을 늦추지 않고 전진하더니 앞을 막아서는 요한센을 오른쪽으로 부드럽게 벗겨내며 그대로 중앙을 돌파해 올라가는 장면에 프리먼은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브라운이 뒤에서 급하게 쫓아와 카드를 받을 각오를 했는지 다리를 건드리는 깊숙한 태클을 시도하며 넘어뜨렸지만, 캐리의 왼발 패스가 한 발 더 빠르게 성공하는 걸 확인한 주심이 양손을 앞으로 뻗는 제스처를 보였다.


경기를 계속 진행하라는 어드밴티지 선언.


혼신의 힘을 다한 패스를 받은 선수는 소피앙 부팔이었다. 그는 터치라인에 붙어 천천히 올라가면서 골문 상황을 확인하는 듯하더니, 앞에 대치하고 있던 이사기레의 다리 사이로 볼을 통과시키면서 안으로 파고들었다.


삐익 -


당황한 이사기레가 다시 뒤쫓아 부팔의 어깨를 누르며 파울을 범했을 땐 이미 박스 안에 진입한 뒤였다.


“변화를 주기도 전에 뒤집혀 버렸는데.”


프리먼은 주장 리차드 브리튼이 깔끔하게 페널티킥을 성공해내는 걸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피치 바깥에서는 전술상의 이유로 배제되었던 니르 비톤이 결국 투입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로스 카운티의 전술에 대응한다기보다 후반전에 나온 두 번의 실점에서 무기력한 수비만 보여줬던 스테판 요한센을 빼기 위한 질책성 교체에 가깝다.


“끝난 건가?”


로스 카운티 측에서도 대런 케틀웰을 준비시키고 있었다. 아마 알렉산더 캐리와 교체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불러들인다는 건 거의 승기를 잡았으며, 이제는 굳히기에 들어가겠다는 의미라 볼 수 있다.


환상적인 플레이로 역전을 이끌어낸 캐리는 아까 전 브라운과 충돌했던 게 좀 컸었는지 약간 절뚝이는 걸음걸이로 관중들의 박수를 받으며 밖으로 천천히 퇴장했다.


프리먼은 이제 더 볼만한 건 없다고 생각했다. 달아나던 쪽에서 추격해야 하는 쪽으로 바뀐 셀틱이 나름대로 공격을 시도하고는 있지만 제대로 두들긴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고 있으며, 로스 카운티의 수비 집중력은 더욱 높아지는 중이었으니까.


하지만 축구는 어떤 상황에서도 일 분의 시간조차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스포츠이기도 하다.


“와우.”


아크 서클보다도 한참 떨어진 거리에서 찬 중장거리 슈팅이 오른쪽 상단 구석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가면서 로스 카운티의 그물을 기어이 흔들어내고 만 것이다.


뜬금포를 터뜨리며 동점 골을 만들어낸 주인공, 셀소 보르헤스가 주먹을 불끈 쥔 채 포효하고 있었다.


전술만 놓고 보았을 때 명확한 차이가 존재했고, 로스 카운티가 보여준 게 훨씬 많았던 경기였음에도 전광판에는 양 팀에게 동등한 숫자가 표기되고 있다.


“스코티시 챔피언의 저력이 발휘되었군.”


프리먼은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역시 셀틱은 그래도 셀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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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 카운티 3 : 3 셀틱 >

잭 마틴(7‘)

에드빈 데 루어(59‘)

리차드 브리튼(PK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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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질 반다이크(15‘)

크리스 커먼스(PK 27‘)

셀소 보르헤스(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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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언제나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씩이라도 속도를 내서 

정상적인 연재 주기를 되찾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있는데 다들 더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독자분들 덕분에 항상 힘이 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이풍 님

foir 님

엘카이나 님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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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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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122. 사냥개와 들개들 (3) +13 19.09.14 2,757 114 26쪽
121 121. 사냥개와 들개들 (2) +6 19.09.05 2,829 102 23쪽
120 120. 사냥개와 들개들 +8 19.08.25 2,952 100 26쪽
119 119. 임시방편 (3) +8 19.08.16 2,968 108 27쪽
118 118. 임시방편 (2) +9 19.08.05 3,054 97 24쪽
117 117. 임시방편 +10 19.07.24 3,064 118 25쪽
» 116. 셀틱은 셀틱 (2) +9 19.07.08 3,137 115 23쪽
115 115. 셀틱은 셀틱 +5 19.06.25 3,198 111 18쪽
114 114. 인식 변화 (2) +9 19.06.10 3,360 116 20쪽
113 113. 인식 변화 +12 19.05.24 3,542 134 20쪽
112 112. 던디 쇼크 (2) +11 19.05.07 3,463 126 22쪽
111 111. 던디 쇼크 +7 19.04.21 3,699 134 21쪽
110 110. 역이용 +12 19.04.02 3,580 137 22쪽
109 109. 키포인트 +10 19.03.17 3,681 146 25쪽
108 108. 상관없어요 +16 19.03.01 3,854 144 21쪽
107 107. 고난의 6연전 (6) +11 19.02.17 3,802 143 24쪽
106 106. 고난의 6연전 (5) +10 19.02.02 3,860 122 22쪽
105 105. 고난의 6연전 (4) +16 19.01.20 4,035 149 21쪽
104 104. 고난의 6연전 (3) +23 19.01.09 4,295 145 26쪽
103 103. 고난의 6연전 (2) +16 18.12.26 4,297 141 18쪽
102 102. 고난의 6연전 +10 18.12.08 4,619 147 22쪽
101 101. 전조 +17 18.11.25 4,580 173 19쪽
100 100. 단체 면담 +26 18.11.12 4,682 182 21쪽
99 99. 밀집과 전환 +18 18.10.16 5,035 173 18쪽
98 98. 천재의 가치 +10 18.10.05 5,124 181 20쪽
97 97. 사용 설명서 +17 18.09.26 5,204 203 26쪽
96 96. 프리먼의 인터뷰 (2) +15 18.09.16 5,444 184 19쪽
95 95. 돈 값하네 +18 18.09.04 5,426 183 21쪽
94 94. 알려지는 이름 +21 18.08.25 5,475 195 19쪽
93 93. 이끌리는 사람들 (2) +18 18.08.19 5,424 208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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