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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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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최근연재일 :
2024.06.22 18:58
연재수 :
20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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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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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9.02.02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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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글자
22쪽

106. 고난의 6연전 (5)

DUMMY

“아아, 이런 제기랄!”


좌석에 앉아 경기를 묵묵히 지켜보던 피터 블랙은 결국 참지 못해 분통을 터뜨리고 말았다.


“벌써 60분이야. 60분째 이 모양이라고!”


전반은 압도적인 차이로 요약할 수 있었다. 인버네스 CT가 아홉 번의 슈팅을 만들어내는 동안 로스 카운티는 고작 세 번. 그것도 하나는 막판에 소피앙 부팔이 경기가 안 풀려서 무리하게 시도한 중거리 슈팅이었다.


이탈해선 안 됐던 주전 선수들의 공백이 아쉬울 수는 있겠으나 그것만으로 모든 게 정당화될 수 없는 수준. 그만큼 일방적인 경기.


문제는 후반 60분이 넘어가는 지금도 그러한 양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저렇게 두들겨 맞는 꼴만 보고 있어야 하는 거야?”


“새삼스레. 이 정도는 그동안 익숙해 왔었잖아, 피터.”


옆에 앉아 있던 그의 친구 토드 홉킨스의 익살스러운 대꾸에 블랙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물론······. 그래······ 그렇기는 한데······.”


사실 낯선 광경은 아니다. 수년 전 젊은 시절 열렬한 서포터로 활동할 적에도 이 팀은 항상 수비하기에만 바쁜 이런 모습이었으니까. 본디 이맘때쯤이면 기껏 높아 봐야 8위나 9위 정도에서 힘겨운 생존 경쟁을 해나가는 게 어울리던 팀이었으니까.


그랬던 로스 카운티가 아예 달라져서 작년만 해도 상상 못 할 일들을 해나가고 있다. 그렇게 된 지는 고작 일 년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과거에 익숙했던 그것들이 이제는 낯설게 느껴지기만 한다.


‘저 감독이라면 어떻게든 뭔가 해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단 말이지.’


블랙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경기를 관전했다.


“오, 변화를 주려나 본데?”


그러나 홉킨스의 말에 터치라인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뭐야, 이 교체는?”


환호보다는 의문이 먼저 튀어나오고 말았다.


70분도 채 안 되어 감행하는 이른 교체.


감독이 내린 선택은 전방의 잭 마틴을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그를 대신하여 맷슨 클락이 투입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4-4-2에서 4-3-3으로의 전환인 듯했다.


평소에 믿음직스럽던 9번은 오늘 팀이 일방적으로 밀린 탓에 볼을 몇 번 잡아볼 기회도 없이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교체하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는 한 번의 기회만 제대로 오면 놓치지 않고 골망을 흔들어낼 수 있는 해결사 아니던가?


“잭 마틴도 그렇고, 갑자기 클락을 넣는 이유는 또 뭐지? 공격에 더 투자해도 모자랄 판에 왜 공격수를 빼는 거야?”


“일단 지켜보자고. 무슨 생각이 있겠지.”


클락은 필드에 들어가자마자 손짓으로 팀원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전달하더니 대런 케틀웰과 리차드 브리튼 아래를 받쳐주는 위치로 들어갔다.


“역시 포기한 건 아니야.”


그리고 경기가 재개되는 걸 지켜보던 홉킨스가 말했다.


“월리스와 델샤드가 엄청나게 올라가고 있잖아.”


그의 말대로 양쪽 풀백이 중앙선을 넘어 더 높이 전진해 올라가고 있었다.


보통은 리 월리스가 공격적으로, 델샤드가 적절한 때에만 올라가며 수비 밸런스를 맞추는 데 주력하지만, 지금은 양 날개를 활짝 펼쳐 든 모양새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썰물이 빠져나가듯 상대 팀의 라인이 점차 밀려나기 시작했다.


“효······ 효과가 있는 건가?”


전세를 완전히 뒤집어낸 형국은 아니었지만 분명 로스 카운티가 조금씩 압박을 벗어나 주도권을 되찾아오고 있었다. 둔탁하던 패스 플레이도 활기차게 순환되고 있었다.


그 기세를 제대로 탔는지 첫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던 브리튼이 패스 길목에 뛰어들어 인버네스의 볼을 낚아챘고, 곧장 전방으로 길게 로빙 패스를 날렸다.


“젠장, 너무 짧아!”


브리튼의 패스를 읽어낸 제이크 맥라렌이 먼저 자리를 잡고 걷어내는 걸 보며 블랙이 아쉬움을 내뱉었다.


그러나 이내 인버네스 진영까지 바짝 올라온 델샤드가 높이 솟아올라 머리로 다시 전방에 욱여넣었고, 볼은 수비 틈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며 부팔에게로 전달되었다.


“어어?”


빠르게 문전 상황을 확인한 부팔이 깔아 찬 낮은 크로스가 박스 안으로 침투한 에이든 딩월에게 정확히 도달했지만,


“거기서 그걸!”


투박한 볼 터치가 바로 슈팅을 가져가기 어렵게 만들었고, 잠깐 멈칫한 사이 자리 잡은 수비수들이 몸으로 가로 막아서고 있었다.


“차! 그냥 차라고!”


빠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움찔거리는 딩월을 보며 흥분한 블랙이 외쳤다. 그의 바람과 달리 딩월은 허둥대다가 자세가 살짝 무너진 패스로 왼쪽에 짧게 건네주었다.


“어엇!”


그리고 그 자리로 반듯이 달려오던 에드빈 데 루어의 과감한 슈팅.


“억!”


회심의 슈팅이 들어갔다고 확신하며 만세를 부르기 위해 들어 올렸던 블랙의 두 손은 그대로 내려가 뒷머리를 잡고 말았다.


“말도 안 돼. 저걸 막아?”


파 포스트로 감아 찬 슈팅은 정교했지만, 골키퍼가 왼팔을 길게 뻗어 골라인 바깥으로 쳐냈기 때문이었다. 로스 카운티가 오늘 만들어 낸 최고의 기회였으나 상대는 오늘 그 보상을 쉽게 줄 마음이 없어 보였다.


블랙은 두 팔을 힘없이 늘어뜨리고 진이 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후반 80분.


누구의 탓이라고 할 것도 없이 잘 차고 잘 막은 장면이었지만, 이대로 경기가 종료된다면 데 루어는 그 슈팅이 한동안 머릿속에서 아른거릴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좋은 기회를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으니 말이다. 로스 카운티의 날카로운 공습이 골키퍼의 선방에 실패한 이후 인버네스는 다시 수비진을 정비하여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75분에는 상대 벤치 측에서 딩월을 전담하던 드레이퍼를 불러들이고 코너 페퍼를 투입해 마크가 없던 클락에게 붙여주며 대응하기 시작했고, 이후부터는 다시 풀리지 않고 있었다.


“뭔 놈의 수비가 저따위야!”


블랙은 답답해 미쳐버릴 것 같았다.


도저히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는 인버네스의 수비진은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맹렬한 기세로 압박해오던 때와 달리 상대는 이제 공격할 의사도 크게 없어 보였다. 이미 점수를 획득했으니 무리할 이유도 없었지만.


패스는 촘촘한 그물망에 연신 걸려들기만 했고, 문전 앞으로 넣어주는 크로스는 번번이 튕겨 나오고 있었다.


침착하게 공격을 풀어나가던 로스 카운티 선수들에게도 점차 초조함이 내비치면서 여러 잔실수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와아아 -


그리고 원정팀 스탠드에서 크게 함성을 일으킬만한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로스 카운티의 흐름을 끊은 수비수의 롱볼이 코너 페퍼에게 전달됐고, 그의 스루패스가 질주하던 아론 도란에게 완벽한 일대일 상황을 만들어준 것이다.


브라운 키퍼가 살짝 앞으로 나오며 각도를 잘 좁혀냈지만 애석하게도 볼은 그의 다리 사이를 통과했고, 그물을 흔들었다.


“하······.”


블랙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거의 다 끝나가는 시간에 추가 골이라니. 오늘은 완패로군.”


“그동안 기세가 쭉 좋았으니, 한 번쯤 주춤할 때도 되긴 했지.”


“토드, 자네는 아쉽지도 않은 거야? 이렇게 허무하게 패배했는데도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데. 후반엔 역전의 여지도 분명 있었다고.”


“아쉽긴 하지만 언젠가는 겪을 일이었어. 사실 피터 자네도 경기 전엔 큰 기대를 하지 않겠다고 했잖아. 캐리와 블랜차드가 없으면 힘들다면서.”


“그거야······. 그냥 하는 소리였지. 기대 안 하고 보는 팬이 어디 있어.”


“그래, 그렇긴 하지.”


블랙의 말에 홉킨스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이번 경기를 보면서 긍정적인 부분을 꽤 찾을 수 있었어.”


“끼워 맞추면 뭔들 못 찾겠어. 결과를 못 낸 이상 실패일 뿐이야.”


“아니. 내가 말하는 건 경기 내용이 아니네.”


홉킨스의 말에 블랙은 멈칫하여 그의 눈을 마주 보았다.


“한창 열중해서 보느라 느끼지도 못했나 보군. 작년이었다면 이런 결과를 곱게 받아들이지 못한 쪽에서 지금쯤 난리가 났을 텐데. 더군다나 가장 민감한 하일랜드 더비에서 말이야. 아직도 모르겠나?”


“······그러고 보니?”


빅토리아 파크가 조용했다.


물론 아직도 되먹지 못한 불량배 무리가 한 구역을 차지하고 있으며 간간이 욕설과 비난이 들려오고는 있었지만, 저번처럼 모두가 감독과 선수들을 향해 입에 담기도 힘든 말들을 퍼붓는 지옥 같은 광경은 아니었다.


“숫사슴들의 분노가 조금씩 치유되고 있는 모양이야.”


홉킨스가 말했다.


“슬슬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얘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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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 카운티 0 : 2 인버네스 CT >

아론 도란(21‘,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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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ottish Sports ] 로스 카운티의 시즌 첫 리그 패배는 하일랜드 더비에서


[ The Scotsman ] 로스 카운티의 14경기 무패 행진 마감


[ Daily Mail ] 블랜차드의 공백, 델 레오네는 데 루어가 불만족스럽다


[ Daily Mirror ] ‘천적’ 스티브 클라크, 다시 한번 델 레오네를 잡아내다


[ Scotland Sunday ] 치열한 하일랜드 더비, 복수에 성공한 칼레 시슬


*******


하일랜드 더비가 끝나자마자 언론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인버네스 CT의 승전보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스포츠 뉴스의 대문을 장식한 건 멀티 골을 달성하며 MOM으로 선정된 아론 도란이었고, 전문가들은 압둘 오스만을 비롯한 칼레 시슬의 미드필더진이 로스 카운티를 질식시켰다면서 그들의 왕성한 에너지를 극찬했다.


개막전에서 이른 퇴장을 당하며 역적 취급을 받았던 젊은 수비수 제이크 맥라렌이 얼마나 견고한 수비를 보여주었는지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평소에 로스 카운티 선수들이 받았던 조명을 라이벌 쪽에서 고스란히 가져간 셈이었다. 치열한 승부가 끝나고 나면 승자는 주목받고, 패자는 잊히게 마련이다. 잘 나가던 팀이라고 예외일 순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스티브 클라크가 전술적인 부분으로 안토니오 델 레오네를 다시금 무너뜨렸다는 사실은 기자들에게 있어 아주 짜릿하고도 달콤한 먹잇감이었다.


저번에 무기력하게 박살 나던 인버네스 CT를 보면서 얼마나 실망을 금치 못했던가. 흥미진진한 기사를 써 내려가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것보다 팽팽하게 당겨지는 싸움이 필요하다.


아니, 대부분 모두가 바라는 일이기도 했다. 두 감독의 라이벌리가 깊어질수록 스코티시 리그의 열기 또한 더욱 뜨거워질 테니까. 실제로 최근에 그들이 맞부딪칠 때마다 리그 관계자들이 어깨를 들썩일만한 일들이 일어나곤 한다.


이제 하일랜드 더비는 하일랜드 지방 사람들만 즐기는 수준의 경기가 아닌 것이다.



“제임스랑 알렉스. 아니, 둘 중 한 명만 있었어도 결과가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요.”


스튜어트의 말이었다.


“기세가 올라가던 후반에 그 녀석들만 있었어도 무득점으로 그칠 경기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 이미 끝났긴 하지만 계속 아쉬움이 가시질 않습니다.”


“가정은 무의미할 뿐이야.”


그리고 감독은 시선을 책상에 고정한 채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랬다면 그에 맞춰서 또 다른 대응을 해왔겠지. 이번에는 상대가 잘 준비해왔어. 내가 제대로 한 방 먹은 거고.”


“그렇긴 합니다만······.”


“게다가 그건 이미 알렉스가 출전한다는 전제하에 내세운 전략이었네. 우리의 안방이었으니 탄탄한 수비를 기반으로 역습 해오는 걸 택할 거라 생각했는데 초장부터 공격적으로 나오더군. 제대로 허를 찔려버린 셈이지.”


감독이 계속 말했다.


“그리고 후반에 짜놓은 수비 진형은 완벽에 가까웠네. 단순히 훈련으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었어. 고도의 집중력과 우리를 이기고자 하는 열망까지 복합된 결과물이었지. 그날만큼은 어떤 팀이 오든 쉽사리 뚫어내기 힘들었을 거야.”


그러다가 잠깐 멈칫하더니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아, 물론 그 감독이 수비를 잘 만져놓긴 했지만.”


“······확실히 스티브 클라크, 그 사람은 보통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이버니언 때도 우리를 못살게 굴더니.”


“괜히 프리미어 리그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겠나. 상당히 골치 아픈 양반이야. 물론 그래서 더 재미있긴 하지.”


2004/05 시즌, 첼시에서 38경기 15골로 잉글랜드 리그 역대 최소 실점을 달성한 조제 무리뉴 감독의 수석 코치로 활동한 바 있고, 이후 리버풀에 가서도 수비 조직력을 다듬었던 인물이다. 그런 베테랑답게 그는 불과 반년도 안 되어서 칼레 시슬을 단단하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지금도 셀틱을 제외한 최소 실점 2위에 그들이 자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작 문제는 말이야.”


감독이 스튜어트를 보며 말했다.


“이제 다른 팀들이 이번 경기를 교과서로 삼겠지. 지금 이 순간에도 비디오를 보면서 열심히 대처법을 고안해내고 있을 거야. 어설프게 따라만 하려다가 낭패를 보는 팀들도 분명 있겠지만.”


“우리도 마냥 제자리에 안주하고만 있으면 안 되겠군요.”


“그렇지. 그랬다간 또다시 쓴잔을 들이키게 될 테니까.”


감독은 다시 책상으로 눈을 돌렸다.


“잭은 훌륭한 공격수지만, 이번처럼 상대가 제대로 물고 늘어지면 우리에게 전술적인 허점으로 작용하기도 해. 그럴 땐 상당한 딜레마가 아닐 수 없지.”


“아무래도 조직적인 압박이나 체계적인 연계 플레이에는 거의 관여를 하지 못하니까요. 결국 맷슨과 교체해서 어느 정도 효과를 보긴 했는데 그때는 또 결정적으로 마무리 지을 선수가 부족하다 보니······.”


스튜어트는 말을 흐리다가 너무 분위기가 확 내려앉아 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그래도 어쨌든 제임스, 알렉스 둘 다 복귀해서 한시름 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감독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임스는 오늘부터 훈련 복귀인가?”


“예, 그렇습니다.”


“마침 잘됐군.”


그는 아까 전부터 계속 살펴보던 서류들을 세워 깔끔하게 정리하더니 파일에 넣어 스튜어트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뭡니까?”


“제임스의 새로운 훈련 세션이네. 며칠 전부터 구상해뒀던 기본적인 것들을 정리해 두었지. 조만간 자네들과 다시 상의해야 할 테지만 일단 오늘은 그걸 토대로 진행해주게.”


“이건······.”


스튜어트는 건네받은 파일을 열어보고서 한동안 말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


< League Cup Quarterfinals >

마더웰 : 로스 카운티

2014년 10월 29일 (수) 19:30

퍼 파크 (관중 수 : 4,639명)



[로스 카운티 / 4-4-2]

FW : 필립 로스 / 잭 마틴

MF : 에드빈 데 루어 / 맷슨 클락 / 대런 케틀웰 / 앤드류 톰슨

DF : 고든 스미스 / 스콧 보이드 / 대니 패터슨 / 스티브 샌더스

GK : 데이비드 밀스



‘정말······ 이번에도 선발이네.’


스티브 샌더스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벤치에 앉아 있는 감독을 흘끗 보았다.


어젯밤 잠자리에 들면서도 반신반의했었다.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지만 결과적으로 셀틱과 올림피아코스에게 비겼고, 인버네스 CT에게는 패배하면서 세 경기 동안 승리가 없다.


리그 컵 상대도 저번 폴커크 때에 비하면 결코 만만찮은 마더웰. 주전을 제외하면 장담할 수 없는 팀이다. 분위기를 반등시키기 위해서라도 그 약속을 번복할 수도 있었을 텐데.


선발 보장해주겠다고 한 여섯 명이 전부 피치 위에 서 있다.


‘빈말을 내뱉는 사람은 절대 아니구나.’


부임 당시에는 일천한 경력이 그저 초라해 보였고, 셀틱을 잡겠다는 무모하고도 황당한 포부에 비웃음을 짓기도 했다. 현실성을 망각한 인간 같아서 부정적으로 여기기도 했다.


모두가 놀랄 만한 성과를 내면서 어느 정도 입증해 냈을 때는 놀라기도 했으나, 주요 플랜에서 제외된 것에 대해서는 못마땅하기도 했다. 자신이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다른 선수에게 기회가 돌아간 것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끝내는 자신을 잊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잊지 않고 손을 내밀어 주었다. 사적인 감정 따위는 배제하고 동등한 선수로 대하면서 믿음을 계속 보내주고 있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내가 저 사람을 위해 뛰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아마 나머지 다섯 명 또한 똑같은 생각일 것이다.


샌더스는 주심의 휘슬 소리를 기다리며 이를 꽉 다물었다.


*******


마더웰은 한두 명을 제외하면 거의 주전으로 무장하고 나왔지만, 오늘 결과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냥 후보들에게 기회를 주는 쪽으로 선택했을 것이다.


초반 흐름은 좋았다. 주전 선수들의 기량을 내세워서 몰아붙일 수 있었고, 높은 점유율로 압도해 나갔다. 인버네스 CT가 했던 것처럼 로스 카운티를 허물어낼 수 있다는 희망에 사로잡히기까지 했다.


단지 패인이 있다면 그들보다 더 단단한 투지를 장착하고 나온 수비진을 결국 깨뜨리지 못했다는 것과 저번 하일랜드 더비에서 무기력하게 교체된 이후 독이 잔뜩 올라 있던 잭 마틴을 제어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전반에 필립 로스의 스루패스를 차단하지 못한 수비의 실책을 놓치지 않으며 일대일 상황에서 마무리, 후반에는 두 명이 에워싼 틈 사이로 절묘하게 올린 톰슨의 크로스를 헤더 골로 결정지으면서 마더웰의 의지를 완전히 꺾어냈다.


후반 80분에는 드디어 돌아온 에이스, 제임스 블랜차드가 에드빈 데 루어와 교체되어 들어왔는데, 그는 들어오자마자 코너킥 상황에서 자신에게 떨어진 볼을 주워 넣는 기막힌 복귀 골을 터뜨릴 수 있었지만 감각은 아직 회복되지 못했는지 키퍼에게 얌전히 안겨주는 머쓱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사실 마더웰은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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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더웰 0 : 2 로스 카운티 >

잭 마틴(32‘,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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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cotsman ] 잭 마틴의 맹활약, 로스 카운티 리그 컵 4강 진출


[ Scottish Sports ] 4강에서 셀틱과 다시 재격돌하는 로스 카운티


[ Daily Mail ] 데 루어는 블랜차드의 복귀에도 불구하고 주전 보장을 원한다


*******


< 14-15 Scottish Premiership 13 Round >

하이버니언 : 로스 카운티

2015년 11월 1일 (토) 15:00

이스터 로드 스타디움 (관중 수 : 8,776명)



[로스 카운티 / 4-4-2]

FW : 에이든 딩월 / 잭 마틴

MF : 제임스 블랜차드 / 알렉산더 캐리 / 리차드 브리튼 / 소피앙 부팔

DF : 리 월리스 / 폰투스 얀손 / 대니 패터슨 / 아메드 델샤드

GK : 마크 브라운



“이래서 하이버니언하고 이 시기에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스튜어트의 말이었다.


하이버니언은 최근 로스 카운티에게 있어 유독 까다롭고 성가신 존재다. 셀틱과 무승부를 거두기 전에는 유일하게 승점 3점을 허락하지 않았던 팀이었으니까.


심지어 델 레오네 부임 이후 아직 단 한 번도 승리를 내준 적이 없는 기록을 보유한 팀이기도 하다.


노련한 공격수 폴 헤퍼난에게 묵직한 헤더 골을 내줬을 때만 해도 그 재수 없는 징크스가 이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월리스의 오버래핑에 이은 크로스가 문전으로 쇄도한 블랜차드의 머리를 맞고, 골키퍼가 막은 걸 재차 밀어 넣은 부팔의 동점 골이 터졌고, 이어서 역전 골까지 나왔다.


분명 극적인 상황에 기뻐해야 할 일이었지만 득점자도 동료들도 지켜보던 벤치에서도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진짜 너무하는 거 아닌가?”


스튜어트는 끝내 참지 못하고 불만을 터뜨렸다.


볼은 골대 안에서 구르고 있었고, 그 옆에서 잭 마틴이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우측에서 날아온 부팔의 낮은 크로스를 멋지게 슬라이딩하며 발을 갖다 댄 것까지는 좋았으나 뒤늦게 들어온 수비수가 강하게 그와 충돌한 것이다.


고의적인 가격은 아니었겠지만, 그는 쉽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충격이 커 보였다.


“일단 잭을 빼야겠군. 맷슨과 대런을 준비시키게. 오늘은 굳히는 쪽으로 가는 게 좋겠어.”


“알겠습니다. 알렉스도 빨리 불러들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안 그러면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까요.”


스튜어트가 단단히 화가 난 이유는 오늘 이게 첫 부상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거친 태클을 여러 번 받았던 아메드 델샤드가 전반 종료 후에 통증을 호소했고, 후반 시작하자마자 스티브 샌더스로 바꿔주어야 했다. 그런데 또 누가 다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겠는가.


안 그래도 요새 계속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결국 캐리와 잭 마틴이 동시에 케틀웰, 클락과 교체되었고 로스 카운티는 소극적인 운영으로 간신히 점수를 지켜낼 수 있었다.


“역시 하이버니언은 달갑지가 않아.”


승리가 확실시된 순간까지도 스튜어트는 전혀 기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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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버니언 1 : 2 로스 카운티 >

폴 헤퍼난(68‘)

+++++++++++++++++++++++++++++

소피앙 부팔(75‘)

잭 마틴(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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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ottish Sports ] 로스 카운티, 승리했지만 출혈이 심하다


[ The Scotsman ] 델 레오네 “잭 마틴은 경미한 종아리 부상. 일주일 뒤 복귀할 것.”


[ Scottish Sports ] 아메드 델샤드는 발목 부상으로 3주 결장할 예정


[ Daily Mail ] 익명의 네덜란드 팀은 겨울에 에드빈 데 루어를 데려오려고 계획 중이다


[ Daily Telegraph ] 뼈만 앙상한 날개, 주전 풀백들 없이 유로파 리그에 나서야 하는 로스 카운티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 자정 전에는 올릴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서 결국 넘겨버렸네요.

항상 제 글을 기다려주시고 재밌게 읽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_ _)

모두 이번 주말 그리고 설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그와중에 카타르가 아시안 컵 우승했네요. 대단합니다.

우리나라도 곧 다시 오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이풍 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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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120. 사냥개와 들개들 +8 19.08.25 2,950 100 26쪽
119 119. 임시방편 (3) +8 19.08.16 2,968 108 27쪽
118 118. 임시방편 (2) +9 19.08.05 3,053 97 24쪽
117 117. 임시방편 +10 19.07.24 3,063 118 25쪽
116 116. 셀틱은 셀틱 (2) +9 19.07.08 3,136 115 23쪽
115 115. 셀틱은 셀틱 +5 19.06.25 3,198 111 18쪽
114 114. 인식 변화 (2) +9 19.06.10 3,359 116 20쪽
113 113. 인식 변화 +12 19.05.24 3,542 134 20쪽
112 112. 던디 쇼크 (2) +11 19.05.07 3,463 126 22쪽
111 111. 던디 쇼크 +7 19.04.21 3,699 134 21쪽
110 110. 역이용 +12 19.04.02 3,580 137 22쪽
109 109. 키포인트 +10 19.03.17 3,681 146 25쪽
108 108. 상관없어요 +16 19.03.01 3,854 144 21쪽
107 107. 고난의 6연전 (6) +11 19.02.17 3,802 143 24쪽
» 106. 고난의 6연전 (5) +10 19.02.02 3,860 122 22쪽
105 105. 고난의 6연전 (4) +16 19.01.20 4,035 149 21쪽
104 104. 고난의 6연전 (3) +23 19.01.09 4,294 145 26쪽
103 103. 고난의 6연전 (2) +16 18.12.26 4,297 141 18쪽
102 102. 고난의 6연전 +10 18.12.08 4,619 147 22쪽
101 101. 전조 +17 18.11.25 4,579 173 19쪽
100 100. 단체 면담 +26 18.11.12 4,682 182 21쪽
99 99. 밀집과 전환 +18 18.10.16 5,034 173 18쪽
98 98. 천재의 가치 +10 18.10.05 5,124 181 20쪽
97 97. 사용 설명서 +17 18.09.26 5,204 203 26쪽
96 96. 프리먼의 인터뷰 (2) +15 18.09.16 5,444 184 19쪽
95 95. 돈 값하네 +18 18.09.04 5,426 183 21쪽
94 94. 알려지는 이름 +21 18.08.25 5,475 195 19쪽
93 93. 이끌리는 사람들 (2) +18 18.08.19 5,424 208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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