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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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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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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2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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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10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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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114. 인식 변화 (2)

DUMMY

[ Scottish Sports ] 세인트 존스톤, 샘 라이트 감독 경질



시즌이 중반에 접어들면 장기 레이스에서 뒤처지는 낙오자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미 던디 유나이티드 쪽에서 그 스타트를 끊어내긴 했지만, 강등권의 수렁 속을 빠져나와 다시 경쟁 팀의 꽁무니를 쫓아가려면 세인트 존스톤에서도 빠른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사실 이 상황을 제일 시샘하고 있는 건 그들일 것이다. 2010년 리그 승격에 성공한 뒤 무려 삼 년을 버텨왔다. 뒤따라 올라온 후발주자들이 번번이 실패를 겪고 재강등되는 걸 보면서 안정적으로 정착해낸 것에 제법 자부심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껏 한 번도 프리미어십의 영역을 밟아본 적도 없던 무명 팀이 어느 날 갑자기 승승장구하다가 이제는 자신들의 머리 위를 밟고 올라서서 셀틱과 대면하고 있다니. 이런 황당무계한 일을 어찌 쉽게 수긍할 수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샘 라이트는 희생양이라 볼 수도 있었다. 2012년에 부임하여 두 시즌 간 팀의 잔류를 돕기 위해 성심성의를 다했건만, 로스 카운티의 선례를 보며 허영심에만 잔뜩 사로잡힌 수뇌부들의 기대치를 전혀 충족할 수 없게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아직 후반기가 남아있음에도 벌써 두 번째 경질. 하나는 치욕스러움 때문에, 하나는 열등감 때문에. 각각의 사유는 약간 달라도 하일랜드의 작은 팀이 선전하면서 구단들을 자극해냈다는 공통적인 원인은 다르지 않다.


작년에 지휘봉을 내려놓고 물러난 감독들 중에도 로스 카운티 지분이 꽤 많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 두 감독을 경질시킨 건 구단이 아닙니다. 이탈리안이 한 것이죠.’


한 칼럼니스트가 시즌 개막하기 전에 했던 멘트지만, 당장 오늘 한 말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것이다. 또 이만큼 현 사태를 확실히 표현할 수도 없을 테고 말이다.


일각에서는 로스 카운티를 저승사자에 빗대고 있었다.


스코티시 축구의 저급한 수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생명의 불이 희미해져 가는 프리미어십 감독들의 목숨을 차례대로 거두어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정확히는 글래스고의 유명 축구 만평가가 SNS에 올린 그림이 퍼진 게 계기였는데,


로스 카운티의 상징, 숫사슴의 얼굴로 표현된 그림 리퍼(Grim Reaper : 서양 사신)가 던디 유나이티드와 세인트 존스톤의 엠블럼이 수집품처럼 매달려 있는 사슬 목걸이를 한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 한 컷이었다.


음산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그려진 이 그림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줌과 동시에 많은 동의까지 얻는 데 성공했다.


로스 카운티는 이제 단순한 이변의 팀을 넘어서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전체를 공포에 떨게 만드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말이다.


셀틱에게 지는 건 리그의 오래된 관습이나 다름없으며 당연한 현상과도 같은 것이므로 괜찮다. 하지만 근본도 없는 촌구석 팀에게 내리 패배를 내주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더 두려운 것이다.


직접 대적해본 이들은 이 군청색 군단과 그 위에 있는 통솔자를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대부분의 고위층 간부들은 그것까지 이해해주지 않는다. 그들의 눈에는 여전히 자신들보다 아래에 위치한 구단일 뿐이었다.


오히려 세인트 존스톤의 수뇌부들처럼 현 상황을 더 이상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에 부풀어 오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었다. 이제 더 높은 수준을 원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로스 카운티도 해냈는데, 우리라고 못 할 게 있겠어?’


이런 생각과 함께.


어쩌면 몇몇 구단의 감독들은 정말로 자신의 영혼을 수확하기 위해 천천히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는 것처럼 초조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차가운 쇠붙이가 목 안에 들어와 숨겨뒀던 치부를 낱낱이 들추어낼 때까지. 그리고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게 될 것이라 직감하면서.


*******


2014년 12월 22일, 빅토리아 파크.


“다들 나와요!”


하지만 오늘은 그들이 커다란 낫을 두고 선물 보따리를 들어야 할 시간이었다.


홍보 담당자 마리 코넬의 외침에 빨간 모자를 머리에 쓴 산타들이 하나둘씩 밖으로 어슬렁거리며 나온다.


“어물쩍대지 말고요! 리차드, 선물은 다 챙겼어요?”


“챙겼습니다.”


“빠뜨린 거 없죠? 알렉스! 그거 땅에 질질 끌지 말아요!”


“예에.”


“저기 이거 좀 머리에 끼는데요? 모자가 좀 작은 거 같은데······.”


“더 큰 사이즈를 구하지 못했어요. 미안해요, 폰투스. 오늘만 참아요.”


선수들이 모여들자 한산하던 클럽하우스 앞이 금세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이 옷 생각보다 후덥지근한데? 밖에 나오니까 살 것 같아.”


뒤이어 덥수룩한 수염에 빨간 털옷을 두른 산타클로스 한 명이 뒤뚱거리면서 나와 모두의 시선을 강탈했다. 저번에 깐죽댔던 이유로 완전 분장 벌칙을 받았던 스콧 보이드였다.


“잘 어울리는데?”


“그 입 가리고 있는 손 좀 치우고 말해볼래, 주장?”


“크흠······. 근데 산타는 아이들 앞에서 호탕하게 웃어야 할 텐데. 가능하겠어? 미리 연습하고 가는 건 어때?”


“분장했으면 된 거지. 무슨 그런 것까지······.”


그리고 주목을 도무지 안 받을 수가 없는 인물이 한 명 더 있었다.


“이거 꼭 해야 하는 겁니까?”


“으악, 뭐야!”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먼저 돌아본 에이든 딩월이 짧은 비명을 질렀다. 회색 스웨터에 청바지 차림을 한 제임스 블랜차드가 살짝 심기 불편한 얼굴로 수염을 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임스? 왜······ 수염만?”


“아, 제가 부탁했어요.”


코넬이 말했다.


“제임스는 인상이 조금 강한 편이라 아이들이 무서워할 수도 있거든요. 이왕에 가는 거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되잖아요? 수염을 달면 더 친숙하게 보이니까 좀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을 거예요.”


“지금은 다른 의미로 무서운 거 같은데요.”


“그래요? 좀 푸근하고 순해지지 않았어요?”


“풉.”


결국 참지 못한 딩월이 웃음을 터뜨렸지만, 이내 블랜차드가 날카롭게 쏘아보자 입을 다물었다.


“듣고 보니 뭔가 좀 어색해 보이긴 하네.”


코넬은 팔짱을 하고 고개를 좌우로 기울이며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차가운 인상의 거구가 수염과 모자만 쓰고 있는 건 분명 보기 좋은 모양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렇게 블랜차드를 살펴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렇게 된 거 제임스도 산타 의상을 입어줄래요?”


“······네?”


“마침 한 벌이 여분으로 있거든요. 오늘 하루만이니까 그렇게 해줘요. 제임스가 산타로 변신하면 아이들도 분명 좋아할 거예요.”


“제가 왜······.”


“오, 동지가 생기는 건가? 나 혼자서만 산타가 되는 건 좀 적적했었는데 말이야. 얼른 입고 오라고, 제임스.”


“그래. 우리 팀의 에이스인데 평범한 모습으로 가는 건 좀 싱겁잖아?”


“아니, 아직 한다고는······.”


“해줘요, 제임스. 오늘은 좋은 날이잖아요? 자, 안으로 들어가서 갈아입고 나오면 돼요.”


“······.”


이미 모두가 또 한 명의 산타클로스를 원하는 분위기였다. 결국 블랜차드는 옷을 받아 코넬에게 등을 떠밀리며 다시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푸흡!”


“······그만 웃어. 루돌프로 만들어버리기 전에.”


“······네.”


*******


그린힐 스트리트에 있는 로스 세인트 어린이 병원은 상당히 외딴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붕은 고딕 양식의 형태로 지어져 있었고, 건물은 오래되었는지 적색 벽돌들이 허름하게 낡아서 볼품이 없어 보였다.


유리창은 아치형으로 둥글게 되어 있어 흡사 교회를 연상케 했다. 병원에 세인트란 이름이 붙은 것도 어쩌면 그와 연관된 것일지도 모른다.


병원에 도착하니 뜻밖의 취재진이 카메라를 들고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로스 카운티의 냄새를 맡고 쫓아온 건 아니었다. 이 또한 마리 코넬의 계획이었다.


“우리는 아직 내부에 운영하는 미디어 조직이 없어서 오늘만 더 스코츠맨이 협조해줄 거예요. 여러분은 지역 사회 봉사에만 집중하면 돼요. 보도는 저들이 해줄 거니까.”


푸근한 몸집이 두드러지는 담당 기자 제임스 맥렐랜드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와 선수들을 반겼다.


“취재는 저희에게 맡기세요. 보이는 부분 그대로 빠짐없이 전파해 드리겠습니다.”


더 스코츠맨은 맥렐랜드를 중심으로, 스코티시 내부에서 가장 로스 카운티에 호의적인 언론사로 유명하다.


선수들은 오늘 할 일에만 충실하면 될 뿐이었다.



“산타클로스다!”


“허허허, 메리 크리스마스!”


“못 한다느니 뭐니 하더니만, 잘하네.”


브리튼은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산타클로스 역할에 완전히 심취한 보이드를 보며 웃음을 짓고 말았다. 노인의 목소리는 정말 연습해 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정말 산타 같아요. 보이드 아저씨.”


하지만 아이들 눈을 속일 수는 없었나 보다.


“허허, 허······. 어떻게 알았니?”


“에이, 크리스마스 전에 찾아오는 산타가 어디 있어요? 심지어 굴뚝을 타고 내려오지도 않았잖아요.”


“그래······. 하지만 오늘 하루는 우리가 너희들의 산타가 되어줄 거란다!”


“와아, 선물이다!”


방문은 성공적이었다. 아이들은 즐거워했고, 병원 관계자들 또한 기뻐했다.


가족 외에는 찾아오는 이가 없어 아이들이 외로워하고 있던 차에 이렇게 방문해줘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까지 할 정도였다.


“내심 환영을 크게 받지 못하는 거 아닐까 싶었는데, 괜한 걱정이었구나.”


닐 스튜어트를 비롯한 코치진들도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로스 카운티는 생각보다 이곳에서 더 반가운 존재로 여겨지는 것 같았다. 어쩌면 산타클로스보다도 더.


“저도 커서 블랜차드 선수처럼 되고 싶어요.”


“난 캐리 선수처럼 될 거야.”


제일 인기가 많은 건 블랜차드였다. 그는 보이드와 달리 무뚝뚝했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아이들에게 흥밋거리로 작용하는 모양이었다. 여전히 표정은 딱딱한데, 보이는 건 영락없는 산타클로스였으니까 말이다. 결국 코넬의 선택이 적중한 듯했다.


“쳇, 엄청 인기 많네. 나도 산타 옷을 입을 걸 그랬나?”


그걸 지켜보며 작게 질투를 내뱉던 딩월은 뒤에서 자신의 옷자락을 약하게 잡아당기는 걸 느껴 고개를 돌아보았다. 여자아이 한 명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종이와 펜을 내밀고 있었다.


“저기······. 사인해주세요.”


딩월은 손으로 입을 막고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든지 해줄게, 얼마든지! 근데 내 이름 알고 있는 거지? 내가 에이든 딩월이라는 거 알고 온 거 맞지? 그래, 장하다! 보는 눈이 좀 있구나? 사인은 여기에만 필요해? 다른 곳에도 해줄까?”


그렇게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잠깐만 다들 모여 봐요. 단체 사진을 찍어야 하니까.”


마지막 일정은 모두가 한데 모여서 사진을 남기는 일이었다.


“근데 이 사람은 또 어디 간 거야?”


이럴 때면 항상 그녀를 힘겹게 만드는 인물이 하나 있다.


“정말 제멋대로라니까.”


코넬은 투덜거리면서 보이지 않는 한 명을 찾아다녀야 했다. 온 구석을 둘러보고 이층까지 올라가서야 그를 찾아낼 수 있었다.


“제가 정말 나을 수 있을까요?”


“그럼, 꼬마 아가씨. 희망을 놓아선 안 된단다.”


이탈리안은 한 병실에서 머리카락이 없는 아이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마음을 강하게 먹으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별것도 아닌 일이 되어 있을 테니까. 머리는 다시 자라면 그만이고. 물론 지금도 예쁘지만.”


“히, 거짓말하지 마세요.”


“정말이란다.”


평소에 못 보던 그의 새로운 일면을 엿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알았어요. 끝까지 힘내볼게요. 그때까지 기다려주실 수 있죠?”


“항상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을게. 그런 병마 따위는 가볍게 털어버리고 일어서야 한다, 알겠지?”


“그럴게요.”


“그래, 착하다.”


그리고 코넬은 이탈리안이 서서히 일어나 몸을 돌릴 때까지 미처 움직이지 못했고, 둘은 서로의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어······. 단체 사진 촬영 때문에요. 감독님을 찾고 있었어요.”


“내려가죠.”


못 본 척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상황이었다. 하지만 코넬은 정작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행동하는 걸 보며 괜히 어색해하는 자신이 이상해진 기분이 들었다.


“······의외네요.”


“뭐가 말입니까?”


“전 감독님이 바늘로 쿡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사람인 줄 알았거든요.”


“······.”


“가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잠깐 물끄러미 쳐다보던 델 레오네는 앞서 발걸음을 재촉하여 걸어가는 코넬을 뒤따라가면서 피식 웃음을 짓더니 가볍게 대꾸했다.


“그렇다고 정말 찌르면 안 됩니다.”


*******


< 14-15 Scottish Premiership 19 Round >

애버딘 : 로스 카운티

2014년 12월 26일 (금) 19:30

피토드리 스타디움 (관중 수 : 8,854명)



[로스 카운티 / 4-1-4-1]

FW : 에이든 딩월

MF : 에드빈 데 루어 / 제임스 블랜차드 / 대런 케틀웰 / 소피앙 부팔

DM : 알렉산더 캐리

DF : 리 월리스 / 폰투스 얀손 / 스콧 보이드 / 아메드 델샤드

GK : 마크 브라운



박싱데이를 맞아 로스 카운티가 만난 상대는 현재 5위에 있는 애버딘이었다.


피토드리 스타디움은 스코티시의 어느 팀이든 쉬운 원정길이 아니다. 그 때문인지 델 레오네는 중앙에 힘을 실은 진형으로 그들을 상대했다.


그리고 한 선수는 왜 자신이 그날 병원에서 가장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었는지를 제대로 증명해내고 있었다.


“훌륭해, 제임스!”


블랜차드의 두 번째 골이 들어간 것을 보며 스튜어트는 환호를 보냈다.


중앙선에서부터 날아오는 볼을 가슴으로 받아낸 얀손이 단번에 롱볼로 전방까지 연결, 그 패스를 수비라인을 허물며 들어간 블랜차드가 마찬가지로 가슴을 이용해 받아낸 뒤 박스 안까지 몰고 들어가 낮게 깔리는 슈팅으로 마무리하는 멋진 장면이었다.


선제골 때는 상대 수비진이 촘촘하게 대형을 유지한 채 밖으로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음에도 안으로 쇄도하면서 그들보다 더 높이 솟아올라 델샤드의 크로스를 기어이 골대에 욱여넣으며 균형을 깨뜨려냈다. 이젠 중앙에서의 움직임도 완벽하게 적응한 모양새다.


몇 분 전에 박스 바깥 외곽에서 시도한 슈팅이 골대에 맞지만 않았다면 진작 해트트릭도 가능했을 것이다.


“제임스의 순간적으로 들어가는 움직임은 정말 상대가 막기 까다로워하는 것 같습니다. 공중볼을 이용하는 방식도 요앙이 있을 때와는 뭔가 다른 느낌이네요.”


요앙 아르킨이 있었을 적엔 가운데를 우직하게 버티면서 강하게 때려 넣는 것 같았다면, 블랜차드는 살금살금 접근해 들어가 쥐도 새도 모르게 일격을 가하는 형태에 가까웠다.


“그게 제임스의 실력이니까.”


감독이 웃으며 말했다.


“처음에 봤을 때부터 눈여겨본 재능이었지. 겉보기엔 그저 모든 면에서 무난한 게 녀석의 최고 장점인 것 같지만, 사실 남들보다 유달리 뛰어난 부분이 있거든.”


“미드필더치고 뛰어난 마무리 능력 말씀이십니까?”


스튜어트의 물음에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훌륭하긴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전혀 다른 것이네. 눈으로 보이지 않는 영역이지.”


감독은 잠깐 말을 멈춘 뒤 자신의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축구 지능.”


그리고 필드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어나갔다.


“제임스는 경기의 흐름을 누구보다 잘 읽어. 또한 공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지. 남들보다 몇 수 앞을 내다볼 줄 안다는 얘기네. 정말이지 아주 똑똑한 녀석이야. 저 수비수들이 바보들이라서 가만히 놓친 것처럼 보이나? 천만에. 제임스가 더 뛰어났기 때문이야. 저들은 단지 그 부분에 평범했을 뿐이지.”


관중석에서 작게 탄식이 들려왔다. 블랜차드가 다시금 박스 안에서 패스를 받아 슈팅했지만 이번에는 키퍼에게 아쉽게 막힌 모양이었다.


“난 이 부분에서 녀석을 능가하는 선수는 적어도 이 스코티시 내에는 없다고 생각하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감독이 말했다.


“그런 재능을 가졌음에도 스물두 살이 되도록 한곳에 정착을 못 해서 떠돌아다니다가 여기에서도 리저브만 전전하며 선수 생활을 썩히고 있었다니, 참 애석한 일이야. 진작 빛을 봤었어야 했는데.”


스튜어트 또한 필드를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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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버딘 1 : 2 로스 카운티 >

피터 폴렛(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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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블랜차드(51‘,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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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5 Scottish Premiership 20 Round >

로스 카운티 : 파틱 시슬

2014년 12월 30일 (화) 19:30

빅토리아 파크 (관중 수 : 6,061명)



[로스 카운티 / 4-4-2]

FW : 에이든 딩월 / 잭 마틴

MF : 에드빈 데 루어 / 대런 케틀웰 / 리차드 브리튼 / 앤드류 톰슨

DF : 리 월리스 / 스콧 보이드 / 대니 패터슨 / 스티브 샌더스

GK : 마크 브라운



박싱 데이는 오래된 전통으로 뜻깊은 날이었지만, 영국의 축구 관계자들에게 있어서는 골칫덩이가 되기도 한다.


일정이 빡빡해지는 주범이 되어 선수들을 지치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지친 선수들은 제 컨디션으로 뛰지 못하여 본래 실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고, 더 심하게는 부상자가 발생할 위험이 커지게 된다. 그래서 구단들은 결국 이 시기에 일정을 고려하여 일부 주전을 내보내지 않고 쉬게 하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보통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일어나곤 한다.


“으하하, 이거지. 이거라고!”


아론 아치볼드의 경우는 박싱 데이 덕에 수혜를 받는 쪽이었다.


파틱 시슬이 로스 카운티의 안방으로 들어와 그들의 기세를 잠재우고, 귀중한 승점 1점까지 챙겨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까.


리차드 브리튼의 중거리 슛이 수비를 꿰뚫고 허무하게 골망을 갈라버렸을 때는 틀렸다고만 생각했었다. 인터뷰에서 어떤 식으로 변명을 해야 할지, 경기는 잘 준비해왔지만, 또 불운한 이유로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는 자기 위안을 할 궁리에만 빠져있었다.


그런 그와 달리 파틱의 선수들은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이 이상의 추가 점수를 내주지 않으려 노력했고, 결국 코너킥 찬스에서 동점까지 만들어냈다.


물론 파틱 시슬의 감독은 그런 선수들의 수고를 전혀 알아줄 리가 없겠지만 말이다.


그는 자신에게 좀만 더 좋은 팀이 주어졌다면 로스 카운티가 이루어 낸 것들 이상을 해내며 훨씬 더 잘 나갈 수 있으리라 굳게 믿고 있었다.


밑바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건 그저 그만큼 지금의 팀이 못 받쳐주기 때문이다.


삑 - 삐익 -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고, 아치볼드는 두 팔을 번쩍 들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역시 나만큼 저 이탈리안 놈에게 물을 먹일만한 인물이 없다니까?’


그의 딴에는 승리에 가까운 결과를 만끽하기 위한 여유로움의 동작이었겠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마치 죽음을 피해서 가까스로 살아난 것에 기뻐하는 사람의 춤사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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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 카운티 1 : 1 파틱 시슬 >

리차드 브리튼(34‘)

+++++++++++++++++++++++++++++

스티브 오도넬(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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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또 이렇게 시간을 넘겨서 면목이 없습니다.

아무리 늦더라도 2주 안에는 올리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제 능력이 아직 부족해서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네요.

그럼에도 매번 기다려주셔서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만큼 재밌기라도 해야 할 텐데..

그래도 독자분들 덕에 기쁜 마음으로 글을 써 나가고 있습니다.

다음부터 2주는 어떻게든 넘기지 않도록 해보겠습니다.

물론 그보다 더 시간을 단축하도록 노력하는 건 당연하겠고요.

항상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카미트리아 님

이풍 님

엘카이나 님

후원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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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120. 사냥개와 들개들 +8 19.08.25 2,952 100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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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118. 임시방편 (2) +9 19.08.05 3,053 97 24쪽
117 117. 임시방편 +10 19.07.24 3,064 118 25쪽
116 116. 셀틱은 셀틱 (2) +9 19.07.08 3,136 115 23쪽
115 115. 셀틱은 셀틱 +5 19.06.25 3,198 111 18쪽
» 114. 인식 변화 (2) +9 19.06.10 3,360 116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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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105. 고난의 6연전 (4) +16 19.01.20 4,035 149 21쪽
104 104. 고난의 6연전 (3) +23 19.01.09 4,294 145 26쪽
103 103. 고난의 6연전 (2) +16 18.12.26 4,297 141 18쪽
102 102. 고난의 6연전 +10 18.12.08 4,619 147 22쪽
101 101. 전조 +17 18.11.25 4,579 173 19쪽
100 100. 단체 면담 +26 18.11.12 4,682 182 21쪽
99 99. 밀집과 전환 +18 18.10.16 5,034 173 18쪽
98 98. 천재의 가치 +10 18.10.05 5,124 181 20쪽
97 97. 사용 설명서 +17 18.09.26 5,204 203 26쪽
96 96. 프리먼의 인터뷰 (2) +15 18.09.16 5,444 184 19쪽
95 95. 돈 값하네 +18 18.09.04 5,426 183 21쪽
94 94. 알려지는 이름 +21 18.08.25 5,475 195 19쪽
93 93. 이끌리는 사람들 (2) +18 18.08.19 5,424 208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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