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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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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최근연재일 :
2024.06.22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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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12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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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100. 단체 면담

DUMMY

“이렇게 단체 면담을 한 적이 있었던가? 난 처음인 것 같은데.”


“일대일 면담이야 자주 했었으니까. 가봐야 알겠지. 사실 무엇 때문에 우리를 부르는 건지도 잘 모르잖아.”


앞서가는 스티브 샌더스와 고든 스미스의 대화를 들으며 뒤따라가던 앤드류 톰슨은 그냥 조용히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있기는 했는데······.’


작년 에이든 딩월, 대니 패터슨과 함께 1군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팬들의 비난을 사던 시기에 감독은 톰슨을 포함한 세 명을 불러들여 면담을 진행한 적 있었다.


그 외에 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언급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면담 이후 두 명은 자신감을 얻어 각각 팀의 핵심으로 거듭나고 있다. 딩월은 이제 그 누구도 이견을 달 수 없는 믿음직한 공격수로, 패터슨은 준주전의 위치에서 차근차근 성장해 나가며 스콧 보이드의 뒤를 이어받을 든든한 후계자로.


‘나만 또 불려가게 되다니······.’


곁에 있던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고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었다.


물론 톰슨도 기여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승리가 절실한 경기에서 몇 번 팀을 구원하기도 했었다. 그런 활약을 매번 할 수 있었다면 감독이 머나먼 땅까지 날아가 소피앙 부팔을 임대 영입해 올 일도 없었겠지만.


저번 경기에서 보았던 그 패기 넘치는 신입생의 활약은 벤치에 앉아 지켜보던 톰슨의 입을 도저히 다물 수 없게 만들었다.


과연 그 상황에서 자신이 볼을 받았다면 그런 플레이를 할 수 있었을까?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수비수를 여유롭게 제쳐내고 대담한 슈팅을 날릴 수 있었을까?


못했을 것 같다.


돌파를 한다고 해도 기껏해야 크로스 올리기 좋은 오른쪽 측면으로 치고 나가려 했겠지. 아니면 그 자리에서 곧장 박스 안으로 볼을 올렸거나. 최악의 경우, 방법을 찾지 못하고 수비를 피해서 뒤쪽에 있던 주장을 찾았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부팔의 방식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확고한 자신감과 그를 뒷받침해주는 탄탄한 기술, 천부적인 감각. 어쩌면 감독은 그런 모습을 톰슨에게서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일 년 동안 묵묵히 기다려줬던 인내심이 바닥나면서 결국 그 에너지 넘치는 윙어를 새로 수혈해 온 거다.


‘감독님은 이미 과분할 정도로 기회를 주셨어. 그걸 제대로 잡지 못한 건 나야. 그 이상을 바라는 건 정말 이기적인 생각이야.’


이따금 간사하게 치밀어 오르는 서운함의 감정이 고개를 빼꼼 내밀려 할 때마다 톰슨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억누르곤 했다.


나름 조금씩 성장해 가고 있다 여겨왔었는데 사실은 그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신입생은 팀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더 높은 클래스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직접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생각조차 못 하던 플레이들. 심지어 본다고 해도 아무나 쉽게 시도하고 성공할 수준의 것 또한 아니었다.


톰슨은 말 그대로 재능의 차이를 뼈저리게 실감하는 중이었다.


“우리가 평소 후보라는 점을 보면······. 뭐, 좀 더 주전 경쟁에 집중해라. 또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거 아니겠어? 그 사람 성격상 말이야. 일일이 한 명에게 말하는 것도 번거롭다 보니 이번엔 단체로 묶어서 한 큐에 끝내려는 걸지도.”


“그러고 보니 주전 멤버가 한 명도 없네. 리그 개막 이후 아직 한 번도 경기를 뛰지 못한 녀석들도 있고.”


“말이 쉽지. 올해 수비수만 세 명이나 새로 들어와서 발 디딜 틈도 없는데 어떻게 경쟁하라는 거야?”


현실을 따끔하게 꼬집는 대화.


톰슨은 후보 선수다. 컵 결승전에서 셀틱의 수비 다수를 혼자 뒤엎어버리고, 유로파 리그 플레이오프 예선에서 준족의 독일 선수와 굉장한 속도 경쟁을 벌이며 극적인 동점 골을 만들어내는 등 임팩트를 강하게 안겨주던 순간이 있었어도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 들쑥날쑥한 컨디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는 이상 쭉 그럴 것이다.


주전으로 발돋움할 기회는 있었다. 유소년 리그 레벨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부터 1군에 올라와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많은 경기를 경험했다. 하지만 끝내 고질적인 기복을 해결하지 못하여 두 경쟁자에게 밀렸고, 이제는 그저 오른쪽 날개에서 세 번째 옵션일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여섯 명의 후보 틈 속에 섞여 유일하게 두 번째 단체 면담을 받으러 가고 있고 말이다.


톰슨은 다시금 가슴을 짓눌러오는 착잡한 심정에 소리 없이 한숨을 내뱉고 말았다.


*******


“어서 들어오게.”


안에는 미리 준비된 의자들이 나란히 사이좋게 일렬로 배치되어 있었다.


“벌써부터 추워지기 시작하는군. 영국의 날씨란······. 따끈한 원두커피 한 잔씩 들 하겠나? 갓 볶은 지 얼마 안 된 거라 향이 굉장히 좋아. 물론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다른 것들도 준비해 놓았지.”


감독은 온화한 표정으로 맞아 주었고, 쭈뼛하며 들어온 여섯 명은 엉거주춤 의자에 앉았다. 어떤 이유로 불려온 건지도 아직 모르니 마냥 환한 표정을 지을 수도 없었다. 무슨 속셈으로 이렇게 단체 호출을 한 것일까? 혹시 뭔가 심각한 이야기라도 하려는 건 아닐까?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감독은 마치 애를 태우려는 것처럼 느긋한 속도로 각각 마실 것을 손수 전달해 주는 동안 단 한 마디의 본론도 꺼내지 않았다.


이윽고 따스한 잔이 모두의 손에 들린 후에야 자신의 커피잔을 한 손에 든 채로 창가에 기대어 서서 관찰하듯이 선수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여기 있는 여섯 명은 리그 컵 선발 명단에 들 거다.”


“······.”


이틀 후, 2부 리그의 폴커크(Falkirk)와 리그 컵 일정이 있다. 그걸 모르는 이는 없었다.


‘고작 이거 얘기하려고?’


이번 시합의 선발 통보를 받는 건 그다지 놀라운 얘기가 아니었다. 보통 초반에는 전력이 약한 하부 리그 팀과 붙는 경우가 많아서 후보 선수들에게도 몇 번 기회가 주어지곤 하니까. 물론 더 중요한 목적은 주전들에게 휴식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작년 리그 컵 첫 경기 때도 그렇게 하여 샌더스와 스미스를 비롯한 비주전이 선발로 뛰었고, 이번에도 그럴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단지 설마 이렇게 빤한 얘기를 하려고 거창하게 여럿을 불러 모은 것일 줄은 몰랐지만.


“폴커크전만 얘기하는 게 아니야.”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감독이 다시 말했다.


“말 그대로 리그 컵 선발 명단이다.”


그리고 평온하게 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고, 그건 선수들이 말뜻을 완전히 이해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이번 경기에서 누가 부진했다거나 또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는데 만나는 상대가 셀틱처럼 강팀이라거나. 그런다 해도 나는 주저 없이 자네들의 이름을 선발 명단에 적을 거야. 탈락하지만 않는다면 확실한 출전 보장이 되겠지. 혹여 결승전까지 올라가면 그 무대 또한 자네들의 것이 될 테고.”


“······.”


“이 대회에서만큼은 주전으로 나갈 수 있게 해주겠다는 뜻이다. 무조건 말이지.”


충분한 설명이 더해졌음에도 여섯 명의 선수는 어떠한 말도 입 밖으로 꺼낼 생각을 못 한 채 멀뚱멀뚱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부드럽게 편 손바닥으로 자신들을 가리키고 있는 감독에게 감히 반박하기 두려워서만은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니야.”


애초에 그가 대꾸할 시간도 주지 않고 다음 말을 이어나가긴 했지만.


“나에게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은 몇 달 뒤에 있을 스코티시 컵에도 고정 주전이 되는 혜택을 받게 될 거야. 거기서도 눈에 띄는 활약을 한다? 그렇다면 정규 리그에도 내보내 줄 생각이 있지.”


“······.”


“그렇게 차근차근 올라온 정규 리그에서도 기대 이상이라면 그건 유럽 대항전 무대에도 선발 출격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겠지. 바로 자네들이 말이야.”


감독은 설명을 하는 동안 계속 한 손으로 오케스트라 단원을 지휘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움직여대었다. 저러면서도 잔의 커피가 흔들려 넘쳐흐르지 않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때? 구미가 당기지 않나?”


분명 경기 한 번을 뛰는 것도 소중한 후보 선수들에게는 솔깃한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일단 리그 컵에는 계속 선발 라인업에 올려주겠다는 얘기 아닌가? 하지만 그다음에 나온 말들이 대답을 망설이게 만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감독은 피식 웃는 얼굴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기대었던 몸을 떼어내며 책상에 앉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는군. 기대 이하의 반응이라 조금 실망스러운데. 내가 누차 강조하는 것 중 싫어하는 두 가지가 뭐라고 했지, 맷슨?”


이번엔 정확히 이름까지 지목한 질문이었기에 더 이상 침묵으로 일관할 수 없었다. 맷슨 클락은 두리번거리다가 머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스스로 한계를 정해놓는 사람과······ 상대에게 쉽게 위축되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맞아. 내가 부임한 첫날부터 쭉 얘기해왔었어.”


감독은 잔을 책상에 내려놓고 선수들을 뚜렷하게 쳐다보았다. 아까와 달리 살짝 냉담해진 분위기. 보통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는 어느 누구도 쉽게 그와 똑바로 눈을 마주할 수 없다.


“벌써부터 ‘나는 어차피 후보’ 이런 생각의 틀에 갇혀 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정곡을 찌르는 물음이 날아왔다.


이어서 두 손가락이 번갈아 가며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가 방안을 채웠다. 감독은 의자에 한쪽 팔을 걸치고 턱을 받친 채 여전히 선수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급격히 무거워진 공기에 목구멍으로 침을 넘기는 것조차 힘겨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자네들로서도 별도리는 없었지. 기회라는 게 그리 쉽게 다가오지는 않거든.”


감독의 말이었다.


“그래서 주려는 거야. 위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그의 표정이 다시금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지금의 주전들이 언제까지나 주전이란 보장은 없어. 누군가는 세월이 흘러서 노쇠할 테고, 누군가는 어느 날 갑자기 슬럼프가 찾아올 수도 있지. 그런 변화의 시점이 찾아올 때 자네들은 어쩔 텐가?”


“······.”


“또다시 새로 굴러들어온 돌에게 채여서 자리를 내줄 텐가? 아니면 그 자리를 당당히 쟁취해보고 싶은가?”


“당연히······ 쟁취해보고 싶죠······.”


이번엔 스미스가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이었지만 다른 이들의 마음 역시 그와 다르지는 않았다.


“자네들은 젊어.”


감독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선수 생활이 한참 남아있지. 그런데 여기서 주전으로 뛰지 못할 건 뭔가? 난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생각하네.”


단순히 기운을 북돋아 주려 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평소 인간에게 정해진 한계치가 없다는 의견을 곧잘 피력하곤 했던 이 남자라면 지금 하는 말이 그저 거짓만은 아닐 수도 있다.


“지금 이 팀에서 핵심으로 뛰고 있는 선수들 역시 작년까지는 후보였었지. 심지어 1군에 올라오지도 못했던 친구들도 있었고. 다들 자네들과 다를 바 없던 위치였어.”


그 말 또한 사실이다. 리저브 레벨에서만 뛰다가 콜업된 이후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선수들, 아담 해틀리에게 밀려서 오랜 기간 서브 골키퍼의 역할만 수행해왔던 마크 브라운 등. 작년까지만 해도 자신들과 비슷한 혹은 그보다 못한 처지 아니었던가.


의자에 앉은 여섯 명은 어느새 수긍하며 지금의 대화에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나에게 있어 후보라는 건······. 단순히 주전을 밀린 선수들을 뜻하는 게 아니야. 그 자리를 놓고 맞서 싸울 선의의 경쟁자, 즉 예비 주전들이지.”


“······.”


“시즌은 장기 레이스야. 팀이 좋은 페이스를 계속 유지하려면 결국 모두의 힘이 필요해. 난 자네들이 이 레이스를 멀리서 관망하기만 하는 구경꾼이 되길 원하지 않아. 함께 종착지까지 완주할 파트너가 되어주길 바라지.”


이탈리안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커피잔을 집어 들었다.


“달릴 수 있는 트랙을 마련해 줬으니 자네들은 다음 주자로서 배턴을 이어받을 수 있는지만 나한테 보여주면 돼.”


“······.”


그리고 술잔을 건배하듯 선수들을 향해 가볍게 추켜올렸다.


“잘해줄 거라 믿고 있네.”


*******


면담은 그 이후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 끝이 났다.


평소처럼 한 명이 아니라 다수여서 그랬기도 했겠지만, 감독은 그걸 떠나서라도 할 말이 굉장히 많았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면담을 마친 여섯 명의 선수들은 라커룸으로 다시 돌아가는 동안 말없이 걷기만 했다. 서로 각자의 생각에 잠긴 채.


최근 로스 카운티의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해있다.


작년에도 팬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내긴 했으나 올해 그 역사를 다시 한번 뒤집어낼 기세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중이다. 일시적인 돌풍일 거라 예견했던 소수 전문가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으며, 이제는 매스컴에서도 점차 로스 카운티를 주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분위기가 안 좋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축제라고 매번 모두가 즐거운 건 아니다.


팀의 분위기에 편승은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투명한 미래에 마냥 웃지만은 못하고, 낙관적으로 생각하려 하지만 불안함을 항상 떠안고 있어야 하는 처지에선 말이다.


“듣기에만 좋은 소리야.”


먼저 정적을 깬 건 샌더스였다.


“분명 감독이 우리에게 좋은 기회를 준 건 맞아. 하지만 이건 반대로 말하면 최후통첩이기도 해. 이번에 낙오하면 그다음은 없을 거라는 메시지를 던져준 거야.”


“낙오하지 않으면 되잖아.”


이어서 스미스가 말했다.


“우리만 잘하면 기회는 충분히 받을 거고, 결국 실력으로 판단하겠다는 거잖아. 감독님이 그쪽에선 공평한 사람이니까 믿을 수 있는 거래야. 우리에게는 상황을 역전할 여건이 주어진 거라고.”


“저도 그 말에 동의해요.”


뒤에 있던 클락 또한 나서서 거들었다.


“다들 후보에나 만족하려고 이 구단에 입단한 건 아니잖아요? 이건 어쩌면 일생일대의 기회가 주어진 거라고요. 전 이 팀에서 주전으로 뛰고 싶어요.”


“이거 왜들 그래? 나도 그걸 부정한 건 아니라고.”


샌더스가 가볍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단지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소리야. 마냥 좋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거지. 실패하면 그 기회가 올가미가 되어 우리의 목을 조일 테니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문제야. 이런 기회가 주어진 자체가 중요하지.”


스미스가 말했다.


“올해에는 아예 어려울 거라 생각했었어. 리 월리스, 그 사람은 도저히 내가 경쟁에서 이겨낼 수준이 아니니까. 난 작년에도 몇 번 큰 실수를 저질렀기도 했고 말이야. 근데 이 정도로 의욕이 치솟아 오르는 기분은 처음이야.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작년에는 속으로 여러 번 좌절했었어요. 주장은 물론이고 쟁쟁한 중앙의 선수들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아예 없다고 여겨왔거든요.”


이어서 클락이 말했다.


“거기에 벤치에도 앉기 힘겨웠던 알렉스가 어느 순간부터 로스 카운티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여기서 자리 잡을 곳은 없겠다고 느낄 정도였죠. 근데 감독님의 말대로 지금의 주전이 계속 주전이란 법은 없잖아요? 그 자리를 쟁취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고 있어요.”


“하, 너희들만 가지고 있는 사정인 것처럼 얘기하지 마.”


샌더스가 말했다.


“원래 포지션인 센터백에서 쫓겨나서 오른쪽 땜빵질이나 하다가 그것도 이번에 굴러들어온 돌에게 채여 버린 사람이 나니까. 내가 그 누구보다도 간절하다고.”


라커룸 문을 열자 딩월과 블랜차드가 또 무언가의 주제로 옥신각신하며 다투고 있었고, 다른 선수들은 그걸 구경하며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최근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난 반드시 저 틈으로 들어가고 말 거야. 너희들은 방해하지 말고 잘 따라오기나 해.”


샌더스는 그렇게 말하며 라커룸 안으로 들어섰다.


*******


< League Cup 3 Round >

폴커크 : 로스 카운티

2014년 9월 24일 (수) 19:30

폴커크 스타디움 (관중 수 : 2,346명)



경기를 나가기 직전 원정팀의 대기실은 고요했다.


폭풍전야라는 표현도 나름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만일 전의라는 기운이 시각화된다면 뿌연 안개처럼 방안을 자욱하게 메우고 있었을 테니까.


어떤 선수들은 고개를 숙인 채 나름의 주문을 외웠고, 어떤 선수들은 가만히 눈을 감은 채 명상에 잠기듯 정신을 가다듬고 있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 모두가 마치 콜로세움에 나가길 기다리는 검투사들처럼 비장한 표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기운이 공기를 무겁게 짓누르는 탓에 항시 떠들길 좋아하는 딩월이나 보이드도 감히 입을 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톰슨은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긴장이 극에 달해 있었다.


‘다들 엄청난 사명감을 안고 경기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어.’


이틀 전 샌더스와 스미스, 클락이 나눴던 대화들. 그건 톰슨에게도 분명 큰 자극을 가져다주었다.


‘나도 이번에 뭔가를 보여주어야 해. 그런데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지만 톰슨은 심장을 갉아 먹는 듯한 초조함에 울렁거림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 느낌은 그리 낯설지 않은 익숙한 것이었다.


‘하필 이럴 때······. 오늘만큼은 정말 잘해야 하는데.’


하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은 그가 안정을 되찾도록 도와주지 않았다. 수석코치와 함께 감독이 문을 열고 들어왔고, 그건 이제 출전이 임박했다는 뜻이었다.


“방심하면 안 되겠지만, 폴커크는 우리가 능히 제압할 수 있는 팀이다. 이번 주 내내 연습한 부분만 잘 실천하면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다. 나가서 승리를 가지고 들어와라.”


감독의 말이 끝나자 선수들은 포효하듯 기합을 넣으며 전장으로 향했고, 톰슨은 미친 듯이 쿵쾅대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뒤따라갔다.


“어······.”


그리고 자신의 어깨를 덥석 잡은 손을 느끼며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마 자네 성격대로라면 또 이것저것 쓸데없는 생각 따위에 휘말려서 잔뜩 부담감을 떠안고 있겠지. 이제 안 봐도 빤해.”


“······.”


“그런 생각을 하고 있거든 여기에 전부 다 버리고 나가. 그리고 경기 자체를 즐기도록 해. 내가 여섯 명의 틈에 앤드류 톰슨을 끼워 넣은 이유는 딱 하나야.”


감독이 어깨를 잡은 손을 놓으며 말했다.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서였지. 자네는 이미 충분히 증명해주고 있어.”


그리고는 톰슨의 등을 세차게 밀어내듯 내리쳤고, 난데없이 등짝을 얻어맞은 톰슨은 휘청거리며 짧은 신음을 토해내고 말았다.


“가서 저 팀을 이끌어 봐.”


그리고 신기하게도 가슴 속을 내내 답답하게 했던 거대한 덩어리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감독의 매서운 손매 때문인지 아니면 지금 자신에게 해준 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톰슨은 비로소 울렁거림을 멈출 수 있었다.



[로스 카운티 / 4-4-2]

FW : 에이든 딩월 / 필립 로스

MF : 에드빈 데 루어 / 맷슨 클락 / 대런 케틀웰 / 앤드류 톰슨

DF : 고든 스미스 / 스콧 보이드 / 대니 패터슨 / 스티브 샌더스

GK : 데이비드 밀스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 굉장히 사소하여 비중이 결코 크다고 할 수는 없는,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연이 얽힌 이 시합의 주인공은 의외의 부분에서 나왔다.


아직 약관의 나이도 지나지 않은 필립 로스가 1골 1어시스트로 팀의 승리를 견인한 것이다.


상대의 수비의 차단 실수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어린 나이답지 않게 이타적으로 빠르게 찔러준 스루패스가 데 루어에게 전달되며 첫 득점을 하는 데 기여했고, 후반전에는 톰슨의 낮게 깔린 크로스를 가볍게 발로 갖다 대며 마무리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물론 다른 선수들의 공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샌더스와 스미스는 90분 내내 흐트러지지 않는 놀라운 집중력으로 폴커크를 틀어막았고, 클락 역시 악착같이 뛰어다니며 상대의 기세를 제압했다.


브라운 키퍼를 대신하여 이번에 처음 출전한 밀스 역시 초반에 불안정한 모습을 제외하고는 점차 필드에 적응하며 한 번의 좋은 선방까지 보여주었다.


단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새내기가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할 줄 몰랐을 뿐이다.


“저 녀석도 나름의 다짐을 하고서 필드를 밟은 모양이로군. 이렇게 전개가 되면 오히려 나로서는 더 환영할 일이지.”


감독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만족한 웃음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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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커크 0 : 2 로스 카운티 >

에드빈 데 루어(27‘)

필립 로스(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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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생각보다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네요.

복잡한 여러 개인 사정이 얽혀있어 집중도 잘 못했지만

이상하게 뭔가 알 수 없는 벽에 턱 막힌 듯이 글이 나아가질 못했습니다.

쓰고 지우고 갈아엎고 한 것도 여러 번인 것 같네요.

100회인데 연참은커녕 긴 시간을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실망하셔도 할말이없고 쓴소리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저는 곧장 다음 글을 쓰러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전술 사진이 안 올라간 부분은 제가 확인하여 수정하겠습니다.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며 죄송합니다.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foir 님

감사드립니다. (_ _) 늦게 확인해서 죄송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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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113. 인식 변화 +12 19.05.24 3,543 134 20쪽
112 112. 던디 쇼크 (2) +11 19.05.07 3,466 126 22쪽
111 111. 던디 쇼크 +7 19.04.21 3,700 134 21쪽
110 110. 역이용 +12 19.04.02 3,582 137 22쪽
109 109. 키포인트 +10 19.03.17 3,682 146 25쪽
108 108. 상관없어요 +16 19.03.01 3,855 144 21쪽
107 107. 고난의 6연전 (6) +11 19.02.17 3,803 143 24쪽
106 106. 고난의 6연전 (5) +10 19.02.02 3,864 122 22쪽
105 105. 고난의 6연전 (4) +16 19.01.20 4,038 149 21쪽
104 104. 고난의 6연전 (3) +23 19.01.09 4,297 145 26쪽
103 103. 고난의 6연전 (2) +16 18.12.26 4,299 141 18쪽
102 102. 고난의 6연전 +10 18.12.08 4,621 147 22쪽
101 101. 전조 +17 18.11.25 4,583 173 19쪽
» 100. 단체 면담 +26 18.11.12 4,686 182 21쪽
99 99. 밀집과 전환 +18 18.10.16 5,037 173 18쪽
98 98. 천재의 가치 +10 18.10.05 5,129 181 20쪽
97 97. 사용 설명서 +17 18.09.26 5,205 203 26쪽
96 96. 프리먼의 인터뷰 (2) +15 18.09.16 5,445 184 19쪽
95 95. 돈 값하네 +18 18.09.04 5,428 183 21쪽
94 94. 알려지는 이름 +21 18.08.25 5,476 195 19쪽
93 93. 이끌리는 사람들 (2) +18 18.08.19 5,425 208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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