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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마뇌검 님의 서재입니다.

신의 수정: 요계의 침공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완결

제마뇌검
작품등록일 :
2021.05.29 21:07
최근연재일 :
2022.04.18 19:00
연재수 :
2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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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5
글자수 :
1,456,688

작성
21.09.2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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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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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
19쪽

반드시 살아 돌아가야 한다 (2)

DUMMY

해가 동쪽 지평선과 중천의 중간 정도 이르렀을 때, 요괴들은 용기 앞쪽에서 튀어 나오기 시작했다.


- 투카르스: 너가 탈출을 하고 대략 두 시간 정도가 지나면 요괴들이 뒤쪽에서 쫓는 것만으로는 너를 잡을 수 없음을 깨닫고 이동진을 이용해 너의 진행 방향 앞쪽에서 나타나기 시작할거야.

- 용기: 이동진?

- 투카르스: 응. 쉽게 말해 한 장소에 있는 물체나 사람을 다른 한 장소로 순식간에 옮겨주는 장치야. 물론 설치하는 데에 시간도 걸리고 작동에 필요한 동력석들도 귀한 자원이라 많지는 않을거야

- 용기: 많지 않으면 얼마나?

- 투카르스: 흠...몰라. 붉은 산까지 대략 수십 개?

- 용기: 야! 수십 개가 많지 않은거냐!


처음 이동진을 통해 앞길을 막고 있는 한 요괴 무리를 만나게 되었을 때는, 용기는 꽤나 당황했다. 아직 마음에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는데, 그래서 포위망을 돌파하는 데에도 꽤나 애를 먹었다.


자신의 집 뒷마당에서 보았던 커다란 거미가 대략 20마리, 하급 전사 늑대족 요괴가 여섯, 그리고 그 앞에 보라색 겉섶을 달고있는 늑대족 요괴가 그 무리를 이끌고 있었다.


늑대족과 거미족이 여우족보다 느리다는 말을 투카르스에게 들어서 알고 있던 용기는 거미 한 마리를 겨냥해 황룡뇌공파를 시전해서 활로를 뚫은 후에, 호신강기를 쓰며 그냥 무작정 돌파하려고 했지만 여기저기서 날라오는 검, 검기, 도, 도기, 거미의 날카로운 앞발 등등을 전부 피하지는 못하고 왼쪽 목 부분과 팔 부분을 베이고 말았다.


얼마가지 못해 또다시 여우족 요괴들이 이끄는 비슷한 숫자의 무리가 앞에서 진을 치고 있자, 용기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또? 이놈들 일 참 열심히 하네. 씨발.”


하늘색 겉섶의 하급 전사 여우족 한 명이 검을 용기의 가슴으로 향하며 빠르게 날아오기 시작했다.


- 투카르스: 여우족 요괴들이 첫 수로 정면에서 돌진해 오면 무조건 찌르기 라고 생각하면 돼. 이놈들은 처음 동작으로 베기 라는 걸 잘 모르는 놈들이야. 물론 그 찌르기가 빠르긴 하지만, 겁먹지 말고 일단 몸을 반시계 방향으로 틀어.


용기는 자신의 심장을 향해 찔러오는 여우족 전사의 날카로운 검을 피해 오른발로 강하게 지면을 밟으며 왼쪽 어깨의 앞쪽 중부혈에 강하게 기를 폭발시켜 몸을 빠르게 반시계 방향으로 틀었다. 그러자 여우족의 검이 그의 가슴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 투카르스: 그런 후 여우족의 뒤를 잡고 그놈의 등을 강하게 차면서 그 반동으로 다시 앞으로 도망가는 거야.


용기는 회전 후 여우족의 등 뒤를 잡자마자 살짝 뛰어 오른 후 그 여우족의 등을 한 발로 차면서 발의 용천혈에 기의 회오리를 쏟아내어, 그 반동으로 앞쪽으로 총알같이 튕겨지듯 나아갔다. 용기가 발에서 쏟아낸 기의 회오리를 등 뒤에 얻어맞은 그 요괴는 단발마의 비명을 외치며 앞으로 쓰러져 땅에 쳐박히고 말았다.


다른 여우족 요괴들이 혼자서는 잡을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동시에 쇄도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용기는 그들을 무시하고 침착하게 그들 뒤에 일렬로 서있는 거미들에게 정신을 집중하여 어느쪽을 뚫고 지나갈 것인지 빠르게 판단했다.


‘저기야!’


거미 둘 사이에 간격이 가장 넓은 곳.


그리고 그는 남은 여우족 요괴들의 검들을 최대한 피할 수 있는 방법을 결정한 후, 갑자기 땅으로 꺼지듯이 허리를 급격하게 숙여 손으로 땅을 찍으며 황룡뇌공파를 시전했다.


용기가 갑자기 허리를 숙이자 그 위를 여우족 요괴들의 검 4개가 쐐애액 하는 무시무시한 괴음을 내며 지나갔다.


용기는 황룡뇌공파를 시전 하자마자 앞에 있는 여우족 다리 사이로 낮게 황룡지풍비를 사용하여 빠져 나가는 중에 자신의 목덜미를 노리는 또 하나의 검기를 느끼고 빠르게 호신강기를 끌어 올렸으나 약간 늦어서 오른쪽 어깨죽지 부분을 베이고 말았다.


베어진 부분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눈이 아찔 했으나 이를 악물고 버틴 용기는 황룡뇌공파로 인해 몸의 오른쪽 반을 잃어 버리고 쓰러진 거미가 있는 곳으로 몸을 계속 날렸고 이제 막 포위망을 뚫고 지나갈려는 참이었다.


하지만 그는 갑자기 공중에서 턱하니 멈춰서고 말았다.


놀래서 뒤를 쳐다보니 어느샌가 자신의 왼발이 거미족 요괴의 거미줄에 묶여 있는 것이 보였다.


공중을 날다가 순간 멈춰버린 용기는 중력에 의해 땅으로 떨어지면서 자신에게 다른 거미들과 그 뒤에 여우족 요괴들이 덥쳐 들어오자, 거미줄을 끊어 버리는 대신에 오히려 그 줄을 확 잡아 당기며 그 거미 쪽으로 황룡지풍비를 펼쳤고, 공중 제비를 돌면서 거미줄의 끝에 있는 거미의 배 밑으로 순식간에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러자 그 위로 여우족들의 검기들과 다른 거미들의 날카로운 앞발이 멈추지 못하고 작렬했고, 용기를 거미줄로 묶은 거미가 오히려 등으로 그 모든 공격을 받아내게 되어 버렸다.


그사이 용기는 수강으로 거미줄을 끊어내고 살벌한 공격들을 용기 대신 받아낸 고마운(?) 거미가 지면으로 쓰러지기 이전에 그의 엉덩이 쪽으로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이런 쥐새끼 같은놈. 쫓아!”


보라색 겉섶의 여우족 요괴가 열이 받은 얼굴로 용기의 등쪽에서 소리를 질렀다.


용기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서 왼손을 들어 중지 손가락 한 개만 들어올려 보였다. 물론 그 요괴가 인간계의 뻐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지만.


“헉...헉...”


숨이 가빠 머리가 어지러웠다.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무거웠으며, 몸의 모든 근육은 하루치 노동을 모두 마쳤으니 이제 퇴근을 해야 한다고 ‘근로기준법 위반’ 을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쉴 수 없었다. 계속 움직여야만 했다. 그래서 근육들에게 수당없는 초과 근무를 강제로 요구하며 계속 나아갔다.


이마에서 떨어지는 피가 눈을 가려 손등으로 훔쳐 내어 보았지만 금새 다시 피가 흘러 내려 짜증이 났다.


사실 이게 누구의 피인지도 이제 구분이 잘 안갔다. 피는 그의 몸 사방에 묻어 있었다. 그런면에서는 그는 입고 있는 옷이 녹색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힘없이 피식 웃었다.


요괴들이 하얀색 전투복을 입는 놈들이었다면, 그의 옷은 지금쯤 전부 붉게 물들었을 것이고, 마치 정육점에서 탈출한 고깃덩어리가 도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게 분명 하리라.


용기는 이제 산을 타고 있었다. 안그래도 힘든데 굳이 산을 타며 올라가고 있는 이유는 어느 순간 방향 감각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있었던 몇 번의 전투에서 매번 가장 빠른 도주로만 선택하여 빠져 나오다보니 자신이 계속 북쪽으로 향하고 있는지 도저히 감이 제대로 오지 않았다. 그래서 산 위로 올라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 투카르스: 도중에 길을 잃으면 적당한 산 위에 올라가. 그러면 붉은 산이 보일거야. 낮에는 산 전체에 카넬리안 수정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려 찾기 쉽거든.


경공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힘든데, 산을 타며 올라가니 더욱더 내력과 체력 소모가 심했다. 적당한 곳에 자리잡고 앉아 운기행공을 하면 꿀맛일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자꾸 가슴에 있는 마지막 미르덴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앉아서 운기행공을 하면 시간 소모가 심했고, 그렇게 너무 지체하면 다시 포위망에 갇혀 버릴 것이 뻔했으므로 미르덴을 먹고 내력과 체력을 보충하고 싶은 욕심이 자꾸 들었다.


하지만 지금 먹을 수는 없었다. 해는 이제 겨우 중천에 이르렀고, 갈 길은 아직 멀었다.


그때 용기의 귀에 무슨 소리가 들렸다.


“물소리?”


아니 뭔가 좀 더 다른 소리였다. 아무튼 그는 물이라도 마실 생각에 그쪽으로 방향을 살짝 틀었다.


소리가 들려오던 곳에 도착한 그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


“우와...요계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그의 눈앞에는 절벽 동굴에서 물을 쏟아 부어내고 있는 폭포와 크지는 않지만 예쁜 모양을 하고 있는 연못이 있었다. 급하게 쪼그려 앉아 물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한 용기는 차가운 물에 정신이 확 드는 것 같았다.


“후아~~힘들어...”


용기가 물을 마시고 고개를 드니, 연못 건너편에 두꺼비인지 개구리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생물체 두 마리가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먹이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와...무슨 개구리가 강아지만 하냐.”


그때 그중 한 마리의 배가 볼록하게 튀어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용기는 갑자기 움직임을 멈춘 채 그 커다란 개구리들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뭔가를 잠시 생각하더니 몸을 일으켜 경공으로 그 개구리들 뒤로 돌아간 뒤 순식간에 그 둘의 목을 낚아채면서 목을 비틀어 죽여 버렸다.


그리고 그는 그 죽은 개구리들을 두 손에 든 채 연못 속으로 뛰어 들었다.



*****



황룡족이 살고 있는 붉은 산과 요계 본궁 중간 지점에 위치한 미르덴 열매 농장은 산 정상 근처의 넓은 평야 분지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집중 재배 농장의 설계를 기획할 때 다른 요괴들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곳, 그리고 수비가 용이한 지역을 찾아 다녔던 요계 군대는 현재 장소를 안성맞춤이라고 결정하게 되었다.


농장의 정면으로 올라오는 산 길은 무성한 나무들이 들어서 있어서 동시에 여러 명이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좁았고, 뒤쪽으로는 산의 정상으로 이르는 가파른 커다란 바위들이 모여 농장을 앞에두고 병풍처럼 늘어져 있었으며, 동쪽으로는 산 아래까지 이어지는 수직의 절벽이 있어 날아서 오지 않는 한 그 절벽을 통해 농장으로 침입하기는 불가능했다.


서쪽으로는 들꽃과 풀이 무성한 앞이 탁 트인 드넓은 비탈진 언덕이 있었는데 그 위에서 바라보면 산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들이 보는 이의 마음을 정화시켜 줄만큼 아름다운 장관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 서쪽 언덕이 끝나는 아래쪽 부분에는 나무들과 커다란 바위들이 듬성듬성 있었고, 언덕의 왼쪽의 중간 부분과 산이 다시 만나는 지점에 조그맣지만 아름다운 폭포가 위치하고 있었다. 요괴들은 이 폭포를 ‘동굴폭포’ 라고 불렀는데 명칭이 그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었다.


이 폭포는 희한하게도 지하수들이 모여 땅속에 구멍을 내어 동굴을 만든 다음 갈 곳이 없어지자 수력이 산의 한 부분에 구멍을 뚫어 버리며 생긴 자연 현상으로 폭포수들이 동굴 구멍에서 흘러 내리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커다란 바위 거인이 입으로 물을 쏟아 내고 있는 듯한 모습이기도 했다.


이 들꽃 언덕 위쪽의 수비를 동쪽의 절벽과 마찬가지로 요계 군대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이유는 바로 언덕 아래쪽의 나무들과 바위들 뒤에 있는 지형 때문이었다.


그곳에는 커다랗고 넓은 계곡이 있었는데 더이상 물이 흐르지 않고, 말라버린 계곡 바닥에는 커다란 바위들만 흉측하게 그 바닥을 빼곡히 매우고 있었다.


계곡 바닥에서 들꽃의 언덕까지는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았고, 그 계곡의 건너편에는 경사가 가파른 비탈길이 산 아래쪽으로 쭉 이어져 있었다. 즉 계곡은 뛰어넘을 수 없을 정도로 넓었고, 계곡 바닥에서 들꽃 언덕으로 등벽하기에도 역시 무리였기 때문에 이 방향도 천형의 험지라는 수비상의 이점이 있었다.


들꽃 언덕에서 산 바람을 타고 넘어오는 꽃향기에 기분이 좋아 콧노래를 흥얼 거리며 미르덴 농장의 일에 열중하고 있는 그의 이름은 '루타'였다.


요계의 전사들과 같은 몸에 꽉 끼는 듯한 조끼 형태의 녹색 외투를 입고 있었는데, 단지 그 옷에 겊섶은 달려있지 않았다. 바지는 전사들과는 달리 몸에 달라 붙지 않는 헐렁한 작업복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역시 색깔은 같은 녹색이었다.


루타는 요계의 소족을 이끄는 족장의 막내 아들이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요계 군대로부터의 학대를 참아내며 지내온 자신의 종족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자들 중 하나였다.


소족은 요계의 늑대족과 여우족에 비해 훨씬 뛰어난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보통 2미터가 넘어가는 키에 떡 벌어진 가슴과 선천적으로 뛰어난 힘, 그리고 누구 못지 않은 빠른 움직임. 그 무엇 하나 요계 군대의 두 기둥인 늑대족과 여우족에게 뒤쳐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소족이 개미족과 마찬가지로 요계의 잡일을 맡아 하는 일꾼 신세로 지내고 있는건, 첫째로 그들은 선천적으로 몸에 지니고 있는 자연의 기가 거북이족과 서로 꼴찌를 경쟁할 정도로 적었고, 또한 그 기를 사용하는 능력에 둔했기 때문이었다.


둘째로 그들은 평화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걸 너무 사랑했다. 공격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는 건 끔직한 일이라고 여겼고, 차라리 남에게 얻어 맞는 것을 택했다.


셋째로 그들은 세상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누가 요계의 왕이 되는지도, 요계가 어디를 공격 하는지도, 요계가 누구에게 공격 받는지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관심했다.


이러다보니 소족은 늑대족과 여우족의 멸시와 학대를 받아가며 요계 군대에 필요한 다양한 잡일에 동원되는 노예 취급을 당했다. 루타가 참지 못하는 부분은 바로 그 멸시와 학대였다.


‘왜 요계 군대는 소족에게 일을 시킬 때 정중하게 부탁하지를 못하고 욕을 하며 강요를 하나? 왜 그들은 따뜻한 말 한마디 대신 채찍을 휘두르나? 요계의 잡일을 맡아 한다고 불평을 하는 소족은 없다. 우리는 요계 군대를 위해 얼마든지 그런 잡일을 해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을 시킬 때 좀 더 친절하게 부탁을 하면 안되는 것인가? 왜?’


루타와 그와 생각이 비슷한 소수의 부류들이 가지고 있는 불만이었다.


“응?!”


콧노래를 흥얼 거리며 옆의 나무로 이동한 그의 눈앞에 어느샌가 갑자기 나타난 처음보는 생명체 하나가 보였다. 그는 미르덴 열매 나무에서 다 익은 열매를 따서 수레에 담고 있는 중이었는데, 방금전까지만 해도 근처에 아무도 없었거늘 갑자기 누군가가 정신을 잃은 채 누워있었다.


머리와 키는 작았고 머리카락은 뒤로 묶었으며 처음보는 하얀색으로 된 옷으로 상체를 가리고 있었고, 건드리면 부러질 것 같은 얇은 다리는 그 다리에 꼭 달라붙는 검은색 옷이 감싸져 있었다.


가장 시선이 가는 부분은 신고 있는 신발이었다. 낡아 보이는 하얀색의 가죽에 신발 밑에 작지만 날카로워 보이는 검을 양쪽 신발에 하나씩 달고 있었다. 그리고 어디서 싸우다 왔는지 군데군데 옷이 찢어져 있었고 어디서 흐르는지는 모르지만 핏자국도 얼핏 보이고 있었다.


루타는 쓰러져 있는 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검을 발에 차고 싸우는 종족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혹시 신계에서 온 밀정?’ 이라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자기가 알기로는 신계의 신들은 키가 훨씬 크고 검을 발에 끼워 싸우지 않았다.


잠시 턱을 긁으며 고개를 갸우뚱하던 루타는 무언가 생각난듯이 두 손바닥을 짝 소리를 내면서 쳤다.


‘아! 버려진 사생아!’


요계에도 사랑과 성관계는 존재했다. 대부분 같은 종족끼리 성관계를 가지고 종족 번식을 하지만 그걸 뛰어 넘어 다른 종족끼리 짝을 이루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뜨거운 본능을 못참고 다른 종족과 성관계를 가져 태어난 자식이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자 도저히 키울 자신이 없어 아이를 버리는 부모가 종종 있어 왔다.


얼마전에도 요계의 북쪽 어딘가에서 호랑이족과 여우족 사이에서 태어난 듯한 것으로 여겨지는 붉은색의 털을 가진 호랑이족 요괴 아이를 봤다는 소문이 있었던 터였다.


하지만 루타는 앞에 쓰러져 있는 사생아가 어느 종족 사이에서 태어났는지 도저히 짐작이 안갔다. 전혀 처음 보는 그리고 그의 기준에서는 참 못생긴 얼굴을 가진 사생아였다.


‘그래. 힘도 없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두 종족 사이에서 태어나게 되어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자신을 버린 부모에게 복수하고자 검을 발에 차는 특별한 무공을 수련하여 복수를 하러 갔지만 안타깝게 이루지 못하고 상처를 받아 도주하던 중 여기까지 흘러온 것일꺼야.’


루타는 자기가 머리속으로 방금 써내린 추론에 아주 흡족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마침 제 4군단의 부관인 즈두하치의 명령으로 주위의 많은 경계병들이나 소족들이 농장 지하에 가 있었다. 뭔가를 운반 한다는 것 같았는데 자신에게는 오라는 명령을 하지 않아서 그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는 이 불쌍한 사생아를 농장 경비를 맡고 있는 제 4군단에게 보고하고 싶지 않았다. 부모에게 버림 받은 불쌍한 아이를 굳이 보고해서 농장 무단 침입이라는 벌로 또 상처입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아이를 도와줄 용기도 없었다. 무단 칩입한 자를 도와 주었다는 것을 들키게 되면 자신도 처벌 받게 될 터였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루타는 그 사생아를 근처에 비어있는 수레에 실었다. 미르덴 열매 수확용으로 쓰이는 수레였다.


그리고 그는 그 수레를 이끌고 그가 있는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서쪽 경계선으로 갔다. 바람에 흩날리는 수많은 종류의 들꽃들이 중천에 떠있는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거리고 있었다.


그는 근처 경계선에 박혀진 작은 카넬리안 수정 하나를 쑥 뽑아내어 사생아의 가슴에 집어 넣었다. 이렇게 하면 이 사생아의 기를 쉽게 읽지 못하게 될 터이니 사생아가 깨어날 때까지 충분히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는 수레를 언덕 왼쪽 중간에 있는 폭포쪽으로 겨냥하기 시작했다. 그의 계산은 이랬다.


사생아를 실은 수레는 아래쪽으로 굴러가다가 계곡에 떨어지기 이전에 바위들과 나무들이 있는 곳에 멈춰 설 것이고, 나중에 정신을 차린 사생아는 길을 찾다가 아래쪽이 낭떨어지 계곡인 것을 알아채고는 잠시 헤메다가 가까운 곳에 폭포로 내려가는 작은 길을 쉽게 발견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폭포를 통해서 산 아래로 안전하게 내려갈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의 계산이 맞지 않아 도중에 불행한 일이 생긴다 해도 상관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어차피 이게 그가 이 사생아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최선이기에.


“잘가. 아이야. 죽지말고 잘 살아. 너무 원망만 하지 말고. 너한테도 좋은 날이 언젠가는 올거야.”


수레에서 손을 놓는 그의 코가 찡해 왔다.


루타는 덜그덕 덜그덕 소리를 내며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수레를 잠시 바라보다 몸을 돌려 자신이 일하던 장소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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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드시 살아 돌아가야 한다 (2) 21.09.24 468 14 19쪽
19 반드시 살아 돌아가야 한다 (1) +1 21.09.23 481 15 16쪽
18 또 다른 운명을 향하여 (3) 21.09.22 497 15 21쪽
17 또 다른 운명을 향하여 (2) +2 21.09.21 483 15 12쪽
16 또 다른 운명을 향하여 (1) 21.09.21 495 16 14쪽
15 황룡의 무공 (6) +2 21.09.20 493 15 14쪽
14 황룡의 무공 (5) 21.09.20 516 15 15쪽
13 황룡의 무공 (4) +2 21.09.19 546 16 17쪽
12 황룡의 무공 (3) 21.09.19 538 15 18쪽
11 황룡의 무공 (2) 21.09.18 559 16 17쪽
10 황룡의 무공 (1) +2 21.09.17 609 17 15쪽
9 희망을 찾아가기 위한 준비 과정 (3) 21.09.16 587 17 10쪽
8 희망을 찾아가기 위한 준비 과정 (2) 21.09.16 635 17 20쪽
7 희망을 찾아가기 위한 준비 과정 (1) +2 21.09.15 670 16 12쪽
6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5) 21.09.14 678 18 17쪽
5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4) 21.09.14 794 19 23쪽
4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3) 21.09.13 926 22 19쪽
3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2) 21.09.12 1,066 22 14쪽
2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1) +2 21.09.11 1,670 23 20쪽
1 프롤로그 +1 21.09.11 1,985 26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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