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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마뇌검 님의 서재입니다.

신의 수정: 요계의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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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제마뇌검
작품등록일 :
2021.05.29 21:07
최근연재일 :
2022.04.18 19:00
연재수 :
2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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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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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5
글자수 :
1,456,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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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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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글자
23쪽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4)

DUMMY

시호코는 저녁 9:00시쯤 딸과 함께 뮤지컬 극장을 나왔을 때 자신의 스마트폰에 남겨진 5개의 부재중 전화와 음성 메세지들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모르는 번호들이기도 했거니와, 금요일 밤에 한꺼번의 5개의 전화라니. 뭔가 좋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엄마. 빨리가자. 안가?”


딸인 유나가 극장 앞에 멈춰 서서 스마트폰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그녀의 팔을 흔들며 말했다.


“으...응. 갈거야. 근데 잠깐만 기다려봐.”


시호코는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오른쪽 귀를 막고, 왼손으로 스마트폰을 잡은 채 음성 메세지를 듣기 시작했다.


잠시 후 시호코는 유나 손을 잡고 차를 세워둔 주차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



다시 의식을 차렸을 때, 용기는 실오라기 하나 없는 알몸인 채로 자신의 팔과 다리가 쇠사슬에 묶여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알몸에 쇠사슬...이라니...원래 지옥은 이런가? 아!...거북이가 있었지! 그럼 여긴 용궁 지옥인가? 하...”


그는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 주위에는 온통 반듯히 쌓아올린 돌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층층히 쌓아 올린 거무스레한 돌들. 용기는 천근만큼 무거운 머리를 일으켜 세워서 고개를 들고 좀 더 주위를 자세히 살펴 보았고, 드디어 자신이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를 알게 되었다.


“감...옥?!”


그는 10평 정도 되어 보이는 공간의 감옥에 있었다. 두 팔은 양쪽 팔목에 걸려 있는 쇠고랑이 벽에 쇠사슬로 묶여 쫙 벌려져 있었으나, 팔과 주먹을 대략 10센티미터 정도는 움직일 수 있었다.


다리도 비슷한 신세였다. 다리는 앞쪽으로 쭉 뻗어져 있었고, 양쪽 발목에 고정된 쇠고랑과 감옥 바닥에 있는 고정쇠를 이어주는 쇠사슬의 느슨함으로 다리를 약간은 움직일 수 있었다.


천장에서 나오고 있는 빛이 감옥 안을 비추고 있었는데, 조그마한 구슬 여러 개가 모여 주황색 빛을 내고 있었다.


“저게...감옥문?”


한참을 두리번 거리던 그는 정면에 있는 벽쪽 위쪽에 조그마한 직사각형 모양의 구멍에 쇠창살 처럼 보이는 것들이 박혀있는 것을 응시하며 나지막히 말했다. 하지만 문을 암시하는 이음쇠는 보이지 않았기에, 저게 문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열리는지 의아스러웠다.


사방에 돌벽과 천장의 빛나는 구슬 몇 개 말고는 더이상 살펴볼 것이 없기에, 그는 다시 고개를 떨구고 축 늘어졌다.


용기는 급격한 변화에 익숙하게 대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기존의 것을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보수주의도 아니고, 변화를 아예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기존의 익숙함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변화에 자신을 새롭게 맞춰가는게 그냥 귀찮았다.


그래서 핸드폰도 남들이 다 스마트폰을 쓸 때, 꿋꿋이 플립형 핸드폰을 망가질 때까지 썼었고, 남들이 최신형 스마트폰을 사겠다고 매장 앞에 몇 시간씩 줄 서 있을 때 혀를 차며 저게 무슨 짓이나며 시간 낭비라고 비아냥 거렸다.


또한 구두도 새 구두에 발이 적응하는게 귀찮아서 구두에 구멍이 나고 갈라져서 도저히 신을 수 없을 때까지 신었으며, 자동차도 차가 길거리에서 혼자 자동 분해가 될 때까지 고쳐서 타고 다녔다.


그렇다고 절대 본인이 검소해서 하는 행동들은 아니었다. 단지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게 귀찮았을뿐. 변화는 필요하면 받아들였으나, 그 받아들이는 속도가 그의 개인 편의상 어마어마하게 느릴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자신의 기억속에 있는 최근 기억들, 즉 자기집 앞마당에서 거대 거미에게 공격받은 시점부터 지금 쇠사슬에 묶여 있는 감옥까지들의 일련의 사건들은 너무 급작스러운 거대한 변화였다.


그래서 그가 받고 있는 정신적 스트레스의 상태는,


“으아아아아...아~!!”


라는 갑작스런 엄청난 고함과 함께, 철컹! 철컹! 철컹! 쇠사슬이 묶인 팔을 미친듯이 흔들어대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아아아아!!...씨...발!!”


자신이 지금 슬퍼하고 있는지, 분노하고 있는지, 그것도 아니면 좌절하고 있는지 자신의 감정을 종잡을 수는 없었으나, 용기는 단지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휘리릭!


갑자기 그의 귀에 이상한 작은 소리가 솜털로 귀를 간지르듯 스쳐갔다.


‘응?’


그는 고함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무슨 소리였을까? 분명 뭔가 작은 소리가 났는데.


다시 한 번 찬찬히 돌아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돌벽 뒤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오는 소리에 그는 갑자기 눈에 힘을 주어 감옥문이라고 생각하는 곳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한 명이 아냐. 둘? 셋?’


그리고 쇠창살이 있는 돌벽 부분이 미닫이 문처럼 드르르륵 하고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헐...문이 맞긴 맞구나. 옆으로 열릴 줄이야.’


용기는 돌벽이 미닫이 문처럼 열리는게 신기하면서도 그 뒤에 등장할 존재들에 대해 집중했다.


돌벽 문이 열리고 들어온 것은 두 마리의 거북이들이였다. 그것도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거대 거북이!


‘내가 저번에 얼핏 본게 맞긴 맞았구나’ 라고 생각하며 용기는 입을 벌리고 두 마리의 거북이들을 놀란 토끼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거북이들은 키가 매우 작았고, 전신이 짙은 녹색 바탕에 군데군데 검은색 반점들이 있었다.


누가 거북이 아니라고 할까봐 커다란 거북이 등껍질은 떡하니 등과 다리 뒷부분을 가리고 있었고, 허리에는 가죽으로 된 허리띠를 했는데, 여러가지 도구들, 망치, 칼, 송곳, 커다란 식칼 등등이 잔득 줄줄이 꼽혀 있었다.


신기한건, 거북이들은 비록 손가락이 4개 밖에 없었지만 팔과 손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고, 둘 다 얼굴이 똑같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단지 한 거북이는 턱 밑에 두 개의 긴 메기 수염이 있었는데, 다른 한 거북이는 그 메기 수염이 한 개 밖에 없었다. 그 메기 수염의 차이라도 없었으면, 도대체 누가 누구인지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용기가 갑자기 등장한 두 마리 거북이들의 용모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사이, 메기 수염이 한 개인 거북이가 왼손에 들고있던 작은 통을 바닥에 놓더니, 옆의 메기 수염 두 개의 거북이에게 무언가를 말했고, 메기 수염 두 개의 거북이는 뭐라고 바로 응답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던 용기는, ‘저기···.’ 라고 나지막히 입을 열면서 대화를 시도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입술이 채 벌어지지도 않았을 때, 메기 수염 한 개 달린 거북이의 커다란 식칼이 허공을 붕! 하고 가르더니 용기의 왼팔을 단숨에 잘라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한 번에 깨끗이 잘려진 왼팔 그리고 그 팔목에 걸려 있는 쇠사슬은 쿵 하고 벽에 부닺혔고, 용기의 왼쪽 어깨 아래쪽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튀어 나오기 시작했다.


용기는 자신의 왼팔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순식간에 파악하기가 힘들었는지, 피가 뿜어져 나오는 자신의 왼팔을 잠시 지켜보다 비명도 없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는 뒤쪽 벽으로 머리를 쿵! 하고 박고는 축 늘어져 버렸다.


거북이들은 용기의 배 부분에 손을 대고 뭔가를 확인 하면서 서로 몇 마디를 더 주고 받더니, 가지고 온 작은 통에서 붓을 꺼내 피가 흐르고 있는 용기의 어깨쪽에 몇 번 쓱싹 쓱싹 발라대고는 별일 없었다는 듯이 유유히 감옥을 나갔다.



*****



시호코는 차의 스피드 미터기의 바늘이 높은 숫자대에서 흔들리고 있음을 인지 하고는 몰고 있는 차의 속도를 약간 낮추었다.


그녀가 들은 음성 메세지 4개는 집에 폭발 사고가 났으니 빨리 경찰서로 연락해 달라는 메세지였고, 나머지 한 개는 남편쪽으로도 전화 연락을 취했으나 핸드폰이 꺼져 있으니 남편 위치를 알면 확인해 달라는 메세지였다.


시호코도 운전을 하면서 남편한테 전화를 여러 번 걸어 봤지만, 음성 메세지로 자동으로 넘어가는 것을 보면 그의 전화기는 꺼져 있는게 확실한 듯 했다.


‘용기쿤...도대체 어디 있는거야?..’


20분 운전 거리를 10분만에 고속으로 돌파한 시호코는, 멀리서부터 집 주변이 서치 라이트로 환하게 밝혀지고 있음이 보였다. 하지만 경찰들이 바리게이트와 노란색 접근 금지 테이프로 도로 곳곳을 막고 있어서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다 차를 세울 수 밖에 없었다.


주차를 하고 시호코는 유나 손을 꼭잡고 구경나온 수많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한 경찰관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제 이름은 시호코라고 합니다. 제 집에서 폭발 사고가 있었다는 전화 연락을 경찰에게 받았습니다.”


접근 금지 선 근처에서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는 키가 큰 한 백인 경찰은 깜짝 놀라며, ‘아. 그러세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라고 말하며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서는 따라 오라며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시호코와 유나는 주의의 모든 것들이 생소하여 그 백인 경찰을 따라가면서도 어안이 벙벙했다.


마스크와 기관총을 찬 ‘S.W.A.T’ 이라고 적혀진 유니폼을 입고 있는 영화에서나 보던 경찰 특공대들, 불이 났는지 어쨌는지 출동한 수십 명의 소방관들, 영화에서나 보던 방사능 보호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 등등 도대체 집에 무슨일이 났길레 이런 난리들일까 싶었다.


몇 몇 경찰들과 소방관들이 이런곳에 민간인 여자와 아이가 지나가는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시호코와 유나를 힐끗 쳐다보는 사이에, 그들은 경찰관이 안내해 준 큰 천막에 도착했다. 집에서 약 30 미터 떨어진 차가 다니는 주행 도로 한복판을 가로막고 세워진 천막이었다.


천막 안에 들어간 시호코와 유나는 다른 경찰들과 달리 하얀색 상의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경찰 앞에 가서 서게 되었다.


“아. 반갑습니다. 경찰 서장 앤더슨이라고 합니다.”


하얀색 유니폼의 경찰이 자신을 소개하며 시호코에게 악수를 청했다.


“네 안녕하세요. 시호코 라고 합니다.”

“죄송 하지만 신분 확인을 위해 신분증을 보여 주실 수 있을까요?”


시호코가 핸드백에서 운전 면허증을 꺼내 보여주자, 앤더슨은 앞에 놓인 차트를 보며 말했다.


“네. 맞군요. 그런데 옆에 아이는?...”

“제 딸 유나 입니다. 성은 홍 이고요.”


앤더슨은 다시 차트를 몇 장 더 뒤적 거리더니, 유나에 대한 정보를 찾아냈다.


“도대체 어떻게 된거죠? 제 남편은 무사하나요? 집에 불이라도 났나요? 누가 이런짓을 했나요?”


시호코는 그동안 참고 있던 질문들을 순식간에 쏟아내었다.


앤더슨은 이런 일에 익숙하다는 듯이 차분한 목소리로 답변하기 시작했다.


“일단 좀 진정 하시고, 여기좀 앉으세요.”


시호코와 유나가 옆에 있는 간이 의자에 앉자, 앤더슨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확실한 2가지 사실은, 첫번째로 뭔가가 부인 집 뒷마당에서 폭발해서 집이 좀 망가졌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폭발에도 불구하고 주위에서 사람의 시체나 핏자국은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휴...우...”


시호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용인 즉, 적어도 남편이 시체로 발견 되었다는건 아니란 말이었다. 근데 앤더슨의 말의 뭔가가 이상했다.


“그런데...사람 시체가 없다는 건 무슨 말인가요?”


앤더슨이 그녀의 질문에 대답을 할려고 할 참에, 유나가 먼저 대화를 끊고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모모는? 아저씨 우리 모모 봤어요?”

“모모??”


앤더슨은 어리둥절 한 채로 손을 뻗어 차트를 집을려고 했다.


“저희 집 개 이름이에요”


시호코는 앤더슨이 또 차트를 뒤적 거리며 시간을 낭비하기 이전에 빨리 답을 알려 주었다.


“아...네...그렇군요. 그 개라면 잘 있습니다.”


앤더슨이 뒤쪽에 서있는 경찰관에게 손짓을 했다.


“잘 있긴 한데. 저희가 좀 재웠습니다. 낯선 사람들이 집에 들어오니 개가 짖는건 당연하겠지만, 하도 짖어대서 수사에 방해가 되길레...”


뒤쪽에서 사라졌던 경찰관이 커다란 박스 하나를 들고 와서는 시호코와 유나 앞에 내려 놓았다.


“저희가 마취총으로 잠시 재워 두었습니다...”


앤더슨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유나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모모를 끌어 안았다.


“모모! 모모! 괜찮아?...모모 아파? 모모 죽으면 안돼..”

“죽긴요?! 금방 자다가 일어날겁니다!”


앤더슨이 유나의 말에 당황한듯이 손을 내저으며 일어났다.


“죄송해요. 애가 모모를 너무 좋아해서요.”


시호코가 차분하게 말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럼 계속 말씀해 주시죠. 사람 시체에 대해서...”

“아...네...그럼 이쪽으로 저를 따라 오시죠.”


앤더슨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뒤쪽 경찰관에게 유나를 가르키며 잠시 돌봐 달라고 지시 하고는 앞장서 시호코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시호코는 유나를 모르는 사람에게 맡기고 가는게 왠지 꺼림직 했지만, 경찰이 무슨 나쁜짓을 할까 싶어, 유나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고 앤더슨을 따라 나섰다.


앤더슨이 시호코를 이끌고 간 곳은 멀리서 그녀의 집의 뒷마당쪽이 보이는 장소였다.


“아니...저게...무슨!”


시호코는 손을 입에다 가져다 대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뒷마당으로 이어져 있는 집의 뒷부분이 아예 통째로 날라가버리고 없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커다란 하얀색 천막이 둘러져 있었으며, 여러 사람들의 그림자들이 천막을 통해서 비춰지고 있었다.


“저기...”


앤더슨이 잠시 머뭇거리다, 시호코와 눈빛이 마주치자,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 본인이나 남편분께 원한을 가질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요.”


시호코의 대답은 빨랐다.


“남편분께서 직업이 변호사이시던데, 고객과 뭔가 다툼이 있었다던가...”

“제가 아는 한은 없습니다.”


그리고 앤더슨의 질문은 한동안 계속 되었다. 시호코는 처음에는 성심껏 질문에 답을 하다가 질문들이 현재 상황과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곳으로 이어지자 언성이 약간 높아졌다.


“죄송해요...집도 이 지경이 되버렸고, 남편도 연락이 안되는 상황이다 보니 좀 당황해서요. 언성이 높아져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먼저 사과를 하였다. 앤더슨은 이해하니 괜찮다고 답했다.


“근데, 저기 저희 집 뒷마당의 하얀색 천막은 뭐죠?”


“네...그게...보안상 말씀 드릴 수 없는게 많아서...저들은 FBI 과학 수사대 입니다.”

“FBI 요?! 아니 왜 FBI가?”

“그게...폭발물이 터졌다는 현장은 있는데, 폭발물에 사용된 화약 흔적이 전혀 없고, 알 수 없는 처음 보는 이상한 것들이 나와서요...”


앤더슨은 어디까지 말해야 하나 하고 상당히 고민하고 있었다.


“이상한 것들이요? 그게 뭐죠?”

“그게...”


그때, 뒤에서 한 경관이 뛰어와서 전화기를 내밀었다.


“서장님. 시장님께서 급하게 찾으십니다!”

“아. 부인. 저는 이만 가봐야 겠습니다.”


앤더슨이 돌아서며 말했다.


“잠깐만요! 저희는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나요?”

시호코가 멀어져 가는 앤더슨의 등 뒤로 급하게 물었다.


“아! 그 부분을 말씀 안드렸군요. 저희 쪽에서 근처의 호텔에 방을 예약해 두었습니다. 저희 경관이 차로 안내해 드릴겁니다. 그럼.”

“저기!..”


시호코는 다시 뭔가를 물을려다가 빠르게 사라져가는 앤더슨을 보고 그냥 돌아섰다. 그리고 그녀는 엉망이 되어버린 집 뒷부분과 뒷마당을 얼마동안 멍하니 바라 보았다.



*****



용기는 다시 의식을 차렸을 때, 자동으로 반쯤 떠진 눈을 다시 질끈 감았다. 자신의 잘려진 왼팔의 흉측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고 싶지 않았다’ 라기 보다는 ‘보기가 두려웠다’ 라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하리라.


용기는 눈을 감은 채 그의 몸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움직이지 않고 자신의 신경 세포만을 이용해서, 자신이 의식을 잃은 사이에 그 미친 거북이들이 또 다른 곳을 잘라가지 않았나 확인하고 싶었다.


‘흠...오른 손가락 다 있고...두 발도 괜찮고...’

그는 남은 손가락들과 두 발의 발가락들을 꼼지락 거리며 안도의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코는?’


그가 ‘흥흥’ 하고 코바람을 내불고 다시 들이마신 숨에서 피비린내 냄새가 밀려 들어 왔다. 역겨운 냄새였지만 주위에 피들이 이미 말라버렸는지 더이상 끈적끈적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귀에 신경을 집중했을 때, 그는 처음 알았다. 자신이 직접 만지지 않고, 눈을 감은 상태로는 자신의 귀가 제대로 달려 있는지 않은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을.


‘허...난 귀를 움직일 수가 없네. 이거 원래 이런건가? 다른 사람들도 이러려나?’


한참을 눈을 감고 본인의 몸 여러군데를 확인하던 용기는 심호흡을 길게 몇 번하고 눈을 아주 천천히 뜨면서 자신의 잘려나간 왼팔 쪽을 보기 시작했다.


“헉!...이게...뭐야?!!”


그는 눈을 갑자기 확 뜨고, 왼팔을 바라보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그때 휘리릭! 하고 예전에 들었던 솜털로 귀를 간지르는 듯한 작은 소리가 또 들렸다. 용기는 고개를 잠깐 들어 두리번 거리며 그 소리의 근원지를 찾다가 포기 하고는 다시 자신의 왼팔을 바라봤다.


분명 왼팔 어깨와 팔꿈치 사이에 삼두박근 쪽이 절단되어 나가는것을 마지막으로 봤는데, 팔이 팔꿈치까지 남아 있었다. 또한 이상한건 잘려 나갔다고 생각했던 부분에 있는 팔 부분에 근육 조직과 혈관이 보일 정도로 피부가 아직 제대로 붙어 있지 않은 곳들이 듬성 듬성 있다는 것이었다.


“이...이거...다시...자라...난거야??!”


그는 잘린 팔이 다시 자라난다는 이야기나 의학적 정보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본 적은 있었다. 그게 미라들이나 등장하는 판타지 영화들이어서 그렇지.


“나...영화에 나오는 좀비나 미라가 되버린 거냐?...헐...”


그는 이미 잘려 나가 부패가 시작되고 있는 예전의 왼팔을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 보았다.


“잘하면 왼팔 두 개가 생기겠네. 젠장.”


그는 머리를 뒤쪽 벽에 기대며 눈을 다시 감았다.


팔이 다시 자라나는 것인지에 대한 부분은 아직 확실치 않으니 좀 더 지켜봐야 했다. 분명히 엄청나게 놀랄 일이지만, 용기는 이제 슬슬 거미, 감옥, 거북이들로 이어지는 놀라움과 황당함들의 연속에 적응되어 가고 있었기에, 아주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오히려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은 채 이제 또 무엇이 자신을 놀라게 해줄까 하고 피식 웃었다.


다시 코를 통해서 피비린내 냄새가 들어왔다.


‘거지같은 놈들...감옥에 가두더라도 청소는 좀 해줄것이지...쯧.’


비록 자신의 피이고 말라버리긴 했어도 주위에 핏자국들은 아직 그대로였다. ‘칼로 자를거면 양동이 같은 걸로 좀 밑에 받히고 자르면 오죽 좋아’ 라고 혼자 중얼 거리며, 마치 양동이를 밑에 받히면 자신의 팔이 잘려 나가도 좋다는 식의 말도 안되는 논리의 생각을 할 쯤에, 몇 가지들이 그의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칼...칼...칼이라...’


한참을 생각하던 용기는 일단 확실한 정보 몇가지를 간추려냈다.


1.이놈들은 절대 외계 행성에서 우주선을 타고 온 놈들이 아니다. 우주선을 타고 온 놈들이라면 과학이 아주 발달 되었을텐데, 그런 우주 외계인들이 레이저 빔 같은 것을 놔두고 무식하게 큰 식칼로 사람 팔을 자르지는 않을 것이다.


2. 거북이 놈들은 분명 그 큰 거미들과 같은 편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상황 설명이 되지 않는다.


3. 같은 편이라고는 해도 거미들은 분명 나를 죽이려고 했지만, 적어도 저 거북이들은 나를 죽일 생각이 없다. 죽일려고 했으면 진작에 죽였을 것이다. 시간의 감은 없지만 내가 있던 우리집 뒷마당에서 지금까지 적어도 며칠은 흘렀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전혀 배가 안고프다. 왜인가? 이유는 모르지만, 저 거북이들이 나를 죽이지 않기 위해 뭔가를 조치한 것이 틀림없다.


4. 그렇다면 거북이들은 나에게 뭔가 원하는것이 있다. 그게 뭔가? 돈? 아니다. 나처럼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요구하는건 말이 안된다. 그리고 사람의 돈이 필요한 놈들이 아니다.


5. 그렇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이 몸뚱아리라는 이야기인데...뭘까?


몸뚱아리라는 단어와 배고프지 않다 라는 정보를 바탕으로 동화책 헨젤과 그레텔의 나오는 잡아먹기 위해 어린이들의 살을 찌우는 마녀의 모습을 상상하다가 너무 엉뚱하다는 생각에 머리를 절래저래 흔들고는 용기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모르겠다. 젠장...”


짜증이 났다. 거북이들과 대화도 안되는 마당이라, 물어볼 수도 없고, 나갈 수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것이 없었다.


그리고 침묵이 흘렀다. 쥐죽은 듯한 고요함.


그 고요함이 얼마나 흘렀을까? 용기의 감은 눈 사이가 촉촉해 지더니, 방울이 생겼고,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 내리기 시작했다.


가족이 보고 싶었다. 시호코의 따뜻한 입술에 키스를 하고 싶었고, 보조개가 들어가는 웃고 있는 유나를 가슴에 꼭 안고 싶었다. 가족들과 함께 공원에 가서 공을 가지고 놀던 기억. 유나와 서로 얼굴에 아이스크림을 묻히며 장난하던 기억. 가족들과 해변가에서 물놀이를 하던 기억. 다시 경험해 보고 싶었다.


적어도 죽기전에 시호코와 유나의 얼굴을 보고 그 따뜻한 손들을 다시 한 번 잡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현재 그럴 수 없음에, 그리고 미래에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에 고통스러웠고, 가슴이 무겁고 답답했다.


용기는 원래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믿는 것은 본인의 현실에 크게 반영되지 않는한 ‘나도 그렇다고 믿어주자’ 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남들이 신이 있다고 하길레, ‘신이 진짜 있으니까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믿는거겠지. 나도 신이 있다고 믿자’ 라고 말하며 신의 존재를 믿었고, 남들이 UFO 가 있다고 하길레, ‘UFO 가 진짜 있으니까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것이겠지. 나도 있다고 믿자’ 라고 말하며 UFO의 존재를 믿었으며, 남들이 유령이나 귀신이 있다고 하길레, ‘진짜 유령이나 귀신이 있으니까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것이겠지. 나도 있다고 믿자’ 라고 말하며 귀신의 존재도 믿었다.


그의 이유는 간단했다. 이런 것들은 자신이 뭘 어떻게 믿어줘도 그의 하루하루 먹고 살아가는 현실 삶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있다고 했던, 그래서 자기도 그렇다고 믿어줬던 신의 존재.


용기는 지금 처한 상황에서는 이제 기댈 곳은 왠지 그 신이라고 불리우는 존재 밖에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예전에 기도 같은 것은 해본 적이 없는 그는 처음으로 신에게 빌었다.


‘좀...도와주세요...제발...’


그의 감은 두 눈 사이를 비집고 나와 뺨을 타고 가슴으로 흘러 내리는 눈물은 멈출 줄을 모르고 계속 흘러 내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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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수정: 요계의 침공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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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반드시 살아 돌아가야 한다 (6) 21.09.26 429 16 18쪽
23 반드시 살아 돌아가야 한다 (5) 21.09.26 431 16 13쪽
22 반드시 살아 돌아가야 한다 (4) 21.09.25 437 16 15쪽
21 반드시 살아 돌아가야 한다 (3) 21.09.25 442 15 17쪽
20 반드시 살아 돌아가야 한다 (2) 21.09.24 468 14 19쪽
19 반드시 살아 돌아가야 한다 (1) +1 21.09.23 481 15 16쪽
18 또 다른 운명을 향하여 (3) 21.09.22 499 15 21쪽
17 또 다른 운명을 향하여 (2) +2 21.09.21 483 15 12쪽
16 또 다른 운명을 향하여 (1) 21.09.21 495 16 14쪽
15 황룡의 무공 (6) +2 21.09.20 493 15 14쪽
14 황룡의 무공 (5) 21.09.20 516 15 15쪽
13 황룡의 무공 (4) +2 21.09.19 552 16 17쪽
12 황룡의 무공 (3) 21.09.19 540 15 18쪽
11 황룡의 무공 (2) 21.09.18 562 16 17쪽
10 황룡의 무공 (1) +2 21.09.17 610 17 15쪽
9 희망을 찾아가기 위한 준비 과정 (3) 21.09.16 588 17 10쪽
8 희망을 찾아가기 위한 준비 과정 (2) 21.09.16 640 17 20쪽
7 희망을 찾아가기 위한 준비 과정 (1) +2 21.09.15 674 16 12쪽
6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5) 21.09.14 680 18 17쪽
»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4) 21.09.14 797 19 23쪽
4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3) 21.09.13 928 22 19쪽
3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2) 21.09.12 1,070 22 14쪽
2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1) +2 21.09.11 1,676 23 20쪽
1 프롤로그 +1 21.09.11 1,992 26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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