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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철 님의 서재입니다.

정의구현에 환장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무협

도철
작품등록일 :
2021.02.22 16:47
최근연재일 :
2021.05.21 12:00
연재수 :
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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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09,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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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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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74화

DUMMY

#


“······뭐라 할 말이 없네.”

자신도 이 상황이 어이가 없었던 듯 눈썹을 파르르 떠는 것이었다. 비상식적인 크기의 대검.


···대검?


“설마?”

머릿속에 하나의 기억이 스쳐 지나가고, 손을 탁 하고 치며 그녀가 말했다.


“춘삼 아저씨가 보내주기로 약속했던 영감님 무기 같지 않아?”

손잡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에 손을 가져다 대자 스파크가 파밧 하고 튄다. 아무래도 꼴에 성검이라고 사람을 가리는 모양. 그녀가 저릿한 손을 털어내고는 그것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애초에 내게 연락하기로 한 사람이 그 양반 뿐이긴 하다만.” 잠시 침을 삼키고는 말을 잇는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걸 이렇게 괴랄하게 만든거지?”

“그러게, 물론 아저씨가 만든 만큼 성능만큼은 최고겠지만, 이렇게 커서야 실용성이 의심되는데.”

수민은 팔짱을 끼고 그것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걸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다들 이 골칫덩이를 어찌 해야할지 고민하던 중 진철이 의견을 제시했다.


“일단 밖으로 좀 옮겨보자, 혹시 알아? 막상 휘둘러 보면 쓸만할지?”

진철의 말마따나 방 안에서 이러고 있어 봐야 나아지는 건 없다. 모름지기 검이란 휘둘러 봐야 그 성능을 알 수 있는 것.


“좋네.”

롤랑이 밖으로 나가기 위해 검을 쥔 순간, 검날에 새겨진 기하학적인 회로가 파랗게 빛나고 그의 머릿속으로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부터 사용자 등록을 진행합니다. 당신의 이름은?”

갑작스러운 음성에 당황할 법도 하지만 그는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고는 물음에 답했다.


“롤랑(Roland).”

“···확인.”

“사용자의 신성 보유치를 체크합니다. 몸에 힘을 빼고, 주입되는 기운을 받아들이세요.”

검의 손잡이로부터 전해진 미지의 기운이 롤랑의 몸 구석구석을 훑었다. 세맥을 긁는 것 같은 간지러움에 그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갈 때쯤 진단이 끝났다.


“신성 LV.MAX 당신의 등급은 아크 비숍(ARCH BISHOP)입니다.”

검 주제에 무슨 절차가 이리도 복잡한지, 그의 투박한 입술이 궁시렁거리며 이따금 식 삐죽거렸다.


“사용자 등급 확인 완료. 현 시간부로 성검(聖劍) 미드나잇 블루(Midnight-blue)의 기능을 완전하게 개방합니다.”


스르릉


청명한 검명이 울리고 그의 머릿속으로 성검의 숨겨진 기능이 전해졌다.


“축소화&전신갑주, 이건 아무래도 크기 조절 기능인 것 같고. 거대화, 이게 지금 모습이겠지?”

“초진동, 증폭, 자가수복··· 뭐가 많긴 한데 이거야 원 복잡해서 써먹을 수나 있을련지···”

그저 부러지지 않는 검이면 족한 것을 그 크기만큼이나 화려한 검이다.


#


“영감님. 영감님!”

익숙한 목소리가 그의 몸을 흔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두가 그를 바라보며 걱정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검을 쥐고 난 이후 시간이 꽤나 지난 모양이다.


“나는 괜찮네. 검에 잡다한 기능이 많아서 사용자 등록이라는 걸 하다보니 이렇게되었지 뭔가. 하핫.”

“하긴 영감님이 검을 쥐자마자 검이 확 줄어들었더라고.”

그녀의 말마따나 그가 쥐고 있던 대검은 어느새 일반적인 롱소드의 모습을 취하고 있었고, 그의 주위로 팔뚝만한 검날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날파리 같은 검날들은 뭐지?”

진철이 호기심에 검날에 손을 가져다 대자 검날이 차가운 빛과 함께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순간 드는 오싹한 느낌에 뒤로 물러서 보지만.


위이잉


검날에 서린 차가운 기운이 그의 손에 예리한 검상을 입히고 말았다. 깜짝 놀란 진철은 상처난 손을 감싸쥐고 뒤로 물러서며 소리쳤다.


“살인 드론이다! 애들아 죽여!!”

그를 감싸는 정령들이 주인의 상해에 분노하며 날카로운 이빨를 드러내자 손쓸 틈도 없이 순식간에 전투가 벌어졌다.


크아앙


불꽃의 정령이 화룡의 모습으로 변하여 검날을 물어뜯었고,


으드득


얼음의 정령이 영구동토(永久凍土)를 몰고왔다.


쿠구구구


대지의 정령은 고대의 거신들과 같은 골렘의 모습으로 주먹을 내리친다. 그리고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진철은 코 밑을 쓰윽 닦으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만해 미친놈아! 이집 우리꺼 아니라고오―!”



쨍그랑

퍼퍼펑


다급한 수민의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오밤중 숲속에 울려퍼졌고, 고풍스런 저택은 반파되어 한쪽 면이 폭-싹 주저앉았다.


“아···난 모르겠다.”

수민이 쭈구려 앉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고 있을 때, 눈치 빠른 무백은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하지만 그의 어두운 발걸음으로 보아 충동적인 결정은 아니었던 듯 많은 고뇌가 엿보이는 뒷모습이다.


#


야간의 소란이 그치고 날이 밝자 수민은 진철에게 알아서 해결하라고 통보한 뒤 롤랑과 함께 예정된 단련을 하기 위해 자리를 벗어났다.


쯧쯧


진철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정후는 망연자실한 그를 내버려 두고 수민과 롤랑을 서포트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으아아아아


누군가의 괴성이 들렸다면 그건 기분탓이다.


#


황량한 대지. 남해 어디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의 메마른 이곳에 두 사내가 가라앉은 눈빛으로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휘이잉


흙먼지가 가득한 사막을 닮은 이곳에서 수민은 황당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

“반응이 썩 좋지 않은 듯 한데 왜 그러는 겐가?”

“내가 살면서 철사장이니 뭐니 되도않는 비효율적이고 비현실적인 수련법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사람에게 빙결 마법을 인첸트 한다는 소리는 처음듣는군. 그럴 시간에 조금이라도 근육을 단련하는 편이 낫겠어.”

그의 말을 허무맹랑한 것으로 취급하며 실없이 웃는 수민이었다. 그런 수민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롤랑은 본격적으로 설득을 시작했다.


“어제 문무왕 그자를 상대했을 때를 생각해 보게. 물론 용왕과 교룡의 수준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지만 단순한 타격은 가뿐히 견디는 내구력.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녹아내릴 듯한 브레스.


사살이 아닌 생포를 위해서는 내가중수법과 그래플링, 브레스에 견딜 수 있는 방어력이 필요하지. 거기에 자존심 강한 놈을 굴복시키기 위해선 동등한 조건인 맨몸, 맨손으로 상대하는 수밖에 없다네.”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이미 우리의 단련된 근육은 물리력에 한해서는 갑옷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지. 하지만 문제는 초고열의 브레스. 한 번이라도 스치면 그분 곁으로 가는 건 문제가 아니지. 그 한 방을 견디기 위해 우리는 몸을 차갑게 할 필요가 있는 것이라네.”

허리춤에 손을 올리며 스스로의 설명에 감탄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 정도라면 수민이 너도 이해할 수 있겠지. 더울 때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단지 이건 혈관에 직접 때려 박는 느낌이랄까.


그런가 라는 생각이 수민의 머릿속에 맴돌자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말같지도 않은 소리.”

하마터면 영감의 개소리에 넘어갈 뻔 했다.


“얼어 뒤지나, 불타 뒤지나. 차라리 브레스 뿜기 전에 턱에 주먹을 갈겨 입을 틀어막는게 더 현실적이겠어.”

“자네는 스스로를 무엇이라 생각하는 건가. 스스로를 바라보게. 그게 평범한 사람의 몸뚱이인가? 세상 어느 미친 작자가 용과 육탄전을 벌이고도 멀쩡하게 살아남을 수 있지?”


스윽


롤랑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수민의 가슴팍을 베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날아드는 검을 정확히 눈으로 보고 반응한다. 왼손을 뻗어 검을 움켜쥔 수민이 싸늘하게 식으 표정으로 말했다. 대답 여하에 따라서는 벨 수도 있는 상황.


“아직도 모르겠나? 자네 손을 봐! 검강을 실은 성검에도 이미 흠집하나 나지 않아! 우리의 마음은 인간 일지라도, 몸은 이미 인간을 벗어났단 말이네. 초인이란 말로 포장했을 뿐,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 괴물이 되어버렸음을 인정하게. 그리고 우리는 이미 되돌아갈 수 없어.”

“······”

이어지는 침묵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것들을 얕보지 마라. 이 비인간적인 몸뚱이도 수많은 전제 조건들 중 하나일 뿐이야. 머리로 이해하려 하지 말게. 뭐든지 일단 해 보는거야. 아니면 너의 각오, 정의의 사자는 그저 허풍에 불과했나?


대답해. 정의를 외치던 인간 정수민은 어디에 있지?”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뼈를 때렸다.

가슴이 욱신거린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울컥하며 목구멍을 타고 넘어온다. 그래, 이미 알고 있었다.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정의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사실을. 그렇다고 내가 정의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단지 각오했던 것이 비수가 되어 가슴을 찌를 뿐.


“나는―”

한껏 숨을 들이마신 후 몸에 잔뜩 힘을 주고 다시 한번 말한다.


“인간이다.

그리고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아.

나는 세상의 모든 악을 단죄하는 정의의 집행자.

그리고 정의를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일어서주마.

설령 이 몸이 불타 재가 되어버린다 할지라도!”


울분을 토하듯 수민은 세상을 향해 포효했다. 이것은 가가 세상에 내민 출사표. 그리고 단호한 결의.

뜨거운 눈물이 수민의 뺨을 적신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비인(非人)의 길.

하지만 수민의 마음만은 인간인 채로 무소의 뿔처럼 꿋꿋이 나아간다.


#


롤랑의 일침으로 인한 수민의 운명에 대한 실타래 같은 자그마한 고뇌. 하지만 시작한 이상 멈출 수는 없다.

이미 한번 죽었던 인생. 그저 나아갈 뿐이다.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처연하지만 아름다운 미소로 그가 묻는다.

그런 수민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며 롤랑은 품에서 대량의 스크롤 뭉치를 꺼냈다.


“우리의 몸에 절대 영도의 술을 인첸트 한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기감은 더욱 예민하게 곤두세워야 한다는 것. 고통을 받아들이고, 오감을 극대화시키는 거다.”

이내 마른침을 삼키고는 그가 설명을 계속했다.


“절대 영도에서 우리의 심장이 멎기까지는 대략 5분. 5분 안에 전력으로 승부를 내야한다. 브레스를 정면으로 맞는 것은 어디까지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나 하는 것이야. 맞서는 것은 최대한 지양하며 싸운다.”


“치킨 레이스. 하지만 겁낼 것은 없다. 결국 이기게 되는 건 우리일 테니까.”

그의 눈빛을 담담하게 받아내며 수민은 그의 품에서 스크롤을 빼앗았다.


“당장 시작하지. 시간은 무한하지 않으니까.”

“처음은 북풍한설의 술부터 시작해서 빙결에 대한 내성을 기르도록 하지.”


-부우욱


서로의 손에서 찢어지는 스크롤.

극채색의 하늘은 흑백 필름이 되어 잿빛 눈꽃을 흩날린다. 그들의 몸에 쌓이는 극빙(極氷)의 바람. 뼈를 찌르는 고통에 피부는 거무죽죽하게 괴사하였지만 신음 한번 흘리지 않고 그저 말없이 강도를 높이는 두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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