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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철 님의 서재입니다.

정의구현에 환장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무협

도철
작품등록일 :
2021.02.22 16:47
최근연재일 :
2021.05.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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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9,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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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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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DUMMY

#


“내가 원하는 건 듀랜달, 오리판, 베이얀치프. 이 세 가지를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이오. 이 시대 최고의 야장이라 한들 대제께서 하사하신 성유물을 대체하는 것은 크게 기대하지는 않지만···.”

묘하게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롤랑의 화법에 춘삼은 콧웃음을 치며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아니, 이 양반아 듀랜달을 대체하는 무구는 충분히 가능해. 그런데 오리판, 그건 뿔나팔이잖아! 게다가 베이얀치프? 당신이 타고 다니던 말을 왜 여기서 찾는 거요. 그것까지 만들어 달라고 하면 양심이 출타한 거지!”

대장장이에게 생명체를 요구하는 그 뻔뻔함에 춘삼은 치를 떨었다. 하여튼 이래서 옜날 사람들이란.


“구시대의 성검 따위 가뿐히 압살하는 성검을 만들어주지. 어차피 댁네 시절은 명검에 축성의식만 끝마치면 다 성검 소리를 듣는 세상이었잖아. 성수로 코팅한 조잡한 검이 아닌 진정한 성검이 뭔지를 내 보여주지. 그런데 말은 아니지. 그건 딴 데 가서 알아봐!”

춘삼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 유효했던 것일까, 듀랜달을 뛰어넘는 무구를 만들어주겠다는 확답에 롤랑은 내심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그 시절의 신비(神祕) 정도는 이미 예전에 분석 당한 골동품에 불과해. 현대 문명의 정수로 별빛을 가르고, 성좌를 찢어발기는 광휘의 성검을 만들어주지.”

가슴을 탕탕 치며 호언장담을 하는 그의 모습에서 대머리의 누군가가 겹쳐 보였다면 착각일까. 완전무결한 롤랑 만들기 프로젝트는 순항 중이었다.


“우선은 이걸 써. 실패작이지만 밖에서는 귀물 취급받는 물건이야.”

휙 하고 던져준 크고 묵직한 검 한 자루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외관만 보아도 범상치 않은 그것은···.


“드라칸 블레이드?”

검신에 새겨진 검명은 이 검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짐작케 하였다.


“용아검(龍牙劍)이 실패작이라고?”

수민 일행이 모두 깜짝 놀라며 춘삼표 무구을 극찬하는 와중, 롤랑은 직접 그것을 쥐어보았다.

“음··· 과연 실패작이라 말한 이유가 있군.”

홀로 그 이유를 눈치챈 롤랑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감추며 허리춤에 그것을 찼다.

‘이 정도 무게라면 검이 아니라 둔기라 불러도 무방하겠군. 그야말로 묠니르야.“


”우리 선물은 없는 건가요 아저씨?“

초롱초롱한 두 눈으로 춘삼을 바라보는 정후의 모습은 할아버지의 귀여운 손녀 같았다.


”우리야 그렇다 치지만 수민이는 입단 선물도 못 받았는데.“

전보다 일취월장한 춘삼의 솜씨에 정후는 수민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픈 마음으로 그에게 부탁했다.


”정후야···. 양심은 어디에 두고 왔니?“

뻔뻔한 그녀의 행동에 춘삼은 기가 차다는 듯 답했다.


”너희가 착용한 것들,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걸작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그리고 손에 착용한 그 반지, 그게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데 고작 이런 것들을 탐내는 게냐?“

명품으로 온몸을 도배한 그들이 새로운 것을 탐내는 것을 보자 그는 고개를 절래절래 내지으며 혀를 찼다.


”이 반지에 무슨 능력이 있는데요? 파사(破邪)의 기운이 서려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요.“

지금껏 반지의 진가를 몰랐던 두 사람은 비밀을 알려달라는 듯 귀를 쫑긋 세우고 시선을 집중했다.


하아아


’이래서 장비는 주인을 잘 만나야 하는 것을···.‘


”잘 들어. 반지의 이름은 비익(比翼). 둘이서 하나인 그것은 너희가 함께 있을 때 일시적으로 마력을 두 배로 증폭시켜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반지에 의념을 넣음으로 발동하는 시동형 아티팩트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부끄러움도 잠시, 올바른 사용법을 알게 되자 기뻐하는 그들을 보며 일행은 이 둘을 믿어도 되는 것 인가에 대한 고찰을 시작했다.


짝짝짝


”어쨌든 당신 무기는 완성되면 바로 대마도사(大魔道師)께 부탁해서 전송시킬 테니 진득허니 기다리쇼 쌈박질은 자제하고. 갑옷까지는 서비스로 동봉할 테니 볼일 다 봤으면 이제 그만 시끄럽게 하고 나가봐.“

처음의 목표 이상을 달성한 롤랑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장비에 미련이 없는 나머지 일행들은 각자 술이나 한 잔 하자며 서로 작당을 하고 있었다.

어느덧 석양이 지는 시간이 다가오자 다들 각자의 일을 하러 흩어지고 수민과 정후 둘만이 남게 되었다.


”정말 정신없는 하루였네. 그치?“

하루종일 놀람의 연속이었기 때문인지 수민의 미간에는 주름이 졌고, 입술은 메말라 지친 기색이 역력하였다.


”난 너무 즐거웠는데? 이렇게 모두가 활기찬 분위기는 오랜만이라서, 이게 다 자기가 오고 나서부터인 거 알아?“


”글쎄. 원래도 크게 달랐을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걸? 다들 각자 개성도 강하고 텐션이 보통 좋은 게 아니라서 말야.“


”아마도 그건 아닐 거라고 생각해. 내가 연옥에 은거한 이 사람들과 달리 세상을 돌아다녔던 건 답답한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답답했던 이곳이 자기와 함께함으로써 조금씩 변해간다는 생각이 들었어. 자기는 모르지? 자기에겐 사람을 변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어.“


”홀로 탑에서 독수공방하던 아리스 언니, 잘 웃지 못했던 지크프리트 할아버지. 항상 외로워하던 지은이. 진철이야 한결같았지만, 자기가 함께한 이후 다들 조금씩 따뜻하지는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좋았어.

그래서 오늘 하루도 이렇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너무 감사해.“

수민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잡아보라는 듯 도망가는 그녀를 보며 수민 또한 지금의 이 시간이 영원하기를 바랬다.


#


꼬끼오오오


힘찬 닭의 울음소리에 눈을 뜬 수민의 곁에는 정후가 아무것도 몸에 걸치지 않고 이불만 덮은 채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창문 커튼 사이로 은은하게 비추는 아침 햇살은 무척이나 싱그러웠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지난밤이 꽤나 격렬했던 듯 방 곳곳은 치열했던 흔적이 가득했다. 기울어진 책상, 부서진 소파 외에도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속옷들을 보자니 정리할 생각에 한숨만 나왔다.

그녀가 깨지 않도록 수민은 조심히 자신을 껴안은 팔을 떼어내 보려 애를 써보지만, 떼어내려 하면 할수록 결국 더욱 달라붙는 그녀의 품을 벗어나는 것을 포기했다.


나른한 아침을 즐기고픈 마음도 있었을뿐더러 아이처럼 곤히 잠든 그녀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수민은 어젯밤의 일을 회상했다.


#


앞으로의 일을 이야기하며 와인을 한잔, 두잔 즐기다 보니 취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살짝 취한 탓에 수민의 몸에 흘린 와인이 계기가 되었던 걸까, 옷을 갈아입는다는 게, 끈적한 분위기로 이어졌다.


야릇한 분위기에 취해 서로의 몸을 와인으로 촉촉이 적시게 되었고 수민은 몇 번이고 눈을 마주치며 그녀의 육체와 뜨거운 체온을 몸에 새겨넣었고 은은하게 빛나는 전등의 불빛은 미세한 가루처럼 그녀의 주위를 아른거렸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어제의 일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속삭이며 끝내 뜨거운 숨결을 토해내는 그녀의 자태. 어제고 찾아올 행복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사랑은 한 편의 추억으로 남아 서로의 가슴에 깊은 화인(火印)을 남긴다.


#


창문의 틈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단잠을 방해한 것일까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는 그녀. 창밖은 싱그러운 풀 내음이 가득하고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는 풀밭에 누워 나른함을 즐긴다. 그야말로 평화로운 보통의 일상.


몇 번의 시도 끝에 그녀를 살며시 밀어내고 마당으로 나온 수민은 지난날 롤랑이 말했던 것을 되내였다.


신념.

수민의 삶을 지탱하는 방식이 속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롤랑은 수민과 대극을 이루고 있었다. 단단한 고목과 같은 그의 신념은 수민의 가치관을 알게 모르게 조금씩 초록빛으로 물들였다.


속죄로 시작된 삶의 의미가 사람들을 만나며 변해간다. 스승이 몇 번이고 강조한 의협심은 수민에게 있어서 속죄의 연장 선상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정후를 만나고, 검성을 만나고, 마침내 롤랑에 이르러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다. 가슴을 격동시키는 그들의 신념과 가치관에 수민 또한 스승의 신념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 자신만의 신념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었다.

자신만의 정의(正義)를.


#


오늘도 어김없이 마당에서 자신의 현 상태를 점검하는 수민의 뒤로 기척도 없이 금발의 여인이 튀어나왔다.


”선물.“

느닷없이 나타나 무엇인가 휙 하고 던지고 사라지는 아리스. 텅 빈 수민의 한쪽 눈을 임시방편으로 가려놓은 것이 마음에 걸렸던 듯 검은색 안대를 선물한 그녀.

고급진 소재의 부드러운 안대에는 주술적 처리가 가미된 듯 미세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이미 그녀는 떠나버리고 없었지만, 그 호의만은 잊지 않겠다는 듯 그녀가 떠난 방향으로 가볍게 목례를 하였다.


사실 이는 매일 밤 수민이 잠든 사이 텅 빈 그의 눈가를 어루만지던 정후의 부탁으로 제작된 것이지만 굳이 그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기에 따로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한번 착용해 보는 건 어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창가에서 따뜻한 에스프레소를 한 잔을 즐기며 수민을 지켜보던 정후가 착용을 제안했다.


’이게 조금이라도 그이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수민이 안대를 착용하는 것을 지켜보는 그녀의 심정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오! 신기하네 이 안대. 눈이 다시 생긴 것 같은데?“

안대를 착용한 수민이 바라보는 세상은 눈을 잃기 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외눈이 가진 사각을 보조하기 위해 바라보는 시선 상에 위치한 공간을 분석하여 뇌로 전송하는 그것은 의안의 기능과 유사한 것이었다.


시험 삼아 창을 휘둘러보는 수민의 모습에서 이전과 같은 어색함이 어느 정도 사라졌다. 두 눈이 온전했을 때와는 물론 차이가 있지만, 안대를 통해 바라보는 시선은 세상을 보다 분석적으로 접근하게끔 하여서 수민의 결점을 조금이나마 보조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동등한 실력자를 만난다면 그 빈틈은 치명적이겠지만.


”자기가 부탁한 거지 안대?“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그 정도 눈치는 있다며 환하게 웃음 짓는 수민의 밝은 모습에 정후는 오히려 그를 질책하였다.


”여자가 애써 감춘 비밀을 말하면 어떡해. 당신도 가끔 보면 이상한 데서 센스가 없어 정말.“

자신의 생각보다 수민이 눈치가 빨랐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몰래 부탁한 것이 들통났다는 사실에 부끄러워하는 그녀.


”항상 고마워하고 있어, 자기에게는.“

그녀가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나 고맙고 애달픈 나머지 수민은 그녀를 또다시 품에 안았다.


”맨날 품에 안기나 하고, 내가 그렇게 좋아?“


”당연한걸, 이렇게 사랑스럽고 마음씨 고운 사람이 내 여자라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아. 그러니까 매일 매일 당신을 품에 안아야 비로소 이게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거지.“

혀에 기름을 칠한 듯 오늘따라 유난히 매끄러운 언변을 토하는 수민을 바라보며 그녀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기대었다.


”그럼 더 좋아하도록 해, 너에게만 특별히 허락할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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