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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철 님의 서재입니다.

정의구현에 환장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무협

도철
작품등록일 :
2021.02.22 16:47
최근연재일 :
2021.05.21 12:00
연재수 :
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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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수 :
409,945

작성
21.05.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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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68화

DUMMY

#


“얘기가 잘 안 풀리신 모양입니다?”

시형이 알현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거구의 은빛 갑주의 남자가 다가와 물었다.


“잘 모르겠네, 가만히 있는다고 그들의 손길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내일이 되어봐야 알겠지.”


“아마 성급하게 결정하기보다는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으신 것이겠지요. 누구보다 이 땅의 백성들을 살피시는 분 아니시겠습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남자는 호탕한 웃음과 함께 시형의 등을 두드렸다.


#

한편 수민 일행은 식당에서의 식사를 마치고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오호

이곳저곳을 관심 있게 돌아다니는 그들에게 많은 눈길이 쏟아졌다. 누군가의 방문이 무척이나 신기한 모양인지 소곤거리는 소리가 사방에 가득하다.


“저 사람들이 제독님과 함께 온 그치들인가보지?”

“그런가 봐요. 어머어머 육지 사람들이라 그런지 훤칠하게들 생겼네.”

가게 주인들은 소곤거린다고 목소리를 낮춘 모양이지만, 일행의 귀에는 무척이나 잘 들렸다. 아닌 척 해도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가는 것은 감출 수 없었다.

그 시선들을 즐기며 섬을 누비던 수민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카페에 이르렀다.


작은 섬들이 모인 이곳 남해는 때 타지 않은 천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함선들이 모여있는 부둣가 반대편은 새하얀 백사장이 펼쳐져 있었고, 섬은 무성한 녹음으로 울창한 숲을 연상케 하는 모습을 보인다. 붕괴 이전의 세상의 휴양지와 같은 모습은 잃어버린 과거처럼 추억을 떠올리게끔 한다.


-휘이이잉


“이제는 바람이 많이 차가워졌어.”

“경치가 좋은 카페니까, 높은 곳에 위치한 곳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거지.”

수민은 은근슬쩍 정후의 무릎에 담요를 덮어주며 짐짓 모르는 척 딴청을 피웠다.


“저녁노을 정도는 괜찮지 않나? 내일부터는 이런 여유도 없을 텐데 조금은 여유를 만끽하는 것도 좋지. 특히. 우리같이 몸에 피를 많이 적시는 사람들은 더욱더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네.”

“동감합니다. 인간은 망가지기 쉬운 동물이니까요.”

복수심에 불타 시작한 여정 속에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무백은 롤랑의 의견에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노을이 내리앉는 것을 바라보며 다들 감상에 젖은 듯 말을 아끼고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하루의 끝까지.

#

다음날


툭···툭···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아침.

바닥을 흠뻑 적시는 빗방울 하나가 열린 문틈 사이로 날아와 수민의 얼굴에 톡 하고 떨어졌다.


으으음

차가운 빗방울에 몸을 뒤척이던 수민은 무언가 생각이라도 난 듯 갑작스럽게 벌떡 일어섰다.


‘오늘 아침에 데리러 온다고 했었지!’

우중충한 하늘 때문에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지만 혹여나 늦었을까봐 황급히 준비를 시작했다.


“일찍 일어났네? 시간 맞춰서 깨워주려고 했는데.”

헝클어진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반쯤 풀린 눈으로 정후가 말했다.


-쿠쿠쿠궁

창밖으로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가 번쩍 하고 내리쳤다.


-쏴아아아

하늘이 노한 듯 기분 나쁘게 추적추적 내리던 빗줄기는 거센 폭우가 되어 내리기 시작한다.

숲속에 위치한 탓에 안개마저 자욱하게 끼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형성하는 이곳의 분위기는 마치 우울한 주말과도 같다.


“빗소리에 깨서 늦잠을 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봐.”

“오늘은 중요한 날인데 날씨가 그닥 도와주질 않네. 그냥 느낌이지만 일이 쉽게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

“그러게, 이렇게 축 처져 있어서는 될 것도 안되겠는걸?”

찌뿌둥한 몸을 이리저리 뻗어대며 어떻게든 힘을 내보고자 하였다. 그렇게 험난한 하루가 예상되는 가운데 수민은 잠시 후 마중 나올 시형을 기다리며 채비를 갖추었다.


#

이른 새벽.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간, 두 남자가 황급히 뛰어다니며 약간의 불안감과 함께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새벽부터 소집이라니, 어쩐 일이지?”

“그것도 전원 소집이라니 아무래도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연옥과의 대면을 앞두고 긴급 소집이라···”


철컥

회의실을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서늘한 공기가 그들을 맞이했다.


딱.딱.딱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는 남자의 손목에는 뱀의 비늘과 같은 것들이 올라와 있었다. 이 상황이 몸시 불쾌한 듯 남자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 그 수려한 외모마저도 빛을 잃었다.


“다 온 건가?”

남자의 물음에 곁에 서 있는 날카로운 눈매의 여성이 장내를 쓱 훑어보고는 입을 열었다.


“파견을 나간 넷을 제외한 현재원 여섯 전원 도착했습니다.”

그녀의 말을 끝으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품에서 편지 한 통을 꺼내어 테이블 한가운데로 툭 하고 던졌다.


“이게 뭐처럼 보이나?”

“이건··· 편지로군요.”

성준의 대답이 만족스럽지 못한 듯 남자는 팔짱을 끼고 말을 이었다.


“그래. 편지지. 문제는! 내 방문 앞에 이게 놓여 있을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거지. 남해 십강이라 자부하는 너희들 중 어느 누구도 이 편지가 내 품으로 들어오는 순간까지 조금의 위화감도 느끼지 못한거지.”

그의 신랄한 지적에 다들 신음소리만을 흘리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다들 고개를 들지. 이 자리는 자네들을 질책하고자 만든 자리가 아니네. 지금 중요한 것은 이 편지가 어떻게 이곳에 놓여 있는가이지. 남해를 감싼 수많은 결계를 뚫고, 수많은 섬들 중에서도 이곳을 찾아 우리의 이목을 피해 도착한 이 편지 말이야.”

“누가 보냈는지를 알 수 있겠습니까?”

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만 보던 외팔 검사가 나직하게 물었다.


“서울의 김형.”

“그렇다면 편지의 내용은···?”

“인천의 생존자들을 데려간 것은 넓은 아량으로 용서하겠다. 하지만 연옥과 손을 잡는다면 우리를 적대시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인천과 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

“······”

“상당히 오만하네요. 하지만 이 편지의 내용은 마치 오늘 우리가 연옥과 만난다는 것을 알고서 보낸 것 같아요.”


빠드득

분한 듯 남자의 곁에서 주먹을 힘껏 움켜쥔 그녀.


“내용을 보아하니 이건···”

“그래, 이미 이곳 남해의 중심부까지도 놈들의 손길이 뻗어있는 것 같다.”

“······!!”

편지의 내용으로 모두가 어렴풋이 짐작만 하고 있던 것을 입 밖으로 꺼내자 모두들 움찔거리며 눈치를 보았다.


“왜들 그렇게 놀라는 거지? 쁘락치가 있다는 것은 조금 놀랍지만 그뿐이지. 어쩌면 우리가 안일했던 것일 수 있어. 인천을 돕는다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한거야.”

“결국 늦고 빠름의 차이 정도일 뿐, 이렇게 된 이상 저는 연옥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형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자 시형을 필두로 다른 의견들이 속속들이 제시되었다.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고, 우리가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과연 우리를 내버려 둘까요? 도시들이 차례로 정복당하다 보면 마지막의 마지막에 칼끝은 우리를 겨눌 것입니다.”

민정 또한 시형의 견해에 동조하며 말했다.


“조속히 쁘락치를 색출하고 재정비를 시작해야 합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처럼 지금이라도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 둘씩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지나치게 과열되는 분위기를 막고자 남자는 테이블을 쾅 하고 내리쳤다.


정숙!


“자, 그러면 의견이 어느정도 좁혀진 것 같은데 정리를 한번 해보자고. 연옥과 손을 잡아야 하는 것에 이견이 있는 사람?”

“······”

“좋아, 쁘락치 색출은 누가 하겠나?”

“제가 하겠습니다.”

그의 옆에 있던 날카로운 눈매의 여성이 대답했다.

“초인들의 훈련은?”

“저희 남매가 하겠습니다. 수상전 뿐만 아니라 지상전도 염두해두어야 하니 남해를 벗어나 돌아다닌 경험이 많은 저희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준이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민정의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새벽부터 이어진 회의는 이렇게 마무리되고 이제는 수민 일행을 데려올 시간이 되었다.


“그러면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고, 시형 당신은 그들을 데려오세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시형은 빠르게 회의장을 벗어났다.

그래도 어제처럼 우려할 만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야. 혹여나 연옥과의 동맹에 차질이 생기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시형은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 우산도 펴지 않고 빗길을 달려나갔다.


‘하마터면 그들을 볼 면목이 없을 뻔했군.’

목숨을 구해낸 입장에서 이번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면 차마 얼굴을 들 면목이 없었을 것이었다.


‘지금은 대국적으로 보아야 할 때다. 남해가 홀로서기를 하기에는 시대가 녹록치 않아.’


#

덜그럭 덜그럭

폭풍우를 뚫고 달리는 마차.

진창을 즈려밟으며 저택으로 향하는 길.

시형은 몸이 흠뻑 젖는건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마부석에서 미친 듯이 마차를 몰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저택이 눈에 들어온다.


-히이이이잉

말들을 진정시키며 시형은 마차에서 내려 수민이 머무는 저택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이시형입니다. 어제 약속한 것처럼 데리러 왔습니다. 준비는 되었습니까?”

“네. 지금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문을 열고 나온 그들의 모습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자유분방한 모습에서 격식을 차린 모습처럼 말이다.


“정장인가요. 예를 갖추어주어서 감사합니다.”

시형의 입장에서는 상급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기에, 이렇게 이들이 신경써준 모습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별말씀을. 중요한 자리인 만큼, 그리고 정수민으로 온 것이 아닌 연옥을 대표하는 창절로 온 것이니까요.”

“비가 많이 내리고 있으니 다들 마차에 탑승한 이후 출발하겠습니다.”

하나 둘 마차 안으로 들어가자 마지막으로 수민이 탑승하며 물었다.


“시형씨는 같이 타지 않고 왜···?”

“이 친구들이 제 말만 듣다 보니 직접 몰아야 해서요.”

말들을 쓰다듬으며 출발할 준비를 하는 시형은 당연히 자신이 몰아야 하는 것처럼 말했다.


“부담 갖지 말고 편히 쉬시다 보면 금방 도착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마차는 남해의 숨겨진 장소를 향해 바람처럼 질주했다.


#

시형이 이끄는 마차를 타며 창밖으로 바라보는 풍경은 세상에서 색이 사라진 모습과도 같았다.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을 손을 내밀어 따라가다 보면 어느샌가 그 위를 새로운 빗방울이 덧칠한다.


긴 상념의 끝에서 누군가가 수민의 손을 붙잡는다.


“당신 괜찮아요? 오늘 아침도 그렇고 뭔가 기운이 없어 보이는데··· 힘들면 말해요 오늘 일은 내가 대신하면 되니까. 안색이 좋지 않아보여요.”

궂은 날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안색은 보이는 이로 하여금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응··· 괜찮아. 그냥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은 감상에 젖는 것 뿐이니까.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그저 예전 추억이 문득 생각나서 그래.”


덜컹덜컹

폭우로 인해 웅덩이가 파인 도로를 마차가 거칠게 질주한다.

흔들리는 것은 마차인가 수민의 마음인가, 그 무엇하나 알 수 없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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