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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철 님의 서재입니다.

정의구현에 환장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무협

도철
작품등록일 :
2021.02.22 16:47
최근연재일 :
2021.05.21 12:00
연재수 :
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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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09,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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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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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4화

DUMMY

#


그렇게 웃고 떠들기를 한참 수민은 정후가 있는 수련동에 도착했다.


쿠르르릉

쾅쾅


굳게 닫힌 철문 밖에서도 들리는 우레와 같은 천둥소리는 그녀가 얼마나 필사적인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지금 들어가는 건 힘들 것 같은데 저기 가서 벤치에 앉아서 구경하자.“

지은의 말마따나 정후의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화면 앞에 앉았다.


화면 속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뇌제의 현신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대요괴, 인간, 마수. 지금까지 그녀가 싸워온 최강의 적들을 상대로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오히려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유자재로 펼치는 푸른 뇌전. 이제는 완숙을 넘어 독자적인 검로를 창안하는 경지에 이른 그녀는 유리검에는 천뢰를, 등 뒤로는 흉조를 형상화한 뇌전의 투신체를 선보였다.


화면을 통해 이 장면을 엿보는 한 쌍의 남녀는 입에서 탄성을 뱉었다.


”뇌제의 계보를 이엇구나 정후는.“

한눈에 그녀의 본질을 파악한 지은. 그녀는 뇌제를 실제로 본 적이 있는듯한 어투로 정후를 칭찬했다.


”경인이도 살아있었다면 기뻐했을 텐데, 저 나이에 저 정도 경지는 노력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니까.“


”뇌제를 만난 적이 있어?“


”이래 보여도 나 구미호거든?! 당연히 경인이는 기저귀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구.“

아이 같은 모습에 자꾸 그녀의 본질을 잊고 만다. 하긴 구미호라면 그 나이는··· 노코멘트 하도록 하자.


”그래도 아직 갈 길이 멀었어. 천문이 열리기 전이라면 저 정도의 경지로도 걱정이 없겠지만, 이 시대는··· 적어도 지크프리트 정도가 아니라면 곤란해.“


’초월경이 모자라다면 도대체 얼마나 강해져야 하는걸까‘

지금 당장 자신과 일전을 벌여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그녀인데, 지은의 평가가 조금은 박하다고 여겨졌다.


”칠악이 그 정도로 강했던가? 우리가 만난 흉조와 메피스토는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둘을 상대했을 때 그 정도의 압도적 차이는 경험하지 못한 까닭에 수민은 의문스런 눈빛과 함께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상대한 흉조는 봉인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었고, 메피스토 역시 화신체였지. 그리고 그 둘은 고작 칠악의 말석에 불과해.“


”너희가 손에 꼽을 정도로 강한 것은 분명해. 하지만 칠악은 칠선을 상대로 자웅을 겨룬 괴물들이야.“


“막말로 칠선은 칠악을 봉인하는데 그쳤고, 그마저도 대부분 봉인 과정 중 사망하고 말았지. 검성조차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것들이 자그마치 일곱이야.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얼마나 더 강해졌을지,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겠어?”

장난기를 쏙 빼고 선기가 가득한 모습으로 지은은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게끔 하였다.


“기를 죽이려는 건 아니었어. 스스로에 강함에 취해 오만해지지 않을까 걱정되어 한 말이었으니까. 단지 이 시대가 너희들에게 너무 가혹할 따름이지. 그래서 그 균형을 어느 정도 맞추기 위해 나 같은 초월자들이 그자와 계약을 맺고 너희와 함께 할 수 있는거야.”


때로는 진실이 그 무엇보다 가혹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낀 시간이었다. 도대체 우리는 얼마나 더 강해져야 하고, 얼마나 더 희생해야 이 지옥의 끝에 다달을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인간성을 지키면서 악에 맞설 수 있는 걸까. 심연에 맞서기 위해 스스로가 심연에 한 발을 담굴 것만 같은 불안감이 마음속을 맴돌았다.


#

지은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기를 여러 시간.



수련동의 문이 산산 조각나며 먼지 사이로 정후의 모습이 드러났다. 한껏 개운해진 표정으로 밝게 웃는 그녀를 바라보며, 미래에 대한 걱정, 불안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고 현재에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래 기다렸지?”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저물기 시작한 시간이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다는 듯 신경쓰지 말라며 손사래 쳤다.


흐음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자기가 마중 나와줘서 무척 기쁜걸.”

촉촉하게 땀에 젖은 몸으로 수민에게 한껏 섹시함을 과시하는 그녀. 지은이 둘 사이를 가로막으며 끼어들었다.


“그만. 그만.”


“너희들 항상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건 알겠는데 더 늦으면 아리스 언니가 화낼 것 같아.”

그녀는 정후와 수민의 해후를 막으며, 영문도 모르는 정후를 데리고 탑으로 향했다.


“이게 무슨 일인데?”

상황파악이 덜된 그녀는 수민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가보면 알게될 거라며 이동에 박차를 가했다.


피슈웅


그 먼 거리를 5분도 채 걸리지 않고 날아간 곳은 탑의 정상.

마천루에서는 금발의 여성이 한껏 눈살을 찌푸리는 중이었다.


“헤헷. 금방 데려온다는 게 좀 늦어버렸넹?”

어떻게든 웃음으로 무마해 보려는 지은. 선기가 넘쳐 흐르던 방금의 모습은 어디로 간 것일까. 구미호의 자존심은 푸른 하늘 너머로 팔아치운 지 오래. 엄마에게 혼나기 직전의 소녀처럼 그녀는 움츠려들며 수민의 뒤로 숨었다.



“됐고 강시부터 꺼내 봐.”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을 하는 그녀의 모습엔 놀랍게도 위화감이 존재하지 않았다.


“어디 보자.”

포켓을 흔들어 이리저리 뒤적거리던 정후,


아!


“여기 있네.”




머리 끄댕이가 붙잡혀 나온 강시. 메피스토의 조종은 당하지 않고 있지만, 악마 특유의 사특한 기운이 넘실거리는 강시는 ’마인(魔人)‘ 그 자체였다, 그런 강시를 만져도 보고 툭툭 쳐보기도 하며 끝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용액을 쏟아붓는 그녀.


“누가 악마 새끼 아니랄까 봐 추잡한 짓이란 짓은 다 해놨네. 대충 초인 몸뚱이에 아만타티움, 피닉스를 섞어놓은 것 같은데, 신기한 건 이놈 영혼이 텅 비었단 거고···.”

해명을 요구하는 그녀의 눈빛에 수민은 맞닥뜨렸을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흐음. 본래부터 이지를 상실한 상태였다 라. 원래는 심장에 현자의 돌을 심어놓을 생각이었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겠네.”


“지은아 이제, 그만 숨어있고 나와보렴. 필요할 것 같아서 부른 건데 자꾸 숨으면 괴롭히고 싶어지잖아?”


히이이익


침을 꼴깍 삼키며 조심스레 그녀의 곁으로 향하는 지은의 발걸음은 사형집행을 앞둔 사형수와 같았다.


“내···내가 어떻게 도우면 될까?”

한껏 긴장한 듯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하는 지은.


“지금부터 이놈의 텅 빈 육체에 현자의 돌을 심을 거야. 그리고 현자의 돌을 매개로 네가 초혼을 진행하는 거지.”

“영혼이 없다면 영혼을 주입해주면 되는 거 아니겠어? 설마 구미호가 영혼 하나 불러오는 것도 못 할까나.”

지은의 자존심을 살살 긁는 그녀의 말에 단순함의 상징 지은은 발끈했다.


“당연하지! 이 몸이 이래 보여도 주술의 기원인데, 그 정도는 아-주 쉽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손쉽게 아리사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지은을 보며 이제는 그냥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바보는 바보였을 뿐.


순식간에 그녀의 꼬리들이 허공을 유영하며 강시 주위를 맴돌기 시작한다. 구미호의 꼬리는 최고의 영매. 아홉 개나 되는 꼬리를 촉매로 하는 초혼의식. 얼마나 대단한 영혼이 이곳에 이끌려올지 다들 기대하는 눈치다.



오라이, 오라이.

연옥을 배회하는 슬픈 영혼이여.

그 누구보다 붉은 피를 가진 자여.

가슴 깊이 새겨진 한을 풀어내거라.

생전 누구보다 찬란하게 빛나던 아름다운 그대.

다시 한번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라.



허공에서 들리는 망자들의 외침. 메피스토에 의한 절규가 아닌 구원을 바라는 간절함이 대기를 울린다. 이곳에 모이는 일곱 빛깔의 영혼들. 무지개 같은 아름다운 모습에 모두가 한껏 기대감을 높힐 때, 영혼들이 빛나는 카드로 그 모습을 달리 했다.


사람들의 앞을 떠다니는 수십 개의 카드. 잘 나가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모두가 지은을 쳐다보자, 머쓱한지 귀를 파닥파닥 거릴 뿐이다.


“시...실패한 거 아니거든! 주술도 트렌드에 맞게 변하다 보니 요즘 유행하는... 뽑기 방식으로 변형시킨 거야!”

어이가 없는 상황에 모두가 벙쪘다.


“이 중에 하나를 고르면 되는 거야?”

눈앞을 날아다니는 형형색색의 카드들은 마치 예전 모바일 게임의 뽑기 시스템을 연상시킨다.



“꽈···꽝은 없거든! 그렇게 쳐다보지 마!! 다들 대단한 영혼들만 엄선했다구.”

매우 변명처럼 들렸지만 어쨌거나 결국 뽑기는 해야만 했다.


“그럼. 누가 뽑을래?”

큰 기대는 이미 포기했다는 듯 맥빠진 목소리로 묻는 아리사.


“아무도 안 뽑으면 내가 뽑을게. 황금빛 카드는 항상 실망시키지 않지.”

사실은 무척이나 뽑고 싶어 했던 듯 정후는 눈앞의 반짝이는 백금색 카드를 집어 들었다.


두둥


모두의 시선이 정후의 손으로 집중되고 그녀의 손에 잡힌 카드가 눈부신 황금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파아앗


밝은 빛은 강시의 몸으로 연기처럼 빨려들어 갔다. 모두가 기대감을 가지고 바라보자 강시의 눈에서 영롱한 빛이 일렁인다.


오오오


대박의 조짐이 보이자 다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강시를 바라보았고 강시의 모습이 점차 변형되었다. 금발(金髮), 금안(金眼)의 사내가 눈을 떴다.


“금발?”

“금안?”

“서양인? 갑자기?”


영락없는 서양인의 외모에 다들 지은을 바라보며 해명을 요구했다.


“외국어는 자신 없는데···.”

수민의 힘없는 목소리를 필두로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걱정하지마. 통역 알약을 하나 먹이면 해결되는 일이야. 중요한 건, 이 영혼이 어디서 굴러먹던 영혼이냐 그것이지.”

홀로 멘탈을 부여잡고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아리사의 모습에 다들 정신을 차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몸이 동양인이라고 꼭 영혼까지 동양인일 필요는 없잖아?”

자신이 뽑은 영혼이기 때문일까, 정후는 말을 아끼지 않고 좀 더 지켜보자는 눈치였다.


“아아.”

“흐으으으읍.”

“흐아~”

드디어 강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과연 어떤 영혼이 깃들었을까, 누가 되었든 강시의 육체가 엄청난 까닭에 사실 큰 상관은 없었다.


“이승의 공기는 프레쉬 하구만!”

내뱉은 첫 마디부터가 범상치 않아 보인다.


“한국어를 할 줄 안다고? 서양권 영혼 아니었어?”

도대체가 그 무엇하나 예상한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 게 없기에 수민은 당황하여 지은에게 따지듯 물었다.


“그래, 너희들이 본인을 이곳에 불러내었는가. 궁금한 게 산더미일 텐데, 다 물어보시게. 우선 한국어는 연옥에서 사귄 친구에게 배웠네, 강림도령이라고 하네만. 다음.”


“자기소개를 좀 부탁하지.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인지라 우린 강한 동료가 필요해서 말야. ”

계속해서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것을 선택한 수민의 물음에 그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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