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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철 님의 서재입니다.

정의구현에 환장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무협

도철
작품등록일 :
2021.02.22 16:47
최근연재일 :
2021.05.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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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9,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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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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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DUMMY

#


진홍색 궁장을 입은 여인이 부채를 촥 하고 펼치며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보자.


“앗!! 너희는?!”


-쿵!


깜짝 놀라 의자 뒤로 넘어진 그녀는 금새 일어나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차...창절, 마녀! 너희가 여긴 어떻게?!”

놀라서 말까지 더듬는 그녀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눈이 휘둥그레진 수민과 정후는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라니, 초대받아서 왔지. 그나저나 폭염의 무녀가 사주팔자를 보고 있었다니···.”

경계하기보다 부끄러운 마음이 더 컸던 듯 그녀는 귀가 새빨갛게 물들어 홍당무 같은 모습이 되었다.


“남이야 뭘 하든! 흐···흥!”

토라진 그녀와 이 상황을 영문도 모른 채 지켜보는 일행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어···어쨌든! 놀리러 온 거면 저리 가!”

“아니, 일단은 우리도 점을 보러 오기는 한 거라···.”

“···뭐가 궁금한데? 이래뵈도 나 잘나가거든!”

내심 자부심이 있었던 듯 그녀는 더듬대는 말투와 달리, 자신있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일단은 나부터.”

처음부터 관심이 있었던 진철은 냉큼 자리에 앉아 점을 부탁했다.


“내 인연은 언제쯤 찾아올지 궁금해, 아무래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위치라서 말이야.”

“여기 수정구에 손을 올리고 가만히 있어 봐.”

“음···?”

까맣게 물드는 수정구. 아무리 보아도 수정구는 빛조차 들지 않는 어둠으로 가득했다.


“뭐지? 해석이 필요한 것 같은데?”

“음···, 당신 보기와는 다르게 여자 복이 없네.”

조용히 허를 찌르는 한마디에 진철은 몸을 휘청였다.


“그게 무슨 소리지,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말을 해줬으면 하는데.”

“쉽게 말하자면 그거지, 검정색을 봐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 여기까지만 할게. 다음!”

털썩 무릎을 꿇고 좌절하는 진철을 옆으로 치우며 정후가 자리에 앉았다.


“뭐가 궁금해?”

“당연히···, 배우자”

그녀의 물음에 주위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추고 정후가 대답했다. 얼굴을 가까이 마주보며 속닥거리는 두 여자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수정구에 손을 올렸다.


-뾰로롱


수정구에 누군가의 실루엣이 아른거리고, 그 모습을 본 정후는 헤벌쭉하게 웃으며 히죽거렸다.


“다음은 나라네.”

그녀가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나가자 롤랑은 때아닌 진지한 모습으로 그녀의 앞에 섰다.


“그다지 미신을 믿는 편은 아니지만, 조금 걱정스러운 면이 있어서 물어보러 왔네.”

“예 어르신, 무엇이 그렇게 궁금하신가요. 제 능력 내라면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사실 이곳에서의 만남이 갑작스러워 그렇지, 민정은 이 일에 대해 프로의식을 가지고 임하는 사람이다. 미모의 점술사라는 말이 들려올 때마다 남몰래 좋아하던 그녀는 당황스러운 사람들을 맞이했다고 해서 흐트러지는 아마추어가 아닌 것이다.


“나는 생에 미련이 없지만···, 저기 저 시큰둥하게 앉아있는 저놈이 걱정되네. 도달한 경지에 비해 너무나 인간적이라 누구보다 상처가 많은 아이지. 가까운 미래를 보여줄 수 있겠나?”

진지한 물음에 그녀는 감히 경시하지 못하고 심호흡을 한 뒤 그의 물음에 답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제가 보여드리는 미래는 수많은 가능성의 편린 중 하나일 뿐이에요.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정도만 생각하셔야 해요. 애초에 운명 따위를 믿지도, 거기에 휘둘릴 시시한 남자도 아닐 테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그녀의 손끝에서 기이한 기운이 일어나며 수정구를 감쌌다.

-스르릉


수정구에 나타난 것은 시체로 이루어진 산 위에서 부러진 창을 움켜쥔 채 구슬프게 울고 있는 한 남자였다. 너덜너덜한 몸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울부짖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쓴 웃음을 내비쳤다.


“역시 이런 미래란 말이지···.”

수정구가 보인 미래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하였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황한 그녀 역시 황급히 천으로 수정구를 가리며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그...미래는 정해진 게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이건 어디까지나 가능성!! 응!! 가능성에 불과하니까. 그리고 누가 이런 곳에서 점을 보고 심각하게 고민하겠어요. 아이참, 이게 맛이 갔나 왜 이런대 정말!”

수정구를 발로 뻥 차버리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절래절래 흔드는 그녀의 모습에 롤랑은 그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날 뿐이었다.

힐끗 수민을 쳐다보며 물러나는 그의 마음은 심란하기 그지없었다.


운명을 거스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데, 왜 이 가여운 아이들이 기구한 팔자를 가진 것일까. 이보다 어떻게 더 노력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들이 지나온 길이 가볍지 않은데, 매번 느끼지만 하늘이 무심하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가 없는 것이다.


“한번 피워 보시겠어요 염감님?”

그의 표정을 읽은 진철이 인근 벤치에 앉아 연초를 권하고, 롤랑은 말없이 손을 내밀어 조용히 불을 붙일 따름이었다.


-화르륵

푸른 하늘과 달리 그의 속은 담배와 같이 타들어가고

-후우

내뿜는 연기는 심란한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무슨 걱정을 그렇게 해요. 돌팔이 아닙니까, 내가 겪어본 운명이라는 놈은 딱 이겨낼 수 있을 정도의 시련만 줬어요. 그리고 수민이가 멘탈은 좀 부실해도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잘 해낼 거라고 난 믿어요.”

“손주 같은 아이라서 더 마음이 쓰이는거지···. 적어도 내가 겪어본 운명이라는 놈은 말야 아주 개같은 놈이지. 항상 비정한 선택을 강요하지. 그리고 그 선택의 끝에 남는 것은 텅 빈 두 손 밖에 없었다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멈출 수 없다는 걸 알잖아요. 죽는게 무섭다고 세상을 괴물들 손에 넘길 수는 없는 거잖아요. 끝이야 어찌 되었든 우리는 최선을 다할 수 밖에요.”

예나 지금이나 평화는 항상 젊은 영웅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만국 공통 불변의 진리인 셈이다.


#

그렇게 각자의 고민거리를 마음속에 담아두며 멍하니 앉아있으니 안쪽에서 수민이 걸어나왔다. 그 뒤로 종종걸음으로 강아지처럼 눈치를 보며 따라오는 그녀가 입을 열었다.


“오늘 복채는 안 받을 테니까···, 너무 신경쓰지마.”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무안한 표정을 짓는 그녀.


“점 한번 본 걸 가지고 왜들 그렇게 축 처져있는거야! 갑작스럽게 찾아왔는데 친절하게 맞아줘서 고마워.”

정후가 예를 표하며 수민과 진철의 허리를 숙이게끔 하였다.


“거기 인상 좋게 생긴 남성분은 안 생긴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원래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게 애인이니까!”


“그걸 왜 이렇게 크게 말하는 겁니까?”

조금은 부끄러운 듯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진철은 사람들의 시선을 회피했다.


“하긴 여자친구가 없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닐세. 지금의 자유를 만끽하게네. 저기 수민이만 봐도 보이지 않는가. 벌써부터 잡혀사는게···”


-쯧쯧


“어르신!”

“할아버지!”


혀를 차며 뒷짐을 지고 걸어가는 롤랑의 뒷모습을 향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목소리가 거리에 울려퍼졌다.


“부디 저들에게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민정은 지금 저들의 활기찬 모습이 계속되기를 빌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출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 수민은 인근의 식당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딸랑

가게 문을 열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식사 중이엇다.


“여기에 앉지.”


-휘이잉


넓직한 테이블, 소금끼가 섞인 바닷바람이 반쯤 열린 창문 사이로 스며든다.


“주문하시겠어요?”

“참치 타다끼 하나, 오늘의 초밥 넷에 생맥 네 잔이요.”

주문을 간단히 마치고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의 형상을 한 영물들이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섞여있었다.


“정말 신기한 곳이란 말이지, 섬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인간과 가치관이 완전히 다른 존재들이 이렇게 사이가 좋을 수가 있다는 게 정말 믿기지가 않아.

진철이 진심으로 감탄하며 주위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렇게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도 정말 놀랍고 말이에요. 밖에 상황에 비하면 다른 세상 같아요 정말.”

“그래도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야. 서울 같았으면 정말···, 상상만 해도 아찔하네. 그 삭막한 분위기와 축 처진 공기는 정말 숨이 턱 하고 막혔는데 말이야.”

다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어느덧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와···. 설마했는데 참치를 먹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윤기가 좔좔 흐르는 영롱한 자태. 소고기같이 붉은 그 모습에 모두들 군침을 삼켰다.


-휘릭


다들 참치의 모습을 보고 감탄하는 사이 롤랑은 누구보다 빠르게 젓가락으로 참치를 집었다.


“아니, 음식을 눈으로 먹나?”

회 한점에 생강과 와사비를 곁들여 입에 넣는 그 뻔뻔함에 다들 질 수 없다는 듯 서둘러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음! 역시 적당히 기름진 게 딱 좋네요.”

그녀가 참치를 오물오물 씹으며 상큼한 미소를 짓자, 수민 또한 잔을 들어 황금빛 맥주로 목을 축였다.


-꿀꺽꿀꺽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맥주의 청량감은 그동안의 피로를 모두 날려버리는 듯 하였다.


-크-하!


“이거, 일품이네! 난쟁이 녀석들 맥주보다 더 맛있는 것 같은데?”

“타다끼도 맛을 한번 보시죠.”

참치 본연의 맛을 위한 듯 조금은 심심할 수 있는 간이 씹는 순간 폭발하는 육즙에 의해 맛의 조화를 이루었다.


“크루즈에서 낚아보려던 참치를 이렇게 먹게 되다니···.”

“자기야, 낚았던 것도 부시리였다며. 이렇게라도 먹을 수 있는 게 어디야.”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수민의 옆구리를 콕 찌르며 그녀는 웃음꽃을 활짝 피웠다.


#

수민 일행이 즐거운 한때를 보낼 무렵, 섬의 중심에서는 시형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보고드린 대로,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습니다. 연옥의 개입이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인천에 생존자는 전무했을거라 생각합니다.”

“시형, 냉정하게 당신이 판단하기에 연옥과 손을 잡는다면 이 판을 뒤집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오히려 이곳마저 불타오르게 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스럽네요.”

걱정스러운 그의 물음에 시형은 침묵을 지켰다.


“현재로서는··· 판을 뒤집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역으로 우리마저 전장의 화마가 덮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반격의 불씨가 될 수는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제가 지켜본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강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평상시대로라면 그가 이렇게까지 누군가를 비호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시형은 그들에게 빠져든 것이었다.


시형은 잠시 숨을 한 번 들이킨 후 비장한 얼굴로 말을 잇는다.

“이 시대에 다른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칠악의 어둠은 차갑고 깊지만, 과거 칠선이 그랬듯이 그들은 이 땅에서 다시 한번 어둠을 몰아내고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제독의 의견은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더 고민해 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선택에 따라 남해의 운명이 결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몇 세기 동안 살아온 본인은 이들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판단을 보류하고 싶군요.

인천에서부터 오느라 고생이 많았을 텐데 그만 나가보도록 하세요.”


“존명.”

보고를 마치고 자리를 벗어나는 시형의 마음은 뒤숭숭해졌고, 결국 내일이 되어서야 결정이 날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은 답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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