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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624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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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21,531

작성
22.07.07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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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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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글자
25쪽

향상심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60화



“상혁아 밥 먹어!”


할머니의 목소리가 조용한 아침을 일깨웠다. 매콤하면서도 단 내음이 나는 걸 보니 오늘 아침은 된장찌개인 것 같다.


“엄마 일어나요!”


밥을 먹기 위해서는 우선, 날 꼭 껴안고 있는 엄마의 품에서 탈출해야 한다.


나도 벌써 8살인데 언제까지 껴안고 주무실 예정인지 모르겠다.


애들한테 들키면 마마보이라고 놀림을 받겠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엄마는 평소에 고생을 하시니까 스트레스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꿈나라에 상주중이던 엄마가 눈을 떴다.


“아들... 잘 잤어?”

“네 엄마. 밥 먹어요.”

“그래. 흐아아암. 할아버지는?”

“새벽에 나간 것 같은데요?”


할아버지는 자유로운 영혼답게 새벽부터 집을 나섰다.


아침을 안 드시고 나가셨지만 걱정은 없다. 친화력으로 카피바라를 상회하는 할아버지라면 길 가는 사람들을 아무나 붙잡아도 아침 정도는 얻어 드실 수 있을 테니까.


엄마와 내가 밥상에 둘러앉자 할머니가 수저를 드셨다.


아주 오랜만에 맞이한 평범한 아침이었다.


“오늘도 우리 손주는 밥을 맛있게 먹는구나.”

“맞아요. 덕분에 오늘도 힘내서 일할 수 있겠어요.”


매일 아침마다 보는데도 볼 때마다 훈훈한 미소로 나를 보는 두 사람이다. 밥을 먹는 건지, 나를 먹는 건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식사를 마치고 엄마와 할머니는 바로 집을 나섰다.


두 사람 다 사장님이다 보니 아무래도 출근을 일찍 할 수밖에 없다.


그러고 나면 집에 나 혼자 남게 되지만 아무런 문제는 없다.


이 몸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여타 초등학생과는 다르니까.


우선 반찬을 정리하고 가볍게 설거지를 마친 뒤,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그리고 집안을 돌며 미리 작업을 해둘 일거리가 있나 확인한 뒤 학교에 갈 채비를 한다.


짤막한 신장 때문에 집안일이 불편하긴 하지만 문제는 없다. 집안일은 신장이 아닌 심장으로 하는 거니까.


그렇게 오늘도 완벽한 준비를 마치고 등굣길에 오른다.


걷다보니 부모의 손을 잡고 등교하는 초등학생들이 보였다. 저학년의 경우 부모와 같이 등교를 하는 경우가 꽤 있다.


회귀 이전의 나였다면 혼자서 하는 등교 때문에 쓸쓸해졌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 누적 나이만 거의 마흔이다. 그럴 나이는 이미 졸업했다. 오히려 엄마의 부담을 덜어주었다는 사실이 뿌듯한 편이다.


게다가 어차피 조금만 있으면 혼자가 아니게 된다.


나를 발견한 사람들이 인사를 하며 다가오기 때문이다.


“상혁아 좋은 아침이네?”

“네 좋은 아침이네요. 수아 어머니. 오늘 입으신 체크무늬 원피스가 되게 잘 어울리시네요.”

“어머! 맞아. 이번에 새로 샀어. 상혁이는 정말 똑똑하구나?”


한 보, 한 보. 내가 내딛는 한 걸음마다 사람들이 모인다.


“상혁아! 오늘도 혼자 가는 거니?”

“네. 봉준이 어머님. 아, 한열이 이모님도 좋은 아침이네요?”


정점에 이른 데이터베이스가 열심히 일을 할 때마다 학부모들이 환희에 젖는다.


공부로는 이미 학교에서 제일이요, 빵집도 이미 삼길동 부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게가 되었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먼저 아는 척을 해오니 기쁠 수밖에.


학교에 도착할 때 쯤 되면 이미 하나의 무리가 형성되어 있다.


괴롭힘을 당했던 아이는 어느새 자연스럽게 사람을 끌어 모으는 구심점이 되었다.


나는 자식을 잘 부탁한다는 무수한 요청을 들으며 학교로 들어갔다.


인기 있는 자식은 학교생활도 평범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또래 아이들한테는 동경을, 어른들한테는 애정을.


학생과 선생 사이 새로운 계급이 하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모두에게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특히 단체로 활동하는 시간이 되면 그러한 경향이 더욱 잘 드러난다.


“상혁이는 나랑 같이 밥 먹을 거야!”

“아니거든! 나랑 같이 먹을 거거든?”


보아라. 지금만 해도 애들이 내 양팔을 붙잡고 거열형을 집행하고 있지 않은가.


아마 내가 평범한 꼬마였으면 이미 반으로 갈라지고도 남았으리라.


“애들아. 그러다 상혁이 다치겠어!”


공아린 선생님이 후다닥 뛰어와 나를 구출해내셨다.


“다친 데는 없니?”

“네. 선생님. 괜찮아요.”

“이 녀석들! 아무리 상혁이가 좋아도 그렇지. 친구를 곤란하게 만들면 나쁜 어린이에요!”


학기가 시작한지 벌써 2달이 되었다고 제법 선생님 티가 났다.


“모두가 다투지 않도록 상혁이는 선생님과 같이 밥을 먹어요.”

“우우우. 선생님은 맨날 상혁이랑 같이 드시잖아요! 치사 빵꾸!”

“어허! 선생님한테 못하는 말이 없네요!”


... 어쩌면 내가 잘못 생각한 걸지도 모르고.


보통 반대인 경우가 많지 않나? 선생님이 특정 아이만 예뻐하면 편애한다고 난리치는 건 본 적이 있는데.


그 아이를 다른 학생들한테도 공유하라고 난리치는 건 또 처음 보는 것 같다.


‘이런, 이런. 인기인의 삶은 피곤한 법이구만.’


나는 한 손을 내밀며 분란을 일으키는 이들을 잠잠케 하였다.


“그럼 우리 다 같이 먹는 건 어떨까요?”


인기인의 숙명이다. 모두의 것이 될 수 있지만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급식실 구조상 그게 안 되지 않을까?”


아린 쌤이 조심스럽게 애로사항을 제기해보았지만 문제 될 건 없다.


“교장 선생님께 말씀드려 볼게요. 어떻게든 해주시겠죠 뭐.”


학교 최고 권력자가 나를 끔찍하게 여기는데 안 될 건 또 뭐가 있단 말인가.


잠시 후, 우리 교실로 급식 통이 배달되었다.


급식실이 완공되며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배식 방식이지만, 우리를 위해 특별히 준비해 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책상을 둥글게 붙여서 다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반찬을 받아와 자리에 앉았다.


급식을 담당하시는 분께서 국 자리에 고기를 담아주시려고 했지만 사양했다.


원래 잘난 녀석은 어떤 일이든 수혜를 많이 받기 마련이지만, 동시에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나의 사소한 행동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모른다.


“상혁아 이거 봐라!”

“내꺼도! 내꺼도 봐봐!”


밥을 퍼와 자리에 앉으니, 주위에 앉은 반 친구들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자랑하기 시작했다.


끝부분에 듬성듬성 빈 공간이 있는 숟가락, 이름하야 포카락이다.


포크 숟가락 aka 포카락은 주로 젓가락 사용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주로 쓰는 식기이다.


이제 막 젓가락질을 숙달하고 있는 초등학생이 꺼낼만한 물건은 아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포카락 붐이 일어 너도 나도, 포카락을 사용하게 되었느냐.


‘나 때문인 거 같지...?’


바로 내가 즐겨 사용했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쓰던 기억 때문에 최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애들이 금세 관심을 가지고 따라하고 있다.


인기인의 삶이란 이렇다. 가만히 있어도 유행을 선도하기 마련이다.


다만 곤란한 것은 그 유행이 언제나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라는 점이다.


노페 패딩만 봐도 알 수 있다. 고작 패딩 하나 사기 위해 얼마나 많은 학부모들의 등골이 부숴졌단 말인가.


포카락도 마찬가지다. 어린 시기에 젓가락질을 소홀히 하는 경우, 커서도 젓가락질을 잘 못하게 된다.


그럼 주위 사람이 밥상에 불만 있냐고 한 마디 하거나, 옆집 아저씨가 뭐라 그럴 터.


아무래도 포카락은 당분간 금지시켜야 할 것 같다.


“애들아 앞으로 포카락은 금지!”

“왜? 어째서?”

“젓가락질은 대뇌를 자극해서 발달을 돕거든, 우리 나이는 아직 충분히 발달을 해야 하는 나이고.”


어려운 말에 애들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래도 불공평하다는 것은 알아차린 것 같다.


“상혁이 너는 계속 쓰고 있잖아.”

“나는 뇌가 다 발달된 상태라 써도 돼.”

“그게 뭐야!”


아이들의 원성에 어쩔 수 없이 젓가락을 꺼내들었다.


원래 내로남불을 좋아하긴 하지만 애들 상대로 그럴 정도로 꼰대는 아니다.


“히잉. 그럼 이 이상한 숟가락은 어쩌지?”


애들이 포카락을 보며 울상을 지었다. 모처럼 새로 샀는데 쓰지 말라니까 당황한 모양이다.


“새로 사줄게. 아니면 우리 집 빵이랑 바꿔 주던가.”


어른이라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그 제안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와! 빵! 나 빵으로 먹을래! 엄마한테는 잃어버렸다고 하면 되겠다. 히히.”

“흐엉. 나는 포카락 없어. 어엉엉.”


아차. 얘들이 감성에 충만한 어린이라는 걸 까먹고 있었다.


울먹거리는 애들을 찾아가 그 애들한테도 다른 종류의 빵을 주겠노라고 설득을 해야만 했다.


“왜 쟤는 포카락도 없는데 빵을 받아? 불공평해.”


맙소사. 한 곳을 진정시키니, 다른 한 곳이 말썽이다. 고장난 하수관을 혼자서 고치는 기분이 들었다.


“너는 포카락도 없잖아!”

“나도 빵 좋아해!!!”


결국 애들끼리 누가 누가 목소리가 큰지 대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통 이런 소동은...


“으아아아아앙!”

“싸워라! 싸워라!”

“선생님! 얘들 좀 봐라요!”

“상혁아 밥 먹고 공중제비 보여줘!”


대혼돈을 야기하고 만다. 이것이 내가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했던 이유다.


마음대로 무언가를 하기에는 나란 존재는 너무 치명적이었으니까.


나는 침착하게 두뇌한테 해결 방안을 요구했다.


‘오른쪽을 보십시오.’


오른쪽을 보았다. 공아린 선생님이 당황한 듯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그냥 우시면 됩니다.’


그랬다. 나 박상혁은 삼길초 최고의 인풋이자, 절대적 인기의 소유자이지만 육체적 나이는 고작 8살에 불과하다.


혼자서 이 혼란을 수습할 아린 쌤의 파이팅을 기원하며... 고개를 숙이고 우는 척을 시작했다.


“으아아앙. 다들 왜 그래.”


아린 쌤의 혼란이 2배로 증가했다. 내가 어떻게든 수습하리라고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맘 편히, 아린 쌤이 분신술을 써가며 종횡무진 아이들을 달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여하튼. 인기인?의 삶이란 이렇다. 시끌벅적하고, 살짝 피곤하지만 잔잔한 하루보다는 즐겁다.


1회차 때 지옥 같던 초등학교 시절과 비교하면 180도 딴 판이다.


대놓고 차별을 하는 교사도 없고, 어머니회도 활개를 못 치니 즐거운 초등학교 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다.


새삼 실력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이래서 사람이 힘이 있어야 한다.


힘 있는 사람이 어떤 의사를 가지느냐에 따라 내가 있는 곳이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언제나 천국에 머무르기 위해선 바로 내가 그 힘 있는 존재가 되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정점의 DNA를 받은 것은 그야말로 천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안주할 생각은 없다.


지금도 인기인으로써의 삶을 구가하고 있지만 위에는 위가 있는 법이니까.


향상심. 보다 나은 상태를 추구하려는 마음. 정점을 노리는 자에겐 향상심만큼 중요한 게 없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방향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고치거나, 장점을 더 발전시키거나.


나는 두 가지 방향을 모두 소홀히 하지 않고자 한다.


우선 문제점을 고치는 건 장점을 발전시키는 것보다는 쉬운 축에 속한다.


사람이 워낙 완벽한 탓에 흠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여서 말이지.


고칠 게 거의 없다는 소리다. 하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대표적인 예시로 ‘김동규’를 들 수 있다.


‘김동규’라는 인물을 방치하고, 주변 환경을 잘 조성하지 못한 결과 공부빵 저격 사건이 일어났던 거니까.


물론 주변의 시기와 질투는 일종의 자연재해와 같다.


아무리 잘 처신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너무 잘난 이상 피하기 어렵다.


그래도 피해 범위나 규모 정도는 줄일 수 있었다.


동규를 이미 단물 다 빠진 3류 악역으로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공부빵 저격도 한낱 스캔들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더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예초 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내 실적을 폄하하고, 활동을 방해하는 잡초들한테 제초제를 붓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자근자근 밟아주고자 한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절망과 고통을 안겨줄 수 있을지를.


다행히도 내가 꽃밭만 구르던 사람은 아닌지라, 어떻게 해야 사람이 좆같은지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격언에 그런 말이 있다.


‘누군가가 너를 이유 없이 싫어한다면 좆같아 할 만한 이유를 꼭 하나 만들어 줘라.’


나는 거기에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이왕이면 자주 마주칠수록 좋다.’


점심을 다 먹고 교장실로 마실을 나가, 교장에게 내 의사를 전달했다.


“요새 김동규 선생님을 자주 못 뵙는 것 같아서 서운해요.”


그 말에 교장은 살짝 놀란 눈치다.


“음... 내가 오해한 게 아니라면 둘이 사이가 안 좋지 않았니?”

“에이. 무슨 소리에요. 제가 언제 선생님들이랑 각 세우는 거 보셨어요?

“... 없지.”


대답하는 교장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굳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꾹 참는 눈치다. 사람 무안하게끔.


“그래서 학교 측에서 알고 계신 게 있으면 도와주셨으면 해요.”


물론 겸양을 떤 말이다. 날 것 그대로 해석하자면 ‘니들이 뭘 하고 있는지는 알겠는데, 그거 하지 마’라는 소리다.


“그래도 괜찮을까?”

“물론이죠. 기왕이면 아주 그냥 딱 붙을 일이 많았으면 좋겠네요.”

“... 그러도록 하마. 참고하지.”


애초에 내가 기분 나쁠까봐 마주칠 일이 없게끔 일정을 조절했던 것이다.


그러니 내가 원한다는 쪽으로 일정이 재조정 되는 것은 당연한 처사였다.


내가 의견을 피력하고, 하루가 지나지 않아 1학년 부장 김동규를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그가 내 전용 공부방에 파견된 것이다. 명목은 일단 자습 지도 교사란다.


“오랜만에 뵙네요. 김동규 선생님.”

“그래. 오랜만이다.”


꽤나 침착한 대응이다. 그도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온 것 같다.


그럼 조금 더 흔들어주는 수밖에.


“김동규 선생님 연필 좀 깎아 주세요!”


동규가 경멸어린 시선을 보낸다. 가당치 않다는 듯 헛웃음도 지었다.


“연필 정도는 스스로 깎는 게 어떠니?”

“아~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그런가? 팔이 아파서 못 깎겠어요.”


나와 동규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잠시 물끄러미 나를 보던 동규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나는 여기에 연필을 깎으러 온 게 아니란다.”

“그래요? 이상하다. 일단 알겠습니다.”


‘일단’이라는 말에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도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인지 퍽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그러나 그 표정이 일그러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갑작스레 교실에 교장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상혁아 급한 일이라니. 무슨 일이냐?”

“동규 선생님이 연필을 안 깎아줘서 공부를 못하겠어요.”


교장은 허탈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문자로 겁나 급한 일이 있다고 부르더니, 고작 이거 때문이었냐고 묻는 것만 같다.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런 상황이면 앞으로도 부를 일이 종종 있을 것 같은데요?”


교장은 등신이 아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정도는 단박에 이해하고도 남았다.


여기서 내 편을 들어 동규를 짓누르지 않는다면 주구장창 호출해 귀찮게 할 거라는 내 의사를 이해했을 것이다.


물론 교장도 호구는 아니다. 그래도 학교의 최고 권력자인데 동내 멍멍이처럼 오라 가라 하면 기분이 나쁘겠지.


실제로 지금 교장의 얼굴도 울그락불그락 변하고 있다.


“교장 선생님이 저번에 이야기 하셨던 대회가 뭐였죠? 서울에서 주관하는 수학 대회가 있다고 그랬던 거 같은데.”

“... 서울시 영재 교육 수학대회 말하는 거니?”


역동적이던 교장의 얼굴색이 잠잠해졌다. 아까까지 파랑과 빨강이 뒤섞여 헐크 같았다면, 이제는 주황색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네. 주니어 올림피아드 전에 컨디션 조절 겸 나가보라고 권유하셨잖아요.”

“그랬지. 네가 매몰차게 거절하기도 했고. 그런데 설마 그 대회에 나가는 걸로 나를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 경기도에서 열린다는 대회가 말하기 대회였나?”

“... 콜.”


거래가 체결되었다. 교장이 원하던 대회를 두 곳 나가는 것으로, 교장은 전적으로 내 편을 들어줄 것이다.


나는 내 맘대로 깽판을 칠 수 있어서 좋고, 교장은 커리어를 쌓을 수 있어서 좋고, 동규만 죽어나가게 생겼다.



“김동규 선생, 잠깐 이야기 좀 하지.”


두 사람은 복도로 나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문에다 귀를 가져다 댔다.


“웬만해서는 상혁이가 시키는 대로 해주게.”

“아니 교장 선생님마저 그러시면 어떡합니까?”

“그럼 내가 이 짬에 계속 여기를 왔다갔다라도 해야 된다는 말인가! 하라면 그냥 좀 하게!”


동규가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상대는 교장이다. 애초에 상대조차 성립하지 않는다.


빠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낮은 음성이 복도에 깔렸다.


“교육부에 신고할 겁니다.”

“그 쪽은 교류회 회장님이 꽉 잡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자신 있나?”


정적이 흘렀다. 그 정도 자신은 없는 모양이다. 결국 동규가 한 발자국 물러나 제안했다.


“저 말고 다른 선생들 많지 않습니까.”

“다들 바쁘다는 군.”

“하. 그럼 저는 안 바쁩니까? 학년부장 일이 장난이에요?”


이번에는 교장이 당황할 차례였다. 아무리 무시를 당하고 개쪽을 당한다지만 그는 학년부장이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기 마련이다.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는 것 같아, 은근슬쩍 대화에 끼어들어가기로 했다.


“나는 동규 쌤이 좋은데~ 다른 사람은 싫어요!”


문 너머로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이 화살이었다면 문에 타다닥 박혔을 것이다.


“... 그렇다는데 어쩔 건가.”

“차라리 그만두겠습니다. 이런 취급을 받을 거면 다른 곳으로 옮길랍니다.”


동규의 비장의 한 수가 등장했다. 하지만 그 역시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그럼 저도 김동규 선생님 가신 학교로 전학 갈래요! 충청도든 제주도든! 미국 샌프란시스코든!”

“씨발 진짜.”


나의 훌륭한 언변에 동규가 극찬을 쏟아냈다.


얼마나 감명이 깊었으면 자기보다 상급자가 있는데 극찬을 하는 걸까?


결국 동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음을 인지해야만 했다.


일개 교사가 학생의 전학을 막을 권력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내가 마음먹고 따라오면 그는 막을 수가 없다.


한편 내 발언은 교장에게도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전학! 저어어언학! 전학!!!”


극심한 충격에 언어기능이 마비된 것 같다.


가만히 있으면 커리어가 누적이 되는 수상 머신이 있는데, 그 머신이 떠난다니 얼마나 충격이 크겠는가.


동규는 교장의 기색에 눌려 공부방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정말 싫은 티를 내며 연필을 깎기 시작했다.


“자. 옜다.”


교장은 돌아갔지만, 문자 하나면 당장이라도 돌아오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나를 죽이고 깔끔히 뒤처리를 할 게 아니라면 고분고분히 꼬리를 내리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하지만 내 딜링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지금 이걸 연필이라고 깎은 거에요?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하시지.”


끄으응 소리가 동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끙아를 지리는 건 아니겠지.


동규가 다시 한 번 연필을 깎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와도 만족할 수준의 예리한 연필이 탄생했다.


“뭐. 그럭저럭 괜찮네요. 그럼 이제 답 좀 적어주세요. 3번에 정답은 51이에요.”


살기가 느껴졌다. 동규가 정말 레이저라도 쏠 기세로 이쪽을 보고 있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아이고! 동네 사람들! 이 사람 좀 보세요! 아주 그냥 날 죽이려 그러네? 이러다가 누구 하나 싱싱미역이라도 되겠어?”


참고로 상대를 멕이는 방법은 사회에서 만난 여러 선배들의 언행을 참조했다.


군대에서 만났던 씹 새끼 분대장과, 좆소에서 만난 최 과장. 그들의 평소 레파토리의 10분의 1 정도만 풀었는데도 이 정도다.


나도 가끔 그 때 꿈을 꾸면 하루종일 엿같은데 동규는 어떻겠나?


아마 상대가 동규가 아니라 성인군자라 하더라도 속으로 씨발 한 마디는 뱉었을 것이다.


취이이익


어디선가 증기 소리가 들려왔다. 동규의 얼굴이 시뻘개진 걸 보니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다.


지금 동규의 상황을 되짚어보자.


안 그래도 뒤에서 저격 기사를 내서 나를 만나기 껄끄러운 상황이다.


그런데 교장 때문에 하루 종일 나의 수발을 들게 생겼다.


아니 뭐, 정말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와줄 수도 있지. 그런데 시키는 일이 연필 깎기, 글자 대신 적기 같이 하찮은 일이다.


직접 할 능력이 있는데도 굳이 상대를 시키는 이유가 뭐겠나. 너는 나보다 아랫사람이다 각인을 세기며 서열 정리하는 것밖에 없다.


남자라면 자존심 때문이라도 참지 못할 상황이다.


여기서 화룡점정. 동규에게 가장 절망적인 사실이 무엇일까?


그건 바로 오늘만 참는다고 해서 끝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앞으로 6년 동안, 내가 용서해주기 전까지는 계속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그게 가장 동규를 힘들게 했다. 탈출 장치가 없는 엿같은 상황만큼 좆같은 건 없으니까.


결국 동규가 터졌다...


“이런 씹어먹을 애새ㄲ...”

“현중일보. 김우식.”


...가 바로 봉합되었다. 머리끝까지 뻗쳤던 화가 차갑게 식었다.


“네가 그 이름을 어떻게...”

“글쎄요. 그런데 지금 저한테 화내시는 거에요? 이게 선생님이 생각하던 제 모습이 아닌가요?”


무례함, 선생을 좆으로 봄, 건방짐. 기사에 실렸던 내용들이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하나같이 지금 내 모습과 어울리는 단어들이었다.


상대가 날 이유 없이 싫어했기 때문에, 그대로 좆같이 행동한 격이다.


“자세한 증거들이 남아 있어요. 이게 교육부에 넘어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학교 선생님이 학생을 담그려고 했다는 사실은 심각한 문제다. 그게 학교에서 잘나가는 영재였다면 더욱이 그렇다.


좋게 해결되어야 정직, 원고 측에 든든한 연줄이 있다면 파직도 아예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저는 착한 아이니까 선생님께 선택권을 양보할게요.”


양 쪽 다 끔찍한 양자택일을 착한 척 강요하는 건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었다. 동규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렸다.


“우욱.”


이내, 견딜 수 없었는지 양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꼴좋다. 이 새끼야.”


전혀, 하나도 불쌍하지 않았다. 제 까짓 게 감히 누굴 노린다고.


동규는 어떤 선택을 할까. 정점에 이른 두뇌는 그가 87%의 확률로 학교에 남는 선택을 할 것이라 추측했다.


일리 있는 선택이다. 양 쪽 다 끔찍하겠지만 이쪽은 적어도 빈털터리가 되지는 않을 테니까.


다만. 마음 후련하게 빈털터리가 되는 것과, 하루하루 지옥에서 살아가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불행의 총 합이 클지는 모르는 일이다.


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다. 알아서 하라지.


향상심. 더 나은 내일로의 발걸음. 적어도 첫 발은 제대로 띈 것 같다.


* * *


문제점 고치기 프로젝트가 시행된 다음날.


동규는 기가 막히게도 여론전을 시도했다.


동료 선생들을 대상으로 나에 대한 악담을 퍼붓기 시작한 것이다.


선생에게 욕을 한다. 깔본다. 우습게 안다.


아무리 촉망받는 영재라고는 해도 인성이 개차반이면 나락에 처박히고 만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돌아오는 대답이


“에이 설마요. 상혁이가 얼마나 예의가 바른데요.”

“그거 상혁이가 애교 부리는 거 아니에요? 아~ 나한테도 그랬으면 좋겠다.”

“아무 증거도 없이 학생의 험담을 담는 건 좋지 않다고 봅니다. 학년 부장 선생님.”


이따구였기 때문이다.


설마 내가 아무런 작업도 안 해두었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작업 대상을 제외하고는 모두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는다.’


상대를 엿먹이기 위한 기본 수칙이다.


아, 물론 돈이나 권력보다 학생들을 우선하는 진짜 선생님께는 예의바르게 공경하고 있기도 하다.


어쨌든 섣부른 여론전을 펼친 김동규의 직장 내 평가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제 교사들마저 동규의 편이 아니게 된 것이다.


동규가 어느 장소를 지나가던 한 바탕 수군거림이 일었다.


그 대화 속에 실망, 험담, 욕이 담겼음은 물론이다.


아이고 불쌍한 우리 김동규 선생님.


하지만 아까도 말했든 내 알 바는 아니었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추천도~ 댓글도~ 선호작도!!!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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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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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상심 22.07.07 1,299 23 25쪽
59 한 손에는 꽃, 한 손에는 총 2 22.07.06 1,257 23 15쪽
58 한 손에는 꽃, 한 손에는 총 +1 22.07.05 1,311 24 18쪽
57 반박 기사를 내다. +1 22.07.04 1,298 22 15쪽
56 엄마 말을 들으면 손해를 볼 일은 없다. +3 22.07.03 1,306 25 17쪽
55 불온한 기색 +1 22.07.03 1,314 19 16쪽
54 공부빵이 궤도에 오르다. 22.07.02 1,349 26 16쪽
53 첫 판매와 서열정리 +2 22.07.01 1,411 25 27쪽
52 폭풍전야 +1 22.06.30 1,390 28 16쪽
51 ppl 개시 22.06.29 1,440 26 18쪽
50 머리가 좋아지는 빵을 개발하다 22.06.28 1,463 31 19쪽
49 인터뷰로 ppl을 준비하다 22.06.27 1,524 30 16쪽
48 당첨이 예정된 복권이 되다 +2 22.06.26 1,585 31 22쪽
47 선을 긋다 22.06.25 1,567 28 18쪽
46 초등학교의 정점에 오르다. 22.06.24 1,559 29 18쪽
45 소설 속 주인공과 같이. +2 22.06.23 1,539 31 18쪽
44 교류회 +1 22.06.22 1,573 31 17쪽
43 vs 엄친아 +1 22.06.21 1,603 33 21쪽
42 교사보다 서열이 높은 학생이 있다? +1 22.06.20 1,663 31 17쪽
41 풀었는데요 +1 22.06.19 1,638 31 17쪽
40 서열정리 3 +1 22.06.18 1,648 33 17쪽
39 서열정리 2 +2 22.06.17 1,642 33 16쪽
38 서열정리 1 +2 22.06.16 1,691 30 18쪽
37 설마 자기 소개를 이런 식으로 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22.06.15 1,694 33 19쪽
36 입학식 +1 22.06.14 1,755 31 15쪽
35 2호점 개점 +1 22.06.13 1,813 33 17쪽
34 자식몬 대결 22.06.12 1,810 38 18쪽
33 뿌슝빠슝 할아버지 기를 세워드리는 7살 손자가 있다? 22.06.11 1,851 34 14쪽
32 할아버지와의 재회는 최악이었다. 22.06.10 1,883 33 12쪽
31 마지막 예언 +1 22.06.09 1,876 3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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