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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633
추천수 :
3,569
글자수 :
1,721,531

작성
22.06.19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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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8
추천
31
글자
17쪽

풀었는데요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41화



괴롭힘을 당한다고 여론을 조작한 일은 생각보다 내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우선 나를 질투하던 사람들이 상당 수 줄었다.


동정 여론이 생기며 이미지 세탁이 된 건지 요즘은 시비 걸리는 빈도가 많이 줄었다.


단순한 호기심에 나를 귀찮게 하던 애들 역시 많이 줄었는데, 이게 가장 좋았다.


덕분에 곡예사처럼 공중제비를 도는 일이 부쩍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다는 것도 큰 장점 중 하나다.


아린 쌤은 내가 반에서 겉도는 줄 알고 나를 옆에 끼고 다녔는데, 혼자서 선생님을 독점하는 것도 나쁜 기분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정보 수집 면에서 용이했다.


평소에 아린 쌤을 졸졸 따라다니다 보면 학교 돌아가는 사정이 솔솔 들려왔고.


나는 흑막처럼 몰래 정보를 수집하며 계획을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4월 말, 드디어 기다리던 사건이 발생했다.


내 몸값을 불릴 적기가 찾아온 것이다.


오늘따라 아린 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선생님 뭐하는 거에요?”

“아. 상혁아. 오늘은 4학년 선배들이 시험을 쳤거든. 선생님이 정리하는 걸 도와드리기로 해서 말이야.”


원래 초등학생의 경우 시험을 치는 일이 드물다.


한 단원이 끝나면 반 내에서 자체적으로 단원 평가를 볼 뿐, 중학생 고등학생처럼 시험에 목을 메진 않는다.


초등학생은 그냥 잘 뛰어 노는 것이 덕목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다만 그건 평범한 학교의 이야기였고, 우리 삼길초는 자칭 명문 초등학교였다.


어떻게든 학생들을 비교하며 줄 세우기를 하고 싶은 교사들이 많았다.


그래서 주위 학교들과 협력하여 자체 제작 시험을 자주 쳤던 기억이 난다.


학교 주관 아래 일제고사 비슷한 게 시행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중 오늘은 4학년이 보는 날이었고, 경력이 짧은 아린 쌤이 시험지를 정리하는 일을 맡게 된 것이다.


바라 마지않던 상황이다. 왜? 나도 그 시험지에 볼 일이 있거든.


“선생님. 저도 같이 가면 안 돼요?”

“오늘은 선생님이 바빠서 힘들 거 같은데?”


딱 봐도 정신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더 같이 가려는 것이다.


아린 쌤은 난감한 기색이었지만 내겐 치트키가 있다.


“힝. 혼자 있으면 또 애들이 괴롭힐 거 같은데...”

“후. 어쩔 수 없지. 따라 와도 돼. 대신에 가만히 있어야 한다?”

“네!”


다빈이와 도진이가 들으면 억울해 거품을 물 모함이었지만, 순진한 아린 선생님은 찰떡같이 나를 믿어주었다.


역시 우리 담임 선생님이 최고다.


따라간 아린 쌤의 자리엔 시험지가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다.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힌다.


어디를 가나 신입은 고달픈 법이다.


마음 같아서는 일을 도와주고 싶지만 나는 따로 할 일이 있었다.


선생님이 시험지와 씨름을 하는 동안 슬그머니 주변을 탐색했다.


“여기 쯤 있을 것 같은데. ... 있다!”


책상 한 구석에 여분의 시험지가 남아 있었다. 나는 들키지 않게 시험지를 한 세트 빼 들고 책상으로 향했다.


이렇게 첩보 영화처럼 시험지를 빼돌린 이유는 간단하다.


시험지를 팔아넘긴다고 무슨 부귀영화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나도 이번 4학년 시험에 참가하기 위함이었다.


정점에 이른 두뇌를 십분 발휘하여 4학년 시험에서 1등을 차지한다.


이게 내가 준비한 계획의 주요 골자였기 때문이다.


성적이 나오면 새로운 천재의 탄생에 학교가 떠들썩해질 것이다.


공부에 뜻을 둔 모든 학부모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겠지.


쟤는 뭐로 공부한대? 어디 학원 다닌대?


높은 수요와는 달리 내 몸은 하나였고. 당연히 내 몸값이 올라갈 것이다.


어머니회도 다르지 않다. 부모가 부자라고 자식이 공부를 잘하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아마 그들이 일반 학부모보다 더 극성맞았으면 맞았지, 덜 하지는 않으리라.


그런데 같은 어머니회에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등장했다?


감히 힘겨루기를 할 생각조차 못할 것이다. 비결을 묻기 위해 체면을 굽히고 저 쪽에서 찾아올 터.


나는 키득거리며 연필을 꺼냈다.


“자. 그러면 시작해 보자고.”


막상 시험을 치려니까 감회가 새롭다.


마지막으로 시험을 치렀던 게 언제였을까.


고등학교 때부터는 노력해도 성적이 안 올라서 거의 손을 놓다시피 했기 때문에 한 20년은 된 것 같다.


나는 살짝 긴장한 상태로 시험지를 펼쳤다. 오랜만에 마주한 시험지는... 너무나도 쉬웠다.


문제를 인식함과 동시에 실시간으로 답이 떠올랐다. 문제를 푸는 시간보다 적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정도.


그 옛날, 시험지를 앞에 두기만 하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머리가 아프던 증상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으며.


더 많은 문제를 향한 갈망과, 성취감이 가슴을 세차게 두드렸다.


‘공부가... 생각보다 재밌네?’


살면서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혹시나 죽을 때가 다 되었나 싶어 심장에 손을 얹었지만, 심장은 여전히 힘차게 쿵쾅거리고 있다.


물론 초등학교 4학년 문제니까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직감은 그렇지 않다고 말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초등학교 문제라고 하더라도 분별력 있는 문제가 한 두 개쯤 배치되어 있기 마련이다.


과연 공부에 손을 놓은 지 오래 된 성인이, 한 번도 막히지 않고 정답을 써내려갈 수 있을까?


아니다. 오히려 1회차의 나였다면 초등학교 4학년의 문제를 한 두 개 쯤은 못 풀었으리라 자부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 내 두뇌는 문장을, 수식을 탐욕스럽게 빨아들이고 있다.


푸는 방법을 까먹은 문제와 만나도 문제는 없다. 지문을 한 번 읽으면 자연스레 푸는 방법을 유추할 수 있었다.


마치 두뇌가 무력시위라도 하는 것만 같다. 너는 지금까지 두뇌를 잘못 쓰고 있었다고.


좋은 머리를 달고 있으면 책도 좀 읽고, 문제도 좀 많이 풀라고 질타를 하는 것만 같다.


그렇게 국어, 수학 두 과목의 마지막 문제를 다 풀고 펜을 내려놓기까지 걸린 시간은 채 1분이 넘지 않았다.


계획의 입안자인 나조차도 어안이 벙벙해질만한 경험이었다.


혹여나 아린 쌤한테 들키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 우스워졌다. 그녀는 정리를 아직 반의 반의 반도 다 못 끝냈다.


평소 막 굴리던 두뇌한테 한 방 먹은 셈이다.


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저어 상념을 털어내고 이 모든 활약의 공로를 나에게 돌리기로 했다.


어차피 두뇌의 활약이 곧 자신의 활약이었으니 결국 내가 잘난 거나 다름이 없다.


어째서인지 두뇌가 욕을 하는 것 같았지만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꼬우면 니가 주인하지 그랬냐. 응 안들려~ 어쩔티비.’


보이지 않는 두뇌와의 쉐도우 복싱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아린 선생님께로 갔다.


그리고 바닥에서 주운 척, 다 푼 시험지를 건넸다.


“선생님! 이거 떨어트렸어요!”

“응? 언제 떨어진 거지? 고마워 상혁아!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네.”


내 이름이 적힌 시험지가 제출용 봉투에 들어갔으니, 큰일 날 뻔 한 게 아니라 큰일 난 거다.


아마 공아린 선생님은 이번 사건으로 한동안 바빠지겠지.


하지만 나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금수가 아니다.


기왕 끌어들인 김에 아린 선생님께 좋은 방향으로 일을 진행해 볼 생각이다.


“응? 상혁아? 선생님 얼굴을 왜 그렇게 빤히 보고 있어? 선생님이 그렇게 이쁘니?”


잔업이 이렇게 무섭다. 아무래도 선생님은 높은 업무 강도를 이기지 못하고 망가진 모양이다.


나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아 선생님께 위로를 건넸다.


“공아린 선생님. 힘내세요. 파이팅!”

“응! 파이팅하자!”


아린 선생님은 끝내 추가된 시험지를 발견하지 못했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 * *


“공 선생!!!”


학년 부장 동규의 고함이 3반 교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반 애들과 공기 놀이를 하고 있던 아린 쌤이 깜짝 놀란 건 당연했다.


“네! 부장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


동규의 목소리 톤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챈 선생님은 후다닥 달려갔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반면 나는 올 게 왔다는 느낌이었다. 슬그머니 교실 문 뒤 편으로 이동해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다.


“공아린 선생! 그 때 4학년 시험지 검수를 맡았던 게 선생 아니었나?”

“네. 무슨 일 있나요?”

“있지! 이번 시험에서 우리 학교 학생이 1등을 차지했어! 그것도 유례가 없는 전 과목 100점으로!”


큭큭. 너무 힘을 내버린 건가? 어쩌면 초등학교 4학년은 내 전.력.을 감당하긴 너무 시시했을지도 모르겠다.


들어보니 1등을 차지한 건 아주, 아~~~~주 오랜만이며, 모든 과목에서 100점을 받은 학생은 처음이라는 것 같다.


하지만 동규의 텐션이 올라간 이유는 단순히 그 때문은 아니었다.


“그럼 좋은 거 아닌가요...?”

“좋지! 좋은 게 맞는데! 이름에! 이름에엑! 1학년 3반 박상혁이라고 적혀있잖나아아악!”


항상 냉철한 모습을 보여주던 동규가 뒷목을 잡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번 사건이 그만큼 심각한 문제라는 뜻이다.


나는 빠르게 동규의 종아리 부분을 확인했다. 그 부분만 먼지가 묻어 있는 걸로 보아 조인트를 까인 것이 틀림없다.


동규는 X랄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공 선생. 내가 이 시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 했나, 안 했나. 다른 학교들이랑 같이 하는 거라 한 치의 실수도 있으면 안 된다고!”


방금 아린 선생님의 입술이 잠깐 달싹거렸다.


독순술을 익힌 적은 없지만 분명 ‘씨’가 들어가는 욕설임이 틀림이 없었다.


아마 풀어서 해석하자면 ‘X발 그렇게 중요한 거면 니가 하지 그랬냐?’라는 말이 아닐까.


하지만 병아리 선생님은 목구멍까지 차오른 욕설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했습니다.”

“그래. 그런데 왜 장난질을 했어?”

“네?”

“왜! 공 선생이 끼고 도는 학생 이름을 적고 만점짜리 시험지를 제출한 거냐고!”


동규는 아린 쌤이 장난질을 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아린 쌤이 시험지를 가지고 놀다가 내 이름을 써서 냈다는’ 의심을 하고 있었다.


정상적인 선생님이라면 그런 실수를 할 리가 없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별 다른 가능성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선생님이 첫 제자의 특별함을 너무 동경한 나머지 ‘나의 첫 제자가 엄청난 천재라 각종 대회를 휩쓸고 다닙니다.’ 같은 망상을 하고 있다면 말은 되었으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랑 아린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깊은 관계는 아니었고, 아린 선생님이 망상증 환자도 아니었다.


아린 선생님은 꽤나 억울했는지 얼굴을 붉히며 손을 크게 내저었다.


“저는 모르는 일이에요.”

“아~ 그럼 시험지 만지지도 않은 내가 알까? 나는 모르겠으니까! 교장 선생님껜 공 선생이 설명 드려!”


이대로 가면 아린 선생님이 너무 불쌍했기 때문에, 슬슬 나서기로 했다.


“그거 제가 했어요.”

“넌 빠져 이 눈엣가시 같은 녀석! 지금 어른들끼리 대화하고 있는 거 안 보여!”

“누구긴요 박상혁이잖아요. 1학년 3반 박상혁.”


분노 때문에 눈에 뵈는 게 없던 동규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아 그래 박상혁. 니가 했다고? 그렇다는데 어떻게 된 겁니까 공 선생님?”


안절부절 못하던 아린 선생님은 채점 장소에 내가 있었음을 털어 놓았다.


“근처에 있긴 했는데. 애가 뭘 모르고 자기가 했다고 말한 거 같아요.”


아린 쌤은 자신이 혼날 위기에도 끝까지 학생을 팔아먹지 않는 참 선생님이셨다.


하지만 나는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었다.


“선생님. 죄송해요. 그 때 제가 주워드렸던 거 있잖아요.”

“아. 그거...”

“죄송해요. 저도 성적을 확인하고 싶었어요.”


아린 쌤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떠오른 건 미소였다.


“괜찮아. 결국 선생님 실수지 뭐.”


보면 볼수록 사람이 괜찮다. 나도 이 사제관계에 조금 더 진심이 될 것 같다.


동규는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는 것만으로 내 범행을 확신한 듯 했다.


“하.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이 싸가지 없는 녀석. 답안지를 베껴서 4학년 시험에서 만점을 맞으면 모두가 너를 더 떠받들 거라고 생각했나보지? 정말 쓰레기 같은 생각이구나. 부모님이 그렇게 가르치디?”


사건의 책임에서 온전히 벗어나자마자 혈색이 돌아온 동규였다.


만약 내가 책임을 져서 동규의 살림살이나 인생설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책임을 질 의향도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오늘의 나는 거짓말을 할 생각이 없어서 말이다.


“풀었는데요?”

“뭐?”

“베낀 게 아니라 풀었다고요.”

“하하. 미친 새끼.”


동규가 시계를 푸르기 시작했다. 너무 열이 뻗친 나머지 주먹을 행사하려는 것 같다.


“공아린 선생님. 그 때 제가 답안지를 본 적이 있던가요?”


그 당시 경황이 너무 없었던지라, 아린 선생님이 기억을 떠올리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몇 초 후, 기억을 떠올린 아린 선생님의 눈이 커졌다. 다행히 아직 동규가 주먹을 내지르기 전이었다.


“아니. 그 때 답안지는 내가 보관하고 있었어. 내가 계속 들고 있던 거라서 확신할 수 있어. 상혁이 너 설마?”

“네. 제가 풀었어요. 헤헤.”


하지만 동규의 눈은 차갑기 그지없다. 시계는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지만, 여전히 우리를 범죄자를 보듯 보고 있었다.


“공 선생. 내가 충고 하나 하겠는데요. 혼나기 싫다고 진실을 숨기면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답니다.”


동규의 으름장에 아린 쌤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단순히 발령지를 옮기는 게 문제가 아니다.


역사가 오래된 학교다 보니 교사 집회에서도 입김이 강할 것이고, 다음 발령지에 폐급 교사라는 소문이 쫙 퍼질 것이 뻔했다.


그럼 정말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시골로, 아무도 찾지 않는 곳으로 가게 될 터.


공아린 선생님에게는 그것만큼 피하고 싶은 일은 없을 것이다.


아린 선생님이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이라도 거짓을 고한다면 참작의 여지가 있었다.


그 날 너무 바쁜 나머지 자신이 잘못 봤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말없이 선생님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아마 오늘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선생님의 터닝 포인트가 되리란 건 틀림이 없다.


나는 부디 선생님이 탄탄한 성공대로를 붙잡길 바랐다.


결국 아린 선생님은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세게 주었다. 자신이 잘못되어도 나를 지키겠다는 것처럼.


당첨을 선택한 것이다.


“제 교사 생명을 걸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상혁이가 몰래 시험지를 넣은 건 맞지만. 저는 한 번도 답안지를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완고하던 동규의 기세가 흐트러졌다. 병아리 같던 신참 선생이 저렇게 강하게 나오니 당황한 모양이다.


“그래요. 선생님은 보여주지 않았다고 칩시다. 하지만 저 꼬맹이가 몰래 훔쳐봤을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그게 가능한 일일까요?”


각성한 아린 쌤이 정곡을 짚었다.


아무리 아린 쌤이 병아리라고 해도, 엄연히 능력 있는 교사다.


학생이 뒤에서 빤히 보고 있는데 이를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다. 등신도 아니고.


유일한 가능성은 내가 답안지를 잠깐 본 것만으로 완전히 기억을 했을 가능성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천재의 영역에 속한다고 봐야겠지.’


이처럼 내가 혼자서 문제를 풀었다고 가정하면 어떤 경로든 내가 천재라는 결론이 나오고 만다.


이를 인정할 수 없던 동규는 끝까지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인정 못 합니다! 못 믿겠어요!”

“그래요. 그냥 보여드리는 게 빠르겠네요.”


동규야.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큰 복을 받으리라.


나는 두 사람을 두고 우리 반 칠판으로 향했다.


키가 작은 관계로 분필을 들기 위해선 의자를 밟고 올라야 했다.


두 사람이 따라온 것을 확인한 나는, 그 날의 기억을 칠판에 적어내리기 시작했다.


“1번. 철수네 목장의 양과 소가 30마리고 소가 8마리니까 다리의 갯수는...”


이를 지켜보던 아린 쌤과 동규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있는 게 뭔지 이해했기 때문이리라.


“문제지도 없이 풀이과정을 적는다고?”

“그게 말이 되나?”


이게 되냐고? 되니까 하고 있지.


저번에 문제풀이 이후로 두뇌와 깊은 대화를 나눴고, 이런 게 가능하다는 걸 발견했을 뿐이다.


지금 내 머릿속엔 그 날의 시험지와 답안, 보기들과 글자 폰트까지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칠판에 적는다면 두 사람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생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어쩐지 정점에 이른 내 두뇌가 뻐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님들 덕분에 공모전을 완주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댓글도 선호작도 추천도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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