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645
추천수 :
3,569
글자수 :
1,721,531

작성
22.06.21 22:57
조회
1,603
추천
33
글자
21쪽

vs 엄친아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43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평일 오후. 나는 여느 때처럼 엄마 일을 도와드리고 있었다.


대한제일 빵집 2호점은 순항중이다. 오픈 빨 손님들은 좀 빠졌지만, 단골들이 꾸준히 늘어나는 중이다.


덕분에 가게를 사느라 텅 비었던 우리 집의 재고를 차곡차곡 채울 수 있었다.


입지 조건이 나쁘지 않아 1호점 마냥 미친 손님들이 많이 나타나는 일도 없었다.


간혹 진상들이 찾아오긴 하지만, 킥복싱 도장 홍 사범이 이 가게에 자주 상주했기 때문에 걱정은 없다.


그렇게 사고만 치던 유리 누나가 가게에 도움이 되다니. 감회가 새로울 뿐이다.


그렇게 한가로운 나날을 보내던 중, 한 모자가 우리 가게에 방문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어머니회 차석 김은주씨와 그 아들 분.”


걸음걸이, 움직임, 한 호흡까지도 진짜 부자 테가 나는 아줌마다.


이전에 본 기억이 있다. 어머니회 수석이던가?


“얼굴 보기가 힘드니 제가 이렇게 오게 되었네요. 차석 김은주 씨.”


말끝마다 차석을 들먹이는 걸 보면 저 아줌마가 수석이 맞는 것 같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벌써부터 기싸움을 하려고 들길래 가볍게 응대해주기로 했다.


“어머니회 수석이신 아주머니 맞으시죠?”

“그래. 내가 바로 어머니회 수석! 강윤희란다. 역시 소문대로 기억력은 좋나 보구나.”


발 없는 말이 천리간다고. 내가 잘났다는 소문이 벌써 어머니회까지 퍼진 것 같다.


뭐, 숨긴다고 다 숨겨지는 재능이 아니니까.


그런데 어투가 시비조인 걸로 보아 못마땅한 것이 있는 모양이다.


나 역시 빙긋 웃으며 그대로 돌려주기로 했다.


“물에 젖어서 창백해진 모습이 인상 깊었으니까요.”


차석보다 모자란 수석이라는 의미를 듬뿍 담은 말이었다.


“칫. 이래서 근본 없는 것들은.”


드라마에서나 듣던 말을 직접 들을 줄이야. 역시 진퉁 부잣집 아줌마다웠다.


아줌마는 단 1초도 더 이곳에 있기 싫다는 듯 입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교류회 참석은 포기하도록 하세요. 저희 지훈이가 나갈 거니까요.”


참 나. 무슨 일로 왔나 했더니 별 시덥지 않은 일로 왔다.


생각해보면 시기 상 딱 맞게 온 것 같기도 하다.


또래 애들, 학년 부장을 모두 제꼈으니 슬슬 어머니회를 꺾을 때가 차례인가 싶다.


엄마와 시선을 교환했다. 나는 거절의 의사를 밝혔고, 엄마는 행동에 나섰다.


“학교 측에 문의를 하시지 그러세요?”


참으로 정석적인 대답이다.


동시에 ‘우린 학교 측에서 해달라고 사정, 사정을 해서 받아들였는데? 니들은 뭐니?’라는 말을 교양적으로 돌린 것이기도 하다.


아줌마의 얼굴이 붉어졌다.


“원래라면 저희 지훈이가 뽑힐 예정이었어요! 1학년은 어머니회 수석 학생이 가는 게 관례라구요!”


나 같은 이레귤러가 없는 경우 그렇게 처리를 해왔나 보다.


저쪽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다가 자기들 권리를 빼앗기게 생겼으니 저렇게 반응할 만하다.


음. 어차피 그렇게 하고 싶은 일도 아닌데 양도하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만.


돈 많고 잘난 사람이 저렇게 목을 빳빳이 세우면서 우기니까 오히려 주기가 싫어진다.


내 안의 놀부 심보가 눈을 떴다.


엄마를 향해 팔로 X자를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절대 양보하지 말라는 뜻이다.


엄마가 자신만 믿으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관례는 관례일 뿐, 정당한 절차가 아니죠. 교장 선생님이 선택하신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워후. 엄마의 워딩이 더 강해졌다.


“그건 그 쪽 아들이 비겁한 수를 써서 그런 거잖아요! 우리 지훈이도 4학년 문제 정도는 풀 수 있어요!”


풀 수 있는 것과 만점을 받는 것은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자식 보정 필터를 끼운 아줌마의 눈에는 다 똑같게 보이는가 보다.


‘그래도 1학년이 4학년 문제를 풀 줄 알면 대단하긴 하네.’


나야 정점의 DNA를 갖고 있으니 밥 아저씨처럼 문제를 가지고 노는 거지, 보통 8살은 놀이터에서 흙장난하고 지낼 나이 아닌가.


새삼스럽게 눈앞의 김지훈의 존재감이 작지 않게 느껴졌다.


회귀 이전의 기억을 되짚어 보면, 김지훈과 같은 시기에 삼길초를 다닌 사람 중에 녀석을 좋아하는 학생은 없었을 것이다.


엄마 친구 아들. 즉 엄친아라는 말에 가장 적합한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삼길동의 자랑. 삼길동의 용. 서울대를 다니다가 아빠 회사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릴 정도로 잘난 녀석이다.


그래서 지훈을 보면 항상 열등감을 느끼곤 했다. 나와는 정반대의 삶을 사는 녀석이었으니까.


‘자기 전마다 지훈이가 큰 사고 한 번 쳐서 나락에 떨어지게 해달라고 빌곤 했는데.’


막상 이렇게 만나니까 별 생각이 안 든다. 오. 좀 똑똑하네 이정도?


그동안 내 체급이 높아졌다는 증거다. 이제는 그 김지훈을 내려다보고 있으니까 말이다.


열등감과, 부러움을 덜고 바라본 김지훈은 그냥 똘똘하게 생긴 부잣집 꼬맹이에 불과했다.


“짜식. 너도 고생이 많다.”


녀석의 머리를 한 번 쓸어주니 기분이 나쁜지 손을 탁 쳐낸다.


그러고 보니 쟤랑 나랑 나이가 같았다. 기분 나쁠만 하네.


한편 엄마랑 수석 아줌마 쪽은 치열한 공방 중이었다.


“지훈이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아이에요!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상혁이는 못하는 게 없거든요? 저를 빵집으로 이끌어주기도 했고, IMF 외환위기도 예측했고. 완전 하늘이 보낸 천재거든요?”


어느새 두 사람은 천하제일 자식 자랑 대회를 열고 있었다.


그래도 저 엄친아 녀석에 안 밀리는 걸 보면, 나도 꽤나 열심히 산 것 같다.


“무슨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애가 뭐 IMF를 예견해.”


다만 너무나 활약한 관계로, 진실을 떳떳하게 밝히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거 말로 해서 안 끝날 거 같아, 두 사람 사이에 난입했다.


“아 됐고! 그럼 한 판 붙어요.”

“얘는 어른들이 말하는데! 뭘 붙니?”

“저 애가 나보다 공부 잘 한다면서요. 증명만 할 수 있으면 양보해드릴게요. you know what I'm saying?”


속칭 유남생을 시전하자 아줌마의 기세가 눈에 띄게 줄었다.


아들을 공부시키는 것에 비해 아줌마 스스로는 공부를 별로 열심히 안 하는 모양이다.


“영어는 3학년부터 배울 텐데...”

“뭐. 워낙 훌륭한 어머니를 둔 지라.”


내 실력에 대한 소문이 허명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아줌마는, 내 요구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래도 자기 아들이 해볼 만하다는 의미겠지.


“근데 여긴 문제지가 없잖아.”

“그건 아줌마가 가져와야죠. 제가 가져와요?”


아줌마는 다시 한 번 ‘근본 없는 자식 녀석’ 어쩌구 저쩌구를 시전했다.


주차해둔 차에 가는 걸 보아 정말 문제지를 가져오려는 것 같은데, 일단 지적할 게 있었다.


“아줌마! 애는 두고 가셔야죠! 정답 외워올지 누가 알고?”


아줌마는 투덜거리면서도 지훈이를 두고 떠났다.


엄마는 일이 남았기 때문에 다시 오븐 쪽으로 향했고, 나는 덩그러니 남겨진 지훈이에게 다가가 빵을 내밀었다.


“얘. 우리 집 빵이 맛있단다. 니 집엔 이런 거 없지?”


아니나 다를까 지훈은 빵을 쳐냈다.


“밥 말고 다른 거 먹으면 엄마한테 혼나.”


그래. 그 정도 집이면 막 식단도 관리하고 그럴 줄 알았다.


부자라고 고기만 먹었으면 세상 모든 부자들은 다 돼지였게?


그런데 싫다니까 더 먹이고 싶어진다.


“음. 진짜 맛있는데. 한 입만 먹으면 살도 안 찔 텐데.”


나는 일부러 녀석의 앞에서 빵을 흔들어 보였다. 눈을 감아도 냄새는 막을 수 없으니까.


지훈의 목울대가 크게 꿀렁였다.


“그럼. 딱 한 입만 먹는다?”

“그래. 딱 한 입만 먹어.”


지훈은 달달 떨리는 손으로 빵을 받아 앙하고 한 입을 베어 물었다.


“와...”


몸에 힘이 풀린 녀석이 빵을 떨어트리려고 하기에 잽싸게 받아냈다.


“야! 그래도 빵을 떨어트리면 어떡하냐?”

“와...”


대답이 없이 눈을 크게 뜨고만 있다. 충격이 컸던 모양. 정신을 차린 지훈은 두 손을 내밀었다.


“한 입만 더 먹을래.”

“그러던가.”


그 뒤는 뻔했다. 한 입이 두 입되고, 두 입이 세 입 되고.


어느새 빵을 다 먹은 녀석에게 나는 다른 빵과 우유를 건넸다.


“더 있는데. 먹을래?”

“응! 제발!”


맛있는 빵을 처음 접한 지훈은 3개의 빵을 다 먹고 나서야 만족을 드러냈다.


배가 빵빵한 게 한 그새 1kg는 쪄 보였다.


저걸 다 먹었으니, 오늘 저녁은 못 먹을 테고.


결국 군것질을 했음을 실토하고 겁나게 혼나겠지?


“크큭.”


다빈이나 도진이 때도 그랬지만, 순진무구한 아이들을 꼬드기는 건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래도 인마. 빵도 먹을 줄 알아야 돼. 세상 시키는 대로만 살면 나중에 무너지는 거 한 순간이다? 오징어 게임인지 문어 게임인지에 끌려가 ‘하 야발 상혁이 형!’ 그러는 거라고. 세상에 100퍼센트는 없어. 유연한 사고, 그리고 유도리가 중요한 거야.”


지훈은 빵이 퍽 맛있었는지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면서 고개를 연신 주억거렸다.


그렇게 미래의 유망주에게 인생 수업을 하고 있자니, 수석 아줌마가 돌아왔다.


“자! 여기! 지금 와서 도망친다는 말은 하지 않겠지?”


어쩜. 하는 말 하나 하나가 전형적인 부자일 수가 있담.


우리는 매장의 빈 좌석으로 가서 문제 풀 준비를 했다.


어찌나 유난을 떠는지, 베끼지 말라며 가림판까지 준비해왔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도 어쩔 수가 없었다.


“어머 뭔 일이래요?”

“시험으로 대결을 한다나 뭐라나.”


대결이 있는 곳엔 항상 승부 예측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빵집은 내 홈그라운드였다.


“아무래도 상혁이가 이기겠지?”

“그렇겠죠. 워낙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유명했잖아요.”


본점에 있었을 때부터 손님이던 사람들이 주로 내 편을 들어주었다.


유리 누나는 눈치껏 그런 말을 하는 손님들에게 수제 딸기잼 샘플을 나눠주었다.


“역시 보는 눈이 다르시다니까? 이거 저희 가게에서 개발중인 딸기잼인데 한 번 가져가서 드셔보세요.”


내 편을 드는 사람도 늘리고, 신제품 홍보도 하고. 역시 머리가 잘 굴러가는 사람답다.


하지만 본점에서부터 가게를 방문한 단골들은 우리 가게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이거 누가 만든 거요?”

“제가 만들었답니다!”

“이잉. 그럼 됐어. 유리 처자가 만든 건 맛이 읎어.”


그 사장님에 그 단골이다. 누가 맛잘알 아니랄까봐 유리 누나가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와 별개로, 수석 아줌마는 홈 어드벤티지가 거슬리는 모양이다.


“시끄러워요! 우리 지훈이가 이길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세요! 내기라도 할까요?”


나는 유리 누나에게 눈짓했고, 그녀는 내기에 응했다.


적당히 빵이나 사가라고 그래야겠다.


모두의 관심이 쏠린 아래, 지훈이와 나는 동시에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끝!”

“벌써?”


구경하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자빠졌다.


문제를 받자마자 뭔가를 끄적이더니, 몇 분이 지나지도 않아 다 했다고 그런다.


경쟁 상대인 지훈은 이제 막 3번을 풀기 시작했으니 말 다했다.


“그럴 줄 알았어. 그때도 아무렇게나 풀었던 거겠지.”


수석 아줌마가 비아냥거렸지만 미소로 대응했다. 곧 있으면 밝혀질 일이니까 굳이 입 아프게 말할 필요가 없다.


“저도 끝났어요!”


마침내 우리 둘이 문제를 다 풀었고, 채점에 들어갔다.


그 결과는...


“둘 다 백점이네?”


유리 누나 말마따나 우리 두 사람 모두 백점을 맞았다.


설마 지훈이도 100점을 맞을 줄은 몰랐다.


공평하게 문제지를 준비해 오겠다더니 수작질을 부린 게 틀림없다.


그러고 보니 문제가 3학년 문제 같기도 하고. 수석 아줌마가 지훈이가 100점을 맞을만한 문제를 가져온 게 아닐까?


“이런 경우 먼저 푼 상혁이가 이긴 거 아닐까요?”

“시험에 시간 가산점은 없어요! 100점이면 똑같은 거지. 다시! 다른 문제지로 다시 붙어요!”


엄마가 은근슬쩍 자신의 아들이 먼저 풀었음을 어필했고, 수석 아줌마는 필사적으로 외면했다.


“아줌마. 근데 이거 3학년 문제...”

“아~ 몰라! 재시험! 재시험이야!”


저렇게 바라는 데, 까짓 재시험 못해줄 것도 없다.


“또 100점.”

“이번에도 100점이네.”


그렇게 두 차례의 시험을 더 치루고 네 번째 시험이 되어서야 승부는 갈렸다.


“상혁이는 이번에도 100점. 지훈이는 98점. 상혁이가 이겼네?”


계속해서 시험 난이도는 3학년으로 유지되었다. 따라서 지훈이도 곧 잘 100점을 맞았는데, 결국 승패를 가린 것은 집중력 차이였다.


연달아서 이렇게 문제를 풀기에는 8살의 집중력은 너무나도 빈약했고, 지훈이 쪽에서 실수가 나온 것이다.


“후후후후후.”


엄마가 승자의 웃음을 흘렸다. 따로 자랑하며 뻐기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상대의 기분을 건드리는 듯한 웃음이었다.


“이이이이익! 김지훈! 너 누가 틀리래!”


수석 아줌마가 노발대발 한 건 당연한 일이다. 부자도 화를 낼 땐 체면이고 뭐고 없구나. 새로운 사실을 하나 배웠다.


나의 홈구장답게 여기저기서 놀림에 가까운 말들이 들렸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갑부도 별 거 없구만.”

“돈 내기 할 걸 그랬다.”


놀림이 쌓일 때마다 아줌마의 얼굴은 빨개졌고, 결국 뻥 터지고 말았다.


“이런 애비 없는 자식이!”


그런데 그거 아는가? 진검승부를 이긴 시점에서 내 흉은 더 이상 약점이 아니라는 사실.


“그럼 아줌마네 아들은 애비 없는 자식보다 모자란 거네요?”

“뭐? 너. 너. 말 다했어?”


내 흉이었던 사실은 오히려 무기가 되어 아줌마를 타격했다.


“학교에서 애들한테 괴롭힘 당하고 맞고나 다니는 주제에!”

“네. 다음 왕따보다 못한 자식의 엄마.”


참고로 맞고 다닌 적 없다. 도진이의 여론조작이 아직까지 효용이 있다는 반증이었다.


눈에 보이는 걸 다 부술 기세인 아줌마를 멈춘 것은 엄마의 한 마디였다.


“지훈이 어머니. 꼴사나워요. 정신 차리세요.”


수석 아줌마는 그 말에 본인의 상태를 자각했다. 여기서 더 추해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급격히 기세를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진정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어떻게든 화를 꽉꽉 눌러 담고 강제로 잠근 모습이다.


이제 제대로 된 의사소통은 될 것 같아 말을 건넸다.


“제가 이긴 게 맞을까요?”

“... 그래.”


끝끝내 부잣집 아줌마와 엄친아 녀석을 이겨먹는 데 성공했다. 기분이 좋았다.


나는 내친 김에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교류회에 집착하는 거에요? 더 좋은 자리도 주최할 수 있잖아요?”

“... 우스운 꼴이 되니까.”


아줌마 말에 따르면 학년 별 어머니회끼리도 교류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수석 아들이 나가는 게 당연한 교류회를 아줌마네만 못 나간다?


그럼 또 소문이 퍼지고 위신이 꺾이게 된다는 이야기다.


차석에게 밀린 수석이라 비웃음을 당하는 건 덤이고.


그래서 이런 타이틀에 목숨을 걸고 달려들었나 보다.


나는 내친김에 하나 더 궁금했던 걸 물었다.


“어머니회 수석 직함을 사용해서 공식적으로 학교에 항의하지 그랬어요.”

“안 해봤겠니?”


해봤단다. 그런데 교장에게 대차게 까였단다.


어떻게 돈 받아먹고 이럴 수 있냐며 따져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형식적인 사과 뿐이었다고.


어머니회와 학교 측은 공생관계에 가깝다.


아무리 돈을 대주는 입장이라고 하더라도 학교 일을 어머니회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교장이 권력을 밀어붙여 일을 처리했음에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대놓고 나를 밀어주겠다는 소리네.’


교장의 권력욕에 얼마나 불이 붙었는지 잘 알 수 있는 사례였다.


어떻게든 나를 교류회에 참가시켜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는 소리겠지.


“그런데 그런 취급을 받고도 가만히 있었어요?”

“있었겠니? 있읐긌느그!”


아줌마가 얼마나 어금니를 악 물었는지, 발음이 다 뭉개졌다.


“어머니회 회의 때 정식으로 안건 제출할 예정이었어. 그런데.”

“그런데?”


답이 없다. 계획이 어긋났음을 의미한다.


어머니회 공식 회의에서 정한 내용은 아무리 교장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무시하지 못한다. 아예 쌩까버리면 돈이 끊기니까.


그런데 아줌마가 굳이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어머니회 회의에서 대차게 까이셨군요!”


아줌마의 몸이 움찔했다. 어머니회 수석이 어떤 자리인가. 그 학년의 어머니회를 이끄는 수장과도 같은 자리다.


그런데 그 사람이 마음대로 안건 하나 통과를 못시켰다?


이는 그녀의 권력이 흔들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대차게 까인 거 아니야! 한 표차이로 통과가 안 된 거지!”

“그거나 그거나죠.”


회의 참가자 7명 중 엄마가 참여를 안 했으니까 6명.


수석 아줌마는 당연히 찬성표를 던졌을 테니까 5명 중에 3표만 얻으면 되는 문제다.


그런데 그걸 못했다는 건, 현재 아줌마를 지지하는 세력이 2명에 불과하다는 뜻.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뭐 평소에 수석 아줌마가 못되게 굴었다던지, 잘난척을 너무 많이 했다던지.


그래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내 존재였으리라.


어느 날 어머니회에 내가 천재라는 소문이 흐른다. 그런데 교장이 수석과 척을 지면서까지 나를 보호하네?


나머지 아줌마들은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수석과 듣보잡의 싸움이 아니다. 수석과 차석의 싸움이니만큼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터.


그 와중 학교가 내 편을 들어주니 정말 수석 아줌마가 질 것이라 생각한 사람들이 꽤나 있었을 것 같다.


지금이야 적극적으로 우리 엄마에게 아부를 떠는 사람은 없고 다들 눈치만 살피고 있지만, 아마 이번 싸움 결과에 따라서 어머니회의 권력의 양상이 많이 바뀌게 되리라.


나라는 수퍼 크랙이 결국 힘의 균형을 와장창 깨트려버린 것이다.


“역시 이 몸이야.”


또래보다 우위에 선 능력으로 교사들에게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실세라고 불리는 어머니회를 뒤흔드는.


그야말로 정점에 이른 초등학생이 아닌가.


“우하하하하하하.”


아드레날린이 분비하기에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눈길로 봤지만, 지금은 이 감정에 충실하고 싶다.


“... 가자 지훈아.”

“네 엄마.”


패배자의 뒷모습은 언제나 초라한 법이다. 저렇게 보니까 조금 측은한 것 같기도 하고.


빵을 복스럽게 와구와구 먹던 지훈이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고민이 되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지만, 다빈이와 도진이는 훌륭하게 재활용 중이다.


어쩌면 저 아줌마랑 지훈이도 써먹을 데가 있지 않을까?


나름 수석이기도 하니 효용성은 넓을 거 같은데...


고민하던 나는 두 사람을 불러세웠다.


“왜. 또 무슨 말로 우리를 능욕하려고!”


말만 들으면 내가 여기사를 능욕하는 오크라도 된 느낌이다.


그래도 이번은 아니다. 나에겐 두 가정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안이 있었다.


“두 명.”

“응?”

“두 명이 나가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요?”


아줌마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다그치려고 했으나 이내 입을 다물었다.


지금까지는 관례대로 한 명만 보냈을 뿐이지, 두 명은 안 된다는 법은 딱히 없었다.


그동안 정해진 틀에 박혀 살았기에 놓친 빈틈이었다.


아줌마는 핸드폰을 꺼내 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신이 차단이 된 건지 전화를 받지 않아, 우리 엄마의 전화기를 빌려주었다


교장은 그 때가 되어서야 전화를 받았다.


잠시 이야기를 하더니 나에게 동의를 얻으면 2명을 보내는 방안을 고려하겠다는 답을 얻어냈다.


나는 당연히 그래도 상관없다고 대답했고, 이번 교류회는 이례적으로 2명이 참가하게 되었다.


‘역시 세상은 유도리 있게 사는 게 중요하다니깐.’


우리 엄마는 1학년 대표 아들을 둬서 좋고, 수석 아줌마는 체면을 세울 수 있어서 좋다.


이대로 어머니회에게 돌아가 성과를 자랑하고는, 자신이 이빨 빠진 호랑이가 아니라며 그르렁거리지 않을까.


아줌마가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려 하기에 다시 불러 세웠다.


“저기요! 우리 청산할 게 있지 않아요?”


아줌마는 품격 있는 부잣집 아줌마답게 내 말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을 거다. 애초에 너네가 끼어든 일이니까.”


참나. 여기까지 와서도 전형적인 츤데레 부잣집 사람의 대사를 치고 있다.


그래. 사람이 금방 바뀌면 죽는다더라. 크게 기대도 안 했다.


내가 부른 건 다른 용건 때문이었다.


“그거 말고. 우리 내기 했잖아요.”

“...”

“빵 좀 사가세요.”


아줌마는 말없이 돌아와 빵을 잔뜩 집은 뒤 카드를 내밀었다.


기분 탓인지 아줌마의 귓불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아무래도 이틀 연속 완판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


요 근래 장사가 잘 되었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과 선호작, 추천은 언제나 제게 큰 힘이 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0 향상심 22.07.07 1,299 23 25쪽
59 한 손에는 꽃, 한 손에는 총 2 22.07.06 1,257 23 15쪽
58 한 손에는 꽃, 한 손에는 총 +1 22.07.05 1,311 24 18쪽
57 반박 기사를 내다. +1 22.07.04 1,298 22 15쪽
56 엄마 말을 들으면 손해를 볼 일은 없다. +3 22.07.03 1,307 25 17쪽
55 불온한 기색 +1 22.07.03 1,315 19 16쪽
54 공부빵이 궤도에 오르다. 22.07.02 1,349 26 16쪽
53 첫 판매와 서열정리 +2 22.07.01 1,412 25 27쪽
52 폭풍전야 +1 22.06.30 1,390 28 16쪽
51 ppl 개시 22.06.29 1,440 26 18쪽
50 머리가 좋아지는 빵을 개발하다 22.06.28 1,463 31 19쪽
49 인터뷰로 ppl을 준비하다 22.06.27 1,524 30 16쪽
48 당첨이 예정된 복권이 되다 +2 22.06.26 1,585 31 22쪽
47 선을 긋다 22.06.25 1,567 28 18쪽
46 초등학교의 정점에 오르다. 22.06.24 1,560 29 18쪽
45 소설 속 주인공과 같이. +2 22.06.23 1,539 31 18쪽
44 교류회 +1 22.06.22 1,573 31 17쪽
» vs 엄친아 +1 22.06.21 1,604 33 21쪽
42 교사보다 서열이 높은 학생이 있다? +1 22.06.20 1,663 31 17쪽
41 풀었는데요 +1 22.06.19 1,639 31 17쪽
40 서열정리 3 +1 22.06.18 1,649 33 17쪽
39 서열정리 2 +2 22.06.17 1,643 33 16쪽
38 서열정리 1 +2 22.06.16 1,691 30 18쪽
37 설마 자기 소개를 이런 식으로 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22.06.15 1,694 33 19쪽
36 입학식 +1 22.06.14 1,755 31 15쪽
35 2호점 개점 +1 22.06.13 1,814 33 17쪽
34 자식몬 대결 22.06.12 1,810 38 18쪽
33 뿌슝빠슝 할아버지 기를 세워드리는 7살 손자가 있다? 22.06.11 1,852 34 14쪽
32 할아버지와의 재회는 최악이었다. 22.06.10 1,883 33 12쪽
31 마지막 예언 +1 22.06.09 1,877 34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