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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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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622,845
추천수 :
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5.11.27 10:01
조회
394
추천
8
글자
8쪽

32화

DUMMY

정적이 가득한 복도에 나지막한 발소리가 울려퍼졌다. 어둠이 갈라지고 램프 모양의 마나등을 앞세운 어린 하녀가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귀빈실의 문 앞에 도달한 그녀는 문 옆에 준비된 거치대에 마나등을 걸어둔 뒤, 가볍게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똑똑.


" 알비님, 세바티아입니다. "


하녀는 끈덕지게 기다렸지만 몇 분이 지나도록 안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그녀는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렸지만 결과는 같았다. 아직 자고 있는게 틀림없다.


" 실례하겠습니다. "


원칙대로라면 귀빈이 일어날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야했지만 오늘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그녀는 귀빈에게 양해를 구하고 문을 열었다. 예상대로 방 안은 어둠과 정적에 감싸여 있었다.


찰칵.


" 으으음... "


불을 켜자, 침대 쪽에서 괴로운 듯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세바티아는 그 소리를 귓등으로 흘려버리며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걷고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밀려들어오면서 방 안의 온도가 순식간에 떨어지기 시작한다.

예민한 사람이라면 이 시점에서 눈을 떴겠지만, 그녀가 담당한 귀빈은 이불을 끌어당길 뿐, 아직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하기사 엘로얀에서 여기까지 왔으니 오죽 피곤하겠는가. 마음 같아서는 좀 더 자게 내버려두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녀에겐 그럴 권한이 없었다.


" 알비님, 일어나주십시오. "


" 으으... "


귓가에 대고 직접 이야기했지만 소년은 일어나는 대신 홱, 하고 돌아누웠다. 아무래도 쉽게 일어나 줄 것 같진 않았다. 세바티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벽시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계바늘이 새벽 4시 49분을 지나고 있었다. 더 이상 온건한 방법으로 지체할 시간이 없다.


' 할 수 없네. '


각오를 다진 그녀는 이불을 확 잡아당겼다. 이불이 걷히면서 속에 갇혀있던 낮선 향기가 쏟아져나왔다.


' 이건 무슨 향이지? '


세바티아는 위화감을 느꼈지만 그야말로 순간일 뿐이다. 그녀의 관심은 곧 새우처럼 몸을 웅크린 채, 괴로운 듯이 신음소리를 내뱉는 소년에게 쏠렸다.


" 알비님, 일어나주십시오. "


" 끄으으... 버, 벌써 아침...? "


온기를 빼앗긴 상태에서 흔들어 깨우자 소년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눈을 떴다. 그가 일어나자 하녀는 한걸음 물러서며 답했다.


" 오전 4시 51분입니다. "


" ....잉? "


여전히 잠이 덜 깬 듯, 얼빠진 소리를 내며 눈을 끔뻑이던 소년은 자기 눈으로 시계를 보고서야 겨우 상황을 파악하고 황당해하면서 말했다.


" 아니, 아직 5시도 안됐잖아. 이 꼭두새벽부터 무슨 일이에요? "


" 오늘부터 알비님도 아침 단련에 참석하라는 후작 각하의 명이 계셨습니다. "


" 예에!? 저는 기사도 아닌데... "


소년은 피곤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로 경악했다. 그 꼴이 어찌나 불쌍해보였던지 세바티아는 자기도 모르게 동정심을 느꼈다.


' 조금쯤은 쉬게 해줘도 좋을텐데. '


하지만 지엄하신 후작 각하의 명령 앞에서 하녀 나부랭이가 별 수 있겠는가. 그녀는 마음 속 동요를 내비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냉엄하게 잘라 말했다.


" 후작 각하의 명이십니다. "


" 애휴... 알겠습니다. 지금 나가면 되는거죠? "


" 예. "


별 수 없는 것은 소년도 마찬가지다. 그는 체념한 얼굴로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어느새 다가온 하녀가 밤새 흐트러진 귀빈의 옷매무새를 능숙한 솜씨로 바로잡아주었다.


" 저택 뒤쪽으로 나가면 바로 연병장이 있습니다. "


" 알겠습니다. "


소년도 복도의 창문을 통해 본 적이 있었으므로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정돈을 마친 하녀는 뒤로 한발 물러서며 예를 표했다.


" 그럼, 다녀오십시오 알비님. "


" 예, 수고하세요. "


소년이 나가자 혼자 남은 세바티아는 방 안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바닥에 떨어진 이불을 집어든 그녀는 뭔가 미묘한 냄새를 맡고 눈살을 찌푸렸다.


" 뭐지? "


미미한 비린내와 정체를 알 수 없는 향기가 뒤범벅이 된 듯한 냄새다. 정체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알레크 저택에서 사용하는 향수나 방향제(芳香劑)는 아니었다.


' 이게 대체 무슨 냄새람? '


유감스럽게도 알레크 가문의 하녀는 언제까지나 속편하게 고민할 수 있을만큼 한가한 직업이 아니었다. 시간에 쫒긴 그녀는 끝내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채, 이불을 교체하는 선에서 이 문제를 마무리 지을 수 밖에 없었다.


***


" 느려! 젊은 녀석이 왜 이렇게 굼뜬거야!? "


연병장으로 나오자마자 후작의 우렁찬 고함소리가 소년을 덮쳤다. 목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몸이 쩌릿쩌릿 떨린다. 과연 전쟁터를 해쳐나온 지휘관다운 성량(聲量)이었다.


" 빨리 뛰어오지 못해!? "


" 예, 예! 지금 갑니다! "


그녀의 재촉에 소년은 헐레벌떡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 꼬락서니를 목격한 기사들의 입에서 폭소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눈까지 웃고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는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누군가는 의아함이 가득한 시선으로, 또 누군가는 놀라움이 가득한 시선으로 후작이 직접 챙기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 이야기는 들었겠지만 오늘부터 너도 함께 단련한다. "


" 각하께서 시키신 일이니 하기야 하겠습니다만, 어째서입니까? "


기사의 단련은 아주 어릴 적부터 시작해야한다. 시기를 놓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년은 명백하게 시기를 놓쳤다. 해봐야 안되는걸 뻔히 아는데 뭣하러 힘들게 단련해야 하는가?

후작은 당연하다는 투로 즉답했다.


" 알레크 가문은 무가(武家)! 그 후손을 자처하는 놈이 무술 한 자락도 못한다는건 말도 안되지! "


" 어, 그 말은... 제가 동생이라는걸 인정해주시는겁니까? "


" 이거랑 그건 별개의 문제야. "


" 아, 예... "


설령 가짜라고 할지라도 무술을 못하는 놈이 후손을 자처한다는건 용납할 수 없다, 뭐 그런 것인 모양이다. 소년이 생각하기에는 아무래도 좋은 일 같았지만 귀족들이 쓸데없는 일에 집착하는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으므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넘겼다.


' 내가 납득 못한다고 안할 것도 아니고 뭐... '


선택권이 없는 입장이었기에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썩 내키지 않았다. 출신도 불분명하고 알레크 가문 소속도 아닐 뿐더러 이렇다할 장래성도 없는 소년에게 뛰어난 무술을 가르쳐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호신술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인데 누군들 그 따위 것을 배우겠다고 매일 새벽같이 불려나와서 추위에 벌벌 떨고 싶겠는가?


" 궁금한건 그게 끝이야? 이제 시작해도 되나? "


하지만 상술했다시피 그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그리고 피할 수 없다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게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실제로 비록 공개된 자리지만 매일 아침 후작과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성과였다. 소년은 마음을 다잡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 예, 잘 부탁드립니다! "


작가의말

처음 의도와 달리 전개가 계속 삼천포로 빠져서 부득이하게 갈아엎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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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20화 15.06.16 542 18 15쪽
201 19화 +1 15.06.12 471 1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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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8화 +4 14.12.08 722 17 10쪽
189 7화 +3 14.11.23 864 23 12쪽
188 6화 +1 14.11.23 775 15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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