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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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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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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998
추천수 :
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5.08.07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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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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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29화

DUMMY

궁으로 들어갔던 알레크 가문의 마차가 다시 거리로 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시간은 고작 다섯시 반을 조금 넘겼을 뿐이지만 주변은 벌써부터 어눅어눅하다. 이때쯤이면 시골의 농부들은 일손을 멈추고 어둠이 몰려오기 전에 귀가를 서두르지만, 도시 사람들은 얌전히 굴복하지 않는다.


우웅...


도시 곳곳에 설치된 가로등들이 하나, 둘 켜지면서 어둠을 몰아낸다. 일을 끝마친 노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며 왁자지껄 떠들어댄다. 고요함과 어둠이 밀려난 거리를 장사치들의 호객소리가, 호쾌하게 잔을 부딛치는 소리가, 길거리를 전전하는 악사의 노랫소리가.... 수많은 소리들이 어울어져 만들어진 사람 사는 소리가 가득히 흘러넘쳤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인가.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창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후작은 그렇게 생각했다. 제 아무리 재주가 뛰어난 악사라도 이보다 훌륭한 소리는 낼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바로 이 소리를 되찾기 위해 피를 쏟아가며 싸웠던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되찾은 소리를 지키기 위해 싸워나가야 한다. 때로는 검으로, 때로는 말로, 때로는 법으로, 때로는 희생으로...


" 워~워~! "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후작을 마부의 목소리가 현실로 이끈다. 말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두어번 다그닥거리는가 싶더니 마차의 움직임이 멎었다. 벌써 도착한 것일까? 세라스의 눈꺼풀이 서서히 열린다. 창 밖을 바라보니 저택까지는 아직 먼 위치였다. 무언가 문제가 생긴건가. 그녀가 마부에게 물어보려던 찰나, 탈몬 경의 날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 누가 감히 알레크 가문의 마차를 막아서는가! "


대답 대신 창칼이 부딛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암살자인가. 비교적 인적이 드문 위치라지만 대도시 한복판에서 습격해오다니 어지간히도 간덩어리가 부은 놈인 듯 싶었다. 모처럼의 즐거운 시간을 방해받은 후작의 눈썹이 매섭게 치켜올라간다.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자신이 준비한 패가 충분하기를 빌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몸 성히 돌아가긴 힘들테니까.


챙! 챙챙! 퓨슈슈슉!


마차 밖으로 나오자 괴한과 탈론 경이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후작의 시선이 괴한에게로 향한다. 키가 크고 아름다운 체형을 가진 여성이다. 춥지도 않은지 여름철에나 입을 법한 가벼운 복장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가면으로 얼굴을 가렸는데 두 자루의 단검을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장창을 사용하는 탈론 경이 도리어 수세에 몰릴 정도였다.


제법 솜씨가 좋군.


단검으로 창을 상대하는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탈론 경의 창술은 그녀가 만나온 기사들 중에서도 상위권에 들어가는 솜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세를 점한다는건 상대의 실력이 탈론 경보다 한 수 위라는 반증이다. 후작은 내심 습격자의 실력에 감탄하면서 마차 지붕 위로 뛰어올랐다. 높은 곳에 올라가 주변을 살펴봐도 탈론 경과 싸우고 있는 여자 외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째서?


후작의 이마에 얕은 골이 패였다.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은 것이야 저쪽에서 무언가 수작을 부린것이겠지만 괴한 한명 외에 다른 암살자들이 보이지 않는건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설마하니 한명으로도 충분히 말살할 수 있다고 생각한걸까? 만약 그렇다면 상대는 큰 오판을 한 것이다. 실력이 좋기는 하지만 저 정도로 청기사의 목을 따는건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후작이 의지를 일으키자 어디선가 파란색 입자들이 몰려들어 푸른 갑주와 장검을 형성했다.


콰앙!


깃털처럼 가뿐히 착지한 후작은 가볍게 땅을 박찼다. 그러자 돌로 포장된 도로가 포탄에 엊어맞은 듯이 터져나가면서 그녀의 몸이 전방으로 쏘아져나갔다.


" 윽!? "


탈론 경을 신나게 밀어붙이던 습격자는 갑자기 왼쪽에서 날아든 기습에 다급히 몸을 뺐다. 시퍼런 검광이 코앞을 스치고 지나간다. 0.1초만 늦었더라도 머리가 반쪽나고 말았으리라. 목숨을 건진 것에 안도할 틈도 없이 후작의 연격이 이어졌다.


캉, 캉, 퍽!


가슴을 쪼개버릴 기세로 날아드는 중단 가로베기를 우검(右劍) 올려치기로 걷어낸다. 좌검으로 빈틈을 노릴 틈도 없이, 튕겨져나갔던 장검이 반전하여 오른쪽 어께를 노리고 떨어져내린다. 우검을 회수해서 막기엔 너무 늦다. 습격자는 임기응변을 발휘하여 좌검으로 내리치는 검면을 힘껏 찔렀다. 승산이 낮은 도박이었지만 단검은 멋지게 명중하여 후작의 검을 밀어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후작의 왼주먹이 습격자의 복부에 자비없이 틀어박혔다. 단검이 검면을 찌르는 순간, 검을 잡고 있던 왼손을 놓아버리고 주먹을 내질렀던 것이다.


" 커헉! "


숨이 턱 막히고 장기가 목구멍으로 튀어나오려고 한다. 그러나 한가로이 배를 붙잡고 꺽꺽거릴 여유는 없었다. 우측 상단에서부터 후작의 장검이 벼락처럼 떨어져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습격자는 이를 악물고 우검을 휘둘렀다.


카앙!


위력은 달렸지만 후작 역시 한손으로 휘두른 것이었기에 장검도 궤도가 크게 어긋났다. 이번에야말로 훤히 드러난 상체에 전력을 다해 좌검을 찔러넣는다. 하지만 후작은 피하려고도 하지 않은 채, 다시 한번 주먹을 휘둘렀다.


팅, 퍽!


비교적 약한 겨드랑이 아래쪽을 찔렀음에도 단검은 갑옷을 뚫지 못했다. 곧이어 자비없는 후작의 주먹이 습격자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들어가기만하면 승부를 결정짓고도 남을 위력이었지만 가면에서 솟아나온 푸른 막이 후작의 주먹을 받아냈다. 그 틈에 습격자는 뒤로 훌쩍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 생각보다 제법인데! "


곧바로 따라붙은 후작이 장검을 크게 가로로 휘둘렀다. 강력한 일격으로 회피를 유도하여 주도권을 가져갈 속셈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습격자는 피하지 않았다. 대신 두 자루의 단검에 시퍼런 마나검을 덧씌우고는 전력을 다해 맞부딛쳐왔다.


콰앙!


세 궤젹이 한 점에서 겹쳐지자 폭음이 터져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큰 충격에 후작은 처음으로 뒷걸음질쳤다. 상대 역시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었는지 뒷걸음질치는 모습이 보였다. 작정하고 휘두른 일격과 동수(同數). 이렇게되면 강검으로 우위를 점하기는 쉽지 않다. 후작은 공세를 이어가는 대신 상대의 모습을 관찰했다.


" 그저 운 좋게 과분한 기간트를 주워서 명성을 쌓은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직접 부딛쳐보니 알겠어. 당신이 얼마나 피나는 수련을 쌓아왔는지, 얼마나 지독한 수라장을 헤쳐나왔는지. 아주 멋져. 가랑이가 오싹오싹한걸. "


가면 때문에 표정까진 살필 수 없었지만 마나검이 굳건하게 유지되는 모습이나 목소리를 보건데 별다른 타격을 입은 것 같진 않았다. 태도 또한 느긋한 것을 보면 시간에 쫒기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는건 무리해서 끌어낸 일시적인 힘이 아니라 본 실력을 냈다고 보는게 타당하다.


" 과연 당신의 깊이가 어느 정도일지... 한번 확인해보도록 하지! "


습격자의 몸이 푸른 빛으로 물들었다. 마법 도구에 내장된 보조 마법들을 한꺼번에 발동시킨 것이리라. 거의 동시에 그녀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후작을 향해 돌진했다. " 사라졌어!? " 뒤쪽에서 들려온 당황한 탈론 경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후작은 마주 달려나가며 검을 휘둘렀다. 한발 늦게 출발했는데도 두 사람이 격돌한 위치는 후작보다 습격자 쪽에 가까웠다.


쾅! 쾅쾅! 콰콰콰콰콰콰콰콰쾅!


두 자루의 마나검이 자아내는 어지러운 궤적이 허공을 빈틈없이 수놓는다. 후작 역시 지지않고 장검을 마주 휘둘러 받아낸다. 궤적의 숫자는 마나검 쪽이 많지만 위력과 속도는 후작의 장검이 빠르다. 막상막하,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현란한 공방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서로 강력한 일격을 교환하고 동시에 떨어졌다.


후아아...


그녀들의 입에서 참고 있던 숨이 터져나온다. 70회에 달하는 이 치열한 공방이 고작 한 호흡 사이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두 사람이 숨을 들이키고 다시금 격돌하려던 순간, 사방에서 주먹만한 쇠공이 수십개나 쏟아졌다. 바닥에 떨어진 공들에서 하얀 연막이 분수처럼 뿜어져나와 삽시간에 시야를 하얗게 물들인다.


" 아, 뭐야!? 이제 막 재미있어질려는 참... 우엑!? "


연막은 금새 사그라들었지만 습격자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게다가 그 많던 쇠공들마저 모조리 없어졌다. 무언가가 움직이는 기척은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말이다. 그 의미를 깨달은 후작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 후작 각하! 무사하십니까!? "


탈론 경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그녀를 향해 달려왔다. 그의 뒤로 보이는 마부와 말들도 무사해보인다. 다행히 독안개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일행의 안전을 확인한 후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 난 괜찮아. "


" 다행입니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었을까요? "


" 글쌔, 짚히는데가 너무 많아서 모르겠는걸. 생각은 나중에 하도록 하고 우선은 저택으로 돌아가지. 지금은 안전이 최우선이야. "


"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


마차에 오른 후작은 가만히 눈을 감고 바깥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다그닥 다그닥, 마차 소리 밖에 나지 않던 세계에 어느 순간 소음이 되돌아왔다. 여느때와 같은 사람 사는 소리가 세라스의 귓가를 맴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있다가 돌아온 것 같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


작가의말

피곤해 죽겠는데 너무 더워서 자기가 힘들다...

 

나도, 나도 에어컨 밑에서 자고 싶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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