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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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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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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4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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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08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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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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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8화

DUMMY

오후 6시 정각.


아르모어 폰 피르쉬어는 어김없이 마지막 마법진을 새길 자리에 도달해 있었다. 나름대로 계산에 계산을 거듭하여 최대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를 엄선해왔지만 마지막 장소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뭘 어떻게 조정해도 이 사람이 넘치는 광장 한복판에 마법진을 새기지 않고선 도저히 도시 전체를 범위 안에 넣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마법진을 새길 것인가? 아르모어가 선택한 방법은 단순했다.


" 시작해라. "


" 네. "


먼저 애냐는 마법진을 그릴 장소를 중심으로 동, 서, 남, 북에 표지판 하나씩을 세웠다. 그 표지판에는 『지하 송마관(送魔管) 보강 작업 중』 이라는 빨간 글자가 큼지막하게 쓰여져 있었다. 표지판 설치를 마친 그녀는 대놓고 바닥에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실 정식 마법사가 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한 만큼 어린아이가 마법진을 그리고 있는 모습은 충분히 의심스러운 장면이었지만 누구 하나 그걸 수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일반인들은 마법에 대해 잘 모를 뿐더러 아르모어의 복장이 순례자의 복장에서 하얀 로브에 긴 나무 지팡이를 든 고전적인 마법사의 복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실 마법사들은 행사라도 있는게 아니면 이런 복장은 거의 입지 않지만 지구의 일반인들이 과학자를 떠올릴 때 하얀 가운에 플라스크를 든 모습을 연상시키는 것처럼 이 세계의 사람들은 마법사 하면 로브에 지팡이를 먼저 떠올린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보기에 애냐는 실습을 나온 마법사의 제자로, 아르모어는 제자가 실수하지 않는지 감독하러 나온 스승으로 비춰졌다. 그 착각을 더욱 부추기듯, 아르모어는 이따금씩 헤매는 듯이 보이는 애냐에게 전문용어가 잔뜩 섞인 조언을 하거나 지팡이로 마법진 여기저기를 짚으면서 애냐의 실수를 질책하는 연기를 선보였다. 그 덕분인지 그들은 대로 한복판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도시를 멸망시킬 마법진을 순조롭게 완성해나갔다.


" 뭔가 문제라도 생겼나? "


그러나 무난히 마법진을 완성하고 활성화시키는데 성공한 아르모어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마지막 마법진이 활성화되는 순간에 마법이 발동해야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뭔가 실수한 것이 없는지 꼼꼼하게 재확인했지만 역시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뿐이다.


" 아무래도 앞서 설치한 마법진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


" 그래? "


진단 결과를 들은 아르모어는 표정을 찌푸렸다. 그녀의 판단을 불신하는건 아니지만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았던 것이다. 설치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마법진에 왜 문제가 생긴단 말인가? 고대의 마법진은 발동하면 마나 연결체 형태로 변화하기 때문에 물리적인 손상을 입지도 않는데.


" 가자. 가서 보면 알겠지. "


" 예. "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가서 보면 알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동하기 위해 돌아선아르모어는 금새 이상을 깨닫고 굳은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애냐와 대화하기 전까지만 해도 제법 있었던 행인들이 단 한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해가 떨어졌다지만 기껏해야 7시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광장이 텅 빈다는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 누가 수작을 부렸군. "


뚜벅뚜벅.


그가 정답에 도달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한쌍의 남녀가 나타났다. 광장의 동쪽에서는 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귀족 차림의 미남자가, 서쪽에서는 갈색 머리카락을 양갈래로 높이 묶고 빛바랜 하녀복을 입은 자그마한 소녀가 그들을 향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다가왔다.


뿌득!


그들을 발견한 아르모어의 눈동자에 별안간 시뻘건 힘줄 같은 것이 돋아났다. 그러자 시야가 360도로 변하면서 크게 넓어졌다. 여왕의 눈이 활성화된 것이다. 한숨을 가볍게 내쉬고 의지를 일으키자 사고가 가속하며 일반인의 눈으로는 관측할 수 없는 대량의 정보가 단시간에 그의 머릿속으로 전달되었다. 주어진 정보를 적절하게 조합하여 결론을 이끌어낸 아르모어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시야를 일반인 수준으로 축소시키며 애냐에게 눈짓했다.


" 악명은 익히 들었지만 실제로 뵙는건 처음이군요. 영광입니... 캑!? "


챙그랑!


그러는 사이 7m 앞까지 도달한 청년은 남자도 반할 것 같은 상큼한 미소와 함께 정중한 인사를 올렸다. 하지만 그가 숙였던 머리를 체 들기도 전에 애냐가 가방에서 손가락 마디 하나만한 시약병 4개를 꺼내 양손에 두 개씩 나눠들고 청년과 소녀에게 던졌다. 2개의 시약병들이 공중에서 서로 부딛쳐 파손되고 안에 들어있던 노랗고 빨간 시약들이 섞이더니 짙은 초록빛 안개가 폭발적으로 피어올라 온 광장을 가득 메웠다.


" 캐핵, 캑... 배, 배제... "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린 청년은 목을 붙잡고 바닥에 쓰러져 괴로워하다가 가까스로 입을 열어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의 몸을 중심으로 엄청난 강풍이 일어나 광장에 가득차있던 초록빛 안개를 깔끔하게 날려버렸다.


" 으..... "


안개를 걷어내자 여기저기가 녹아내리고 있는 광장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질 좋은 석재로 포장한 바닥도, 광장 주변의 동상도, 가게나 민가 건물의 벽면도 예외없이 손상을 입었다. 물론, 그 독한 안개가 사람이라고 피해갈 리는 없어서 청년과 소녀의 모습은 눈뜨고 못 볼 정도로 처참한 상태였다.


옷은 물론, 피부의 8할 이상이 녹아내려서 시뻘건 내용물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으며 특히 청년의 양 팔은 너무 녹아서 뼈가 훤히 드러나보일 정도였다. 구멍난 옆구리 사이로는 손상된 내장의 모습이 슬쩍 비치고 손가락과 발가락은 거진 다 녹아버려서 남아있는걸 세는게 빨랐다. 그러나 가장 압권인 것은 역시 얼굴로 손바닥으로 감쌌던 입 주변을 제외하면 싹 다 녹아버려서 흉물스럽게 흘러내렸다. 왼쪽 눈알은 반쯤 녹은 상태로 떨어져나가고 오른쪽 눈알은 제자리에 붙어있긴 했지만 앞면이 다 녹아버려서 못써먹을 물건이 되버렸다. 그야말로 숨이 붙어있는게 불쌍한 몰골이었던 것이다.


" 으어... 지독하다, 지독하다 말만 들었는데 정말 잔인한 수를 주저없이 써버리네. "


그런데 놀랍게도 청년은 아직도 말을 할 수 있었다. 심지어 다 녹아내린 팔다리를 이용해 일어서기까지 했다. 이것만해도 기절초풍할 일인데 놀랄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걸레짝이 된 청년의 육체가 테이프를 되감은 것처럼 급속도로 원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불과 10초 남짓한 사이에 바닥을 뒹굴던 안구까지 완벽하게 재생을 마친 청년은 몸을 한번 가볍게 풀어주고는 오른손을 뻗으며 말했다.


" 탐색! "


그러자 그의 오른손 끝에서부터 무형의 마나 파동이 퍼져나가더니 온 도시를 한번 훝고 지나갔다. 그러나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는지 청년은 뚱한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찼다.


" 쳇, 역시 신출귀몰한 작자구만. 도망친지 몇 초 지났다고 걸리는게 없어 걸리는게. 하기야 그러니까 온 세계가 작정하고 쫒아도 끝까지 안잡혔겠지. "


뭐, 좋아. 하고 청년은 미련을 떨쳐버렸다. 괜히 쓸데없는 짓을 하다가 모처럼의 기회를 날려버린게 아깝기는 했으나 이미 지나간 일인데다 기회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도 아니었다. 살인마도 사람인데 어찌 다 된 밥이 아깝지 않겠는가? 최소한 마법진들을 한번씩 돌아보긴 할거라고 확신했다.


" 다음번에는 실수없이. "


그렇게 중얼거린 청년은 가볍게 피식 웃더니 아직도 뻗어있는 하녀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


" 후. "


마나의 파동이 지나간 직후, 어두운 뒷골목 한구석에 수상스럽게 펼쳐져있던 반투명한 막이 사라졌다. 아르모어는 벽에 기댄 체,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는 애냐에게 물었다.


" 『기사』냐? "


그의 질문에 애냐는 글쌔요, 하고 애매모호한 답변을 했다. 아르모어가 사나운 눈초리로 노려보자 그녀는 삐진듯이 입을 삐죽이면서 변명을 늘어놓았다.


" 그치만 전들 어떻게 알아요. 『기사』의 소유자라고 해봐야 보통 사람이랑 다른게 하나도 없는데. 눈앞에서 『기사』 라도 소환하던지 창잡이처럼 대놓고 『열쇠』 같은 물건을 들고다니지 않으면 구분 못해요. "


" 아, 그래, 네가 쓸모없다는건 잘 알겠다. "


" 우으... "


주인이 한숨을 쉬며 빈정거리자 애냐는 불만스럽게 볼을 부풀렸지만 아르모어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김이 빠진 듯, 평소의 무표정으로 돌아와 화재를 바꾸었다.


" 그래서, 이제 어떻하실거에요? "


" 어쩌긴 뭘 어째? 당연히 철수해야지. 솔직히 산성 안개를 맞고도 광역 탐색을 쓰는걸 보면 『기사』의 소유자가 아니라 해도 이길 것 같지 않아. 하물며 진짜 『기사』가 튀어나오면 대책 있어? 공들인 시간이 아깝긴 하지만 여기선 물러나는게 상책이야. "


" 흐응. "


" 뭐야, 불만있어? "


주인의 결정에 인형은 놀리는 것 같기도 하고, 흥미로워 하는 것 같기도 한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 기분이 슬쩍 상한 아르모어가 짜증내듯 묻자 애냐는 가볍게 웃으며 얼버무렸다.


"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


" 아무것도 아닌게 아닌 것 같은데... "


그 웃음을 보고 있자니 뭔가 놀림받은 기분이 들었지만 따지고 들 생각도 들지 않아 그는 한숨을 쉬며 물러났다.


" 뭐, 좋아. 가자. 여기서 날린 시간만큼 서둘러서 보충해야지. "


" 네~ "


그 대화를 끝으로 로브를 뒤집어쓴 사내와 유쾌한 발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르던 인형은 밤의 어둠속으로 녹아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작가의말

저퀼, 맥빠지는 전개, 느린 연재

 

망작의 3박자를 고루 갖추고 있는 요즘입니다.

 

이게 참 개선이 안되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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