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622,842
추천수 :
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5.04.22 11:26
조회
628
추천
14
글자
9쪽

15화

DUMMY

멀리 불길에 휩싸인 마차가 보였다.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이 타고 있는 마차가 새까만 재가 되어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때, 약해진 잔해를 몸으로 부수며 한 남자가 바깥으로 탈출했다. 그가 낸 구멍을 따라 어린아이를 품에 안은 부인이 다급히 빠져나왔다. 비록 꼴은 엉망이었지만 목숨에 지장은 없어보였다.


다행이다,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순간.


치이익... 치이익...


불타는 마차안에서 전신이 불꽃으로 뒤덮힌 마인(魔人)이 어슬렁어슬렁 걸어나왔다. 단순한 눈속임이 아닌 듯, 바닥에 발이 닿을때마다 돌로 포장된 도로가 연기를 내뿜으며 녹아내렸다. 불꽃의 마인은 겁에 질린 남자와 부인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내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그의 의도를 직감한 나는 절박한 목소리로 고함을 내질렀다.


***


" 그만둬어어어어어어어어! "


귀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과 함께 눈을 떴다. 낮선 천장의 고급스러운 벽지를 보고 바보처럼 눈을 두어번 끔뻑거리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꿈을 꿨는지 온몸이 식은땀에 절어 끈적거렸다. 기분 나빠. 인형... 아니, 하녀분들에게 씻을데가 없는지 물어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거추장스러운 이불을 걷었다. 그런데,


" 어억!? "


이불 안에는 두 명의 사람이 더 있었다. 그것도 반쯤 벗은거나 다름없는 속옷 차림으로. 심지어 자는 것도 아니고 눈을 말똥말똥하게 뜬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 뭐, 뭐뭐, 무머, 뭐하는겁니까!? "


그러자 왼편에 누워있던 하녀가 자칭 인형답게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 봉사입니다. "


" 보, 봉사아!? "


" 예, 저희들의 지식 저장소에 따르면 젊은 여자를 양쪽에 끼고 자는건 남성분들의 로망이라고... 혹시 잘못된 정보입니까? "


" 아니, 틀린건 아니지만... "


이걸 순순히 받아들여버리면 뭔가 사람으로서 한층 타락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떻게든 잘 알아듣도록 타일러서 두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어억!?


" 자, 잠깐! 바지는 왜 내리는건데요!? "


난데없이 바지를 내리려는 통에 기겁해서 소리를 질렀더니 두 하녀는 태연한 얼굴로 답했다.


" 봉사를 위해서입니다. "


" 무슨 놈의 봉사!? "


" 밤새 쌓인 성욕을 해소시켜... "


" 윽...! "


솔직히 말해서 흔들렸다. 인형이라고 하지만 아무리봐도 멀쩡한 인간인 쌍둥이 미녀가 그, 어흠! 욕구를 해소해주겠다는데 솔깃하지 않는다면 그게 어디 남자인가? 그러나 이성이 7할쯤 무너졌을 무렵, 머릿속에 한 여자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긴 금발에 가려져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어쩐지 흉폭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자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며 끓어오르던 피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뭐라고 해야할까, 갑자기 현자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 하아... "


그런 기분으로 여전히 내 허리춤을 붙잡은 채,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하녀들을 내려다보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렇잖아도 땀나서 불쾌한데 뜨뜻한 몸뚱어리를 밀착하고 있으니 이게 뭐하는 짓거린가 싶다. 그런 마음 속 심정을 꾹꾹 눌러담아 하녀들에게 소리쳤다.


" 필요없으니까 당장 나가아아아아아아아앗! "


그러자 하녀들은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두 손을 번쩍 들더니,


" 꺄아아아아아악. "


하고, 높낮이가 없는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종종걸음으로 방을 빠져나갔다. 뭐라고 해야할까, 뭔가 놀림감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 이마를 감싸쥐고 한숨을 내쉬었다.


" 애휴. "


이제 겨우 일어났을 뿐인데 왜 이렇게 피곤한걸까? 한숨과 함께 드러누웠다가 몸이 땀에 절어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하며 도로 몸을 일으켰다. 뭘 하든지간에 일단은 좀 씻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씻을 수 있지? 방 안을 두리번거리며 잠시 고민해봤지만 그런다고 생전 처음 와본 건물의 구조를 알 리가 없었다.


" 저기, 몸을 좀 씻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합니까? "


결국, 내키지는 않았지만 별 수 없이 문 밖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던 하녀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둘 중 왼쪽에 있던 하녀가 방문을 열며 앞장섰다.


" 따라오시지요. "


건물 뒷편으로 나와 꽃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길을 따라가자 터무니없이 거대한 건물이 우리들을 맞이해주었다. 도저히 목욕탕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넓이였기에 설마설마했지만 하녀는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정말로 그 바보같이 커다란 건물로 들어갔다.


" 옛날 사람들은 대체 뭔 생각이었던거야... "


안으로 들어오자 사람 키 정도 높이의 옷장이 늘어서 있었다.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옷장 문 한켠에는 알 수 없는 문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아마 자기 옷장을 구분할 수 있도록 넣어놓은 표식 같았다. 약간 안쪽에 위치한 옷장을 골라 문을 열자 하녀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더니,


"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


하고, 위에서부터 내 셔츠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 잠깐! 지금 이건 또 뭐하는 짓입니까? "


당황해서 뜯어말렸더니 하녀는 도리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 옷 시중을 들고 있습니다만. "


아, 그러고보니 귀족들은 옷 입는 것 하나도 전부 하인들의 손에 맡긴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귀하신 분들을 모셔온 하녀들 입장에선 당연한 일인거겠지. 하지만 이해는 이해고 싫은건 싫은거다.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끔 수위를 조절해서 거절하자.


" 괜찮습니다. 전 하층민 출신이라 어릴 적부터 항상 혼자 했거든요. 오히려 누가 도와주는게 더 불편하니까 신경쓰지 말고 가세요. "


" 알겠습니다. "


하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상의가 벗겨지고 하얀 살결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지 드러나는 몸매나 피부결이 정말... 아니, 이게 아니라!


" 잠까아아아아아안! 갑자기 옷은 또 왜 벗어던지고 난리입니까!? "


" 그야 옷을 입고선 목욕 시중을 들 수 없으니까요. "


" 필요없다고! "


알몸의 미녀에게 시중받아가며 목욕을 한다니, 얼마나 문란하게 사는겁니까 우리 귀족 나으리들은! 아니, 나라고 그런 욕망이 없는건 아니지만! 이해는 할 수 있지만!


" 목욕 같은건 혼자 할 수 있으니까 좀 내버려둬요! 알겠습니까? "


" .....알겠습니다. "


분명히 무표정인데 왠지 불만스러워보였다. 기분탓인가. 역시 기분탓이겠지. 인형이 뒤에서 궁시렁거린다거나 볼을 뿌우, 부풀린다거나 하는 행동을 보일 리가 없잖아. 응, 역시 기분탓이다. 망상은 정도껏하고 얼른 목욕이나 하러가자. 그렇게 마음 속을 정리하고 하녀를 돌려보낸 뒤, 옷을 벗고 열기 때문에 김이 잔뜩 서려있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 ..... "


어처구니없이 거대한 탕의 규모에 할말을 잃어버렸다. 이건 이미 목욕탕이라기보단 인공 호수라고 부르는게 나을 것 같다. 모르긴해도 3천명 정도는 거뜬히 들어가지 않을까. 규모가 이렇게나 크면 관리하기도 힘들텐데... 옛날 사람들의 생각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 너무 뜨겁진 않겠지? "


김이 풀풀 나는 탕에 발끝을 넣어보려다가 우선 몸을 씻어내고 들어가야 한다는걸 떠올렸다. 여럿이서 쓰는 탕이니까 더러운 채로 들어가는건 실례다. 물을 뜰만한 대야 같은걸 찾다가 문득 이상한 것을 깨닫고 멈춰섰다.


그런건 어떻게 알고 있는거지?


일반적인 대중 목욕탕은 이렇게 넓은 탕이 있는게 아니라 손님마다 작은 욕조가 하나씩 배정되어있다. 오직 자신만이 쓰는 물이니만큼 다른 사람을 배려할 필요는 없다. 실제로 평소에는 바로 욕조에 들어가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에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씻고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의문을 가지는 순간, 뒷통수가 쑤시듯이 아파왔다. 곧이어 누군가가 화내는 듯한 모습이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말 그대로 순간이었던데다 장면 자체도 흐릿하여 제대로 기억에 남지 않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무언가 내가 잊어버리고 있는게 있다.


그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을.


***


작가의말

19금 연재로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하얀기사이야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4 32화 +1 15.11.27 394 8 8쪽
213 31화(내용추가) +2 15.09.01 576 9 21쪽
212 30화 +1 15.08.16 475 8 18쪽
211 29화 +1 15.08.07 512 10 10쪽
210 28화 15.08.01 397 8 8쪽
209 27화 +1 15.07.26 600 11 11쪽
208 26화 +1 15.07.19 527 9 8쪽
207 25화 15.07.13 665 13 17쪽
206 24화 +3 15.07.09 542 15 13쪽
205 23화 +1 15.06.26 569 16 9쪽
204 22화 15.06.25 506 14 8쪽
203 21화 +3 15.06.18 498 18 7쪽
202 20화 15.06.16 542 18 15쪽
201 19화 +1 15.06.12 471 13 16쪽
200 18화 +1 15.05.22 575 14 11쪽
199 17화 +2 15.05.12 629 15 8쪽
198 16화 15.05.10 713 26 8쪽
» 15화 +4 15.04.22 629 14 9쪽
196 14화 +2 15.04.17 659 15 11쪽
195 13화 +3 15.04.16 971 33 9쪽
194 12화 +3 15.03.25 710 21 15쪽
193 11화 15.03.11 617 14 11쪽
192 10화 +2 14.12.23 734 18 9쪽
191 9화 +1 14.12.14 679 13 9쪽
190 8화 +4 14.12.08 722 17 10쪽
189 7화 +3 14.11.23 864 23 12쪽
188 6화 +1 14.11.23 775 15 7쪽
187 5화 +4 14.10.29 804 25 16쪽
186 4화 - 슬슬 부제목이 떠오르질 않는다. 어떻하지? +5 14.10.18 1,234 33 10쪽
185 3화 - 누구냐, 넌? +4 14.10.12 1,094 2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