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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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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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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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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5.06.26 16:14
조회
568
추천
16
글자
9쪽

23화

DUMMY

" 으휴, 힘들다. "


" 수고하셨어요. "


요정들의 통로를 통해 검은 고양이와 만나고 온 아르모어는 여관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침대 위로 직행했다. 여왕의 눈을 어거지로 발동한데다 유지 시간도 길었던 탓에 피로가 급격히 쌓인 것이다. 그의 뒤를 따라 애냐가 자신의 머리보다 큰 자루를 짊어지고 통로를 빠져나왔다.


" 그나저나 의외네. 고양이 녀석들이라면 틀림없이 알 것 같았는데. "


힘들게 유지하던 통로를 해제하고 한결 여유를 되찾은 아르모어는 검은 고양이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돈을 찾는 김에 에밀리 부부가 지고 있는 빚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봤다가 잘 모른다는 대답을 들었던 것이다. 고양이 요정들이 이처럼 딱 잘라서 '모른다'고 대답했던 적은 그가 기억하기에 이번이 처음이었다.


" 제 아무리 발넓은 정보통이라도 일반인 가정의 빚 내역까지 조사해놓진 않는다는거죠. 뭐, 그래도 내일 아침까진 알아봐 준다고 했으니까 딱히 문제될건 없을거에요. "


" 그렇기야 하다만... 너 은근히 기분 좋아보인다? "


실제로 애냐의 표정은 밝다 못해 빛이 날 지경이었다. 평소에도 잘 웃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 밝은 얼굴을 보여주는 일은 역시 드물다. 아르모어가 그 점을 지적하며 의심의 눈빛을 보냈지만 그녀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은 채, 천연덕스럽게 잡아뗐다.


" 기분탓이에요, 기분탓. "


" 수상한데... "


" 흥흥~흥흥~ "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주인을 무시한 채, 자루를 침대맡에 내려놓은 애냐는 콧노래를 부르며 방문을 향해 걸어가다가 뒤늦게 생각난 듯, 아르모어를 향해 돌아보며 허락을 구했다.


" 저 잠깐 나갔다와도 되요? "


" 그야 네 맘이다만... 갑자기 왜? "


" 낮에 설치했던 마법진들을 철거하려고요. "


" 아. "


까맣게 잊고 있었던 아르모어는 멋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애냐가 알아서 챙기지 않았다면 쓸데없이 흔적을 남길 뻔 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승낙을 얻은 애냐는 방문을 열면서 짤막한 인사를 남겼다.


" 그럼, 다녀올게요. "


" 그래. "


쿵, 철컥.


문이 잠기는 소리를 확인한 아르모어는 긴장을 풀고 편안히 눈을 감았다. 그러자 억눌려있던 피로가 급속도로 펴져나가며 그의 의식을 꿈의 세계로 인도했다.


***


여관을 나선 애냐는 마법진을 설치해둔 장소를 무시하고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윽고 주택가와 슬럼가를 잇는 커다란 다리에 도달한 그녀는 다리를 반쯤 건넌 지점에서 걸음을 멈췄다. 아직 심야라고 부르기엔 이른 시간이었지만 통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북쪽의 중산층들은 밤중의 슬럼가를 두려워하여 넘어가지 않았고 슬럼가 주민들도 주택가의 경찰들을 두려워하여 왠만하면 다리를 넘어가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허억, 허억... "


애냐는 새카만 강물을 내려다보면서 하염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도시가 완전히 잠에 빠져들었을 즈음, 그녀의 귀에 여자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슬럼가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헐레벌떡 뛰어오는 에밀리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머리는 온통 헝클어졌고 오른쪽 볼은 퉁퉁 부었으며 입가엔 피를 닦아낸 흔적이 있었고 다리에도 문제가 있는지 안정적으로 달리지 못하고 계속 휘청거렸다.


" 어디로 가는거야? "


" 힉!? "


애냐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다리를 건너던 에밀리는 별안간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멈춰섰다. 그런 그녀를 향해 인형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의문을 표했다.


" 당신 집은 반대편일텐데. "


정말 궁금해서 묻는다기보단, 뻔히 알면서 조롱하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에밀리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두려움이 그득한 눈으로 상대편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 안쓰러운 모습에 인형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손가락 끝에서 자그마한 광체를 만들어냈다.


" 당신은 사장님과 함께 있던... "


그 특징적인 외모를 통해 상대의 정체를 깨달은 에밀리는 눈에 띄게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심호흡을 한번 하더니 결의가 깃든 눈동자로 인형의 물음에 답했다.


" 지금 사장님에게 가던 중이었어요. "


" 이 시간에? "


"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으니까요. "


에밀리도 자신의 행동이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는걸 잘 알고 있었지만 강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자유롭게 움직이려면 최소한 오전 8시는 되어야 했지만 그 시간이면 아르모어가 이미 떠나버렸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는 여행자들은 아침이 이른 사람들이었다.


" 무슨 용건? "


묻기는 했지만 애냐는 그녀의 목적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애시당초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굳이 물어본 것은 자신의 짐작이 맞는지 확인하려는 의도였을 뿐이다.


" 그건... 사장님을 만난 뒤에 이야기할게요. "


" 그래? "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한참을 망설이던 에밀리는 결국 대답을 회피했다. 애냐도 굳이 추궁하진 않았다. 예상대로의 대답이 나오든, 나오지 않든 간에 그녀가 할 행동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 무슨 볼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몰골로는 곤란해. "


" ..... "


지적을 받고서야 자신의 몰골을 깨달은 에밀리는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붉혔다. 그런 그녀를 무표정한 얼굴로 내려다보던 인형은 번화가를 향해 돌아섰다.


" 따라와. "


***


똑똑.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 으음...? "


곤히 잠들어있던 아르모어는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그는 상체를 일으키고 멍청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아직 한밤중이라는걸 깨닫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 누구지? '


애냐라면 조용히 문을 따고 들어오지 구태여 노크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아니라면 누가 이 밤중에 그를 찾아온단 말인가? 경계심을 느낀 아르모어는 여왕의 눈을 활성화시켜 문 뒤를 투시했다. 그리고, 더 이상 표정을 굳힐 수 없을만큼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끼이익...


" 실례합니다. "


천천히 문을 열자, 두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젊은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공손하게 인사하면서 들고 있던 로브를 건냈다.


" 으흐흐흐흑... "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받아들자 여자는 구슬프게 울더니 허께비처럼 사라졌다. 아르모어는 그녀가 사라진 빈자리를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다가 힘없이 문을 닫고 옷걸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분명히 애냐가 로브를 걸어두었을텐데 어찌된 셈인지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았다.


" 하... "


여자에게서 건내받은 로브를 펼쳐본 아르모어는 안에서 낮익은 권총 2정과 탄약 주머니들을 발견하고 허탈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 .....나였나. "


밴시가 옷을 세탁해주고 눈앞에서 울기까지 했으니 이젠 부정할 수도 없었다. 기가막힌 노릇이지만, 아르모어 폰 피르쉬어란 인간은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것이다. 왜, 어떻게 죽는지는 죽음을 예고해준 밴시 본인조차 모를테지만 피할 수 없다는 것만큼은 무수한 선례들이 증명해주고 있었다.


" 후우... 한심하게 됐군. "


침대에 털썩 걸터앉은 아르모어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죽는 것 자체야 하나도 두렵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살해당한 사람들의 죽음이 무가치해졌다는 사실만큼은 못내 안타까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시작하지도 않았을텐데...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이제와서 한탄해봤자 별 수 없는 일이었다.


' .....일어서자. 아직 할 일이 있잖아. '


한동안 힘없이 앉아있던 그는 마음을 다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로브를 걸쳤다. 이대로 의미없이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허비하느니 에밀리네 집에 돈이라도 가져다주자고 마음먹은 것이다. 사실은 연금 형식으로 나눠서 주고 싶었지만 은행을 이용할 수 없게 된 지금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 한번에 큰 돈을 주는건 불안하지만... '


최소한 빚에 찌들려사는 것보단 나을거라고 생각하며 아르모어는 자루를 힘껏 들어올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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