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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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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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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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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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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5.07.19 11:29
조회
526
추천
9
글자
8쪽

26화

DUMMY

1756년 1월 1일.


팔라인 왕자와 알마크 군을 국경 너머로 몰아내는데 성공한 라한 왕세자는 발롱드의 왕성, <철혈의 궁> 대전에서 귀족들의 추대를 받아 발롱드의 국왕으로 즉위했다. 이로서 장장 5년을 끌어온 발롱드와 알마크간의 전쟁은 마침내 발롱드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호사가들이 입을 모아 전설이 될 것이라고 떠들만큼 기적같은 대역전극이었다.


그로부터 1주일 뒤.


아직 승전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발롱드의 수도를 향해 마차 한 대가 느긋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차에 사용된 목재의 질로 보나, 마차를 끌고 있는 훌륭한 두 마리의 준마로 보나 상당한 재력가의 소유물이 틀림없을테지만 어째서인지 아무런 장식도 되어있지 않아서 얼핏 보기엔 창문이 달린 커다란 나무 상자를 연상시켰다.


" 저게 롱스 - 발롱드의 수도 - 의 성벽인가. 생각보다 영 부실해보이는걸? "


상체를 완전히 창문 밖으로 내놓은 채, 멀리 보이는 성벽을 감상하던 여자는 실망감이 역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냉기를 머금은 겨울의 산들바람에 그녀의 황금빛 머리카락이 고운 비단처럼 나부낀다. 시선을 사로잡는 황금빛 물결 사이로 길고 뾰족한 귀가 슬쩍슬쩍 모습을 비쳤다. 우연히 그 모습을 목격한 여행자는 표정을 잔뜩 구기며 바닥에 침을 칵 뱉었다. 그러자 여자의 상체가 마차 안으로 쏙 들어갔다.


" 인심도 생각보다 훨씬 더러워보이고. "


" 인간에게 엘프는 기피 대상이니까요. "


" 나도 그 정도는 알아. "


눈살을 찌푸리며 투덜거리는 엘프 - 비센나 - 를 보고 델핀은 웃으면서 말했다. 엘프들은 오만하고 호전적인데다 잔인함까지 겸비하고 있어서 인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종족들이 기피하는 대상이다. 만약 국가와 종족을 초월한 연합군이 결성된다면 그건 틀림없이 엘프를 말살하기 위해서란 농담이 전 세계에 퍼져있을 정도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필요가 없다.


" 하지만 아는 것과 짜증나는건 별개지. 잠깐 내려가서 저거 슥삭해버리면 안될까? 우리 꼬마야 사고치면 안되겠지만 난 어차피 대기조잖아. "


당연한 말이지만, 그 평가는 비센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호전적인 미소를 지으며 허리에 찬 단검을 만지작거리는 그녀에게 델핀은 언제나처럼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차분하게 답했다.


" 네, 기밀 유지가 생명인 역할이지요. "


" 칫, 별 수 없군. "


찰칵.


비센나는 가볍게 혀를 차더니 반쯤 뽑았던 단검을 도로 밀어넣었다. 모처럼의 기회를 이딴 일로 내다버릴 수야 없는 노릇이다. 그녀는 부루퉁한 얼굴로 입을 삐죽이다가 문득 옆자리에 앉은 소년을 돌아보고는 장난감을 발견한 악동처럼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감지한 소년은 자기도 모르게 상체를 슬쩍 뒤로 빼면서 불안감이 그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 왜, 왜 그러십니까? "


" 아니, 갑자기 궁금해져서 말이야. "


" 읏! "


짖궂은 미소가 가득한 비센나의 얼굴이 코가 맞닿을만큼 바싹 다가왔다. 당황한 소년은 움찔하며 몸을 빼려고 했지만 좁아터진 마차 안에서 도망쳐봤자 어디로 가겠는가. 장난기 가득한 엘프는 아예 소년의 무릎 위에 앉아버리더니 그의 얼굴을 양 손으로 붙잡고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보며 물었다.


" 우리 꼬마도 엘프 싫어해? "


" 예. "


쿠웅!


장난으로 물었다가 0.1초의 망설임도 없는 단호한 대답을 들은 비센나는 충격을 받은 얼굴로 소년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는 거의 울먹이다시피 하면서 필사적으로 메달렸다.


" 왜? 왜왜왜? 엘프 이쁘잖아! 늙지도 않잖아! 체형도 잘 안변하고 마음도 잘 안변하는데 왜 싫어해~! 엘프 싫어하지 마아아아~ "


소년은 그제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뒤늦게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 흡! 이런 젠장! 나도 모르게 요놈의 입이! '


하지만 그를 탓할 수는 없었다. 대답이 뇌를 거치지 않고 바로 나와버리는데 그걸 어떻게 막겠는가? 그가 자책하는 동안 엘프의 징징거림이 점점 심해지자 델핀은 소년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눈빛을 쏘았다.


빨리 어떻게든 해보세요!


뇌 속 깊숙한 곳까지 파고든 강렬한 눈빛 신호에 소년은 정신을 퍼뜩 차렸다. 이 난감한 파트너와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지금 수습하지 않으면 오래지않아 수십배쯤 귀찮은 상황으로 발전한다는 사실쯤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 그것만큼은 안돼! '


위기감을 느낀 소년의 뇌가 빠르게 회전한다. 문제를 파악하고 지금까지 누적된 경험 속에서 가장 적합한 수단을 필사적으로 검색한다. 그러기를 0.2초. 마침내 결론을 도출한 뇌는 발성기관을 향해 명령을 발송했다.


" 저... 엘프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비센나 씨는 좋아해요. "


울먹이면서 난리를 피우던 비센나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마차의 천장이 사라진 것처럼 황금빛 태양광이 쏟아지면서 엘프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진짜아? "


" 커헉! "


소년은 심장을 부여잡고 몸을 뒤로 젖혔다. 누구나 엘프는 싫어하지만 그들의 외모만큼은 인정한다. 아름다운 미녀가 눈망울을 글썽이며 조심스럽게 묻는 모습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심장마비를 유발시킬만큼 위력이 강했다. 충격의 순간, 소년은 기지를 발휘하여 다급히 비센나의 실상을 떠올렸다. 그녀가 벌였던 추태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면서 위력이 대폭 감소했고, 소년의 심장은 가까스로 정지를 피하는데 성공했다.


" 무, 물론이죠. "


' 어디까지나 동료로서요. '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소년은 꾹 참았다. 여기서 속내를 드러냈다간 말짱 도루묵이다. 그런 소년의 속을 알 리가 없는 비센나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연신 주억거렸다.


" 그런가~ 그렇구나. 응, 그렇지! 역시 살을 맞대면서 쌓은 호감은 선입견 따위에 지지 않는 법이지! "


" 잠깐! 오해할만한 소리 하지 마시죠!? "


그야 살과 살이 맞닿긴 하지만 아무도 관절기로 뼈를 분질러먹는 행위를 '살을 맞댄다' 고 표현하진 않는다. 하지만 비센나는 소년의 반박 따윈 한쪽 귀로 흘려버리고 그의 턱을 부드럽게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 후후후, 그럼 오해가 아니게 만들어버리면 되잖아? "


방금전까지 울먹이던 사람은 어디가고 적극적으로 남자를 유혹하는 요부(妖婦)만 남았다. 장인도 울고 갈 태세전환에 소년은 기막혀하면서도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역전의 용사도 홀릴만한 매혹적인 목소리와 머리가 아찔해질만큼 달콤한 향내를 풍기는 숨결을 여자 내성도 약한 소년이 버틸 수 있을 리 없다.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고 호흡이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비센나의 미소가 더욱 짙어지며 두 사람의 거리가 더욱...


짝!


" 자, 거기까지. "


" 히익!? "


델핀의 손뼉소리에 소년은 화들짝 놀라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비센나를 밀어냈다. 떠밀린 엘프는 놀라운 허리힘으로 밀려나는 상체를 멈춰세우더니 원망스러운 듯이 시녀를 향해 돌아보며 입을 삐죽였다.


" 괜찮잖아. 어차피 시간도 제법 남는데. "


" 공공장소에서 음란행위를 하는건 범죄에요. "


" 이건 생명을 창조하는 숭고한 행위인데? "


" 같은 행위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법이죠. "


" 칫, 할 수 없지. "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받아치는 델핀의 단호한 태도에 비센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차더니 정말 큰맘먹고 인심쓴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 특별히 너도 끼워줄게. 이번 한번만이다? "


콰앙!


비센나의 몸이 마차 문짝을 부수며 화려하게 '발사' 됐다.


***


작가의말

기억이 가물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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