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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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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622,999
추천수 :
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5.05.10 23:52
조회
713
추천
26
글자
8쪽

16화

DUMMY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하녀가 준비해준 듯한 옷과 수건이 바구니에 담겨 있었다. 밋밋한 회색의 셔츠와 바지였는데 투박한 겉모습과 달리 착용감이 좋고 움직이기도 편했다. 겉모습을 따지지 않는 나에겐 그저 그만이다. 얇고 바람이 잘 통하는 점이 조금 걱정이었으나 한겨울인 지상과 달리 이곳은 꽃이 필 정도로 따뜻했기에 크게 문제 될 것 같진 않았다.


" 시장님이 부르십니다. "


" 시장? 아. "


바깥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하녀가 다가와 말했다. 처음에는 시장이 누군지 몰라 당황했지만 곧 테오도르를 가르킨다는걸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습니다. 앞장서시죠. "


하녀를 따라 도착한 곳은 목욕탕보다 3배쯤 커다란 건물이었다. 규모가 어찌나 컸던지 문짝이 무슨 성문처럼 보였다. 옛날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큰 건물을 선호했던걸까? 아마도 영영 풀 수 없을 의문을 뒤로한 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대체 이것들은 다 뭐지? '


건물 안은 자루가 없는 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수가 족히 수십만은 될 것 같았는데 마치 마법의 기계로 복사해놓은 것처럼 전부 규격이 똑같았다. 군인들에게 지급하는 보급품인가 싶기도 했지만 위로든 옆으로든 거의 내 몸뚱아리만한 커다란 검을 제식 무기로 채용할 것 같진 않았다.


" 아, 여기야. "


테오도르 쪽에서 나를 먼저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가볍게 고개를 숙여 답하며 다가가자 그는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의기양양한 얼굴로 나에게 내밀었다.


" 받아. "


뭔가 싶어서 받고보니 커다란 칼자루였다. 물론, 날 따위는 어디에도 달려있지 않았다.


" 이게 뭡니까? "


" 네 무기야. "


" 이거, 날이 없습니다만... "


떨떠름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테오도르는 물어보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눈을 반짝거리며 설명했다.


" 들고다니기 편하라고 일부러 안달아놓은거야. 물론, 간편히 꺼낼 수 있으니까 안심해. 우선 칼자루를 똑바로 잡고 지금 내가 싸우고 있다고 생각해봐. 아니면 그냥 간단히 한번 휘둘러도 괜찮고. 아, 참고로 날이 꽤 기니까 이쪽을 향해 휘두르면 위허... 꽤액!? "


" 우왓!? "


주의사항을 듣기도 전에 무심코 휘둘렀다가 갑자기 길쭉한 날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하마터면 테오도르를 두쪽낼 뻔 했다. 괴상한 소리를 지르면서도 가까스로 칼을 피해낸 테오도르는 식겁한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소리쳤다.


" 죽일셈이냐!? "


" 죄송합니다. 설마하니 이렇게 긴 칼일 줄은... "


자루에서 솟아난 검신(檢身)은 주변에 널려있는 것과 똑같은 길이 1.5m, 넓이 30~40cm 정도의 대검이었다. 그게 자루의 길이와 합쳐지자 보통 칼이라면 절대 닿지 않을 거리에 있었던 테오도르까지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와버린 것이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봤으면 충분히 추측할 수 있는 일이었던지라 더 이상 변명할거리도 없어진 나는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 하여튼, 다음부터는 조심해. "


" .....? 그게 끝입니까? "


" 그럼? "


"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


한바탕 난리를 치를거라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테오도르는 별다른 제제없이 넘어갔다. 비록 실수였다고는 하지만 운이 없었으면 살해당할 수도 있었는데 고작 경고 한번 주고 끝이라니... 너무나도 관대한 처분이라 용서를 받고도 기분이 묘했다.


" 사용법을 알았으면 따라와. "


테오도르는 앞장서서 건물 지하로 내려갔다. 계단 아래쪽이 너무 캄캄해서 잠시 망설였지만 가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이를 악물고 뒤를 따랐다.


뚜벅... 뚜벅... 뚜벅... 뚜벅...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조심스럽게 한걸음씩 한참을 내려가자 마침내 바닥에 닿았다. 그와 동시에 주변이 확 밝아지며 드넓은 초원이 펼쳐졌다.


" .....앵? "


초원? 어째서? 난 분명히 건물 지하로 내려왔는데? 게다가 이 넓이는 또 뭐야? 건물 자체가 상당히 넓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평선이 펼쳐질 정도는 아니었잖아.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한껏 당황해서 허둥대고 있는데 하늘에서 테오도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들려? 고개 드는거 보니 잘 들리나보네. 거기는 마법으로 만든 가상세계야. 네 진짜 몸은 편안히 잘 잠들어 있으니까 안심해.]


" 가상세계...? "


뜻밖의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다시금 돌아보았지만 어딜 어떻게봐도 현실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거짓말은 아니겠지. 가상세계가 아니라면 건물 지하에 이토록 넓은 초원이 있을 리 없으니까.


[그래, 네 수련을 위해 마련한 공간이지. 마음에 들어?]


" 수련을 위해서라니... 그런건 실제 몸이 움직이지 않으면 헛수고 아닙니까? "


[신체는 단련할 필요없어. 아니, 오히려 단련하면 곤란해.]


" 그게 무슨... "


[뭐,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니까 나중에 나와서 이야기하고. 이제 곧 적이 나타날거야. 너는 그 적과 싸우면서 검의 사용법을 체득하면 돼. 기간은... 그렇지, 적을 죽일 때까지로 해둘까. 물론, 실제로는 아무도 죽지 않으니까 부담없이 싸우도록 해. 그럼, 행운을 빈다. 아, 참고로 가상세계라도 고통은 그.대.로 느껴지니까 죽지 않는다고 겁없이 들이대면 안돼. 알았지?]


" 예? 아니, 잠깐만...! "


[그럼, 시작!]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누군가가 등 뒤에서 찌른 칼끝이 가슴을 뚫고 튀어나왔다. 극심한 고통과 함께 숨이 턱 막히며 전신에 힘이 급속도로 빠져나간다. 털썩, 다리에 힘이 풀려 머리가 바닥에 처박힌다. 곧이어 환한 빛이 쏟아지고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리면서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버렸다.


***


대형 막사에서 거의 울부짖는 듯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자 막사 입구를 지키던 두 기사가 다급히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 단장님! 무사하십니까!? "


" .....괜찮아. "


마나등이 켜지고 안쪽에서 약간 쉰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침대 위에 상체만 일으켜 앉은 채, 땀에 젖은 긴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 또... 그 꿈입니까? "


" 미안. "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과했다. 그도 그럴게, 이런 일이 벌써 열 번을 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 아닙니다. 단장님이 무사하시면 그걸로 된거지요. "


" 별일 없으시다면 저희들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


여자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여 허락했다. 두 기사는 군례를 올린 뒤, 자기 위치로 돌아갔다. 홀로 남은 여자는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주먹으로 대충 닦아내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몇 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오늘처럼 조용한 밤이면 어김없이 떠올리고 만다.


" 알버트... "


그녀는 그리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누군가의 이름을 나지막히 중얼거리고는 다시금 배개에 머리를 파묻었다. 또다시 악몽을 꾸지 않을까 두려웠지만 잘 수 있을 때 자두지 않으면 그녀에게 맡겨진 중책을 소화할 수 없다. 어느샌가 되돌아온 수마에게 몸을 맡기며 여자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을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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