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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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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622,774
추천수 :
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5.04.16 20:21
조회
969
추천
33
글자
9쪽

13화

DUMMY

우리들을 태운 기간트는 끊임없이 위로, 위로 향했다.


이러다가 하늘의 천장을 뚫고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게 아닐까 싶은 불안감마저 들었을 무렵, 마침내 기간트가 상승을 멈추더니 머리에서 푸른 빛을 쏘아보냈다.


화아악!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밤하늘이 일렁거리더니 밤의 어둠보다도 더욱 새카만 구멍이 뚫렸다. 마치 지옥으로 향하는 입구 같아서 거부감이 들었지만 기간트는 내 마음 따윈 조금도 신경쓰지 않은 채, 거침없이 구멍 안쪽으로 들어갔다.


" 와아아... "


길쭉한 구멍을 빠져나오자 거대한 도시가 눈 앞에 펼쳐졌다. 규모가 어찌나 큰지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는데도 도시의 끝이 보이질 않았다. 말로만 듣던 수도가 이럴까? 이토록 거대한 도시가 상공을 떠다니고 있다니 눈으로 보고서도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 이 도시는 대체 뭡니까? "


" 고대의 피난선이야. "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묻자 테오도르는 졸린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원래는 1770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2년 뒤에 펜드리아 사람들이 발굴한건데 내가 슬쩍했지. "


" 이렇게나 거대한걸 발굴하면서 용캐도 들키지 않았네요. "


" 고대인의 마법 기술은 굉장하거든. "


하기야 겉으로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감쪽같이 위장할 수 있으니 마냥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새삼 감탄하고 있는데 기간트가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야 겨우 도착한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정면을 보자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 어떤 건물보다도 크고 아름다운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 저건...? "


" 아, 저건 시청이야. "


" 시...청이요? 저게? "


황제가 사는 궁전이라해도 믿을 것 같았는데 고작 시청이라니! 이게 시청이라면 내가 알던 시청은 개집만도 못한 돌무더기일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입을 떡 벌리고 있는데 테오도르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덧붙였다.


" 황당하지. 보셰트 왕궁보다도 번듯한 시청이라니. 하지만 당시에는 저 정도가 보통이었던 모양이야. "


맙소사, 진짜 왕궁보다도 더한 모양이다. 고대인들은 얼마나 돈이 썩어났길래 황궁만한 시청을 지어댔던걸까. 도저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기행에 혀를 내두르고 있는데 지상 가까이까지 내려온 기간트가 착륙을 시도했다.


슈우웅...


거대한 금속 거인은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게 착지하여 우리들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안전을 위해 펼쳐놓았던 반투명한 막이 사라지며 기분 좋은 밤바람이 이마를 스쳐지나간다.


" 수고했어. "


테오도르가 기간트를 향해 치하하자 거인의 가슴팍 쪽에서 약간 울리는, 퉁명스러운 여자 목소리가 돌아왔다.


『알면 잊지 말고 계산이나 제대로 해.』


" 네이, 네이, 여부가 있겠습니까. "


『흥.』


두어마디 수작을 주고받던 기간트의 파일럿은 다시금 기체를 몰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아마 기체를 보관하는 창고 같은 곳으로 향했으리라. 그 뒷모습을 향해 잠시동안 손을 흔들던 테오도르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면서 우리들에게 말했다.


" 자, 그럼 우리도 슬슬 들어가서 잠이나 자자. 푹 자야 또 내일이 있으니까. "


" 저녁 식사는 괜찮으신건가요? "


" 아까 먹은걸로 됐어. 너도 괜찮지? "


" 아, 예. 저도 아까 많이 먹어서 괜찮습니다. "


" 알겠습니다. "


이런저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청(?) 입구에 다다르자 문 좌우에 서서 대기하고 있던 하녀 두 사람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테오도르를 맞이했다.


" 어서오십시오, 시장님. "


둘 다 하녀를 하고 있기에는 아까울 정도의 미녀들이었다. 하지만 미모보다 더욱 내 눈길을 잡아끈 것은 두 사람의 생김새와 목소리가 완전히 똑같았다는 점이다. 저게 말로만 듣던 쌍둥이인가? 약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테오도르가 무슨 착각을 했는지 음흉한 눈빛으로 돌아보며 놀렸다.


" 요거요거, 아직 꼬맹이인가 싶었더니 그렇지만도 않은가봐? "


" 예? "


" 마음에 들면 데려가도 좋아. 하지만 너무 욕망에 탐닉하면 몸이 축나니까 적당한 선에서 자제하도록. 알겠지? "


.....뭔가 엄한 오해를 받아버렸다. 물론, 그런 쪽에 흥미가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발정난 원숭이 취급을 받고 싶진 않았으므로 일단 해명하기로 했다.


" 무슨 말도 안되는 오해를 하시는겁니까. 전 그냥 쌍둥이를 처음봐서 놀랐을 뿐입니다만... "


" .....어라? "


본인은 완전히 확신하고 있었는지 눈을 둥그렇게 뜨면서 당황했다. 그런 테오도르를 한발 뒤에서 지켜보던 델핀이 왠일로 짖궂은 미소를 지으며 놀렸다.


" 뭐 눈엔 뭐만 보인다니까요. "


움찔.


분명히 농담삼아서 가볍게 던진 말 같은데 어째 테오도르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마치 막다른 골목에서 포악한 몬스터와 마주친 듯한 절망감이 일품이다. 뭔지 잘 모르겠지만 그에게 거대한 비극이 닥쳐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하, 하, 하하하하하! 뭐 사람이 살다보면 착각도 하고 그러는거지. 자자자, 벌써 밤이 늦었으니까 얼른 가서 잠이나 자자. 그놈의 마차가 하루종일 덜컹거리는 통에 피곤해 죽겠어. "


필사적으로 화재를 돌리려는 모습을 보니 예감이 크게 빗나갈 것 같진 않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그러나 묘하게 차가워보이는 미소를 띄고 그의 뒤를 따라가는 델핀을 보자 예감은 확신으로 변했다. 그가 살아서 내일 아침을 맞이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빌면서 나는 쌍둥이 하녀들의 인도를 따라 이동했다.


" 어!? "


말없이 앞서가는 쌍둥이 하녀들을 따라 커다란 방문 앞에 도착한 나는 깜짝 놀랐다. 문 앞에 또 한명의 하녀가 서 있었는데 그녀도 쌍둥이 하녀들과 똑같이 생겼던 것이다.


" 세 쌍둥이였어요? "


너무 신기해서 물어봤더니 바로 앞에 서 있던 하녀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아뇨, 단순히 동형의 제품입니다. "


" 제...품? "


" 네, 저희들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인형입니다. "


" 인형이라니... "


어딜 어떻게봐도 사람이랑 똑같지 않은가. 하늘을 나는 기간트나 공중에 떠 있는 도시 따위보다 수십배는 더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하지만 자칭 인형들은 더 이상의 설명없이 방문을 열고 나에게 들어가라는 듯한 손짓을 해보였다.


" 우와아... "


반쯤 떠밀리다시피 들어온 방 안은 엄청나게 넓고 화려했다. 바닥에 깔린 카펫부터 방 안을 대낮같이 환히 밝혀주는 마나등에 이르기까지 무엇하나 부담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모르긴해도 이 방의 가구들만 팔아도 5~6억 데카트 정도는 우습지 않을까?


" 여길 정말 제가 써도 되는겁니까? "


" 네, 자유롭게 사용하시면 됩니다. "


하녀의 대답을 듣자마자 고아원의 내 방만큼이나 커다란 침대에 몸을 던졌다. 폭신하고 탄력있는 것이 마치 구름 위에 올라탄 것만 같은 기분이다. 바로 어젯밤에 누웠던 차갑고 딱딱한 돌바닥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새삼스럽게 현명한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테오도르의 제안을 거절했었다면 이런 호사를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 으음... "


푹신푹신한 침대에 누워 부드럽고 포근한 이불을 덮고 있자니 금새 졸음이 몰려왔다. 오후나 되어서야 일어났던걸 생각하면 지나치게 이른 시간이었지만 뭐, 어차피 할 것도 없는 참이니 나쁠건 없다. 분수에 넘치는 잠자리를 만끽하며 조금 일찍 잠들도록 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기꺼이 수마(睡魔)가 내민 손을 잡았다. 정말이지 더 없이 만족스러운 밤이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날 밤은 지독한 악몽을 꿨다.


***


"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


" 뭘? "


뜬금없는 델핀의 물음에 테오도르는 고개를 뒤로 돌리며 되물었다.


" 알레크의 처분 말이에요. "


" 아아. "


보충 설명을 듣고서야 그녀가 묻고 싶은 말을 이해한 청년은 의욕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 우선은 훈련부터 시켜봐야겠지. 정신상태가 저래서야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심스럽지만 말이야. 세상에, 자기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 살해당했는데도 저렇게 반응이 없을 수가 있나? 난 틀림없이 복수귀처럼 미쳐 날뛸거라 생각했는데. "


중간부터 어이가 없다는 듯한 얼굴로 연신 투덜거리는 테오도르를 가만히 지켜보던 델핀은 그의 불평이 잦아들기를 기다려 다음 질문을 던졌다.


" 그 다음에는요? "


" 글쌔... 만약 기대치만큼 성장해준다면 역시 자기 『기사』를 되찾아오라고 시켜야겠지? "


그러자 델핀은 발걸음을 멈추고 빙긋 웃으며 말했다.


" 당신은 정말로 악마야. "


테오도르는 경어조차 집어치운 채, 경멸이 가득 담긴 미소를 보내오는 시녀에게서 등을 돌리며 시큰둥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 자기 등을 찌른 배신자에게 그 정도 심술은 부려도 괜찮잖아. "


델핀은 어둠 속으로 나아가는 청년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언제나처럼 여유로운 미소를 띄우며 그의 뒤를 따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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