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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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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622,776
추천수 :
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5.08.01 16:37
조회
396
추천
8
글자
8쪽

28화

DUMMY

" 흥, 능구렁이 같은 년. '두 분 다' 다음에 봐야한단 말이지. "


델핀이 나가자마자 후작은 쇼파에 편하게 드러누워서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아직도 안절부절하고 있는 소년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더는 못 봐주겠다는 투로 말했다.


" 그렇게 굳어있을 것 없어. 딱히 잡아먹을 것도 아니니까. "


소년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신의 모습이 너무 한심했던 탓이다. 하지만 생각한대로 몸이 따라줄 것 같으면 고생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후작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 꼴을 보아하니 그리 유복하게 자라진 못한 것 같군. 지금까지 어디서 뭐하다 왔냐? "


" 아, 옛, 그게... "


소년은 자신의 이력을 거짓없이 상세하게 말했다. 가장 오래된 기억인 길거리를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일부터, 고아원장에게 거두어졌던 일, 고아원 식구들이 몰살당하고 테오도르에게 거두어진 일까지 소상하게 설명했다. 물론, 테오도르의 이름이나 정체, 근거지 따위는 제외하고 말이다. 지루한 듯이 듣고 있던 후작은 소년의 이야기가 끝나자 마치 점심 매뉴를 묻는 듯한 심상한 목소리로 물었다.


" 요즘 엘로얀 사람들은 우리말로 대화하나? "


" 예? 아뇨, 그럴리가... 어? "


소년은 뒤늦게 이상한점을 깨닫고 경악했다. 거의 평생을 엘로얀의 하층민으로 살아온 그는 발롱드어에 대해 아는게 없었다. 배우기는 커녕,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언어를 어떻게 알겠는가? 그런데 지금 소년은 유창한 발롱드어로 후작과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져서 후작에게 지적당하기 전까진 위화감조차 느끼지 못했을 정도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 소년 자신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 자기도 이유를 모르겠다 이건가? 기억상실도 그렇고 참 형편 좋은 이야기군. 하지만 표정을 보면 거짓말은 또 아닌 것 같단 말이지. 재미있는걸. "


혼란에 빠진 소년의 모습에 후작은 또다시 코웃음을 치더니 벌떡 일어나 발 뒤꿈치로 방금 전까지 누워있던 쇼파를 가볍게 툭 건드렸다. 그러자 장정 두 사람이 낑낑대며 옮겨야 할 만큼 무거운 쇼파가 공깃돌처럼 붕 떠서 벽을 향해 날아갔다. 이어서 테이블과 소년이 앉아있던 쇼파를 차례로 걷어찼다. 테이블이 창가로 날아가고 쇼파가 소년을 남겨둔 채, 벽을 향해 돌진했다. 이렇게 셋 밖에 없는 가구들이 모두 방 구석으로 날려가자 순식간에 넓은 공간이 생겨났다.


파앙!


후작의 몸을 감싸던 갑옷들이 푸른 입자로 변해 산산히 흩어지더니 두 자루의 장검으로 재탄생했다. 그녀는 여전히 상황을 따라가지 못해 멍하니 서 있는 소년을 향해 그 중 한 자루를 던졌다. " 우왓!? " 소년은 깜짝 놀라 허둥대면서도 용캐 검을 받아들었다.


" 정신 똑바로 차리는게 좋을거야. "


다짜고짜 경고를 날린 후작은 장검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아주 대놓고 내려배기를 날리겠다고 선포한 셈이다. 그 자세를 본 소년은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후작이 거리를 좁히기 시작하자 기시감은 더욱 더 강해졌다. 이윽고 서로가 서로의 공격범위에 들어간 순간, 소년은 뒷발을 뒤로 빼면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고 전력을 다해 검을 내리쳤다.


채앵!


허리를 노리고 날아들던 후작의 장검이 소년의 내려배기에 걸려 보기 좋게 검신 한복판을 얻어맞았다. 정면으로 들어올 듯 보였던 후작은 결정적인 순간, 튕겨지듯이 왼쪽으로 - 소년이 보기에는 오른쪽으로 - 빠져나가며 중단배기를 날렸던 것이다. 검의 질이 낮았거나 둘의 실력이 동등했다면 이 순간 승부가 결정났을 만큼 치명적이고 적절한 반격이었다.


키긱... 스르릉!


" 아... "


하지만 후작의 검은 튼튼했고 둘 사이의 격차는 너무나도 컸다. 충격을 힘으로 버텨낸 후작은 소년의 칼날을 크로스 가드에 걸고 궤도를 위로 틀었다. 위로 치솟는 힘을 억누르지 못한 소년의 팔이 만세를 부르는 것처럼 머리 위로 올라갔다. 그대로 텅 비어버린 상체를 검 손잡이로 찍어버리면 끝날 상황이었지만 후작은 공격을 포기하고 검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그러자 소년과 후작의 장검이 푸른 입자로 분해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어떻게 알았지? "


" 예, 예? 저는 그냥... 달려오시는 모습을 보니까 왠지 이렇게 해야할 것 같아서... "


한국의 학생들이 How are you? 라는 질문을 받으면 자동적으로 I`m fine thank you and you? 라고 대답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답을 들은 후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 흐응, 그렇단 말이지. "


똑똑.


" 들어와. "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후작은 생각을 멈추고 출입을 허락했다. 그러자 문을 소리없이 열고 젊은 하인 하나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건장한 체구에 옅은 갈색으로 거슬린 피부가 인상적이다. 하인이나 하기엔 좀 아까울 정도로 단련이 되어있는 몸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얼굴은 그리 잘나지 못했다.


" 무슨 일이야? "


" 왕궁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국왕 전하께서 찾으신답니다. "


" 전하께서? 아, 그건가. "


짚히는 구석이 있는 듯, 후작은 눈썹을 찌푸리며 혀를 차고는 소년을 향해 돌아보면서 말했다.


" 그렇게 됐으니까 난 이만 가야겠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지. 너도 여기까지 오느라 여독이 쌓였을테니 그 동안 푹 쉬고 있어. 램, 알비에게 귀빈실을 하나 내줘.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


" 예, 명을 따르겠습니다. "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가버렸다. 하인 또한 소년에게 잠시만 기다리고 있으면 시중 들 사람이 올 것이라 전해주고는 후작의 뒤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그렇게 접객실에 홀로 남겨진 소년은 터벅터벅 벽쪽의 쇼파로 다가가 쓰러지듯이 털썩 주저앉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후아! "


긴장감이 쭉 풀리면서 피로감이 몰려왔다. 후작의 말마따나 여독이 쌓여있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기차와 마차 위에서 열흘 넘게 시간을 보내면 누구라도 여독이 쌓이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여지껏 고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평생 자그마한 도시 속에서 갇혀지내던 소년에게 나라를 넘나드는 여행이란 퍽 즐겁고 신기한 경험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 쫒겨나지는 않았으니 일단 첫 만남은 합격인가? '


자꾸 감기려는 눈꺼풀의 마력에 저항하며 소년은 미미한 미소를 지었다. 어째서 자신이 발롱드 말을 자유롭게 구사하는지, 어째서 후작의 속임수에 완벽하게 대처할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었지만 까짓것, 어차피 해가 되는 일도 아니니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그보다는 후작이 귀빈실을 내어줬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쫒겨날 위험이 크게 줄어든데다가 귀빈으로서 후작을 자주 만날 수 있는 입장이 되었으니 이만하면 첫날은 성공이라 할만하다.


" 후아아암... "


소년은 그렇게 자평하며 시중 들 사람이 도착할 때까지 몰려오는 수마(睡魔)들과 전쟁을 치렀다.


작가의말

원래 후작 시점의 뒷내용이 제법 있었습니다만 구질구질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잘라내버렸습니다. 덕분에 분량은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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