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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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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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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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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5.04.17 20:51
조회
659
추천
15
글자
11쪽

14화

DUMMY

1755년 8월.


쏟아지는 폭염에 대수림 전체가 거대한 찜통으로 변해버렸을 무렵, 한 엘프가 거대한 나무의 가지에 앉아 숨을 돌리고 있었다.


" 후우, 제법 질긴걸! "


그녀는 숨을 깊이 몰아쉬며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호쾌하게 닦았다. 긴 금발머리가 출렁이며 땀방울을 털어낸다. 엘프치곤 별다른 특색이 없는 밋밋한 얼굴이 호전적인 미소로 일그러지며 그녀의 몸이 나무에서 튕겨져나갔다.


푹!


그녀가 방금 전까지 앉아있던 자리에 자루가 긴 단검이 깊숙히 틀어박혔다. 조금만 늦었어도 정수리가 꼬치처럼 꿰뚫렸으리라. 공중에서 몸을 뒤집은 여전사는 단검을 회수하러 내려온 범인을 향해 광기어린 미소를 내보이며 양 팔을 휘둘렀다.


" 처먹고 죽어라! "


쩌렁쩌렁한 영창과 함께 다섯개의 불덩어리가 습격자를 향해 날아들었다. 푸른 옷의 전사는 왼손으로 단검을 회수하면서 동시에 침착하게 오른손을 뻗었다.


" 마력이여, 나를 수호해주소서! "


노랫소리처럼 청아한 영창에 반응하여 새파란 빛의 방패가 뿜어져나와 전방을 틀어막았다. 방패가 펼쳐지자마자 충돌한 불덩어리들이 연달아 폭발하며 대기를 뒤흔들었다.


콰콰콰콰쾅!


" 해치웠나? "


폭연 너머로 수십 조각의 육편이 흩뿌려졌다. 방어하기는 했지만 목숨을 부지하기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그 모습을 확인한 여자는 섬뜩하게 씩 웃었다.


쿠구구구궁...


하지만 미소가 채 지워지기도 전에 발밑에서 흙으로 된 거대한 손이 솟아오르더니 그녀의 가녀린 몸을 무시무시한 악력으로 쥐어왔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으스러졌을 압력이었지만 여자는 몸에서 푸른 빛을 내뿜으며 버텨내더니 기합소리를 내질렀다.


" 하압! "


콰앙!


동시에 그녀의 몸을 감싸던 푸른 빛이 폭발하면서 흙으로 만들어진 손이 산산조각났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하늘에서 단검만한 크기의 가시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림자를 통해 공격을 인지한 여자는 앞으로 달려나가며 영창했다.


" 펼쳐져라, 판떼기! "


그러자 무형의 막이 수십장이나 전개되어 그녀의 머리 위를 뒤덮었다. 가시들은 기세 좋게 막을 꿰뚫었지만 대부분은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허공에 멈춰서버렸다. 관통에 성공한 소수의 가시들조차 속력이 떨어지는 바람에 별다른 위협은 되지 못했다. 그러나,


" .......여, 모조리 집어삼켜라! "


앞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또다른 습격자가 그녀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고 마법을 발동시켰다. 상당히 공들여서 준비해둔 마법인 듯, 대기가 급속도로 분해되며 시전자를 향해 바람이 휘몰아친다. 곧이어 매캐한 냄새와 함께 짙은 회색의 수룡(水龍)이 나타나 집채만한 아가리를 벌린 채, 여자를 향해 짓쳐들어왔다.


콰아아아아!


거대한 수룡이 쓸고 지나간 자리는 개미새끼 한마리 없이 깨끗했다. 전방 시야를 완전히 뒤덮어버리는 대량의 물을 포탄처럼 쏘아버렸으니 남아있는게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 후... 드디어 끝났군. "


이 압도적인 파괴를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낸 마법사는 이마에 잔뜩 맺힌 땀을 털어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이 탁 풀리면서 전신의 힘이 한꺼번에 쭉 빠져나갔다. 한계를 넘은 무리한 마법 사용의 부작용이다. 앞으로 이틀 정도는 제대로 된 마법을 행사하기 힘들겠지만, 어려운 임무를 성공시켰다는 달성감으로 그의 얼굴은 밝았다.


" 그래, 네 인생이 말이야. "


푸욱!


그 웃는 얼굴 그대로, 마법사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땅 속에서 솟아나와 마법사의 등을 찌른 여자는 단검에 묻은 피를 털어버리고 다시금 달려나갔다.


쾅! 콰쾅!


" 거머리가 늘었네. "


한발 늦게 뒤쪽에서 폭음이 터져나왔다. 두 개의 폭발음이 서로 다르다는걸 깨달은 여자는 유쾌한 듯이 웃음을 터뜨리며 발에 힘을 더했다.


" 좋아, 좋아, 좀 더 몰려오라고. 이 대전사 비센나 님을 죽이려면 그만큼 성의를 보여야 하지 않겠히익!? "


그녀의 말이 들리기라도 한 듯, 후방에서 수십개의 공격마법이 일제히 날아들었다. 갑작스럽게 폭증한 화력에 기겁한 자칭 대전사님은 비교적 공격이 적은 왼쪽으로 방향을 틀고 필사적으로 달렸다.


-----!


너무 시끄러운 나머지 역으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너무 밝은 나머지 눈이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했다. 공격한 쪽도, 공격당한 쪽도 일시적으로 시각과 청력을 상실해버릴 만큼 요란한 폭발은 대수림 한복판에 거대한 크레이터를 남긴 채, 4초만에 사그라들었다.


" 해치웠나? "


" 틀림없어, 내가 맞는거 분명히 봤다고. "


" 맞았든, 안 맞았든 이래서야 알 도리가 없겠는데. "


폭음이 잦아들고 크레이터로 몰려든 수십명의 습격자들은 성공 여부를 놓고 왈가왈부했지만 맞으면 아예 증발해버리는 수준의 공격이었던지라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


" 일단 주변을 수색해보고 나오지 않으면 죽은 걸로 보고합시다. "


" 그게 좋겠군. "


" 그래, 그럽시다. "


명령체계가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 듯, 무의미하게 시간을 허비하던 습격자들은 보다못해 앞으로 나선 한 엘프의 제안에 마침내 의견의 합치를 보고 뒤늦게 수색에 나섰다.


' 전부 53명인가? 바람 노래 부족놈들, 제대로 열받았나본데. '


가까스로 피하는데 성공한 비센나는 근처의 거목에 몸을 숨긴 채, 습격자들의 동향을 살피다가 피식 웃었다. 인구 50000명도 안되는 부족에서 50명이 넘는 전사들을 파견했다는건 그야말로 젖먹던 힘까지 쥐어짠거다. 달리 말하면 그녀를 그만큼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 나쁘지 않은걸. 키힛! '


정면으로 전부를 쓰러뜨리는건 불가능하지만 각개격파라면 해볼만하다. 물론, 이대로 도망치는게 더 쉽겠지만... 상대쪽에서 자기발로 흩어져주는 성의를 보였는데 꽁무니를 빼는건 예의가 아니잖는가.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퓨슈슈슈슈슉!


" 아? "


하지만 그녀가 행동으로 나서기도 전에 후방에서 공기 빠지는 듯한 소리가 연달아 터져나왔다. 그것이 소음을 싫어하는 엘프들 특유의 총소리라는걸 깨달았을 땐 너무 늦어 있었다.


풀썩.


품 속에 넣어둔 마법 도구가 공격에 반응하여 방어막을 펼쳤지만 소총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차하는 사이에 4발의 총알을 얻어맞은 비센나는 끈 떨어진 인형처럼 힘없이 주저 앉았다.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 엘프들이 모이는 소리, 약간의 수근거림이 차례로 고막을 두드리더니 자유 엘프 연합의 정규군복을 입은 병사 하나가 다가와 그녀의 숨을 확인했다.


" ....있... "


" ...리.. ...분... "


다시 몇마디의 말이 더 오가고, 약간의 다툼이 지나간 끝에 검은 망토를 입은 엘프 하나가 장검을 뽑아들고 다가왔다. 비센나의 목에 칼날을 올려놓은 그는, 위압감을 주는 목소리로 말했다.


" 바이엔의 전사 비센나. 우리 바람 노래 부족의 자랑이었던 대전사 라디엘을 암살하고 수많은 부족민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죄, 그 목으로 보상받도록 하겠다! "


" 그건 곤란해. "


파앙!


막 검을 내리치려는 순간, 비센나의 뒤쪽에서 날아든 충격파가 검은 망토의 엘프를 멀리 날려버렸다.


" 누구냐! "


전투태세를 갖춘 엘프들 앞으로 붉은 머리의 청년이 태연하게 걸어나왔다. 엘프라고 해도 믿을만큼 미형의 - 엘프 기준으로는 밋밋한 - 인간 청년은 경계하는 엘프들을 무시하고 비센나에게 말을 걸었다.


" 후우, 너무 늦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딱 좋을 때 만났군. 한창 궁지에 빠진 당신에게 솔깃한 제안이 있는데 한번 들어볼래? "


하지만 비센나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정신도 육체도 급속히 식어가고 있는 것이다. 청년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 어라, 대화할 기력도 없나. 이상하네... 내가 만난 엘프들은 총 좀 맞아도 잘만 나불대던... 끼엑! "


푸슈슈슈슈슉!


그러는 사이 사태를 파악한 엘프들이 소총을 갈겨댔다. 청년은 괴상한 비명을 내지르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기세좋게 날아간 마나탄들이 그의 근처에만 가면 힘을 잃고 흐지부지 소멸해버린 탓이었다.


" 좀 닥치고 있어! "


반면, 청년이 일갈하자 바닥에서 시뻘건 빛이 번쩍이더니 엘프들의 몸이 일제히 마비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초능력인지, 마법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도 안되게 강력한 효과였다. 방해꾼들을 간단히 제압한 청년은 죽어가는 비센나에게 다가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 역행. "


청년의 손바닥에서 불길한 붉은 빛이 떠오르더니 비센나의 몸을 감쌌다. 그러자 그녀의 상처가 급속도로 아물면서 생기없이 퍼져있던 눈에 빛이 되돌아왔다.


" 아? "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얼빠진 소리를 내고 있는 자칭 대전사님에게 청년은 묘하게 재수없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 정신없는 와중에 미안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빨리 대답해주길 바래. 당신이 바이엔 출신의 비센나 맞지? "


" 어? 어어... "


" 내 부탁을 하나 들어준다면 당신이 지금 처한 곤경에서 건져주는건 물론, 한차원 위로 끌어올려줄 수 있는데, 생각있어? 이제 정말 시간 없으니까 빨리 대답해주기 바래. "


" 그건, 여기서 더 강해질 수 있다는거냐? "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멍청한 소리나 내던 비센나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저 마주보고 있을 뿐인데도 등줄기가 쩌릿해질만큼 맹렬한 집착을 품은 눈빛이다. 청년은 내심 탐욕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물론. "


비센나는 그의 확답보다 마비된 채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엘프들에 주목하고는 호전적인 미소를 지으며 청년의 손을 잡았다.


" 좋아, 무슨 부탁인지 몰라도 들어주지. 먼저 날 강하게 만들어준다면 말이야. "


" 계약 성립이군. 까딱하면 늦을 뻔했어. "


청년이 손을 마주잡는 것과 동시에 아물었던 상처들이 다시 도지기 시작했다. 매워졌던 구멍이 다시 뚫리고 충만했던 생기가 급속도로 빠져나간다. 순식간에 기운을 잃고 쓰러진 비센나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은 청년은 그때까지도 꼼짝없이 바라보고만 있던 엘프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자, 그럼 귀한 인재가 못쓰게 되기 전에... 화근부터 치워둘까. "


그날, 비센나를 추격했던 81명의 엘프들은 단 한 사람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했다.


작가의말

당분간은 작중 시간이 왔다갔다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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