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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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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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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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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5.07.2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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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7화

DUMMY

" 그럼, 마지막으로 점검해보도록 할게요. "


약간의 소동이 벌어진 끝에, 무사히 롱스의 성문을 통과하는데 성공한 마차는 시내 외곽지의 한 여관에 비센나를 내려놓고 왕궁과 귀족들의 저택이 위치한 중심가, <사자의 심장> 거리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마법 도구의 효과로 인해 소리가 빠져나가지 않는 고요한 마차 안에서 델핀은 소년에게 물었다.


" 당신은 누구죠? "


" 알버트 알레크, 세라스 알레크 후작의 잃어버린 남동생. "


" 당신의 역할은요? "


" 청기사, 세라스 알레크 후작을 설득하여 우리 편으로 끌어들인다. 여의치 않을 경우, 대기조에게 연락하고 저택 북쪽의 정원으로 끌어낸다. "


" 네, 잘하셨어요. "


소년의 막힘없는 대답에 델핀은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는 덧붙였다.


" 왕자님은 어떤 결과가 나와도 상관없다고 하셨지만 가급적이면 포섭하는 쪽으로 노력해주세요. 즉시 투입할 수 있는 『기사』 전력은 소중하니까요. 혹시나 지원이 필요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연락해주세요. 이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대한 지원해드릴게요. 참, 연락용 도구는 잘 가지고 계시죠? "


" 예. "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오른쪽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손바닥의 중심에서 2cm 길이의 가느다란 금속 막대가 튀어나왔다. 물건을 확인한 델핀이 고개를 끄덕이자 막대는 물 속에 가라앉는 것처럼 손바닥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번 일을 위해 테오도르가 부여해준, 손바닥에 이공간을 형성하여 물건을 수납하는 초능력 덕분이다.


덜컹, 덜컹...


최후의 점검이 끝나고 델핀이 마법 도구를 회수하자 외부의 소음이 소년의 귓가를 자극했다. 그 소리에 이끌려 소년의 시선이 창 밖으로 향한다. 한동안 멍하니 바깥 세상을 바라보던 그는 새삼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떠올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후우... "


소년도 필요성은 이해하고 있었다. 아르비안 사건이 증명하듯, 아르모어 폰 피르쉬어의 행적을 예측하는건 이제 불가능하고 흑기사와 은기사의 행방도 알 수 없었다. 이런 판국에 유일하게 소재가 밝혀진건 청기사를 그대로 방치해뒀다가 백기사에게 파괴당하기라도 한다면 모든게 끝장이다. 그러므로 만일의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청기사를 확보해야한다는 테오도르의 결정에 이견은 없었다.


다만, 이해하는 것과 마음에 드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솔직히 말해서 소년은 이번 일이 영 마뜩치 않았다. 암살이라는 더러운 일에 한발 걸친 것부터가 불쾌한데 암살 대상마저 나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소문 속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알레크 후작은 단순히 기사의 본분에 충실한 무인(武人)일 뿐, 결코 악인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달리 방법이 있는건 아니지만... '


소년은 다시금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냈다. 비록 테오도르는 포섭 가능성을 낮게 보았지만 어차피 그도 신은 아니다. 포섭이 성공할지 어떨지는 부딛쳐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었다. 소년이 멋지게 성공하기만 하면 암살 따위는 종이 위의 계획으로 끝날 뿐이다.


' 힘내자. '


그러는 동안 소년을 태운 마차는 어느덧 웅장한 귀족들의 저택이 즐비한 중심가로 접어들었다.


***


알레크 후작 저택의 첫인상은 ' 초라하다. ' 였다. 그 자체로는 크고 훌륭한 저택이 틀림없었지만 워낙 주변의 다른 저택들이 웅장하고 화려한 탓에 상대적으로 작고 볼품없이 보였다. 지금 이 나라의 최고 실권자가 사는 집이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리라.


끼이이...


마차가 문 앞에 멈춰서자 갑옷을 갖춰입은 말쑥한 청년 하나가 철문을 열고 나왔다. 사슬 조끼 위에 때묻은 회백색 천옷을 껴입고 장창을 들고 있는 꼬락서니가 영락없는 경비병이었지만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범상치 않은 노력을 쌓아왔다는걸 간파할 수 있었다.


덜컥.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마차 문이 열리고 델핀이 사뿐히 바닥에 내려섰다. 이미 구면인 듯,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청년은 경계심을 풀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 이거이거, 델핀 아가씨 아니십니까. 매번 다른 마차로 오시니 미처 몰라봤습니다. 부디 무례를 용서해주시길. "


" 안녕하세요 탈몬 경. 여전히 건강하신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


" 하핫,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처지에 몸뚱이라도 건강해야죠. 그나저나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사전에 연락은 받지 못했습니다만... "


" 예전에 후작 각하께서 맡기셨던 일을 완수해서 보고를 드리러 왔어요. 마음이 급한 나머지 미리 연락하지 못한 점은 사과드리겠습니다. "


" 아, 그렇습니까? 그것 참 반가운 소식이군요. 금방 후작 각하께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 동안 접객실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


" 그래도 괜찮을까요? "


" 아무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델핀 아가씨인데요. 오히려 대문 앞에 세워뒀다간 불호령이 떨어질겁니다. "


" 그럼 호의에 기대도록 하겠습니다. "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마친 델핀은 정중하게 인사한 후, 마차 안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는 사이 탈몬 경이라 불린 기사는 대문 안쪽에 마련된 작은 위병소로 달려가 버튼을 조작했다.


촤르르르륵.


그러자 철문이 좌우로 물러서며 길이 열렸다. 자그마한 정원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마차는 저택의 현관 앞에 도달했다. 위병소에서 보낸 신호를 받은 하인과 하녀 몇 사람이 문을 중심으로 좌우로 늘어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 어서 오십시오. 아가씨. "


검은 조끼를 입은 하인이 대표로 나와 마차에서 내리는 델핀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 곧바로 나머지 하인들의 후창이 뒤따른다. 귀족인 탈몬 경과 달리 그들은 평민에 불과했으므로 델핀은 말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답례를 대신했다.


" 따라오시지요. "


대표 하인은 뒤따라 내리는 낮선 소년에게 잠시 눈길을 주었지만 곧 자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묵묵히 안내에 나섰다. 다른 저택에 비해서 초라하다는거지 엄연히 귀족의 거처로서 손색이 없는 저택이었기에 내부는 생각보다 넓고 복잡했다.


" 곧 후작 각하께서 오실 것입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십시오. "


그가 안내해준 접객실에 들어간 소년은 어이가 없어서 입을 떡 벌렸다. 명색이 후작가의 접객실인데 벽은 아무 무늬없는 허연 벽지로 쳐발라 놓았고 그나마도 오래되어 이곳저곳이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바닥의 카펫은 또 얼마나 오래됐는지 내구력이 종잇장과 비등한 수준이며 그 흔한 무늬 하나 없이 벽면과 똑같은 벽지로 쳐바른 천장에는 마나등 몇 개와 날벌레를 때려죽인 흔적 몇 개가 전부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방에 가구라고 충실히 갖춰져 있을 리 없어서, 마주보게 배치한 길쭉한 쇼파 2개와 중간에 놓인 사각형 테이블 하나가 끝이었다. 그나마 건축가의 감각이 돋보이는 커다란 창문이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을 담아준 덕분에 접객실을 닮은 무언가로 보이는거지 이것마저 없었으면 가내(家內) 감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덜컥.


하인이 나가고 불과 2분도 채 지나지 않아 접객실의 문이 열리면서 파란 갑옷을 입은 여기사가 들어왔다. 방금 전까지 격렬한 운동을 하고 있었던 듯, 갑옷 위로 김이 풀풀 날렸다. 방 안을 휘휘 둘러보면서 델핀의 모습을 확인한 그녀는 투구를 벗어서 아무렇게나 집어던진 뒤, 땀에 절은 레몬빛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라지 않도록 정리하면서 걸어와 두 사람의 맞은편 쇼파에 털썩 걸터앉았다.


" 그래, 내가 맡긴 일을 해결했다고? "


그 한마디로 상대방의 정체를 깨달은 소년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알레크 후작을 뜯어보았다. 나이는 20대 초중반 정도, 키는 중간보다 약간 크고 이목구비도 그럭저럭 예쁘장하게 생겼다. 갑옷 때문에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어릴 적부터 단련을 해온 기사답게 체형도 훌륭해보인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엄연히 미인의 범주에 들어가겠지. 하지만 소년이 그러하듯, 후작을 처음 만나본 사람들은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 굉장한 사람이다. '


접객실의 꼬락서니가 보여주듯, 자신을 치장하는데 무관심한 것도 한 원인이겠지만 그보다는 후작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세 때문이다. 마치 사람이 아니라 맹수와 마주앉아 있는 것만 같다. 자기도 모르게 몸이 위축되고 등 뒤에 식은땀이 흐른다. 이런 사람을 앞에다 두고 어떻게 한가로이 외모 따위나 평가 할 수 있겠는가? 그럴 정신이 있다면 그건 후작보다 훨씬 윗줄의 실력자이거나 머리가 고장난 사람이 틀림없었다.


" 네, 이전에 말씀하셨던대로 잃어버린 동생 분을 찾아왔습니다. "


" 동생? "


처음으로 후작의 시선이 소년에게 향한다. 가볍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훝어본 그녀는 화난 것도 같고, 황당해하는 것도 같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 저게? "


사실 후작이 아니라 누가 앉아 있어도 반응은 비슷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게, 아무리 성별이 다르다지만 동생이랍시고 데려온 소년과 후작은 조금도 닮은 구석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델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태연하게 긍정했다.


" 네, 후작 각하의 잃어버린 남동생, 알버트 알레크님이 맞습니다. "


" 하지만 저거 벌벌 떨고 있는데? "


그 말을 듣고서야 자신이 떨고 있었다는걸 자각한 소년은 흠칫하며 고개를 숙였다. 후작은 저봐란 듯이 그 모습을 가르키면서 불평했다.


" 난 저렇게 두려워해야할 누나였던 기억은 없어. "


" 알버트 님은 사고의 충격으로 기억을 잃어버리셨습니다. "


" 그것 참 속 편한 이야기군. "


후작은 코웃음을 쳤지만 그 이상 뭐라하지 않았다. 어차피 대화해봤자 평행선을 달릴거라는걸 깨달은 것이다. 눈에 보이는 객관적인 증거를 들이밀지 않는 이상 아니, 어쩌면 증거를 들이밀더라도 델핀은 자기 주장을 꺾지 않을 것이다.


" 뭐, 좋아. 사실인지 어떤지는 차근차근 검증해보면 알겠지. 볼일은 이게 끝이야? "


" 이전의 이야기 말입니다만, 늦어도 3개월 안에 해결해 드리겠다는 확답을 받았습니다. "


" 호오, 그건 반가운 소식이군. 댁네 도련님인가 뭔가한테 고맙다고 전해줘. 그리고 가능하면 다음엔 직접 와서 차라도 같이 한잔 했으면 좋겠군. 벌써 2년이나 상부상조하는 사이인데 이렇게 얼굴 볼 일이 적어서야 섭섭하잖아? "


" 예, 꼭 전해드리겠습니다. "


" 좋아, 볼일 다 봤으면 가봐. 아, 물론 머물고 싶으면 얼마든지 있어도 상관없어. "


" 말씀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델핀은 정중하게 작별을 고했다.


" 그럼, 두 분 모두 다음번에 다시 뵙겠습니다. "


그리고는 소리없이 문을 열고 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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