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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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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622,777
추천수 :
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4.11.23 19:48
조회
774
추천
15
글자
7쪽

6화

DUMMY

" 후아아아암... "


꽤나 오래 잤다고 생각했지만 창틀 사이로 흘러들어온 햇빛은 여전히 밝았다.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자 아직도 중천에 도달하지 못한 태양이 보였다. 기껏해야 11시쯤 된 모양이다.


' 이젠 또 뭐하지. '


몸은 개운해졌지만 여전히 할일은 없었다. 뭘 해야할지를 몰라 멍청히 하늘만 쳐다보다가 일단 빵이라도 먹자는 생각이 들어 방을 나왔다.


' 어라, 생각보다 시간이 좀 지났네. 해를 잘못봤나? '


식당으로 가는 도중 복도의 벽시계를 보았다. 오후 1시. 예상했던 것보다 2시간 정도 더 지나 있었다. 때울 시간이 줄어든 것은 다행이지만 이래서야 먹을게 남아있을지 모르겠다. 우리 고아원의 점심시간은 다소 일러서 오후 1시면 이미 식사를 다 마치고 설거지를 하고 있을 시간이기 때문이다.


역시 너무 늦었던걸까.


식당은 텅 비어 있었다. 있는거라곤 텅 빈 식탁과 식탁을 비추는 한 줄기 햇살 뿐이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그리운 느낌이 들면서 내가 알지 못하는 광경이 떠올랐다.


고아원의 낡고 볼품없는 식탁보다 더욱 조잡하고 상처가 많은 나무 탁자에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이 불량스럽게 앉아서 빵을 으적으적 씹고 있다. 긴 앞머리에 가리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입은 재미있는 장난감을 찾은 악동처럼 꼬리가 씨익 올라가있다. 보고있으면 빨려들어갈 것처럼 고운 입술은 열릴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쌍욕을 내뱉고 천상의 직물처럼 부드러운 금빛 머리카락은 생전 씻지를 않아 먼지가 그득하다. 여신처럼 아름다우면서도 거렁뱅이만큼 추하고 입을 열면 성인(聖人)조차 쌍욕을 하게 만들만큼 성격이 더러운 여인이었지만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나의 눈길엔 언제나 온기가 실려 있었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어쩐지 가슴 한켠이 따스해졌기 때문이다. 비록 입만 열면 흔적도 없이 날아가버리긴 했지만...


" ? "


환상 속의 여인이 누군가를 발견한 듯, 짖궂은 얼굴로 입을 여는 순간 환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 이런 환상을 보았다는 기억도 함께 증발했다. 그랬기에 나는 멍청한 얼굴로 눈을 두어번 끔뻑거리다가 문득 배고픔을 느끼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찾아보면 식재료 정도야 나오겠지만 명색이 사내 대장부인데 어떻게 부엌일을 할 수 있겠는가? 남자가 요리하는건 여자없이 사냥을 나가거나 전쟁터에 나갔을 때 뿐이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빵 잘먹고 쉬고 있을 동생들을 불러다가 점심을 차리라고 시키는 것도 썩 미안한 일이었다.


" 후우... 할 수 없지. "


집에서 식사할 형편이 못된다면 나가서 사먹는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원장님에게 용돈을 많이 받았으니 한끼 식사 정도야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 나가서 뭘 먹을까 고민하면서 식당 문을 여는 순간, 알 수 없는 액체가 볼을 타고 또르르 흘러내리는걸 느꼈다. 깜짝 놀라 손바닥으로 닦아보니 물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땀을 흘렸던 모양이다. 이 추운 집구석에서 가만히 서 있는데 땀이 흐르다니, 참 별일도 다 있다고 생각하며 나는 식당을 나섰다.


" 아, 열 두번째 형아다. 형아 안녕! "


거실로 나오니 바닥에 드러누워 뒹굴뒹굴거리던 검은 머리카락의 꼬마가 반갑게 인사했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고아원에 먼저 들어온 열 번째 동생이다.


" 왠일로 이 시간에 집에 다 있어? "


평소엔 점심만 먹었다하면 튀어나가는 녀석이 어쩐일로 집구석에 붙어있나 싶어 물어봤더니 녀석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원장님이 이제 이 동내 애들이랑은 어울리지 말래. "


" 흐음. "


차분히 생각해보면 대량의 후원금이 들어온 시점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조치였다. 금전적 문제를 극복했다는건 교육을 통해 보다 좋은 일자리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는거고 그것은 곧 사회적 신분의 상승을 의미한다. 동내 하층민 꼬마들과는 사는 세계가 달라져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진출할 새로운 세계에서 하층민 친구 따윈 걸림돌 밖에 되지 않았다.


' 나중에 서로 상처입으면서 갈라서느니 1초라도 어릴 때 정리하는게 나을지도 모르지. '


물론, 당장 친구를 빼앗긴 동생들에게 그런 소리를 해봐야 납득할 수 있을 리 없다. 지금은 그저 친구들과 노는걸 막아서는 원장님이 원망스러울 뿐이겠지. 중간에 낀 내가 할 수 있는건 그저 동생들이 상실감을 덜 느끼도록 노력하는 것 뿐이다.


" 그래서 이렇게 할일없이 뒹구는거야? "


" 응! "


대답은 열 번째 동생이 아니라 왼쪽의 쇼파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3인용 쇼파에 엎드린 체, 이쪽을 향해 오른손을 뻗고 있는 계집아이가 시야에 들어온다. 눈이 유달리 크고 둥글둥글한 열 네번째 동생이다. 그 아래에 자기도 있다는 듯, 콩알만한 열 다섯번째 남동생이 양손과 양발을 쫙 펴고 있었다.


" 니들 심심하면 나랑 같이 나가서 간식이나 먹을래? "


" 먹을래! 먹을래! "


" 형아, 나 새꼬치! "


" 감자구이! "


" 맥주! "


권유하기가 무섭게 동생들은 나에게 달려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올려다보며 먹고 싶은 음식들을 나열해댔다. 애들답게 사양이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욕망에 아주 충실한 모습이다. 이대로 내버려뒀다간 하루 종일 음식 이름만 듣다가 해가 질 기세라 나는 동생들을 진정시키며 상황을 정리했다.


" 아아, 그래 알았어. 알았어. 형이 다 사줄테니까 옷 입고 준비해. "


후다닥


동생들은 대답대신 자신들의 방을 향해 전력질주했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웃음이 터지면서 마음 속 어딘가 남아있던 걱정이 스스르 녹아버렸다.


그래, 저거면 돼.


때로는 괴롭고 때로는 쓸쓸한 날도 있겠지만 또 좋은 날도 찾아오는게 인생 아닌가. 이렇게 즐거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동생들이라면 분명히 괴로운 날도 쓸쓸한 날도 잘 견뎌나갈 수 있을 것이다.


" 다들 준비됐으면 슬슬 가볼까? "


" 네~에! "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 그저 저 아이들에게 좋은 날이 하루라도 더 많이 찾아오도록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우선은..... 맛있는 추억을 만들어주는 것부터 시작하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문을 열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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