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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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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622,890
추천수 :
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4.12.23 07:32
조회
734
추천
18
글자
9쪽

10화

DUMMY

피가 난자한 복도.


복도 한복판에 퍼질러 앉아있는 피칠갑을 한 소녀.


그녀의 발치에 뒹구는 여동생의 머리와


내용물을 훤히 까놓은 몸통.


소녀는 그 작고 새하얀 손을 시체의 뱃속에 집어넣어 내장을 들어낸다.


길쭉한 장을 적당한 길이로 찢어내고 내용물을 가볍게 훝어낸 뒤, 그대로 입 안으로 집어넣는다.


그리고는 기계적으로 일정 간격마다 으적으적, 으적으적 씹어대는 것이다.


뭐야, 이게.


보자마자 졸도하거나 구토해도 이상할게 없는 광경을 보면서 내가 떠올린 감상은 그게 전부였다. 여동생의 죽음을 슬퍼하거나 식인귀에게 격렬한 분노를 느끼지도 않는다. 그저 기이할 정도로 차갑게 식어있는 머리로 상황을 파악해나갈 뿐이다. 생판 처음 겪는 일에 이런 말은 어울리지 않지만... 마치 지겹도록 겪어본 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타타탓!


무심코 뜨거운걸 만졌다가 반사적으로 손을 떼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제멋대로 식인귀를 향해 달려나갔다. 자기를 향해 달려오거나 말거나 내장을 먹는데만 열중하는 순진무구한 악마의 얼굴이 순간순간 가까워진다. 그럼 이제 어떻하지? 도착까지 두 걸음을 남겨두고 머리가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육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주먹을 휘둘러 답했다.


" 으아아아아아아! "


콰앙!


내가 휘두른 주먹이라고 믿기지 않을만큼 빠르고 정확한 주먹이 내장을 물고 있는 소녀의 얼굴에 직격한다. 얼굴과 주먹이 부딛쳤는데도 무슨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굉음이 울려퍼졌다. 말도 안돼. 그 위력을 목격한 순간, 머리가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 놀라 경악한다.


왜 이렇게 약하지?


그 생각처럼, 안면으로 주먹을 받았음에도 살인귀의 머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성벽에 파리가 한마리 부딛친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눈을 깜박였을 뿐이다. 반면, 공격한 내 오른손은 엄지를 제외한 손가락 뼈가 모조리 부서져 기괴한 방향으로 뒤틀려 있었다.


" 커억! "


고통을 느낄새도 없이 왼쪽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우악스러운 손에 목이 붙잡혔다. 그러자 숨이 턱 막히면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본능적으로 목을 붙잡은 손을 풀려고 발버둥쳤을 뿐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무의미한 발버둥이었다. 금새 힘이 빠지고 의식이 점점 흐려진다. 이대로 죽는걸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갈 무렵.


콰앙!


별안간 폭음과 함께 뜨거운 열풍이 불어닥쳤다.


" 캑, 캐핵! "


정신을 차려보니 사내의 손에서 풀려나 연신 캑캑거리면서 피로 질척거리는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어떻게든 목숨은 건진 모양이다. 하지만 누가 도와준걸까?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핀다.


투카카카카캉!


활활 타오르는 불꽃의 창과 식인귀의 새하얀 손이 말도 안되는 속도로 움직이면서 공방을 교환하고 있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양쪽 모두 진퇴를 반복했지만 전체적으로 식인귀는 어떻게든 거리를 좁히기 위해 끊임없이 접근을 시도하고 창술사는 어떻게든 거리를 유지하면서 긴 사정거리를 활용해 끊임없이 맹공을 퍼붓는 구도였다.


" 위! "


창술사 쪽이 약간 더 여유가 있어보였지만 어느 한쪽도 확연한 우세를 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왼쪽 벽과 천장을 차례로 박치고 창술사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창술사는 경고를 듣고 그림자의 존재를 깨달았지만 내뻗은 창을 회수해 대응하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콰앙!


틀림없이 당했다고 생각한 순간, 창술사는 오른손을 창에서 때고 머리 위를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맹렬한 폭음과 함께 그림자가 쏘아지듯이 튕겨져나갔다.


화르륵!


창술사, 아니. 이제는 뭐라고 불러야할지 난감한 구원자의 오른손엔 어느새 60cm 정도의 불타는 소검 한 자루가 들려져 있었다. 머리 위의 습격에 대처하는 사이, 거리를 좁히는데 성공한 식인귀의 정면에 불꽃을 머금은 왼손이 날아든다.


쾅! 쾅쾅!


재빨리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쳐내자 폭발이 일어나며 자세가 크게 흐트러진다. 그 틈을 타 구원자는 양손에 불타는 소검을 한 자루씩 쥐고 눈이 돌아가도록 빠르고 화려한 검격을 선보였다. 마구 일렁여대는 불꽃 때문에 시야가 현혹되는데다가 근접하기만해도 냅다 폭발을 일으켜버리는 통에 식인귀는 감히 반격을 시도해보지도 못한 체, 정신없이 물러나기 바빴다. 거기에 물러서있던 사내까지 가세한 후에야 겨우 동수를 이루며 물러났다.


" 뭘 멍청히 보고 있어요? "


" 델핀? "


전투 시작 후, 처음으로 여유가 생긴 구원자가 입을 열었다. 낮익은 여자의 목소리. 고아원을 후원해주는 그 귀족의 시녀였다. 깜짝 놀라 되묻자 시녀는 여전히 적들에게서 시선을 때지 않은 체, 입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 아이, 참. 그렇게 이름을 막 부르지 마세요. "


" 아, 예. 죄송합니다... "


왠지 모르게 굉장히 큰 실례를 저지른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사과했다. 확실히 잘 알지도 못하는 남을 대뜸 이름으로 부르는건 무례한 일이긴 하다. 근데 저 아가씨 성(姓)이 뭐였지? 생각해보니 난 저 시녀의 이름만 들었지 성은 듣지 못했다. 하지만 물어볼 틈도 없이 델핀의 타박이 이어졌다.


"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은 도망쳐요. 저도 이 둘을 상대로는 오래 버틸 수 없어요. "


지금까지의 전개를 보면 2대 1임에도 불구하고 백중세를 이루는 모양새였지만 델핀의 숨은 상당히 거칠어져있는데 반해 상대측, 특히 기습 위주로 싸웠던 로브의 사내는 아직 여유가 있어보였다. 이대로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승기는 저쪽으로 기울 것이다.


" 시녀님은 어떻하시게요? "


" 혼자만이라면 도망칠 재주가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


빈말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녀 정도의 실력자를 나 같은 꼬마를 살리기 위해 희생시킬 주인은 아무데도 없을테니까. 최악의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빠져나올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보냈겠지. 그렇다면 내가 여기서 밍기적거리는건 방해밖에 되지 않는다.


"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


" 네, 나중에 뵈요. "


작별인사를 마치고 돌아선다. 등 뒤에서 로브의 사내가 뭐라고 비아냥대는 것 같았지만 내 알 바 아니다. 이내 다시 터지기 시작한 폭음을 뒤로하고 왔던 길을 되짚어가면서 생각한다. 원장님이나 다른 동생들의 생사를 확인할 것인지, 아니면 탈출을 우선시할 것인지.


' 이건 탈출할 수 밖에 없지. '


고민은 길지 않았다. 감정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생사를 확인하러 가봐야겠지만 원장님과 동생들이 지내는 방은 불청객들이 있던 복도 뒤쪽에 있다. 거기에 처음 들렸던 고함소리까지 고려하면 원장님과 동생들은 이미 전멸했다고 보는게 현실적인 판단이었다. 아무리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라지만 시체는 시체일 뿐. 그걸 수습하겠다고 미적거리다가 델핀이 도망칠 기회를 놓쳐버린다면 자신의 목숨 뿐만 아니라 엄한 사람까지 죽게 된다. 그럴 수는 없었다. 없기는 한데...


' 참 냉정한 결론이네. '


이상할 정도로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사실상 친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 죽어나갔는데도 전혀 감정의 동요가 없다. 인간이 이래도 되는걸까? 스스로의 비정함에 어이없어하며 출구를 향해 달려나간다. 금방 복도가 끝나고 현관이 보였다.


쿠콰콰콰콰쾅!


" 으억!? "


막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굉음이 터져나온다 싶더니 복도쪽에서 화염이 확 밀려왔다. 그새 더 이상 버틸 수 없을만큼 밀려버렸거나 내가 이미 탈출한 줄 알고 델핀이 큰 기술을 터뜨린 모양이었다. 당황해서 바깥을 향해 전력질주했지만 폭발이 밀려오는 속도가 몇 곱절은 빨랐다. 설상가상으로 폭발을 견디지 못한 건물이 붕괴되면서 앞길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망했다.


머리 위로 쏟아져내리는 건물의 잔해들을 보며 죽음을 예감했을 때, 갑자기 머리 위가 무언가로 뒤덮히면서 쏟아져내리던 잔해들을 막아냈다. 워낙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인데다 한밤중이었던 탓에 처음에는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지만 이내 두터운 얼음벽이라는걸 깨달았다.


" 뭘 멍청히 보고 있는거야? 죽기 싫으면 얼른 기어나와. "


짜증이 가득한 여자의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찬란한 달빛 아래 좌우로 펼쳐진 얼음벽의 한가운데에서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하녀의 모습이 보였다. 밝은 갈색 머리를 양갈래로 높이 묶은 하녀는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아...


그녀는 짜증이 그득한 얼굴로 한숨을 쉬더니 성큼성큼 걸어와 내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무슨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우악스러운 힘으로 확 잡아당겨 일으켜 세우더니 빠른 걸음으로 전진하는 것이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팔이 아프기도 해서 다급히 말했다.


" 아니, 잠깐잠깐만! 내 발로 갈테니까 이거 좀... "


투쾅! 쾅! 쾅쾅! 콰콰콰콰쾅!


그러나 대답은 커녕, 말이 체 끝나기도 전에 반쯤 무너져내린 고아원 건물에서 불이 번쩍거린다 싶더니 격렬한 폭발이 연속적으로 일어나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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