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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거스 님의 서재입니다.

녹림으로 시작하는 무림생활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데거스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7.05 16:41
최근연재일 :
2023.08.21 12:20
연재수 :
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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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870
추천수 :
8,372
글자수 :
336,116

작성
23.07.06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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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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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
글자
17쪽

무림 속 산적이 살아남는 법(1)

DUMMY

강서 길안현과 남풍 사이에 우뚝 솟아 있는 대호산(大虎山)


폐가나 다름없는 산장(山莊) 내부 집무실에 한 사내가 턱을 괴고 있었다.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대호채(大虎寨)의 채주 사유혁.


현재 그는 심정은 심란하기 그지없었는데,


‘빌어먹을 녹림 간판 달고 산채 차리면, 굶어 죽을 걱정은 없다고 해서 있는 돈 없는 돈 긁어모아 차렸구만,’


아무래도 사기를 당한 것 같다.


“후우, 정말 내가 어쩌다 이 꼴이 됐는지···”


생각해보면,

억울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현대인으로서 부족함 없이 살다,

무림에 환생한지 어언 이십여 년


처음 이곳이 소설 속에서만 보던 무림이라는 것을 확인했을 때만 해도 안도했다.


왜냐하면, 이 몸의 친부는 나름 잘나가는 가문의 가주였고, 나는 그곳의 독자(獨子)였으니까.


‘별 탈 없이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지.’


가문이 몰락하기 전까진,


연이은 사업 실패와 늘어나는 빚더미.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가 열두 살이 되던 해, 부모님이 외유를 나가셨다 사고로 돌아가시며, 가문은 완전히 몰락했다.


모든 재산을 압류당하고,

몸종으로 팔려나갈 일만 남은 암울한 상황.


비록 몸은 애새끼였지만 속은 음흉한 아저씨였던 나는, 기지를 발휘해 간신히 빚쟁이들을 피해 도망칠 수 있었고, 그 날부터 나의 외로운 무림 생활이 시작됐다.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뭐든 닥치는 대로 다 해봤지.’


가문에서 꾸준히 수련했던 무공 덕분에 매검수(賣劍手)가 되어 밥값은 벌어먹고 살 수 있었다.


매검수가 뭐냐고?

흔히 알고 있는 낭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제법 알아주는 매검수로서 나름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 일만 아니었으면···’


과거를 회상하며,

상념에 빠져 있던 그때.


쾅!


“대형! 장삼이 녀석이 돌아왔습니다.”


우리 대호채의 이인자이자,

사실상 부채주 역할을 하고 있던 장일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뭐야? 장삼이 그놈 어디 갔었어?”


“당장 먹을 것이 없다고 인근 현에서 돈 좀 구해보겠다고 내려갔었는데, 아무래도 제법 주머니를 채워온 것 같습니다.”


얼핏 들으면 일하러 갔다 온 줄 알겠지만, 실상은 인근 마을에서 삥을 뜯고 돌아왔다는 소리다.


“야 이놈아! 내가 어지간하면 산 아래에서 영업 뛰지 말라고 했지! 그러다 어디 문파들이랑 시비라도 붙으면 그땐 대형 사고라고!!”


“에이, 장삼이 녀석이 좀 맹한 구성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눈치는 백단 아닙니까? 설마 대형처럼 사고를 치겠습니까?”


이 새끼가,

태연하게 사람 아픈 곳을 후벼 파네?


내가 매검수를 그만두고 산적이 된 이유는, 바로 술 먹고 사고를 쳤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아주 큰 사고를 말이다.


여느 때처럼 의뢰를 마치고, 객잔에서 술 한잔하고 있던 어느 날.


‘하하! 이리 와서 술 한잔 따라 보거라!’


딱 봐도 이제 겨우 약관을 넘긴 애새끼 하나가, 객잔주의 딸인지, 점소이인지도 모를 중학생 정도의 여자아이를 희롱하였다.


평소였다면 가볍게 무시했겠지만,


하필이면, 그 날 술을 먹어 기분이 알딸딸한 상태였기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버리고 말았다.


그 아이가 전생에 여동생을 닮았기에 나선 것은 결코 아니다.


그저,

그날따라 왠지 모르게 참을 수 없었을 뿐.


그런데 이런 시발?


성추행을 시도하던 애새끼와 실랑이를 벌이다 유혈사태가 벌어져 나도 모르게 놈의 팔을 잘라버렸는데,


하필 그놈이 하북에서 알아주는 천호문의 막내아들이고, 또 천호문이 오대세가 중 하나인 하북팽가의 계열사나 다름없는 산하 문파일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비록 팽가의 입장에서 천호문은 왼발 중지 발가락 정도에 그저 그런 문파였으나.


나 같은 일개 매검수에겐 그것만으로도 사형선고.


천호문주는 문파의 무인들을 동원해 나를 찢어 죽이겠다 천명했다.


아직 내 모가지와 이별하고픈 마음은 없었기에, 속옷도 입지 않은 채 본래 활동지였던 하북을 떠나 머나먼 이곳 강서까지 도망치게 되었다.


이미 어느정도 소문이 퍼진 탓에 매검수로 활동하는 것 역시 불가능한 상황.


그렇게 먹고 살기 막막하던 찰나,


‘에라이! 대형 우리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산적이나 됩시다. 듣자 하니 요즘 녹림에 속한 산적들의 수익이 그렇게 쏠쏠하다던데,’


장삼의 제안을 받아들여,

과거를 숨긴 채 산적이 되었다.


참고로 현재 나와 함께 산채를 꾸려나가고 있는 장일, 장이, 장삼 삼형제는 매검수였을 당시 나와 형 동생하던 사이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나를 따르고 있는 고마운 녀석들이었다.


유혁은 자신에게 재물을 요구하며, 녹림에 대한 일장연설을 늘어놓던 인근 녹림분타의 지부장을 떠올리곤 이를 갈았다.


‘녹림 간판 달고 영업하면 어지간한 문파가 아닌 이상,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고, 편하게 통행료를 받아낼 수 있으니, 수익은 걱정할 필요 없다고 구라를 칠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그때는 몰랐지만,

이렇게 간판을 달고 나니 깨닫게 되었다.


이 녹림이라는 문파가 얼마나 거지같이 운영되고 있었는지


녹림에 소속되기 위해선 근방의 지부에 돈을 내는 것은 기본이고, 본사나 다름없는 총본단에서도 간판 유지비 차원으로 매달 일정 금액을 착취해 갔는데,


문제는 이 새끼들이 돈만 받아가고 아무것도 안 해준다는 거다.


‘상납금을 그렇게 갖다 바쳤는데, 최소한의 솔루션 정도는 해줘야지. 이 상도덕 없는 놈들아!’


전생이었으면,

불매운동으로 상장 폐지되었을 정도.


‘그나마 정상적인 양반들도 몇몇 있긴 하지만,’


인근 가맹점주들과 사이가 좋아봤자, 중요한 건 결국 본사 아니겠는가?


지부와 본사 놈들이 지랄하면, 깨갱 할 수밖에 없는 게 힘없는 소상공인의 현실.


‘차라리 산적 말고 수적이나 할 걸···’


병신같은 운영으로 망해가는 녹림과 달리, 그쪽은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다나 뭐라나.


‘내가 배는 몰 줄 몰라도, 수영 하나는 자신 있는데,’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수로채에 찾아가 입사면접을 보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지금 와서 손절하기엔 너무 늦었다.


녹림에 들어오기 위해 지불한 재물부터, 지금까지 상납한 금액까지, 손절하기엔 너무 많이 물려버렸으니까.


사내 대장부가 익절(益切)은 못해도 손절(損切)을 해서 되겠는가?


‘본전 찾기 전엔 죽어도 손절 못하지.’


막말로 녹림의 총채주가 벽을 넘어 무림 십대고수 말석에라도 이름을 올리면?


그날부로 바로 쩜상이다.


‘아니 하다못해, 다른 지부나 본단에 있는 놈들 중에 누구 하나만 화경에 올라도 바로 떡상하는 거잖아. 안 그래?’


녹림은 머릿수로만 따지면, 개방과 함께 무림의 양대산맥이라 칭해지는 세력.


‘사람이 많으니 한 명쯤은 화경에 오르겠지.’


나는 믿고 있다.


‘화경 갈끄니까!’


문뜩 전생에 개새끼 얼굴 그려진 코인 때문에 손해 본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자위하며 애써 잊었다.


팔지 않으면,

아직 손해가 아니라는 말처럼


나는 녹림이 떡상하는 그날까지 존버 할 생각이었으니까.





*****





장일과 함께 인근 현에 갔다가 돌아온 장삼을 맞이해 주었다.


“대형! 제가 해냈습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흔들리는 전낭.


제법 묵직한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최소 은자 이상이다.


백수나 다름없는 큰형님을 위해 돈을 벌어온 막내의 모습이 눈물이 날 정도로 기특하긴 했으나, 그것과 별개로 잔소리는 해야 했다.


“야 이놈아! 산 아래에선 함부로 영업 뛰지 말라고 했지! 그러다 진짜 큰일 날 수도 있다니까!?”


“그럼 식구들이 다 굶게 생겼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는단 말이요? 위험해도 가야지. 대형도 며칠 전에 우리를 먹여 살리려고 그렇게 아끼던 옥비녀를 팔지 않았소!”


장삼은 눈시울을 붉히며,

내가 며칠 전 팔았던 옥비녀를 언급했다.


그 옥비녀는 어머니가 남긴 유품으로, 예전부터 부적 삼아 들고 다니던 물건이다.


최근 영업 수익이 워낙 좋지 않아, 수하들을 굶길 위기에 처하자 어쩔 수 없이 팔았다.


어떻게 어머니의 유품을 함부로 팔 수 있냐 욕할 수도 있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지.’


당장 다 같이 굶어 죽게 생겼는데, 유품이라고 품속에 껴안고만 있을 순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과 별개로,

이 녀석들은 그것이 계속 마음 걸렸던 모양이다.


“자! 은자 열두 냥이면, 한동안 먹을 것 걱정은 없을 거요. 그러니 일단 이전에 팔았던 대형의 옥비녀나 다시 사러 갑시다! 며칠 전에 넘겼으니, 아직 팔리지 않고 그대로 있을 거요!”


“아서라, 사내새끼가 그깟 비녀를 갖다가 뭐에 쓴다고.”


“대형!!”


내 어머니의 유품을 다시 찾아오자 말하는 녀석의 모습이 고마우면서도 기특했으나, 그것을 되찾자고 지금 사정에 돈을 쓰는 것은 미련한 짓.


‘아마 어머니도 이해해 주시겠지.’


녀석의 뜻을 가볍게 물리치며 돈의 출처를 물었다.


“그것보다 너 이 돈 어디서 구했어?”


은자 열두 냥.


무림 문파들 입장에선 우스운 액수겠지만, 결코 쉽게 구할 수 있는 금액은 아니었다.


은자 열두 냥이면

점소이들의 반 년치 봉급.


길거리에서 삥을 뜯어서 하루만에 이 정도 돈을 모으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혹시라도 이 녀석이 나를 위해 무리한 일을 벌였을까 싶어, 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빨리 말해. 어디 노름판이라도 돌아다닌 거냐? 설마 염왕채를 쓴 건 아니겠지?”


“아! 대형은 나를 뭘로 보고 그리 섭섭하게 말하는 거요?!”


장삼이 가당치 않다는 듯 소리를 빽 지르자, 어느새 그의 등 뒤에 나타난 장씨 삼형제의 둘째, 장이가 녀석의 머리를 내리쳤다.


쾅!


“아악!!”


“대형께 말버릇이 그게 뭐냐. 그리고 딴소리 말고 빨리 대형의 물음에 답하거라.”


장이의 채근에 장삼은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염왕채도 노름해서 딴 돈도 아니오!”


“그럼? 어디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했데?”


“하늘은 모르겠고, 땅에서 솟아났소!”


땅? 그게 무슨 귀신 신나락 까먹는 소리야?


“땅 파면 돈 나오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그게 말이 되냐?!”


“아 진짜라니까! 여기 산채로 올라오는 길목에 묫터마냥 널찍하게 비어있는 땅이 있는데, 멧돼지가 땅을 다 헤집어 놓았는지, 군데군데 파여있길래, 대충 훑어보다 찾아낸 거요!”


전생에 어른들이 자주하던 말이 있다.


‘땅을 파봐라 십원 한 장 나오나!’


그런데, 진짜 나왔다고?


“거기가 어디냐? 아니다. 직접 가볼라니까 안내해봐라.”


땅 파서 돈이 나온다면,

기꺼이 터널을 뚫어줄 의향도 있었다.


‘혹시 알아? 거기에 숨겨진 전대고수의 비급이나 신병이기 같은 기연이 숨겨져 있을지?’


가난과 굶주림에 찌들어 무기력하게 살고 있던 내게 뜻밖에 활력소가 찾아왔다.





유혁은 장삼이 말한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수하들과 함께 땅을 파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히 도사들이 객사한 사람들을 달래주기 위해 묻어놓은 노잣돈이라 생각했지만,


‘그러기엔 액수가 너무 많아.’


무당파 장문인이 직접 나서서 굿을 하고 간 것이 아닌 이상, 은자 열두 냥은 과했다.


산짐승들이 떨어진 전낭을 주워 파묻어놓은 것이 아니라면, 필히 누군가 모종의 이유로 돈을 묻어놓은 것일 터.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다른 것들도 함께 묻혀있을 가능성이 높지.’


그날부터 약 사흘간

수하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열심히 땅을 파 내려갔다.


갑작스런 중노동에 장일과 장이가 장삼을 노려보긴 했으나, 돈을 찾아온 공이 있어 다행히 별 탈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삼 교대로 땅을 파자, 어느덧 사람의 키를 훌쩍 넘길 정도의 깊은 구덩이가 만들어졌는데,


“대형 찾았습니다!!! 뭔가 있습니다.”


장일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구덩이 안으로 집중되었다.


그가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목함.


어린아이가 들어갈 만한 크기의 목함이 흙 속에서 꺼내졌고,


꿀꺽!


장일과 함께 마른침을 삼키며 목함을 열자,


“뭐,뭐야 이게···”


그 안에는 한 자루의 도(刀)가 들어있었다.


대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도(刀)는 주먹으로 툭 치면 부러질 정도로 낡고 녹슬어 있었다.


“에라이, 허탕이냐!”


사흘 동안 고생한 것이 무색해지자, 땅을 걷어차며 한숨을 토했다.


“대형 어떻게 합니까? 계속 팔까요?”


장일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괜히 말도 안 되는 상상에 빠져서 사흘 동안 고생시켰는데, 여기서 애들을 더 힘들게 만들 수는 없지.


‘에휴···내 팔자가 그렇지 뭐.’


하긴 전대 고수의 무공이니, 신병이기니, 나한테 가당키나 한 이야기인가?


처음 무림에 떨어졌을 때는 내심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기대했지만,


‘기연은 개뿔.’


아무래도 내가 잠시 허황된 꿈에 빠져 있던 모양이다.


지독하기 짝이 없는 현실을 다시한번 체감하고는 손을 내저었다.


“됐다, 그만 돌아가자.”


“이 구덩이는···”


“이거 덮는 것도 다 일이다. 운 좋으면 멧돼지나 짐승들이 걸릴 수도 있으니, 그냥 내버려 둬.”


“예!”


대충 정리하고 그만 산채로 돌아가려던 찰나


“아! 그 도는 혹시 모르니까 챙겨와라.”


“예? 아···옙! 챙겨가겠습니다.”


도는 챙겨가기로 했다.


‘그래도 사흘간 노력한 결실인데, 버리고 갈 수 없지.’


나중에 대장간에 팔면, 고철값 정도는 나오지 않겠어?





그날 밤.


폐가(廢家)나 다름 없는 채주의 안가에 누워 있던 유혁은, 앞으로의 일을 떠올리며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굶어죽겠어···”


차라리 홀몸이었다면,

이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먹을 게 없다면,

구걸하거나 훔치면 그만이었으니까.


도덕심?

애석하게도 나는 정파보단 사파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당장 녹림만 놓고 보더라도 사파에 속하는 세력.


비정한 강호에서 윤리와 질서를 외칠 수 있는 건 힘 있는 자들 뿐이다.


‘무림에선 실력 좋은 놈이 하느님이고, 뒷배 좋은 놈이 부처님이니까.’


허나, 정작 문제는···


“나는 홀몸이 아니란 말이지······”


나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함께해준 장씨 삼형제.


그리고 산채에 속한 다른 수하들까지.


책임져야 할 녀석들이 산더미다.


“후우···녹림 간판 달고 영업해봤자, 입에 풀칠도 못 하고.”


간신히 풀칠할 정도로 벌어도 본단에서 상납금으로 다 뜯어가 버리니, 남는 게 없다.


“이 병신같은 녹림 간판은 그냥 때버리고, 차라리 장강수로채로 이직해버려?”


지금껏 존버해온 녹림 코인을 손절해야 한다는 게 몹시 원통했으나, 이번에 내 옥비녀를 되사오겠다고 인근 현까지 갔다 온 장삼과 수하들을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 까짓거 손해 좀 보면 어때, 우리 애들 먹여 살리는 게 우선이지.”


이대로 버티다간 녹림이 떡상하기도 전에 먼저 굶어 죽게 될 판.


“내일 얘들 모아놓고, 수로채로 가는 건 어떠냐고 이야기 해봐야겠구만.”


장강수로채에 들어가면 섬, 혹은 배에서 생활해야 했기에, 수하들의 의견도 들어봐야 했다.


그렇게

속으로 마음을 굳히며 각오를 다진 그 순간.


[뭐라!! 녹림도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수적이 되겠다니!! 이런 똥물에 튀겨 죽여도 시원치 않은 놈을 봤나!!!]


“뭐,뭐야!!!”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신인가?

요즘 밥을 덜 먹어서 기가 허해졌나?


벌떡 일어나 황급히 주변을 살피자, 또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 혹 본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냐?]


“대,대체 이게···”


[여기다 이놈아!!!]


목소리의 근원지는 다름 아닌 방 한쪽에 걸어놓은 낡아빠진 도(刀)


아까 전, 장일이 찾아낸 그 녹슨 도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혹시 피곤해서 환청이 들리는 건가 싶어 눈을 비벼보니,


“어···어······?”


흐릿한 안개와도 같은 형상은 한 늙은 귀신이 나타났다.


“이게 대체···”


[네놈! 방금 전 말하는 걸 들어보니, 녹림도인 것 같은데, 맞느냐?]


“예···뭐.”


당혹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에 나도 모르게 답해버렸다.


‘이런 망할···귀신의 물음에 대답해주면 괜히 엉겨 붙는다는 말이 있던데,’


속으로 대체 이게 무슨 영문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그때, 노인···아니 귀신이 뒷짐을 치며 소리쳤다.


[크흠! 네놈이 녹림도라면 예의를 갖추거라!]


혼란스러운 상황에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길래, 나도 모르게 욱해서 소리쳤다.


“아니, 죽었으면 곱게 저승에나 갈 것이지. 노인네가 뭔데 예의를 갖춰라. 마라야?”


세상사는 요지경이란 말처럼.


더 이상은 버틸 길이 없어,

이제 그만 산채를 접고 수로채로 이직할 생각이었는데,


[이런 건방진!! 본좌가 바로 녹림의 개파종사이자, 만산(萬山)의 주인인 녹림왕이니라!!]


돌연

자신이 창업주이자,

녹림왕이라 주장하는 귀신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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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현왕 주표(1) +4 23.07.21 6,279 147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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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역시,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1) +4 23.07.16 7,273 15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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