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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러글 님의 서재입니다.

세계관 파괴급 미친 검술 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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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러글
작품등록일 :
2024.04.13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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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3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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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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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4)

DUMMY

***


칼날이 승강기 금속 와이어를 내리쳤다.


팅- 하는 소리와 함께 와이어가 끊어지고, 매달려 있던 승강기 철판이 뱀장어처럼 펄떡거리며 벽에서 튀어 올랐다.


떨어지던 넬슨과 잭이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승강기가 설치된 벽에 벽지처럼 자란 덩굴식물을 붙잡고 간신히 매달렸다.


내 쪽을 내려다보는 그들의 눈에 경악과 애처로움이 담겼다.

본래부터 뛰어내릴 요량이었기에 썩 공감이 가지는 않는다. 나보다는 자신들의 처지부터 챙겨야 할 텐데······.


페라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딴 짓을 벌인 거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선은 확실히 넘었다. 두 무리 중 하나는 살아서 유적을 나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럼, 물건을 회수한 다음에 해야 할 일이 정해진 건가?


나는 그쯤에서 상념을 털어내고 칼을 벽에 박아 넣었다.


가가각.

칼날이 벽을 긁으며 낙하 속도를 늦춘다.

그럼에도 바닥과 몬스터의 징그러운 얼굴이 빠르게 다가온다.


거리를 재며 타이밍을 기다렸다.

하나, 둘, 지금!


벽을 차고 뛰었다.

떨어지는 속도를 버텨내느라 잔뜩 성난 칼날을 그대로 튕겨 냈다.


번쩍하고 튀어 나간 하얀 번개 두 가닥이 허공을 찢으며 낙하.

몰려든 몬스터를 도륙하며 기다란 통로를 만들었다.


반동을 이용해 뒤로 한 바퀴 돈 뒤, 백섬이 만든 죽음의 땅 위에 칼을 찔러 넣으며 착지했다.


다리가 저릿했다. 검강을 쓴 뒤 강해진 육체가 아니었으면 부러졌을 것 같다.


어쨌든 안 부러졌으니 그대로 무릎을 강하게 튕기며, 백섬이 뚫어 놓은 길을 따라 뛰었다.


착지와 동시에 땅에 박은 칼이 데려가라는 듯 뒤에서 손을 잡아끈다.

그 힘을 이용해 다시 한번 번개를 그려냈다.


번쩍-!


두 가닥 흰 선이 몬스터 피로 그려진 붉은 길 위를 달린다.

좁아지던 길이 다시 넓고 길어지며, 바글바글 몰려든 몬스터 덩어리 밖 공터까지 이어졌다.


그대로 혈로를 내달렸다.

몬스터 무리에 눌려 압사당하지 않으려면 길이 닫히기 전에 공터에 다다라야 한다.


허벅지가 터질 듯 부풀어 오르고 발바닥이 쾅 소리가 날 정도로 바닥을 박찼다.


튀어 오른 흙, 잘린 몬스터의 육편과 핏물을 고스란히 뒤집어쓰며 달린 끝에, 간신히 몬스터 무리를 벗어났다.


“으아악-!”


뒤에서 비명이 들렸다.

멈추지 않고 칼을 눈가로 들었다. 새파랗게 질린 채 내 뒤를 쫓아오는 베커의 얼굴이 검면에 비쳤다.


용케 살았네. 계속 따라올 모양인데 어쩌지?

웬만하면 ‘물건’을 찾는 일은 혼자 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떼 내면 그냥 몬스터에 파묻혀 죽으라는 소리다.

내 손으로 죽이는 거나 다름없다.


근데 베커가 내게 죽을 정도로 잘못한 적은 없는 것 같고, 딱히 죽이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제명대로 살겠거니 생각하며 그냥 달렸다.


베커가 시선을 끌어준 덕인지, 그냥 내가 빨랐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무사히 숨겨진 공간 근처에 다다랐다.


덩굴 가득한 벽이 보인다.

줄기 틈새로 보이는 벽 표면에 직사각형 금이 그어져 있다.


달리는 속도에 맞춰 칼을 휘둘렀다.

칼이 덩굴을 벰과 동시에 몸을 날려 어깨로 벽을 들이받았다.


쩌저적. 무언가 들러붙었던 것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벽 일부가 회전문처럼 빙글 돌아 내 몸을 빨아들였다.


그리고 금세 다시 본래 상태로 돌아가 닫히려 한다.


“살려줘! 난, 여기서 죽을 수 없어! 제발!”


뒤돌아보니 닫히는 문틈으로 미친 듯이 고함치며 달려오는 베커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등 뒤로 놀의 쇠 방망이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숙여.”


베커가 자세를 낮추며 몸을 날렸다.


번쩍!

베커의 머리 위로 섬광이 지나갔다.

쇠 방망이와 놀, 옆에서 쫓아오던 몬스터 무리와 베커의 머리칼 몇 가닥이 잘려 허공에 나부끼고, 베커가 아슬아슬 벽 틈을 통과했다.


끼이익 하고 문이 닫혔다.

몬스터가 벽에 부딪히며 쾅쾅 소리를 냈지만, 문이 다시 열리지도 벽이 부서지지도 않았다.


벽 안은 좁은 복도가 이어진 공간이었다. 벽 상단에 달린 백열전구를 닮은 조명이 흐릿한 주황빛으로 복도를 비췄다.


내가 슬슬 복도를 따라 걸어가려 할 때,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채 고르지도 못한 베커가 황급히 내 앞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고개를 조아리며 외쳤다.


“살려줘. 기술을 베끼든 어쩌든 마음대로 해도 돼. 그냥 내가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있게만 해줘. 부탁이야. 제발!”



***


승강기가 떨어진 순간 베커는 죽음을 생각했다.

머릿속에 살아온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가장 강렬하게 떠오른 것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 애나의 얼굴이었다.


죽을 수 없다!

베커는 삶의 의지를 불태웠다.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기억 속에도, 바글바글 몰려든 몬스터 속에 파묻혀서 살아날 방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절망이 밀려왔다.

자신의 어깨에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이 함께 얹혀 있음을 알기에, 절망은 더더욱 베커의 마음을 까맣게 물들였다.


그때 세상이 환해졌다.

몬스터 무리에 붉은 길이 열렸다.


베커는 희망을 보았다.

그것이 어디서부터 기인했는지도 명확했다.


‘세인!’


첫 만남부터 자신을 골탕 먹였던 소년.

물론 베커 자신이 먼저 무례하게 굴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딸을 생각해서라도 무능한 동료에게 발목 잡힐 수 없었기에, 실력 테스트는 불가피했다.


소년은 이제껏 1조를 거쳐 간 어떤 사람보다도 베커의 테스트를 훌륭하게 통과했다. 출제자가 어이없을 정도로 말이다.


첫 만남이 삐걱거렸던 탓인지, 그 뒤로도 소년과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다.

소년의 특수한 신분과 재능에 대해서는 안톤에게 들었고, 결국 소년과는 갈 길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방금 생각이 달라졌다.


‘살려면, 세인을 따라가야 해!’


저 몬스터의 파도에 길을 낸 소년만이 베커가 살아날 유일한 길이었다.

낙하하는 와중에 어떻게든 버둥거려 소년의 뒤쪽에 떨어져 내린 것은 그런 이유였다.


그 뒤로도 등만 보고 달렸다.

번쩍거리며 두 가닥씩 날아가는 검광에서 은연중에 자신의 기술이 느껴졌지만, 이제는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그깟 기술이 아니라 팔다리도 하나쯤은 내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았다!’


소년이 발견해 낸 벽 속 공간에 뒤따라 들어섰을 때, 베커는 자신이 기적처럼 살아남았음을 깨달았다.


쿵쿵. 등 뒤에서 벽을 두드리는 몬스터의 소리가 들렸다.

승강기 와이어를 자르던 페라자의 얼굴도 떠올랐다.


아직 위기가 끝나지 않은 것이다.

위기를 해결할 기적은 오직 소년의 마음에 달렸음을, 베커는 확신했다.

대뜸 살려달라고 부탁한 것은 그래서였다.


“아픈 딸이 있어. 애나를 위해서도 나는 살아야 해.”


딸을 거론한 것은 간절함이 소년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라서였다.


한데 소년의 표정이 이상했다.

이 와중에도 느긋했던 소년의 얼굴이 갑자기 유리로 만들어진 것처럼 무기질적으로 변했다.


“딸이 있으면, 죄짓고 형벌부대 따위에 들어오지 말았어야지.”


마치 유리로 변한 입과 턱이 부서지며 내는 듯 차가운 목소리가 소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베커는 자기도 모르게 황급히 변명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약을 구하려면 어쩔 수 없었어.”


어떤 빌어먹을 놈이 베커가 몇 년을 기다린 딸의 약을 새치기했다.


찾아가 돌려 달라고 부탁하고 애원했다. 베커의 간절한 진심은 거절과 조롱으로 되돌아왔다.

화를 내자 경호원들이 덤벼들었다.


싸웠고, 혈투 끝에 이겼다.

끝까지 약을 내놓지 않는 놈의 어깨에 칼을 박아주고 약을 빼앗아 돌아왔다.


애나는 덕분에 몇 년의 유예를 얻었다.

그러나 베커는 감옥에 갇혀야 했다.


종신형을 받았다.

그놈은 시의원의 조카였다. 시의원의 권력은 고작 탐험가 하나를 평생 감옥에서 썩게 만들기에 차고 넘칠 정도로 충분했다.


억울한 사정을 알게 된 안톤이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베커는 지금쯤 어느 광산에서 곡괭이질 하며 죽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딸에게 약값을 보낼 수 있는 것도 안톤의 배려 덕분이었다.


“살려줘. 뭐든 내가 줄 수 있는 거라면 다 줄게. 기술을 베껴도 좋고 심부름을 시켜도 좋아. 그냥, 살아서 돌아가게만 해줘. 부탁이야.”

“따라 와. 지금부터 보는 건 어디 가서 말하지 말고.”


베커가 사연을 설명하고 다시 한번 부탁했을 때, 소년의 목소리는 어느새 평소처럼 돌아와 있었다.

다행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적이 베커를 버리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베커는 어느새 저만치 복도를 걷고 있는 소년의 등을 부지런히 쫓았다.


복도 끝에는 철문이 달려 있었다.

소년은 거침없이 문을 밀고 들어갔다.


문 너머는 공동이었다.

어두컴컴한 공동 구석에 ‘그것’이 웅크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바위라 생각했다.

바위에 나무 막대 같은 것을 빼곡히 박아 놓은 것처럼 보였다.


“헉!”


바위가 꿈틀거리며 일어섰을 때야 베커는 그것이 진흙으로 빚어 놓은 거인임을 깨달았다.

놈의 몸에 박힌 것이 나무 막대가 아니라 각종 병장기라는 것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일어선 진흙 거인은 소년의 두 배가 될 정도로 컸다.

그 거인이 제 몸에 박힌 칼을 뽑아 들고 소년에게 덤벼들었다.


빨랐다.

아래층에서 만난 바위 골렘보다 더 육중한데도 진흙 거인의 칼은 번개를 방불케 할 속도로 움직였다.


찰나의 움직임으로도 바위 골렘 따위는 상대도 안 될 위압감이 느껴졌다.


“피해!”


베커가 반사적으로 경고하며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명중했지만, 아무 의미도 없었다. 베커는 진흙 거인의 몸에 잔뜩 꽂힌 병장기의 의미를 그제야 깨달았다.


‘죽일 수 없어!’


저건 못 죽인다. 찔러도 죽지 않는 것을 무슨 수로 죽인단 말인가?

느리기라도 하면 차근차근 공략법을 찾아보겠건만, 덩치가 무색하게 날렵한 진흙 거인의 움직임 탓에 그것조차 불가능했다.


“도망쳐!”


베커가 다시 한번 외쳤다.

소년은 베커의 경고를 듣지 못했는지, 미동도 없이 제 자리에 서 있었다.

선 채로 칼을 들었다.


두 배는 더 크고 수십 배는 더 무거운 진흙 거인의 검이 소년을 짜부라뜨릴 듯 떨어져 내렸다.


내민 칼이 거인의 것과 맞닿은 순간 소년의 손목이 움직였다.

유려하게 튕기는 그 작은 손목 움직임에 거인의 칼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허어어!?”


거인의 입에서 기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알아 들을 수 있는 언어가 아님에도 베커는 그것이 불가해와 당황을 표현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도 똑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작은 동작으로 거인의 칼을 날려버렸어······.’


수 배는 더 높은 곳에서 떨어진, 수십 배는 더 무거운 팔로 휘두른 칼을, 고작 몇 센티도 안 될 손목 움직임으로 날려버리다니.


‘또!?’


베커가 놀라는 사이 거인이 또 다른 검을 제 몸에서 빼 소년에게 휘둘렀다.

이번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거인의 칼은 또 다시 아무 것도 베지 못하고 손에서 빠져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 뒤로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마지막 무기다!’


거인이 몸에 박힌 마지막 하나를 뽑아 들었다.

소년이 발을 뗀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제자리에 선 채 거인의 칼을 날려버리기만 하던 소년이 뛰어오르며 검을 베어 올렸다.


서걱-!


그것으로 끝이었다.

고작 그 한 번의 칼질에 의해 진흙 거인의 거대한 몸뚱이가 절반으로 나뉘었다.

쓰러져 흙더미로 돌아간 그것은 끝내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말도 안 되는···.”


무릎이 후들거릴 정도로 위압감 넘치던 적을 아무렇지도 않게 처치한 동료에게 베커는 경외심을 느꼈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년은 진흙 거인이 뽑았던 마지막 무기, 손잡이에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진 검을 주워들었다.


“아, 씨!”


전투 중에도 한결같이 여유 넘치던 소년의 입에서 대뜸 상소리가 튀어나왔다.



***


악! 내 귀!

닥쳐! 진흙에 다시 처박아 버리기 전에 좀 닥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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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형벌부대 +6 24.04.14 5,103 107 11쪽
2 튜토리얼 +5 24.04.14 5,426 112 7쪽
1 프롤로그 - 100 +7 24.04.14 6,135 117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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