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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러글 님의 서재입니다.

세계관 파괴급 미친 검술 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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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러글
작품등록일 :
2024.04.13 08:53
최근연재일 :
2024.05.03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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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10

작성
24.04.1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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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형벌부대

DUMMY

***


따뜻한 햇살이 얼굴을 비춘다.

나뭇잎 사이로 소슬소슬 부는 바람이 우거진 숲의 습기를 날려 준다.


나는 평안하고 목가적인 기분을 느꼈다.

문제는 내가 방금 사람 목을 무처럼 썰어 놓았다는 데 있었다.


“살인이라니······.”


약탈자와 병사의 싸움이니 일종의 전쟁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현대인의 관점으로는 무려 대량 토막살인이다.


끔찍함을 느껴 마땅했다.

그런데 마음이 지나치게 평온하다.


“이게 모두 칼 때문이라고?”


이쯤 되면 확인해 봐야 한다.


나는 칼을 칼집에 꽂았다.

칼자루에서 손을 뗐지만 마음은 여전히 평온했다.


칼을 뽑아 바닥에 꽂고 한걸음 물러섰다. 마음은 변함없다.


뒤돌아 걸으며 되뇌었다.

이제 저 칼은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이대로 멀리 떠날 것이며 더 이상 내 소유의 칼은 없다.

나는 빈손이다.

나는 빈손이다.


“젠장!”


갑자기 심장이 거세게 뛴다. 명치 쪽에 압박감이 느껴지며 숨이 가쁘고 뒷목도 뻐근하다.

지난 몇 년간 나를 괴롭히던 증상이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별거 아닌 일에 화가 나고 욕설이 입에 붙고 밤에 잠을 설치며 자신과 세상이 미워진다.


퍼뜩 돌아가 칼자루를 쥐었다.

마음이 다시 편안해진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이제 칼을 놓고는 못 살겠구나.”


살인을 하고 태연한 지금보다 죄책감에 잠 못 이루던 시간이 더 두렵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래. 나는 이제 칼 없이는 못 사는 몸이 되었다. 이 게임 속 세상을 포기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꼭 해야 할 일이 생긴 셈이다.


“게임을 클리어해야겠어.”


멸망으로 향하는 이 네오-미디블1000의 세상을 구해야 한다.


못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비록 모니터 너머에서였지만 여러 번 해피엔딩을 만들어낸 경험이 있고, 세계관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는 검술 재능도 있으니까.


부스럭.


수풀 헤치고 한 중년 남성이 나타났다.

검은 무복과 한쪽 눈을 가린 안대, 중년답지 않게 날렵한 몸매가 어우러져 날카로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남자였다.


기세와 달리 얼굴에는 한껏 여유로운 표정이 담겨 있······어야 하는데?

저 양반 표정이 왜 저래?


“너, 뭐 하는 놈이냐?”


중년 남성 카시안.

적 하나를 간신히 처치한 주인공을 약탈자 무리로부터 구해주고 게임과 마경에 대해 설명해 주는 튜토리얼 NPC.


친근한 태도와 달리 알고 보면 탐험가 길드의 거물인 그가 게임에서와는 달리 서늘한 눈빛으로 내게 칼을 겨눴다.



***


카시안은 풀잎을 씹으며 휘적휘적 숲속을 걸었다.


탐험가 길드 간부인 그는 탐험을 마치고 도시로 복귀할 때마다 미해결 임무를 처리하곤 했다.


이번에 맡은 일은 최근 1구역에 기승하는 약탈자 무리의 처단.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마경의 야생에서 하루살이처럼 사는 미친놈들을 상대하는 일이지만.

인류 최전선인 마경 10번대 구역에서 활동하는 카시안에게는 마실이나 다름없었다.


흔적을 쫓아 목표에 바짝 접근했을 때도 카시안은 저녁 식사 메뉴를 고민하고 있었다.


카시안의 머릿속에서 음식 생각이 사라진 것은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작은 공터에 들어섰을 때였다.


그곳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갈색 곱슬머리와 선 가는 얼굴, 콧잔등 위에 살짝 남은 주근깨가 인상적인, 성인과 소년의 경계에 있는 남자였다.


그러나 그 앳된 얼굴을 쳐다보는 카시안의 눈에는 강한 경계심이 떠올라 있었다.


‘대단한 실력이다!’


공터 곳곳에 널브러진 사체의 상흔은 산전수전 다 겪은 카시안조차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매끄러웠다.

조금의 요철도 없이 반듯하게 베인 그 표면은 이곳에서 펼쳐진 전투가 얼마나 일방적이었는지, 발휘된 검술의 경지가 얼마나 고절했는지 강력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마경 1구역에서 맞닥뜨릴 거라고는 절대로 예상치 못한 장면이었다. 그랬기에 물을 수밖에 없었다.


“너, 뭐 하는 놈이냐?”


대단한 경지에 올라 늙은 몸을 벗고 젊음을 되찾은 노고수인가?

아니면 희귀한 외형 변경 아티펙트로 모습을 바꾼 악명 높은 범죄자?


의심이 깊어질수록 카시안의 칼에 서린 기세도 날카로워져 갔다.


그러자 기세에 반응하듯 소년이 발끝을 살짝 틀었다.

미세한 하체의 움직임을 따라 상체의 방향이 비틀리고, 온몸의 급소가 늘어뜨린 아밍소드 뒤로 사라졌다.


숨 쉬듯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미리 주의하고 있지 않았다면 본래부터 그랬다고 착각했을 정도로 놀라운 변화였다.


“······!”


카시안의 칼끝에 서린 경계심이 서서히 살의로 바뀌기 시작했다.

최전선 탐험가의 본능이 생사를 건 혈투를 준비하라 경고했던 까닭이다.


소년이 다급한 표정으로 외친 것은 그 순간이었다.


“형벌부대 소속 병사입니다!”

“개소리! 형벌부대에 너 같은 자가 있을 리 없다.”


상대의 적의가 느껴지지 않는 태도에도 카시안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형벌부대는 뒷골목 조무래기 범죄자나 빚을 못 갚아 팔려 온 빚쟁이들로 만들어졌다.

마경에 투입해 몬스터를 잡으면 좋고, 못 잡고 죽으면 도시의 골칫거리를 처리했다고 여기는 곳이다.


그런 형벌부대에 카시안을 긴장하게 만드는 자가 있을 리가 없다. 있었다면 소문이 나도 진작 났어야 했다.


그런데 개수작이 아니었다.


“진짭니다.”


바닥에 칼을 꽂고 몇 걸음 물러선 소년이 앞섶을 잡아당겨 가슴팍을 드러냈다.

가슴 중앙 쇄골 위쪽에 형벌부대를 상징하는 검은색 수갑 문양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문양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마나가 저것이 진짜 형벌부대의 상징이며, 도주하는 부대원의 목을 터트려버릴 수 있는 마법 족쇄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카시안이 불신 가득한 표정으로 칼을 내렸다.

자신이 주변에 쓰러진 약탈자들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


“세인, 형벌부대라는 말이 정말 사실인가?”

“족쇄를 손으로 만져보기까지 하셨으면서 또 그 질문입니까?”

“안 믿기니까 그렇지. 어째서 자네 같은 사람이 그런 곳에······.”

“아버지 도박 빚에 팔려서 이곳저곳 전전하다가 그렇게 됐다고 말씀드렸잖아요.”

“······.”


나는 영 못 미더워하는 카시안에게 어깨를 으쓱여 보이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카시안과는 사정 설명과 간단한 통성명을 끝마친 뒤 도시로 함께 귀환하는 중이었다.


처음의 긴장된 분위기는 풀렸지만, 카시안은 좀처럼 내 정체를 믿지 못했다.


하기야, 스토리 상 나는 약탈자 무리에 둘러싸여 허우적대고 있어야 했다.

그게 주인공에게 마련된 설정인데, 내 도검술 재능이 끼어드는 바람에 개연성이 박살 나 버린 셈이다.


여하튼, 카시안의 반응 덕분에 나는 한 가지 중요한 문제를 깨달았다.


내 행동은 게임의 주어진 선택지에 따라 정해지지 않는다. 거기에 세계관 설정을 벗어난 재능이 연관되면······.


‘스토리가 바뀌는구나.’


고작 튜토리얼에서부터 상황이 바뀌고 인간관계가 변했다. 달라질 거라 생각은 했지만, 그 순간이 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닥쳐왔다.

살아남아 평안을 얻으려면, 더 깊이 생각하고 민첩하게 반응해야 한다.


“이대로는 염치가 없어서 안 되겠어.”


마음을 다잡는 사이 카시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뜻이냐는 표정으로 돌아보니 그가 말을 이었다.


“마실 삼아 나오긴 했지만 약탈자 처리는 탐험 길드의 정식 임무였거든. 근데 이대로 돌아가면 자네가 한 일의 대가를 내가 받는 거잖아? 그럴 수는 없지.”

“그게 그렇게 되나요?”

“의뢰 보수가 100골드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돌아가는 대로 길드를 통해서 자네 부대에 보내겠네. 그럼 빚을 탕감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겠나?”

“굳이 안 그러셔도 되는데···.”

“그편이 내 마음이 편하니까 그냥 받게.”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적당히 사양 한번 해준 뒤에 카시안의 제안을 넙죽 받아들였다.


게임에서 얻은 정보를 자유로이 활용해 강해지려면 형벌부대를 벗어나는 편이 좋다.

그러려면 압도적인 공을 세우거나 빚을 다 갚아야 하는데.

부대에 소속되어 있는 동안은 원한다고 아무 때나 돈을 벌러 갈 수가 없으니 수입이 생기는 족족 잘 챙겨둘 수밖에.


그런 의미에서, 이미 약탈자들의 시신을 꼼꼼히 뒤져 10골드를 수거했다.

놈들의 장비는 본래부터 허접한 데다 내가 죄다 잘라버려서 챙길 게 없었지만.


“이쪽이네, 세인. 칼솜씨만 봐서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는데, 마경이 처음이란 말이 진짜이긴 한가 보군.”


도시까지 가는 길은 순탄하고 유익했다.

카시안은 게임에서처럼 훌륭한 길잡이이자 선생이었다.

귀환길에 그가 베푼 조언 덕분에 나는 게임으로 얻은 지식과 현실의 괴리를 꽤 메울 수 있었다.


두어 시간쯤 걷자 장방형 돌을 쌓아 지은 높은 성벽이 나타났다.

저곳이 바로 네오-미디블1000의 주요 배경인 자유도시 마경관이다.


“그럼 또 보세.”


굳게 닫힌 성문 옆 작은 쪽문을 통과해 도시로 들어섰을 때 카시안이 작별을 고했다.


나도 마주 인사한 뒤 부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카시안의 말대로 그와는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터였다.



***


“이게 사실인가?”


집무실에서 보고서를 읽던 형벌부대장 안톤이 부관에게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마경 1구역으로 보냈던 11조가 약탈자에게 습격당해 한 명만 빼고 전멸했다는 보고 말이네.”

“사실입니다.”


부관의 대답에도 안톤은 미심쩍은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그 밑에 쓰인 내용도 그럼 다 사실이란 말인가? 정말 며칠 전에 막 들어온 18살짜리 신참이 약탈자를 홀로 다 처치하고 돌아왔다고?”

“저도 믿기지가 않아 따로 추궁한 뒤에 보고드리려고 했는데, 조금 전에 탐험가 길드에서 그와 관련한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서신?”

“예, 보고서 뒤편에 첨부해 놓았습니다.”


안톤은 보고서를 넘겨 문서를 확인했다.

부관의 말대로 탐험가 길드 인장이 찍힌 공문이 첨부되어 있었는데, 그곳에 쓰인 내용은 가히 비상식적이었다.


‘길드의 의뢰를 병사가 대신했으니, 그 의뢰금을 병사의 빚 탕감에 사용하라고?’


부관이 서류에 첨부한 신상 기록을 보면, 병사가 빚 때문에 강제로 끌려온 것은 맞았다.

이런 경우 임무에 적합한 보수를 매기고, 임무를 통해 빚을 탕감하면 전역시키는 것도 사실이었고.


하지만 탐험가 길드에서 일개 병사를 위해 나서는 일은 대장직을 10년째 맡고 있는 안톤으로서도 처음 겪는 사건이었다.


‘탐험가 길드가 공문이랍시고 헛소리를 적어 보낼 리는 없을 텐데.’


탐험가 길드는 마탑, 상인 연합과 함께 도시 의사 결정권을 가진 시의회를 삼분하는 세력.

도시 안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마경수비군에 쓸데없는 공문을 보낼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모처럼 물건이 하나 들어온 건가?’


형벌부대 특성상 부대원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전투력 측면이든 인간 됨됨이든 한쪽에 하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탐험가 길드 간부가 직접 보증할 정도의 자원이 부대에 들어왔다?

잘만 키우면 마경수비군의 핵심 인재가 될지도 모른다.


“데려오게. 직접 봐야겠어.”

“예.”


집무실을 벗어나는 부관을 바라보는 안톤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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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벌부대 +6 24.04.14 5,107 107 11쪽
2 튜토리얼 +5 24.04.14 5,430 112 7쪽
1 프롤로그 - 100 +7 24.04.14 6,138 117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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