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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서 인간으로 살아남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초코슬라임
작품등록일 :
2024.05.14 12:57
최근연재일 :
2024.06.04 13:15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408
추천수 :
2
글자수 :
103,428

작성
24.05.1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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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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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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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무기.


적이라고 규정된 존재를 꺾고, 생존하기 위해 만들어낸 도구의 총체.


현대 인류 중 과연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무기라는 것을 쥐어봤을까.


그것도 생존이라는 1차원 적인 목표를 위해. 그랬기에 이 곳에 있는 인질들은 물론, 천사와 그린스킨들 모두 인간의 패배를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정작 그들을 마주한 나에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할만하다라는 것이었다.


‘적어도 그에게서 느낀 살기나 광기는 전혀 보이지 않으니까.’


***



찌르고 베는 행위를 가장 쉽게 해주는 무기가 검이라는 것은 여러 매체에서 접해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처음 다루기에 아직 능숙하게 소화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종족에서 도태되었다고 한들 나의 눈먼 칼에 맞아 줄 정도의 바보는 아니었던 모양이라 그들의 몸에 상처를 내기는커녕 그들에게 닿기조차 쉽지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내게 뻗어오는 공격은 내가 뻗는 공격과 달리 온몸의 솜털이 곤두설만큼 매서웠지만 맞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기에 직감에몸을 맡기면 되는 일이었다.


나를 공격하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조금만 더 빨랐다면 잡아 곤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지 분을 참지 못했다.


“인간 비겁하게 피하지만 말고 정정당당하게 남자답게 싸워라.”


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말 따위 보다 주어진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느냐였다.


시간. 상황. 그리고 가진 무기까지.


활용만 한다면 저들을 이길 수 있다는 근거 없는 확신이 들었고, 또 이번이 아니면 이런 경험을 쌓을 수 있을지 몰랐으니까.


나 하나를 상대하는데 시간이 끌리는 것이 신경쓰이는지 이번엔 여럿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남자부터 처리하고 여자를 사냥한다. 여기서 시간이 더 끌리면 대장이 우리를 같은 종족 취급조차 안 해줄지 모른다.”


“허? 하는 짓거리 봐라. 너희 명예를 중요시하는 종족 아니었냐? 나한테는 비겁하다느니 그런 말 해놓고 참내..”


나에게 붙어있던 이들와 이미 녹초가 되어서 곧 죽을 것 같아 보이는 여자를 두고 나를 향해 다가오는 이들.


이상하게도 그들의 접근이 두렵기는커녕 연습 상대가 배로 불어났다는 사실에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


“아쉽군. 저들 중 유일하게 나의 흥미를 끄는 이가 인간이라니..”


결계 바깥. 강율과 부하들의 대치를 지켜보던 오크는 탄식을 감추지 못했다.


“돌대가리의 생각으로는 저 연약하디 연약한 인간이 질거라고 보는거야?”


어디에서 가져온 건지 모르는 팝콘을 먹으며, 그의 탄식에 질문을 건네는 카드니엘.


아까의 신경전의 여파가 남아있어서인지 그녀를 대하는 오크의 말투는 뾰족했지만, 그것 따위를 신경 쓸 카드니엘이 아니었다.


“그렇다. 씨앗을 가진 이라고 할지라도 그걸 개화하여 체득하는 데는 수 많은 시간이 걸리지.”


오크는 목이 타는 듯 카드니엘이 가져온 콜라를 마시고 나서야 말을 이어나갔다.


그린스킨들에서 도태되어 죽음이 확정된 아이들이라도 하더라도 씨앗조차 틔워내지 못한 인간 하나쯤은 충분히 잡을 수 있을거다. 저 남자만 잡아낸다면 나머지 둘이야 손질된 고기를 뜯는 것보다 쉽게 죽일 수 있을거고.”


담담한 듯 읆조리는 그 음성에는 진한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돌대가리야. 네가 말하는 진화의 씨앗이 특성이지?”


콜라를 눈 앞에서 빼앗긴 카드니엘 그를 한 번 째려본 뒤 손 끝에 묻은 팝콘 부스러기를 쪽쪽 빨면서 되물었다.


“타 종족들은 그렇게 말하곤 하지. 이 곳에 선 인간들 모두에게 그 씨앗을 강제로 심은 듯 하지만 저 아이는 다르다.”


“뭐가 다른데?”


“다른 이들이 이제야 토양에서 씨앗이 적응하고 있는 수준이라면 저 사내는 이제 준비를 마치고 씨앗을 틔워낼 정도의 수준이지. 이제 그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다. 충분한 시간. 하지만 아까 말했다시피 그것은 매우 힘들 것이다. 열등감에 찌든 존재들이 그것을 필사적으로 막아낼테니까.”


오크는 눈을 빛내며 동족들을 바라보았다.


‘우리 종족은 절대 내가 갖지 못하는 걸 남이 가지게 내버려 두는 종족이 아니니까’


***


‘이거 이렇게 하는건가?’


계속해서 어떻게든 검을 그들에게 맞추려고 시도 하던 중에 문득 찾아온 깨달음.


아니 깨달음이라고도 민망할 수준의 어떻게 찌르고 베야하는건가에 대한 느낌.


하지만 그 사소한 변화는 지지부진하던 전장에 획기적인 변화를 들고 왔다.


허우적거리며 상대에게 닿지도 못했던 검이 목적성을 가지게 되자 그들의 공격은 수그러들었다.


서걱.


그리고 그 순간 느껴진 무엇가를 베었다는 감촉.


“아? 이거였구나?”


그 기회를 놓칠 수 없던 나는 그들에게 외쳤다.


“너희들이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


***


와아아아!!


수세에 몰리며 회피에만 급급하던 그가 한 순간 바뀌어 공세로 전환한 뒤 그들을 몰아붙이는 것이 눈에 보이자, 관객석에서는 안도와 감탄이 섞인 환호성을 질러 그에게 조금이나마 자신들의 감정을 전하고자 했다.


신이 난 그들과는 달리, 오크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끔뻑거리며 카드니엘에게 되물었다.


“저 인간 정체가 뭐냐. 천사.”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다시 가져온 팝콘을 뜯어 그에게 건네며 자신의 의견을 전했다.


“나한테서 진짜 대답을 바라는 건 아니지? 돌대가리야?”


“안타깝도다. 어째서 저런 성장력을 가진 존재가 인간이라는 하등한 종족으로 남으려 하는가? 하다못해 오크 전사만이라도 되었다면..”

오크도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닌 듯했지만 그의 시선은 강율에게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


느낌을 알게 됨과 동시에 갑자기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은 지금 이 곳에서는 들려서는 안 되는 자였다.


“후퇴와 전진을 할 때를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지금 여기서는 전진을 해도 괜찮은 거리였다.”


멈칫.


‘케이론? 당신. 왜 내 머릿 속에서 울리고 있는 겁니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서일까. 나는 멈칫거렸고, 그 틈을 틈 타 한 녀석이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네 앞! 네 앞을 봐!’


분명 나의 앞에 다가온 녀석. 그리고 그 녀석을 보며 든 의문.


‘어째서 직감이 발동하지 않았지?’


그 대답은 그 순간 나와 초록 덩어리 사이에 세워진 노란빛 토벽이 대신해주었다.


그 토벽에 무기가 낀 녀석은 나에게 목숨을 내주었고, 내가 무사한 것을 보자마자 그 노란 토벽은 액체가 되어 남자의 술병으로 빨려들어갔다.


“아이씨. 귀찮게. 꺼윽. 잘못하다간 머리 날아갈 뻔 했어. 당신 네게 빚진 거다? 이 정도면 나중에 비싼 양주 두 병은 줘야하는 거 기억하고!”


불콰한 얼굴로 자신에게 빚을 졌다며 그 댓가를 술로 달라는 남자.


“당신. 분명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그는 맥주와 함께 자신만의 세계로 떠난 남자였다.


“감사인사는 내가 아닌 우리 주신님께 하라고! 당신의 전투가 안주로 딱이었다면서 나보고 안줏값을 하라고 하셨거든. 이제 나는 다시 자러 간다?”


그는 정말로 그 말을 끝으로 자신이 있던 자리로 돌아가 코를 골며 잠을 자기 시작했다.


“참으로 일관적인 아저씨로군. 그런데 케이론. 당신은 진짜 왜 이 곳에 있는 겁니까?”


난데없이 벌어진 사태에 그들과 우리는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고, 그 덕에 케이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은 벌 수 있었다.


“그냥 내가 우리 대장한테 빚진 거 청산하는 댓가로 계약 우선권을 하나 받아왔어. 지금은 계약 협상을 하는 과정이라 네게 말을 건넬 수 있는거고.”


할아버지가 손자를 마중나오는 게 잘못되었냐고 하는 것처럼 말하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나는 나의 귀가 잘못된 줄 알았다.


“계약 우선권? 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중요한 거 같은데. 그걸 나한테 막 써도 되는 겁니까?”


“무슨 문제있어? 내가 내 우선권을 마음대로 쓰겠다는데?”


항상 생각하는 것이었지만 오늘도 그를 통해서 맞다는 결론에 다다르는 나의 한 가지 생각.


“왜 그렇게 대책이 없습니까? 신이라는 작자가? 내가 만약 그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쩌려고요?”


“그럼 마는거지? 그런데 말이야. 네가 검에 의지를 불어넣은 그 순간부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러고 있더라고? 너라면 알 것 아냐? 내 제자들이 어떤 인간들인지?”


나를 설득하려는 건지 아니면 자신의 하소연을 이어가려는 찰나. 결계를 넘어 갑자기 들어오는 카드니엘.


그녀는 날개를 쫙 피더니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고 날개로 나를 감싸안았다.


그 모습에 모든 이들은 당황했지만. 이내 이것이 나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천사가 날개로 감싸안자마자 나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케이론.


“케이론님. 케이론님마저도 계약자를 찾으신 것에 감축드리지만, 이렇게 된다면 그린스킨과의 제 내기는 물론 이후에 있을 형평성에 커다란 문제가 생길 것이옵니다.”


항상 어디로 튈지 모르던 카드니엘이 이런 정상적인 말투와 행동을 보여준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녀는 이쯤 하면 예를 차렸다고 생각한건지 고개를 들어 나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참가자 이강율. 처음 봤을 때는 그 악마가 장난질 한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그 평가가 오히려 과소평가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도 제 앞에서 재롱떠는 강율씨를 더 보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제가 윗선에 찍히거든요. 그러니까. 이강율 씨는 여기서 나가주세요. 보상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에서 보상해드릴테니까요.”


분명 천사의 말은 달콤했다. 앞으로 있을 두 번의 선택을 하지 않아도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제가 뭐라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당신이 내보내려는 이유는 그의 가르침을 흡수해버린 내가 당신이 준비한 모든 계획이 어그러져버리기 때문아닙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것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런. 당신의 가장 뛰어난 점은 모든 상황을 파악하는 판단력이었네요.”


내가 그녀의 정곡을 찌르자, 그녀는 나의 생각을 다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나의 입으로 대답을 듣고자 했다.


케이론은 수상함을 느껴 날 막으려 했지만 그 쪽으로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겐가 자네.”


“저는 이번 미션에 한해서 케이론님과의 계약을 하지 않겠습니다. 거기에 더해 케이론님의 말을 단 한 마디도 듣지 않겠습니다.”


“자네..? 우와아악.”


카드니엘은 나의 대답을 듣자마자 케이론을 추방시킨 듯 모습조차 사라져버렸다.


“당연히 내게 요구하는 바가 있겠죠? 이강율 참가자?”


카드니엘은 케이론이 사라지자마자 특유의 그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내게 물어왔다.


“예. 제가 당신에게 부탁할 것은...”



그리고 나의 제안을 들은 카드니엘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방금 나 당신한테 설렜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하지? 좋아요 이강율 참가자. 그대가 깔아놓은 판에 알면서도 넘어가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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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05.미지와의 조우(1) 24.05.29 8 0 11쪽
15 04.악연의 종지부(3) 24.05.28 9 0 12쪽
14 04. 악연의 종지부(2) +1 24.05.27 13 0 11쪽
13 04. 악연의 종지부 24.05.24 1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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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03.엘프vs 드워프(02) 24.05.21 1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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