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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검 님의 서재입니다.

아스톨리아의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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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불타는검
작품등록일 :
2021.04.26 23:55
최근연재일 :
2023.05.19 20:47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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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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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글자수 :
444,514

작성
21.11.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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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1장

DUMMY

하늘은 청명했다. 맑은 날 겨울하늘만큼 청명한 때도 없다.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은 이제 몸의 일부가 되었다. 유리스 입에도 새하얀 입김이 나왔다. 이제 브리스톨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늦어도 오늘 해가 지기 전까지 브리스톨에 도착할 것이다.


사람들은 다시 예전처럼 돌아왔다. 하루가 다시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유리스가 보기엔 다들 슬픔과 공허함을 극복한 것처럼 보였다. 비슷하지만 달랐다. 사람들은 슬픔을 극복한 게 아니다.


사람들이 너무도 쉽고 허무하게 죽는 세상이다. 예기치 못한 죽음이 이미 일상이었다.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그러니 사람들은 슬픔을 견뎌내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일찍 깨우쳤을 뿐이다.


하지만 유리스는 그러지 못 했다. 이겨내거나 견디는 방법을 몰랐다. 가르쳐 주는 자가 없었기에. 로이가 차지하는 자리가 크지 않았다. 스쳐지나가는 인연이기에. 하지만 그 빈자리를 떨쳐낼 수 없었다.


마물의 대규모 습격 후 더 이상 습격은 없었다. 상단으로선 다행스로운 일이었다. 유리스가 그 사건 후 정신줄은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물이 다시 습격하면 큰 피해을 입었을 것이다.


유리스는 이날도 멍하니 마차에서 하늘만 쳐다봤다. 입김이 나오고 사라지는 것만 하릴없이 쳐다봤다. 하얀 입김과 파란 하늘. 그 때, 리아가 다가왔다.


“유리스. 뭐해?”


“어, 어··· 그냥··· 있어.”


리아는 걱정스러웠다. 유리스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물론 로이의 죽음 슬펐다. 하지만 언제나 슬퍼할 수만 없었다.


리아는 유리스도 금방 극복할 줄 알았다. 왜냐하면 친족인 할아버지의 죽음에도 무감각했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모르는 사람이 죽은 것처럼 너무도 무미건조하게 얘기했던 모습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했다. 그런데 로이의 죽음에 이렇게 신경을 쓸 줄 몰랐다.


처음 유리스가 충격을 받은 모습을 보여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당장 충격은 받아도 유리스 특유의 무신경한 성격으로 금방 극복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래서 리아는 걱정이 되었다.


리아는 계속 유리스를 나름대로 위로했다. 말을 걸어주거나 로이처럼 재미있는 얘기를 하거나 했다. 하지만 얘기할 때만 잠깐 정신을 차리고 다시 무기력하게 변했다.


리아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도 최소한 리아가 말을 걸어줄 때는 유리스는 평범하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유리스. 마고로 아저씨가 오늘 중으로 브리스톨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 했어.”


“오늘 중으로?”


“응. 오늘 중으로. 드디어.”


“그렇구나.”


유리스는 크게 반응이 없었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리아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유리스. 나는 도시에 가는 건 처음이야.”


“어. 나두.”


“정말 기대가 되지 않아?”


“그런가?”


“응. 난 진짜진짜 기대돼. 늘 얘기만 들었어. 그런데 진짜 도시에 가 볼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거든. 평생 가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곳이라서.”


브리스톨. 레고스 산맥 한가운데 있는 고도의 도시다. 유리스도 그 주제에 살짝 흥미가 생겼다. 유리스도 도시는 처음이다. 마을보다 훨씬 크고 높은 성벽으로 둘러쌓여진 곳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


사실 유리스도 리아와 다를 바 없었다. 할아버지의 지시가 없었다면 아마 평생 도시에 갈 일이 없었을 것이다.


유리스가 흥미를 보이자 리아는 신이 나서 계속 말을 걸었다.


“유리스. 내가 들었는데 브리스톨은 정말 정말 크데. 절벽 위에 아주 높은 성벽에 둘러쌓여있다고 하더라.”


“성벽? 도시는 모두 성벽을 있지 않아?”


도시는 언제나 성벽에 둘러쌓여 있다. 유리스는 그렇게 알고 있다. 물론 모든 도시가 그렇지 않지만 유리스가 도시에 가지는 막연한 편견 중 하나다.


“어? 그런거야?”


유리스는 기초상식이 부족하다. 하지만 상식이 부족한 건 산골처녀인 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리아는 글도 읽을 줄 모른다.


“나는 도시는 모두 성벽이 있는 줄 알았어.”


“나도 그건 잘 모르겠어. 도시는 처음이라서. 생각해보니 유리스 말이 맞는 거 같아.”


그래도 리아와 대화로 유리스는 모든 도시에 성벽이 있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뒀다. 왜 자신은 모든 도시에 성벽이 있을 거란 생각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 맞다. 내가 하려는 건 더 대단한 얘기야. 브리스톨에 있는 성벽 말이야. 누가 만든 건지 알아?”


“음··· 모르겠는데?”


“바로 드워프들이 만든 성벽이라고 해. 드워프가!”


“드워프?”


“응. 대단하지.”


“그러게. 최후의 드워프가 목격된 게 100년 전이라고 했으니 말이야.”


“그래서 그 성벽은 대단히 크고 튼튼해서 천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을 거라 해서 천년성벽이라고 불려.”


“천년이나?”


“응. 대단하지!”


“대단하네. 그런데···”


“응. 뭔데뭔데?”


“아스톨리아 말이야.”


갑자기 왜 아스톨리아 얘기가 나오는지 모르지만 리아는 잠자코 듣기로 했다.


“아스톨리아를 인류 최후의 도시라고 부르잖아.”


“응. 그런데?”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 브리스톨이라는 도시가 있으니까 최후의 도시가 아닌 거 아냐?”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다. 리아는 말문이 막혔다. 생각해 보니 유리스 말이 맞았다. 왜 리아는 이걸 생각 못 했을까. 분명 브리스톨이 있는데 왜 아스톨리아를 인류 최후의 도시라고 부르는 것일까.


“그건··· 그건··· 음··· 왤까?”


리아가 대충 미소와 애교로 넘기려 했다. 하지만 그런 게 통할 유리스가 아니었다. 자신의 애교가 먹히지 않자 리아는 침울해졌다. 안 먹힐 줄 알았다. 그런데 진짜 안 먹히니까 속상했다.


“로이라면 알려나?”


“어··· 로이?”


리아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심결 내뱉은 말이다. 리아의 놀란 표정을 보자, 유리스는 자신이 뭔가 실수를 했다고 느꼈다.


“미안. 내가 뭔가 또 실수했나 봐.”


“아, 아니야. 괜··· 괜찮아. 유리스.”


리아는 걱정이 되었다. 유리스가 또 로이 생각으로 무기력하게 변할까봐. 그리고 리아의 생각이 맞았다. 로이가 머리에 떠오르자 유리스는 로이가 있었을 때 상황을 떠올리게 되었다.


로이라면 알았을까, 로이라면 이렇게 대답을 했을까, 로이라면 어떻게든 답을 구해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로이는 유리스의 많은 부분을 스며들었다. 유리스는 셋이 있는 게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안타까웠다. 이제 더 이상 로이의 얘기도 들을 수 없다는 것이. 로이의 행동이 상상할 수 있었지만 유리스는 직접 로이에게 듣고 싶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제 더 이상 로이와 어떤 대화도 나눌 수 없다는 것이. 이 어찌 할 수 없는 답답한 느낌이 유리스는 너무 싫었다.


“유리스! 잠깐 기다려 봐. 내가 금방 알아올게.”


“어? 어···”


유리스가 제대로 대답하기도 전에 리아는 마차를 뛰쳐 나갔다. 유리스는 리아를 쫓아갈까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무기력이 유리스를 덥쳤기 때문이다. 대신 마차에 누워 하릴없이 하늘만 바라봤다. 그러다 유리스는 잠이 들었다.



다시 일어서니 해가 길게 늘어진 늦은 오후였다. 그림자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마차는 여전히 느리게 이동하고 있었다.


유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변을 살펴봤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 행렬이 길어 그럴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돌아다녀도 아무도 없었다. 마치 증발한 것처럼 아무도 없었다. 그저 비현실적으로 긴 그림자만 유리스 곁에 있었다.


유리스는 그림자를 봤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해를 바라봤다. 해의 윤곽이 또렷하게 보였다. 뭔가 이상하다가 느낀 순간 유리스는 잠에서 깨어났다.



꿈이었다. 유리스는 깊은 한숨은 내쉬었다. 안도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떨린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유리스는 여전히 마차에 혼자 있었다. 주변에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혼자 있으니 영원히 혼자 있을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껏 혼자였다. 아니, 할아버지가 있었지만 혼자나 다름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유리스를 전혀 신경을 안 썼기 때문이다. 필요한 말을 제외하곤 대화조차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심할 때는 한 달이나 대화를 나누지 않은 적도 있다.


그래서 유리스는 혼자 있는 게 익숙하다. 하지만 이제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는 법을 배웠다. 짧은 기간이지만 혼자 있던 시기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 어떻게 혼자 지냈는지 방법 조차 잊어버릴 정도다.


로이를 잃었다. 그런데 리아도 보이지 않았다. 꿈이 생각이 났다.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만 남겨진 꿈을. 유리스는 불안해졌다. 로이처럼 리아도 이대로 사라질 것만 같았다.


“리··· 리아!”


그런 생각이 들자 유리스는 마차에서 뛰쳐 나왔다. 그리고 리아를 찾았다. 하지만 리아가 보이지 않았다. 유리스는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걱정했다. 평소라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유리스, 뭐해?”


뒤에서 누군가 유리스를 불렀다. 익숙한 목소리다. 그리고 듣고 싶은 목소리다.


“리아!”


유리스는 리아를 힘껏 껴안았다. 리아는 당황했다.


“뭐, 뭐해? 유리스.”


“안 보였어.”


“뭐가?”


“잠깐 잠들고 일어났는데··· 니가 보이지 않았어.”


“······.”


“로이처럼 사라질 거 같았아. 그래서··· 그래서···”


리아는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었다.


“그랬구나. 이제 괜찮아. 내가 여기 있잖아.”


“응.”


유리스의 몸은 떨렸다. 리아는 유리스를 꼭 껴안아줬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가 드디어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한 달 정도 쉬고 설정을 재정리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조금 더 오래 걸린 거 같습니다.

2부부터 연재 주기는 기존 화요일에서 금요일로 조정했습니다.
그럼 재미있게 감상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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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스톨리아의 불꽃 1부 3장 21.05.18 301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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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스톨리아의 불꽃 - 프롤로그 21.04.27 514 4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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