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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검 님의 서재입니다.

아스톨리아의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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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불타는검
작품등록일 :
2021.04.26 23:55
최근연재일 :
2023.05.19 20:47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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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38
추천수 :
87
글자수 :
444,514

작성
21.05.1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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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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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3쪽

아스톨리아의 불꽃 1부 3장

DUMMY

누군가 얼굴을 가볍게 쳤다. 유리스는 짜증 섞인 웅얼거림을 내뱉으면 몸을 뒤척였다. 그러자 좀 더 강한 충격을 뺨을 강타했다. 유리스는 눈이 번쩍 뜨였다. 눈 앞에 처음 본 사람이 있었다. 누구지? 순간 몸을 움츠렸다. 그 사이에 어젯밤 일이 기억이 났다. 피오르네라 불리는 여자 엘프다. 가느다란 선을 지녔지만 강한 인상을 풍기는 여성이었다.


“아···”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낼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다행히도 유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됐다.


“일어나라. 가까운 마을로 안내해주마.”


“아, 네··· 네!”


유리스는 일어나 짐을 대강 챙겼다. 하지만 너무 대강 챙겨 가방에 있는 나무 상자가 바닥에 떨어졌다. 피오르네가 한심하게 쳐다보니 유리스는 왠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천천히 해도 돼.”


유리스는 처음 들었다. 저렇게 언행이 일치되지 않은 말을. 피오르네가 풍기는 뉘앙스는 전혀 천천히 준비해도 되는 말투가 아니었다. 유리스는 지금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서둘기로 했다.


둘은 말없이 걸었다. 해가 뜨기 전에 출발했는데 어느덧 해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가 있었다. 유리스는 지쳤다. 걷는 일에 자신이 있지만 다른 사람의 페이스에 맞춰 걷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몸은 힘들지만 그래도 마음은 왠지 가뿐했다. 할아버지와 있을 때 결코 느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설렘이었다. 이대로 말없이 밤까지 걸어도 유리스는 괜찮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둘은 길을 따라 걸었다. 왼쪽에는 들판이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숲이 있었다. 울창한 숲은 아니지만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서 조그만 안으로 들어가도 어두웠다.


피오르네는 원래 말이 많은 편이 아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성격은 더더욱 아니다. 특히, 지금 같은 시대에서 말이다. 유리스가 위험한 인물은 아니지만 세상 물정을 너무 몰랐다. 그런 걸 일일이 가르쳐 줄 시간도 자신도 없었다. 그래도 최소한 호의를 베풀어주려고 한다. 사람이라면 가져야할 최소한의 호의를 말이다.


그리고 유리스가 가지고 다니는 마법지팡이가 신경이 쓰였다. 어젯밤에는 윤곽만 보였다. 아침에 자세히 보니 많이 보던 마법지팡이다. 하지만 잘 기억은 나지 않았다. 기억력이 나쁜 편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기억이 나지 않았다. 생각이 나지 않은 건지 생각을 꺼내고 싶지 않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지팡이에 대한 생각은 오래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제 볼일이 없을 테니 말이다. 피오르네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주변을 살폈다. 지금껏 걸어온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피오르네는 알 수 있는 표식이 있으리라.


“여기다.”


“네?”


“여기 보이는 표식를 보이느냐?”


피오르네가 말하는 표지는 굵은 나무줄기에 있었다. 줄기에 희미한 칼집이 새겨져 있었다. 결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흠집이 아니었다. 칼로 정교하게 파낸, 그림인지 글자인지 알 수 없는 문양이었다.


“네. 보여요.”


“이 표식을 따라가면 마을이 나올 거다. 거기서 도움을 구하면 될 거다.”


나무 아래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좁은 길이 있었다. 유리스가 그 안으로 들어가자 피오르네는 몸을 돌려 그대로 떠났다.


“어, 저, 저기! 같이 안 가요?”


피오르네를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길을 따라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유리스는 피오르네가 뒷모습만 멍하니 바라봤다. 유리스가 미처 말을 걸기도 전에 사라져버렸다. 유리스는 또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피오르네가 도움을 줬다. 굶주린 자신을 돕고 마을로 안내까지 했다. 그녀에게 감사해도 모자랐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보다 자신을 홀로 남겨두고 떠났다는 게 더 신경이 쓰였다.


유리스는 피오르네가 사라졌던 곳만 계속 바라봤다. 그런다고 피오르네가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모습이 윤곽조차 남지 않았을 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유리스는 어두운 숲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리스는 길을 걸었다. 아니, 길이라고 생각했던 곳을 걸었다. 하지만 그런 걸 과연 길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눈에 띄지도 않은 표식에 의지해 더 깊이 숲으로 들어갔다.


얼마가 지났을까. 유리스는 피오르네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다시 곤경에 처했다. 길을 잃은 것이다. 길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표식도 찾을 수 없었다. 피로감이 몰려왔다. 피오르네가 보고 싶었다. 왜 그녀는 그렇게 떠났는지.


그녀를 생각한다고 상황이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유리스는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때, 유리스는 반가운 소리를 들었다. 사람 목소리다. 다시 들려왔다. 다시 들어도 역시 사람 목소리였다. 다만, 그게 비명소리만 아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유리스는 비명소리가 들린 곳을 뛰어갔다.


소녀는 달렸다.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달렸다. 늘씬한 그녀의 몸은 숲 속을 달리기에 최적이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빠르진 않았다. 양손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양손에는 다른 손을 꼭 쥐고 있었다. 그녀의 어린 동생들 손이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였다.


여자아이는 겁에 질린 채 울면서 뛰었다. 남자아이는 너무 겁에 질린 울지도 못하고 사색이 된 채 뛰었다. 붉은 머리 소녀는 공포, 분노, 후회, 무력감 등 온갖 감정이 뒤섞인 채 달렸다.


그 때, 남자아이의 손을 잃었다. 남자아이는 넘어졌다. 붉은 머리 소녀는 뒤돌아봤다. 늦었다. 남동생을 일으키고 도망가기엔 너무 늦었다. 소녀는 품속에서 단도를 꺼냈다. 하지만 과일이나 깎을 수 있는 칼로 머리가 몸집 만하고 턱이 귀까지 찢어진, 돼지 같은 외형을 지닌 마물을 상대할 순 없었다. 마물은 사냥감이 멈추자 침을 질질 흘리며 다가왔다. 침은 뾰족하고 손가락만한 이빨 사이에 흘러내렸다. 마물은 본능대로 아이들을 포위했다.


쓰러진 남자아이는 얼른 일어났다. 그리고 누나의 치맛자락을 붙잡은 채 뒤로 숨었다. 4살 정도 보이는 아이에겐 최선의 행동이었다. 소녀는 후회했다. 최근 마물의 습격이 뜸하자 안심했다. 그래서 무장도 없이 마을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것도 어린 동생과 함께.


소녀는 약하지 않다. 큰 키와 단련된 육체를 가지고 있다. 무장을 했다면 이런 마물은 혼자서 한두 마리 정도는 상대할 수 있었다. 그 이상이라면 도망을 치면 그만이었다. 숲 속은 그녀의 손바닥을 보는 것처럼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무장도 하지 않았고 혼자는 더더욱 아니었다.


소녀는 마음 속으로 기도를 했다. 자신은 어찌되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동생들은 무사히 도망치길 빌었다.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 그래도 빌었다. 빌고 또 빌었다.

마물 중 하나가 소녀에게 슬슬 소녀를 공격할 자세를 잡았다. 소녀는 결심했다. 다는 아니라도 최소한 2마리 정도는 길동무로 삼자고. 그리고 마물에게 달려들었다.


“쾅!”


소녀에게 달려들 던 마물은 산산조각이 났다. 파편 일부가 소녀의 얼굴과 옷에 묻었다. 하지만 단도를 휘두른 결과는 결코 아니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불덩이가 마물에게 적중한 것이다. 남은 마물들은 놀라서 불덩이가 날아온 곳을 봤다. 그리고 그 행동이 마물들의 마지막 행동이었다. 3발의 불덩이가 마물을 덮쳤다. 일부는 불덩이에 산산조각이 났고 일부는 화염에 고통스러워하다 움직임을 멈췄다.


소녀는 이 기적 같은 상황과 폭발에 놀라, 그대로 주저 앉고 말았다. 덩달아 동생들도 같이 주저 앉았다. 유리스가 다가왔다. 소녀는 유리스를 바라봤다. 어두워서 얼굴 윤곽만 보였다. 초라한 행색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유리스가 걸어오는 그 모습 자체만이 의미가 있었다. 마물을 태우는 불꽃이 일렁이었다. 유리스의 걸어오는 모습도 함께 일렁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비현실처럼 느껴졌다. 영웅처럼, 왕자처럼, 초현실적인 신사처럼 느껴졌다.


“안녕.”


유리스는 인사를 했다.


“에?”


“······?”


유리스는 소녀가 못 들은 거 같아 다시 말했다.


“안녕.”


“아, 안녀··· 푸흡,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소녀는 웃었다.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첫마디 말이 인사라니. 자신과 동생은 죽을지도 몰랐다. 마물은 불타고 있었다. 불타지 않은 마물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런 상황에서 인사라니. 보통은 ‘괜찮아’, ‘어디 다치지 않았어?’ 라고 물어보지 않나. 하지만 이 은인은 인사를 했다. 마치 동화책 왕자님처럼. 그래서 웃었다. 죽지도 않았고 긴장도 풀렸고 뭐든 발산하고 싶었다.


“하하하··· 으흑, 흐흑, 으아앙!”


웃더니 곧 울었다. 동생들도 언니가 웃을 때, 쳐다보다가 울기 시작하니 덩달아 울었다. 소녀는 동생들을 끌어안으며 더 크게 울었다. 울음소리가 불협화음을 냈다. 유리스는 정신이 나갈 거 같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소녀와 동생들은 안정을 되찾았다. 여전히 코를 훌쩍이지만. 소녀는 손으로 눈물콧물을 대충 닦더니 벌떡 일어섰다. 헝클어진 긴 붉은 머리칼이 흩날렸다. 똑바로 선 소녀는 유리스와 눈높이가 같았다. 유리스도 작은 키는 아니다. 단지, 소녀가 유리스만큼 컸다. 소녀는 눈물콧물이 묻은 손으로 유리스의 손을 힘껏 잡고 큰소리로 말했다.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왕자··· 마법사님!”


중간에 이상한 단어가 나왔지만 유리스는 무시하기로 했다. 그리고 손을 빼고 싶었다. 하지만 소녀가 너무 꽉 쥐고 있었다. 손바닥이 아려왔다.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해 주뗘뎌 깜따합니따.”


동생들도 감사 인사를 했다. 가장 어린 동생은 아직 말을 그렇게 잘하진 않았다.


“아, 응.”


그리고 대화가 끝났다. 4명은 어색한 침묵을 지켰다. 이런 건 지키지 않아도 됐다. 유리스는 대화 보다는 손을 어서 빼고 싶었다. 하지만 소녀의 힘은 유리스보다 더 셌다.


“저···”


“저기···”


둘이 동시에 말했다.


“아하하··· 마법사님, 마법사님이 먼저 말하세요.”


“응. 여기 근처에 마을이 있다고 하는데 어딘지 알아?”


“마을이요?”


소녀의 눈빛이 빛났다.


“물론이에요. 바로 저희 마을이에요.”


“다행이다. 또 길을 잃은 줄 알았어.”


유리스가 씨익 웃었다. 소녀는 두근거렸다. 얼굴이 붉어졌다. 단지, 유리스가 자신들을 구해줘서 인지, 아니면 또래 소년의 미소를 봐서인지, 유리스가 잘 생겨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세 다 일 수 있다.


“어··· 혹시 내 얼굴에 뭐가 묻었어?”


“아, 아니요! 아니에요. 아참,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전 리아에요. 이쪽은 동생인 사라와 톰이에요.”


리아라 불리는 붉은 머리 소녀는 황급히 대화를 돌렸다.


“난 유리스라고 해.”


유리스는 웃으며 말했다. 유리스는 리아를 쳐다봤다. 피오르네 이후 본 사람이다. 사람은 두번째지만 인간은 처음이다. 빨간 머리, 녹색 눈 그리고 주근깨가 있었다. 키가 컸지만 어제 본 피오르네보다는 작았다. 동생들은 어렸다. 여자아이는 6~7살쯤 보였고 남자아이는 3~4살쯤 되어 보였다. 둘 다 리아처럼 붉은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저희 마을을 찾는다고 했죠? 따라오세요. 제가 안내할게요.”


“응.”


“그런데 저희 마을은 어떻게 아신 거에요?”


“어, 피오르네가 가르쳐줬어.”


“피오르네? 아, 그 엘프분 말인가요? 마법사님은 그 엘프분 친구이신가요?”

피오르네의 친구라는 말에 유리스는 기분이 괜히 좋아졌다.


“뭐, 그런 셈이지.”


안 그런 셈이다. 유리스는 처음으로 허풍이라는 것을 부렸다. 왠지 해도 괜찮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가시죠.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런데, 리아.”


두근.


“네?”


“손 좀···”


리아는 아직도 유리스의 손을 꽉 쥐고 있는 것을 보고 얼른 손을 뗐다.


“아하하하하··· 죄송합니다.”


리아는 부끄러웠다. 아쉬움을 남기며 유리스의 손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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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아스톨리아의 불꽃 1부 19장 21.09.14 172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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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스톨리아의 불꽃 1부 4장 21.05.25 277 5 11쪽
» 아스톨리아의 불꽃 1부 3장 21.05.18 300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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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스톨리아의 불꽃 1부 1장 21.05.04 401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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