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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萬秀 님의 서재입니다.

베른 디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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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안수
작품등록일 :
2015.11.03 19:34
최근연재일 :
2015.12.09 22:4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8,977
추천수 :
233
글자수 :
102,840

작성
15.12.07 23:53
조회
205
추천
5
글자
7쪽

5장. 멸인대 (2)

DUMMY

낮고 높은 기도문이 울렸다.

“커억!”

근근이 이어지는 참상위의 노인의 숨소리가 가빠졌다. 노인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토해지자 그를 둘러싼 신관들의 기도문도 더욱 가파르게 울렸다.

피골이 상접한 앙상한 얼굴의 늙은이가 철혈의 군주 쿠도룬이라는 사실을 누가 믿을까. 뼈의 형태마저 보이는 가는 손이 힘겹게 들려지며 공중을 휘저었다.

“아, 아흑!”

환각마저 보는지 무언가를 움켜지는 듯한 쿠도룬의 손짓이 애처롭기까지 했다.

열명의 신관들이 다시 한번 성호를 그으며 신의 이름을 불렀다. 죽음을 앞둔 노인의 생을,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려 안간힘을 쓰는 신관들의 얼굴에도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순간 마지막 기도문을 읊으며 신의 가호를 갈구하던 신관들의 정수리에서 하얀 섬광이 줄기줄기 뻗어나왔다. 쿠도룬의 이마 위에서 분수처럼 솟아오른 하얀 섬광이 가는 빗줄기처럼 갈라지며 쿠도룬의 전신을 뒤덮었다.

“하악! 하악! 하아...하.......”

쇳소리가 갈려 케륵대던 쿠도룬의 숨소리가 기적적으로 가라앉으며 가뿐 숨소리가 규칙적인 숨소리로 변했다. 다행히도 다시 한번 위기를 넘긴 것이다.

“커윽!”

쿠도룬의 숨소리가 가라앉자 다섯의 신관의 입에서 피분수를 뿜어냈다. 검붉은 피가 쿠도룬의 몸에 튀었지만 누구하나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고위 신관 다섯의 목숨과 맞바꾼 잠시의 평온이었으니 말이다.

“수고했네.”

앙상한 쿠도룬의 손을 맞잡은 킨사르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이번엔... 다섯의 목숨입니다. 다음엔 더욱 많은 희생이 필요할겁니다.”

쿠도룬의 머리맡에서 성호를 그으며 기도문을 읊던 노신관이 말했다.

“다섯 아니라 수 백명의 희생이 있더라도 아버님의 목숨을 살려야 할 것이다.”

“......”

노신관은 감히 가슴 속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어쩌면 다음 차례에 자신이 피를 뿜더라도 지금 당장은 살고 봐야 하니깐.

쿠도룬의 기색을 마지막으로 살피고는 녹초가 된 신관들이 방을 빠져나갔다.

킨사르와 쿠도룬만이 남은 방 안. 킨사르의 표정이 일순 굳어졌다. 아직은 아니다. 아비가 죽는 날 모든 것이 결정될 터였다. 자신일지 아니면 쿠르나하일지, 모든 것을 가지던지 아니면 목이 날아가던지 말이다.

‘아직은, 아직은 아니다.’

킨사르는 금실로 수 놓여진 화려한 이불을 당겨 쿠도룬의 턱 밑까지 덮어 주었다. 그리고는 참담한 표정을 지은 채 방을 나섰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오로지 쿠도룬의 미약한 숨소리만이 울리는 조용한 실내에 작은 변화가 일었다.

아늑한 촛불이 방안을 가득 채운 실내의 귀퉁이. 촛불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십 여개가 넘는 초들 중에 귀퉁이 단 하나의 촛불만이 일렁였다. 다시 말하지만 촛불이 일렁인 것이 아니라 그 촛불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극히 짧은 시간의 움직임. 찰나라고 표현해야 옳을 그 짧은 시간의 기현상을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림자가 움직인다. 시녀의 발걸음과 같이 움직이던 그림자는 시녀와 교차되어 지나가던 다른 시녀의 그림자와 섞였다. 한동안 그 시녀의 그림자와 섞여 움직이던 이질적인 그림자는 나뭇가지의 그림자에 섞이고 이윽고 나뭇가지에 앉아있던 작은 새의 그림자에 녹아들었다.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을 날아오르는 그 순간. 그림자는 새의 그림자를 타고 저택 바깥으로 사라졌다.

새의 그림자에 숨어 한참을 날아가던 그림자가 당도한 곳은 어둑한 숲 속이었다. 새가 둥지를 찾아 내려앚자 그림자는 숲속에 그물망처럼 얼기 설기 섞인 그림자에 또 다시 섞여 들었다. 그림자들로 이어진 어둑한 숲속인지라 이질적인 그림자는 거칠 것이 없었다. 숲 속, 더 깊은 숲 속을 내달리던 그림자가 당도한 곳은 인기척조차 그 흔한 산짐승마저 오가지 않는 깊고 어두운 숲 속이었다.

초로의 노인.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 반백의 노인이 작은 바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곧게 펴진 허리와 단단한 눈빛이 저기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 끝에는 키나타르 가문의 어디쯤이 걸려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먼 상을 바라보던 노인이 지팡이를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순간, 이질적인 그림자가 지팡이의 그림자에 섞여들었다. 감히 노인의 그림자에 몸을 숨길 수 없는 지라 한낱 지팡이의 그림자에 녹아들어야만 했다.

“먼 길을 오느라 수고 했다.”

노인의 음성이 낮게 울렸다. 그러자 해를 등지고 길게 뻗은 그림자에서 가는 음성이 화답했다.

“멀지 않았습니다.”

노인은 표정이 굳어졌다.

“멀지 않았다라. 생각보다 쿠도룬의 상태가 심각한 모양이구나.”

“길어봐야 한달. 혹은 더 짧을 수도 있습니다.”

“호오, 정녕 쿠도룬이 이리 될 줄 누가 알았단 말인가.”

“맹약이 다해갑니다. 이제는 더이상 숨을 필요도 없습니다.”

“성급하구나. 쿠도룬이다. 철혈의 군주라는 끔찍한 이름을 가진 자아니더냐. 더군다나... 아직은 우리의 주인이기도 하고.”

까아아악!

그때, 까마귀 때가 낮게 날았다. 한 무리의 까마귀 때가 노인의 머리 위를 지나쳤다. 까마귀의 희미한 그림자가 노인이 걸터 앉아있던 바위의 그림자와 섞이는 순간.

노인은 눈을 바위의 그림자에 향한 채 입을 열었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

그러자 바위의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음성을 토해냈다.

“쿠르나하와 킨사르는 저희를 모르는 듯 합니다. 권력에 미친 쿠도룬인지라 예상은 했었지만 정말 자식들에게까지 비밀로 했을 줄이야.”

“쿠도룬은 그러고도 남을 인물이지.”

노인은 몸을 돌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담한 텃밭이 있는 낡은 초가집이었다.

이윽고 늙은이는 아무렇게나 내팽겨진 괭이를 들고는 밭을 갈기 시작했다.

“한달이라... 정말 한달이면 우리가 자유를 찾을 수 있을까. 그 자유가 과연 목숨을 장담할 수 있을지...”

노인의 음성이 처량하게 울려퍼졌다.

퍼억!

내려처진 괭이가 흙을 부드럽게 긁어냈다. 움푹 파인 땅에 어두운 그림자가 서리자 그 곳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복수!”

다시 한번 괭이가 땅을 긁었다. 역시 파인 땅에 그림자에서 또 다른 음성이 들려왔다,

“복수를!”

또 다시 괭이가 내처진다. 긁혀진 땅에 어두운 그림자가 다시 처절하게 절규했다.

“자유를 얻고 복수를!”

노인의 손이 내처질때마다 복수를 외치는 음성이 들려왔다. 수십 번에 수십 개의 음성이 복수를 외치고 수 백번의 손놀림에 수백 개의 음성이 복수를 부르짖었다.

“나도, 나도 복수를 원한다!”

끝으로 노인의 피맺힌 절규가 낮게 으르렁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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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5장 수정했습니다. 15.12.07 176 0 -
공지 연재 주기에 대해서 15.11.18 335 0 -
22 5장. 멸인대 (5) +4 15.12.09 264 6 12쪽
21 5장. 멸인대 (4) +1 15.12.09 254 4 11쪽
20 5장. 멸인대 (3) +2 15.12.07 199 3 12쪽
» 5장. 멸인대 (2) 15.12.07 206 5 7쪽
18 5장. 멸인대 (1) 15.12.07 236 5 16쪽
17 4장. 태동 (4) +3 15.11.25 352 7 9쪽
16 4장. 태동 (3) +1 15.11.24 315 10 11쪽
15 4장. 태동 (2) +1 15.11.23 330 11 13쪽
14 4장. 태동 (1) +1 15.11.22 396 12 8쪽
13 3장. 디그의 던전 (7) +1 15.11.21 417 13 12쪽
12 3장. 디그의 던전 (6) 15.11.20 392 11 9쪽
11 3장. 디그의 던전 (5) +1 15.11.20 427 10 9쪽
10 3장. 디그의 던전 (4) 15.11.20 396 9 11쪽
9 3장. 디그의 던전 (3) 15.11.19 356 10 8쪽
8 3장. 디그의 던전 (2) 15.11.19 380 13 8쪽
7 3장. 디그의 던전 (1) +2 15.11.19 520 13 12쪽
6 2장. 기묘한 일행 (3) 15.11.19 437 14 13쪽
5 2장. 기묘한 일행 (2) +1 15.11.18 426 12 9쪽
4 2장. 기묘한 일행 (1) 15.11.18 518 14 12쪽
3 1장. 깊은 잠을 자다 (3) +1 15.11.18 557 15 9쪽
2 1장. 깊은 잠을 자다 (2) 15.11.18 590 15 8쪽
1 1장. 깊은 잠을 자다 (1) 15.11.18 1,007 2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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