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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萬秀 님의 서재입니다.

베른 디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마안수
작품등록일 :
2015.11.03 19:34
최근연재일 :
2015.12.09 22:4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8,980
추천수 :
233
글자수 :
102,840

작성
15.11.18 09:44
조회
590
추천
15
글자
8쪽

1장. 깊은 잠을 자다 (2)

DUMMY

묽은 수프의 지겨운 맛을 혀로 느끼며 참담함을 곱씹는 이 순간, 진척되지 않는 실험에 절망을 느꼈다. 나는 목구멍으로 수프를 억지로 밀어넣고는 자리를 뜨려고 했다.

"디그."

나는 일으키던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얼마만에 듣는 그의 음성인지... 수 년만에 듣는 그의 음성은 여전히 나를 잡아 끌었다.

언제부터인가 그와의 대화는 정체된 실험으로 지쳐가던 어느 순간부터 멈추어 버렸다. 아니, 내가 피했다. 부끄러웠다. 나는 이 실험이 영원히 이루지 못할 신기루임을 깨달았다. 내 능력으론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 나는 그에게 끝을 말하지 못했다. 자존심... 그래, 자존심이자 오기였다. 너를 뛰어넘어 보겠노라는 알량한 자존심이 실패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평생을 바쳤지만 단 하나의 문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생명력!

완벽한 육체와 조화를 이룰 생명력을 담을 길이 없다. 수백의 갓난 아이들을 늑대 우리에 던져 넣고 술법을 걸어도 보았다. 인간의 아이를 동족인양 애지중지하는 늑대들을 지켜보며 십 오년을 기다려도 보았다. 그렇게 자란 짐승같은 생명력을 지닌 늑대인간들도 소용없었다. 난다 긴다하는 기사와 술사들을 잡아 실험에 동원해도 결과는 같았다. 실험의 기본이 되는 인간의 나약한 정신과 생명력이 끔찍한 실험의 고통을 견디질 못했다. 혼을 육체에 붙잡아두는 술법도 소용이 없었다. 그 어떤 방법도 육체를 움직일 생명력을 담을 수 없었다. 실패. 또 실패! 이제는 이렇다 할 수단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보게, 디그."

그가 깊은 상념에 빠진 나를 잡았다. 역시 변하지 않은 나른한 목소리. 반가움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곧이어 검은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말은 나의 귀를 의심케 했다.

"축하하네. 자네의 실험은 성공이야."

"기껏... 한다는 소리가..!"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저딴 헛소리를 내뱉는 그의 얼굴을 적의로 노려보았다. 감히, 감히 나를 조롱하다니!

"헛소리는 집어 치우게. 몇 년만에 한다는 소리가 나를 비웃는 것인가? 아니면 위로라도 하는건가? 베른! 아무리 자네라도 나를 모욕할 수는 없어!"

질끈 깨문 입술이 터져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비릿한 피맛보다 가슴을 후벼파는 수치가 더욱 비리다.

"나는 술사들의 왕이다. 신이라 하더라도 나를 어쩌지 못해. 그런 나를 자네가 능멸하다니! 베른 자네가 나의 유일한 벗이라 하더라도 이럴수는 없네. 인정하지! 이 실험은 실패야. 더이상 나를 속이진 않겠어."

결국 나는 끝을 말해 버렸다. 비집고 나오려는 눈물을 참기 위해 얼굴을 쓸었다. 너무도 거칠다. 앙상한 손목과 손가락이 보인다.

늙은 몸뚱이...

평생을 바쳤지만 결국은 부질없는 노력. 젊음과 명성과 전지전능의 능력을 뒤로 하고 모든 것을 쏟아 부었지만 이렇게 되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담담함을 가장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여전한 그의 시선이 나를 응시한다. 발가벗기고 낱낱이 해체되는 기분만은 어쩔 수 없었다. 저 검은 눈동자. 이제는 지겨운 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이번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그는 냅킨으로 입을 닦고 수저를 놓았다. 그의 눈이 호선을 그린다.

오랜 친우여. 나의 영혼의 스승이자 아버지여. 나를 비웃지 말아다오.

"진정하고 내 말을 끝까지 들어보게. 내가 자네에게 원한 것은 신인류의 끝을 보는 것이 아니었네. 그릇. 단지 신인류가 될 그릇을 만드는 것. 거기까지였지."

나는 잠시 그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무슨 뜻일까. 나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기억하나? 오래전 너는 나와 신이 되자 했었다. 신인류를 만들어 창조주가 되어 보자고 했다. 신이 되는 것. 인간을 창조하고 만물을 만든 신의 위업을 내 손으로 이루는 것이야 말로 자네의 뜻인 줄 알았네.

그릇을 만든다라... 좋아, 그릇. 하지만 저것들은 좋은 그릇이 아니야. 이미 금이 간 그릇이란 말이다!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쓰레기."

나의 처절한 절규가 나를 숨막히게 했다. 내 입으로 실패를 말하는 이 순간이 기나긴 나의 인생을 부질 없는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떨리는 손을 들킬세라 조용히 숨겨야만 했다. 그의 눈동자는 잠시 나의 떨리는 손에 멈추었다가 다시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디그... 자네는 부끄러워 할 필요 없네. 자네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신인류의 그릇을 빚을 수 없을 걸세."

그는 웃음을 머금었다.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진실로 웃는다. 그의 아름다운 미소가, 지금의 저 미소는 진실로 웃는 것이다. 여태껏 가식적으로 그린 불쾌한 미소가 아닌 진실된 웃음이다. 아마도 오늘은 내 평생에 잊지 못할 날이 될 것이다. 그의 진실 된 미소를 본 것만으로도 작은 위안이 되었다. 나의 실험이 적어도 그를 웃게 만들 가치는 있다 생각하니 작지만 보답을 받는 기분이랄까.

그런 생각도 잠시, 이어진 그의 말은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

"나는 디그, 자네와 함께 신이 되자고 제안했었지. 다만 내가 원한 신은 자네의 생각과는 조금 다르네. 신인류를 만든 아버지가 되려 한 것이 아닐세."

붉은 와인으로 목을 축이며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의 눈동자를 피하지 않았다.

"자네가 보기엔 내가 무어라 생각하나. 늙지도 죽지도 않는 내가 이상하지 않은가?"

당연히 이상하지, 말해 무엇하랴. 하나 그런 고민은 접은지 오래다. 그라는 존재는 내가 고민해본들 알 수 없는 영역이다. 그의 정체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해보아도 답을 알 수는 없었다. 결국 그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하고 넘겨 버렸다. 그만큼 그는 세계의 신비보다 더한 비밀이라 생각하고 말았었다.

그는 오늘 유달리 많은 말을 했다. 평소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 오늘에서야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려 했다. 담담한 목소리가 마치 타인의 이야기를 하듯 무심히 흘러 나왔다.

"나의 존재를 깨달았을 때는 아득한 옛날이었네."

아련한 음성이 이어졌다.

"내가 눈을 떴을 때 눈앞에 서 있는 존재를 나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걸세. 그래, 신을 보았어. 세상을 만들고 빛과 어둠을 양손에 그러쥔 그의 모습을. 나는 그를 아버지라 불렀었네."

나는 그의 이야기에 정신을 빼앗겼다. 이백 년의 시간 동안 한결 같은 그의 모습이 방금 그가 뱉은 말이 진실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흐른 뒤, 아버지는 인간을 만들더군. 아마도 나를 본떠 만들었을 거야. 나와 똑같이 생긴 놈들을 찍어냈으니 말이야."

그의 눈동자는 허공을 담았다. 그때를 회상하며 신을 떠올리는 중이리라.

원망? 아마도 애증이겠지.

"나는 불량품이었네. 인간보다 더욱 아버지와 닮았으나 결국 선택 된 건 인간이었으니... 불량품이 맞을 걸세. 아버지가 그러더군. 나에게 너무 많은 걸 주었다고. 그래서 내가 선택되지 못했다고 했었지. 그 말뜻을 아직도 이해할 수 없네. 가진게 잘못이라니... 아니지, 당신에게 받은 것이 잘못이란 말인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너무도 쉽게 하더군. 그렇게 나는 그에게서 잊혀졌어. 영원히."

그는 나를 눈에 담으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옛날 이야기를, 잊혀진 기억을 끄집어내는 그를 나는 마주 보았다. 그의 속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슬픔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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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5장. 멸인대 (5) +4 15.12.09 264 6 12쪽
21 5장. 멸인대 (4) +1 15.12.09 254 4 11쪽
20 5장. 멸인대 (3) +2 15.12.07 199 3 12쪽
19 5장. 멸인대 (2) 15.12.07 206 5 7쪽
18 5장. 멸인대 (1) 15.12.07 236 5 16쪽
17 4장. 태동 (4) +3 15.11.25 352 7 9쪽
16 4장. 태동 (3) +1 15.11.24 316 10 11쪽
15 4장. 태동 (2) +1 15.11.23 330 11 13쪽
14 4장. 태동 (1) +1 15.11.22 397 12 8쪽
13 3장. 디그의 던전 (7) +1 15.11.21 417 13 12쪽
12 3장. 디그의 던전 (6) 15.11.20 392 11 9쪽
11 3장. 디그의 던전 (5) +1 15.11.20 427 10 9쪽
10 3장. 디그의 던전 (4) 15.11.20 396 9 11쪽
9 3장. 디그의 던전 (3) 15.11.19 356 10 8쪽
8 3장. 디그의 던전 (2) 15.11.19 380 13 8쪽
7 3장. 디그의 던전 (1) +2 15.11.19 520 13 12쪽
6 2장. 기묘한 일행 (3) 15.11.19 437 14 13쪽
5 2장. 기묘한 일행 (2) +1 15.11.18 426 12 9쪽
4 2장. 기묘한 일행 (1) 15.11.18 518 14 12쪽
3 1장. 깊은 잠을 자다 (3) +1 15.11.18 557 15 9쪽
» 1장. 깊은 잠을 자다 (2) 15.11.18 591 15 8쪽
1 1장. 깊은 잠을 자다 (1) 15.11.18 1,007 2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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