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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萬秀 님의 서재입니다.

베른 디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마안수
작품등록일 :
2015.11.03 19:34
최근연재일 :
2015.12.09 22:4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8,976
추천수 :
233
글자수 :
102,840

작성
15.11.18 09:14
조회
1,006
추천
21
글자
9쪽

1장. 깊은 잠을 자다 (1)

DUMMY

그의 눈동자는 깊었다. 그의 검고 깊은 눈동자가 나를 바라볼 때면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입가에 미소만 띤 저 얼굴이 나를 더욱 부끄럽게 만들었다. 묘한 기대감을 한껏 머금은 그의 눈이 빛을 띠었다. 아아... 과연 그의 기대를 내가 받들 수 있을까.

그와 얼굴을 맞댄 채 식사를 하는 이 시간. 한달에 단 한번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이자, 실험의 경과를 얘기하는 순간이다. 깊고 어두운 굴 속에 갇힌 듯 끝 모를 지하를 홀로 걷는 기분이다.

하얀 피부에 대비되는 검은 눈동자와 검은 입술의 사내. 그의 이름은 베른이라 했다.

"이번에는 어떤가?"

접시 위를 지나는 나이프의 달그락 거리는 소리 사이로 깊은 울림이 있는 그의 목소리가 나의 귀를 헤집었다. 그의 물음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언제나 같았다.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억지로 뗐다.

"실패다. 시간이 더 필요하네."

아무렇지 않은 표정 뒤에 감춘 나의 초조함을 그는 아마도 알고 있을 것이다.

"뭐가 문제지?"

다시 한번 무표정의 가면을 쓰고 별 일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늑대의 피가 뇌로 퍼지는 순간, 미쳐 버린다. 아무리 혈관을 단단히 만들어도 어떠한 술식을 그려넣어도 소용이 없어. 인간과 늑대는 상성이 맞지 않아. 예상한대로야. 아쉽지만 방향을 틀어야겠네. 흉폭하지만 조용하고 탐욕스럽지만 드러내지 않는 다른 무언가를 찾는 게 빠를거야."

나의 담담한 목소리가 더욱 비참히 느껴졌다. 내 입으로 익숙한 실패를 논하는 이 순간은 한결같이 더러운 기분이다.

그는 한층 짙어진 미소를 얼굴에 그렸다. 나의 고뇌를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식사에만 열중하는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불편한 시선 뒤로 스윽하는 소리가 들렸다. 얼핏 보니 하얀 식탁보에 손가락을 놀리고 있었다. 붉은 피가 난생 처음 보는 도형과 문자를 만든다. 그보다 마음먹은 대로 살을 찢고 피를 움직이는 저 능력이 놀랄 따름이다.

"자네라면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 금새 알 수 있을 꺼야."

짧은 말과 미소만을 남기고 조용히 자리를 일어나는 그를 나는 모른 척했다. 그가 자리를 떠난 뒤, 완전히 인기척이 사라지고서야 나의 눈은 그가 그려 놓은 술식을 향했다.

제길, 그는 해답을 가지고 있었다.

부끄러워 지옥에라도 숨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그가 남긴 저 술식을 일단은 해석하고 그의 눈앞에서 웃어 보이리라. 그전에는 지옥이 아니라 천국이라도 가지 않을 것이다.


일년의 시간. 길지 않은 시간이다. 길지 않은 그 시간동안 그가 남겨 놓고 간 술식을 낱낱이 해체하고 더욱 견고하게 조립하고 완전한 나만의 것으로 만들었다. 꼬박 일년을 잠을 자지 않고 매달린 결과다. 오늘은 그의 얼굴을 웃으며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와의 식사 시간. 그날 이후 일 년만의 자리다. 오늘을 위해 일부러 그를 피했다.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그와 마주했다. 한결같이 온통 검은색 일색의 그다. 나는 상기된 표정으로 조용히 고기를 씹는 그의 맞은 편에 앉았다.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놀란 표정을 보고 싶다. 내가 얼굴을 내비쳤다는 것은 그가 그려준 술식을 풀어냈다는 뜻이니깐.

"앉게."

"......"

나른한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의 머리는 차갑게 식었다. 내가 무얼 기대 했던 걸까. 그가 남긴 문제를 풀었으니 칭찬이라도 듣고 싶었던 걸까? 숙제를 끝내고 상이라도 기다리는 아이의 그것과 지금의 내 모습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똑같은 얼굴. 똑같은 표정. 똑같은 말투. 모처럼의 만남이건만 그에겐 아무런 감흥이 없는 듯 했다.

접시를 긁는 나이프 소리만이 천둥처럼 귀를 때렸다. 부드러운 육질의 송아지 고기가 돌덩이처럼 느껴졌다. 모래를 씹는 것마냥 입 안이 텁텁했다.

"디그, 그 술식을 어떻게 쓰겠나."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처음 그를 만났을때와 똑같은, 변함없는 그의 얼굴이 보인다. 만인에게 평등한 시간이, 세월이라는 녀석이 오직 그에게만은 해당되지 않았다. 인세에 다시 없을 신비를 가진 나조차도, 세계의 신비를 언뜻 엿본 나일지라도 눈앞의 검은 사내는 불가해의 존재였다. 오십 하고도 삼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처음 보았을때의 아름다운 얼굴이 지금도 여전히 빛났다.

"그대라면 충분히 알고도 남을 텐데?"

그의 음성이 다시 한번 나를 재촉했다.

물론이다. 비록 네놈 앞에선 태양 앞의 반딧불일지라도 어둠을 밝히기엔 충분한 빛을 가진 나다. 나는 최대한 담담한 여상스런 말투를 만들려 노력했다.

"자네의 술식을 조금 손보았네. 자네가 보여 준 술식은 마나를 순환 시키는 순환 술식이더군. 이놈을 고쳐 인간의 심장에 박아 넣었지. 마나가 아닌 늑대의 피를 순환 시키도록 말이야. 그리했더니 인간의 피와 섞인 늑대의 피만을 걸러 뇌로 오르는 것을 막아 버리버리더군. 다시 말해 이녀석이 두번째 심장 역할을 하는 것이지. 뇌로는 인간의 피만이 사지로는 늑대의 피만이 흐르도록 말이야."

낮은 목소리가 나의 들뜬 마음을 숨겼다. 모처럼만의 성공을 말하는 내 모습이 그의 눈동자에 비쳤다.

"디그, 역시 자네라면 성공할 줄 알았어."

흡족한 듯 진실로 미소 짓는 그의 표정. 모처럼만에 식욕이 동했다. 연한 송아지 고기를 조용히 씹으며 이 순간을 나는 만끽했다.


인간과 늑대의 결합이 성공하고 다음 재료들을 찾았다. 늑대의 끝없는 탐욕과 흉폭함에 더해 도마뱀의 세포를 이식해 자가 증식이 가능한 강인한 육체를 부여했다. 붉은 피 속에 담긴 잠재된 힘을 끌어낼 거머리의 흡혈 능력을 더해 다시 없을 완벽한 육체를 만들었다. 그 외에도 헤아릴 수 없는 재료들이 더해지고 추려지는 끝 모를 작업들이 있었다. 또한 그에 맞는 술식들을 만들기 위해 지치고 노쇠해지는 육체를 이끌며 나의 모든 능력과 지식을 쏟아 부었다.

완벽한 육체!

죽지 않는 부서지지 않는 완벽한 육체를 만들기 전에는 나는 세상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다.


끝나지 않을 시간의 연속. 세상의 진리를 파헤치고 그 한자락을 엿본 나일지라도 세월은 거스를 수 없었다. 단지 늦출 뿐. 죽음으로 수렴해가는 그 긴 시간 동안 나의 노력은 빛을 보지도 끝을 향하지도 않았다.

펜을 쥔 주름지고 검은 나의 손이 보인다. 무려 이백 년이 넘는 시간. 신인류를 만들기 위해 내가 쏟아부은 노력의 시간들.

지친다. 시간이 필요하다. 부서져 가는 육체가 나의 마음을 다급하게 만들었다. 아직 신인류가 완성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이 완벽한 육체를 견딜 생명력을 찾아야 한다. 다시 한번 세상을 뒤져야겠다. 그러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어김없이 찾아 온 그와의 식사 시간. 몇 남지 않은 이가 혀 위로 느껴졌다. 고기를 씹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묽은 수프가 이제는 지겹다.

까드득!

접시를 긁는 저 소리가 이제는 비명처럼 들리는 것은 나만의 착각이 아니다. 살을 찢는 고통 속에 수천 수만의 생명이 나의 손에 사라졌다. 이 공간엔 아직도 고통에 몸부림치는 혼들이 떠돌고 나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으리라.

날이 선 나이프가 붉은 육즙을 자아내는 송아지 고기를 썰었다. 검은 입술이 열리고 검은 눈동자의 그가 조용히 고기를 씹었다. 기억 속 고기의 식감이 나의 침샘을 자극했다. 그러나 사실 그보다 나이프를 쥔 그의 하얀 손이 눈에 더 띤다. 눈자위보다 더 하얄 것같은 그의 피부...

늙지도 죽지도 않는 저놈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젊고 호기롭던 시절. 세상의 모든 지식을 탐구하고 숨겨진 진실을 알고자했던 시절. 네크로멘서의 아버지이자 죽은 자의 왕으로 추앙받던 그때, 그가 찾아왔다.

'신이 되어 보지 않겠나?'

그의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그를 만난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그가 내민 진실들, 그가 풀어 내는 천외천의 술법들! 혼을 부리고 미지의 독을 만드는 상상도 못한 능력들을 나는 외면했어야 했다. 수년간 막혔던 술식들이 그의 손을 거치는 순간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느껴졌다. 그의 조용한 목소리가 나의 막힌 가슴을 뚫어 주었으며 세상의 우러름을 받는 이 몸이 너무나 미천하게 느껴졌다. 그로인해 많은 것을 얻었지만... 모든 시간을 뺏겨버렸다.

‘나와 함께 신이 되어 보지 않겠나?’

그의 달콤한 제안을 거절했어야 했다.

그 시절, 눈이 멀어버린 나는 그의 제안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와 함께라면 신이 아니라 더한 것도 될 수 있다 여겼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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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4장. 태동 (4) +3 15.11.25 352 7 9쪽
16 4장. 태동 (3) +1 15.11.24 315 10 11쪽
15 4장. 태동 (2) +1 15.11.23 330 11 13쪽
14 4장. 태동 (1) +1 15.11.22 396 12 8쪽
13 3장. 디그의 던전 (7) +1 15.11.21 417 13 12쪽
12 3장. 디그의 던전 (6) 15.11.20 392 11 9쪽
11 3장. 디그의 던전 (5) +1 15.11.20 427 10 9쪽
10 3장. 디그의 던전 (4) 15.11.20 396 9 11쪽
9 3장. 디그의 던전 (3) 15.11.19 356 10 8쪽
8 3장. 디그의 던전 (2) 15.11.19 380 13 8쪽
7 3장. 디그의 던전 (1) +2 15.11.19 520 13 12쪽
6 2장. 기묘한 일행 (3) 15.11.19 437 14 13쪽
5 2장. 기묘한 일행 (2) +1 15.11.18 426 12 9쪽
4 2장. 기묘한 일행 (1) 15.11.18 518 14 12쪽
3 1장. 깊은 잠을 자다 (3) +1 15.11.18 557 15 9쪽
2 1장. 깊은 잠을 자다 (2) 15.11.18 590 15 8쪽
» 1장. 깊은 잠을 자다 (1) 15.11.18 1,007 2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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