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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萬秀 님의 서재입니다.

베른 디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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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안수
작품등록일 :
2015.11.03 19:34
최근연재일 :
2015.12.09 22:4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8,982
추천수 :
233
글자수 :
102,840

작성
15.11.19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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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
추천
13
글자
8쪽

3장. 디그의 던전 (2)

DUMMY

지루했던 시간이 끝을 알렸다. 술식들이 그려진 길이 사라지고 벽면을 가득 매운 수 십점의 그림들이 나타났다. 피겔이 보았던 바로 그 그림들이었다. 흑과 백, 그리고 피를 머금은 붉은 색만으로 그려진 그림들. 태양의 이글대는 열화를 피로 채워넣은 그림, 혹은 대지를 갈라 놓은 핏물 가득한 그림. 전부 이런 식이다. 생명력 넘치는 그림들이 인상적이었다.

이윽고 길이 끝났다. 불쾌한 붉은 빛을 띠는 녹슨 철문이 나타났다. 굳게 입을 다문 철문이 일행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일행들은 철문이 나타나자 오른쪽 변멱으로 시선을 옮겼다. 망령이 전해준 마지막 영상. 바로 그것!

그곳에는 그것이 있었다.

"......!"

정적이 감돌았다. 숨소리마저도 새나가지 않는 정적! 그 정적을 깬 것은 격정에 치를 떠는 이에르의 음성이었다.

"이, 이것이...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디그!"

다른 이들도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아버지의 초상화를 앞에 둔 일행들은 초상화 속 인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얀 얼굴과 드러난 손 외에는 온통 검다. 지독히도 검다. 조용히 눈을 내리깔고 무릎에 손을 얹고 앉아 있는 고요한 아버지의 모습. 너무나도 평안한 디그의 모습 너머에는 일렁이는 망령들이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피로 그려진 붉은 입술만이 유일한 색감이다.

자신들을 완성시킨, 자신들의 뿌리. 이에르의 등에 올라 탄 수 백의 망령들의 울음 소리가 요동쳤다. 망령들도 그를 알아 본 것일까. 떨리는 손으로 이에르가 초상화 속 디그의 얼굴을 쓸었다. 어느새 그의 노안에는 뿌연 눈물이 맻혔다. 한슨도 마르코도 아버지의 모습을 경배했다.

이에르의 회한에 가득 찬 음성이 조용히 울렸다.

"아버지의 업을 받들지 못하고, 한낱 쥐새끼가 되어 버린 후손들이... 감히 아버지 앞에 섰습니다. 부디 아들들을 구해 주소서..."

절절한 음성에 호응하듯 피겔의 흐느낌이 이어졌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들어왔던 아버지의 이야기. 그리고 죽음 앞에 숨어 살아야했던 절망의 시간을 버티게 해준 것은 아버지의 남겨진 지식들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눈앞에 둔 것이다.

뚜둑! 뚜두둑!

관절이 꺾이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는 이에르의 굽은 등과 팔다리가 기괴하게 꺾였다. 놀랍게도 굽은 등이 쭈욱 펴졌다.

수 백의 망령들에 짓눌렸던 뼈마디가 제 자리를 찾았다. 거구의 한슨과 큰 키의 마르코도 내려다 볼 정도의 건장한 몸뚱이가 된 이에르! 검은 눈동자가 물에 물감이 번지듯 흰자위에 스며든다. 누구도 감히 이에르를 마주 못할 가공할 기운이 번져 나갔다.

수 백의 망령을 양 손에 부리는 고위 네크로맨서 이에르. 그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아버지! 당신의 앞에 후손이 모습을 보였습니다. 비록 남루하고 처참한 몰골일지언정 그대의 후손이라는 긍지만은 지키며 살았습니다. 부디 모습을 드러내 주소서!"

이에르의 눈물이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

망령들이 속박에서 풀려나 이에르의 주위를 맴돌았다.

끼아아악!

주인의 뚯을 알았는지 어느 때보다 음의 기운이 요동쳤다. 마법 트랩을 건드려도, 혹여 가디언이라도 깨우더라도 상관없다. 아버지 앞에서만큼은 당당하게 가슴을 펴야했다.

디그의 초상화를 눈앞에 두자 지금껏 조심스런 행보를 보이던 이에르의 태도가 돌변했다. 평생을 쥐새끼처럼 살았다. 하나 아버지 앞에서도 비루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에르의 구속에서 풀려난 수 백의 망령들. 어두운 기운들이 뭉쳐져 기괴한 형태를 토해낸 망령들이 섬뜩한 기세를 뿜어냈다.

"진정해! 진정하라구! 이에르!"

이에르의 마음은 이해한다. 하나 너무나 급작스런 변화인터라 한슨과 마르코는 오히려 경각심이 앞섰다.

한슨의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흘렀다. 어깨를 맞댄 마르코의 표정도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혹여 망령들이 일을 그르칠까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쿠 사르움"

마르코가 진언을 욌다. 땅속에서 삐죽이 검은 뼈가 솟아 올랐다. 골창을 뽑아내고는 혹시 생길지 모를 불상사를 대비했다.

그때,

쿠르르르르릉.

굳게 닫겼던 철문이 거대한 울음을 토해냈다.

"어흑!"

놀란 한슨이 다급한 신음을 흘렸다.

우르릉.

땅이 흔들렸다. 자욱한 먼지가 흩날리며 굳게 닫겼던 철문이 열리고 있었다.

끼아아악!

망령 하나가 철문에 새겨진 술식에 갇혔다. 아니 잡아 먹혔다고 말하는 것이 옳았다. 녹슨 철문의 귀퉁이에 새겨진 술식이 망령을 잡고는 쥐어짜는 것이 보였다. 음기운을 뽑아내고는 술식이 음울한 빛을 발했다. 그 기운을 바탕으로 거대한 철문이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재빨리 몸을 뒤로 뺀 일행들이 기운을 움직였다. 양손에 그러쥔 망령들을 부릴 채비를 갖춘 이에르. 골창에 잔뜩 힘을 준 마르코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한슨도 배에 꽂아두었던 골창을 뽑았다.

쿠르르릉 쿠웅!

철문이 열렸다.

작은 방이 속을 드러냈다. 다행히도 그것이 전부였다.

"이 시발 노친네야! 정신 차리라고! 다 죽일 셈이야?"

"으음!"

한슨의 성화에 이에르가 머리를 흔들었다. 피가 싸늘히 식어감을 느꼈다.

"이에르... 괜찮은가?"

마르코도 걱정이 되었는지 이에르의 등을 툭 쳤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탓이다. 무엇에라도 홀린듯한 이에르의 모습에 위화감이 느껴진 것이다.

뚜둑. 뚜두둑.

관절이 꺾이는 소리를 내며 이에르의 등이 굽어졌다. 순식간에 꼽추가 되었다. 동시에 들끓던 망령들의 기운도 사그라들었다.

'내가... 이성을 잃었다.'

수 많은 망령을 통제하려면 차갑게 날선 이성이 우선이다. 뇌신경 한올 한올에 연결된 망령들을 다스리려면 말이다. 그런 이에르가 이성을 잃다니.

"......!"

순간 이에르는 손끝이 쓰라림을 느꼈다. 피딱지가 굳은 손끝이 보였다. 아버지의 초상화를 쓰다듬은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그 직후에 자신이 이성을 잃었다. 등줄기가 서늘함을 느꼈다.

'무언가 일이 터지겠어...'

이에르는 황급히 생각을 접고는 말했다.

"우리를 환영하는군. 저 안에 뭐가 있는지 봐야겠어."

이에르는 다시금 서서히 철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무슨 일이 터지든 일단은 움직이고 볼일이다.

"잠깐. 여기부터는 내가 앞장 서겠다."

마르코가 이에르를 제치고 나섰다. 길다란 팔의 조밀한 근육이 잔뜩 긴장한 채 불퉁거리고 있었다. 코를 벌름 거리며 무슨 낌새를 느낀 것이다.

어릴 적부터 이에르를 보아온 마르코다. 수 천이 넘는 적군 앞에서도 허리를 편 적이 없는 이에르다. 그가 이에르의 본신을 본 것은 딱 한 번. 악귀들을 맞아 피를 흘리던 바로 그때뿐이다. 그런 이에르가 이렇게 쉽게 흥분하여 망령을 부리다니...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뜻했다.

마르코가 조심히 발걸음을 뗐다. 하나 이에르의 그것처럼 느리지는 않았다. 당당한 보보에 힘이 느껴졌다. 어찌 살아 왔던가.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자신이다. 무엇이 나타나든 단번에 쓸어버릴 각오가 느껴졌다.

하나 그런 발걸음은 잠시 뿐이었다. 철문을 넘어서는 순간 눈앞에 드러난 정경에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저...저게...! 저게 대체 뭐야!"

한슨의 놀란 음성이 터져 나왔다. 이에르도 눈앞의 물체에 온 정신을 빼앗겼다.

세 구의 시체!

평생 시체를 만지며 살아 온 네크로맨서인 그들이다. 그런 그들이 시체를 보고 놀랄 일은 없다.

저것들은 인간이 아니다. 짐승? 아니다. 저 끔찍한 고기덩이들은 무어란 말인가.

"키메라... 키메라다."

"......!"

이에르의 작은 음성이 일행들의 고막을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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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5장. 멸인대 (5) +4 15.12.09 264 6 12쪽
21 5장. 멸인대 (4) +1 15.12.09 254 4 11쪽
20 5장. 멸인대 (3) +2 15.12.07 199 3 12쪽
19 5장. 멸인대 (2) 15.12.07 206 5 7쪽
18 5장. 멸인대 (1) 15.12.07 236 5 16쪽
17 4장. 태동 (4) +3 15.11.25 352 7 9쪽
16 4장. 태동 (3) +1 15.11.24 316 10 11쪽
15 4장. 태동 (2) +1 15.11.23 330 11 13쪽
14 4장. 태동 (1) +1 15.11.22 397 12 8쪽
13 3장. 디그의 던전 (7) +1 15.11.21 417 13 12쪽
12 3장. 디그의 던전 (6) 15.11.20 392 11 9쪽
11 3장. 디그의 던전 (5) +1 15.11.20 427 10 9쪽
10 3장. 디그의 던전 (4) 15.11.20 396 9 11쪽
9 3장. 디그의 던전 (3) 15.11.19 356 10 8쪽
» 3장. 디그의 던전 (2) 15.11.19 381 13 8쪽
7 3장. 디그의 던전 (1) +2 15.11.19 520 13 12쪽
6 2장. 기묘한 일행 (3) 15.11.19 437 14 13쪽
5 2장. 기묘한 일행 (2) +1 15.11.18 426 12 9쪽
4 2장. 기묘한 일행 (1) 15.11.18 518 14 12쪽
3 1장. 깊은 잠을 자다 (3) +1 15.11.18 557 15 9쪽
2 1장. 깊은 잠을 자다 (2) 15.11.18 591 15 8쪽
1 1장. 깊은 잠을 자다 (1) 15.11.18 1,008 2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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