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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萬秀 님의 서재입니다.

베른 디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마안수
작품등록일 :
2015.11.03 19:34
최근연재일 :
2015.12.09 22:4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8,973
추천수 :
233
글자수 :
102,840

작성
15.11.18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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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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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
12쪽

2장. 기묘한 일행 (1)

DUMMY

칙칙한 실내.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실내였다. 불길한 기시감이 공포를 만들어내는 어두움. 그런 어두움이 가득한 공간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미세한 소음도 없는 답답한 실내에 작은 움직임이 일렁인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다.

쿵 쿵!

묵직한 무게음이 바닥을 통해 실내를 가득 채웠다. 묵직한 소리가 실내를 가로지르더니 창을 가린 커튼이 슬핏 들추어졌다. 빛이 스며들고 그제서야 실내의 정경이 언뜻 드러났다. 가죽이 벗겨진 시뻘건 속을 드러낸 고기덩이들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피 냄새가 역겨움을 자아내는 고기덩이들이 대가리를 아래로 향한 채 고통을 뿜어내고 있었다.

수 십이 넘을 거대한 짐승들의 사체가 빽빽한 실내.

사내는 커튼을 묶고는 중앙으로 몸을 옮겼다.

쿵 쿵!

엄청난 거구다. 온몸이 비계덩어리로 이루어진 뚱보 사내가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더니 썪은 피딱지가 가득한 도마 위에 놓인 식칼을 그러쥐었다. 이내 등을 보이고는 어깨를 들썩였다.

"여긴가? 흐음... 아니야. 분명 이쯤이었는데..."

얼핏 뚱보 사내의 어깨 너머로 반듯이 누운 사체 한 구가 보였다.

인간의 시체다. 죽은 지 제법 된 듯 핏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뻣뻣하게 굳은 남성의 시체였다.

뚱보 사내는 비오듯 흐르는 땀을 훔치며 시체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무언가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 모양인지 미간에 깊은 골을 그리고 있었다. 살에 파뭍힌 좁은 눈매가 더욱 가늘어졌다.

곧 더러운 식칼을 오른손에 들고 왼손으로는 시체의 정수리 즈음을 가늠했다. 그리고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식칼을 시체의 머리통에 박아 넣었다. 손목을 움직이며 머리 뚜껑을 열었다.

스윽 스윽 스윽.

상상도 못할 끔찍한 짓을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시체의 전두골을 열었다. 시커멓게 변색된 뇌가 드러났다. 뚱보 사내는 호흡을 가다듬고 뇌에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그리고는 짧은 진언을 외며 인상을 찌푸렸다.

"움 사하!"

성대에서 울리는 음성이 아닌 심연에서 퍼올린 저음의 음성이 어두운 실내를 가득 채우자 머리 열린 시체가 펄떡이기 시작했다.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 시체가 사지를 버둥거렸다.

기사다. 시체가 펄떡이다니!

뚱보 사내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진 것과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시발, 또 틀렸군!"

퍼억!

욕 섞인 푸념과 함께 시체의 뇌가 터져버렸다. 요동치던 기운도 펄떡이던 시체도 일시에 고요해졌다.

"하아..."

뚱보 사내는 얼굴에 튄 뇌 파편을 떼어내며 깊은 한 숨을 뱉어 냈다.

짜증이 솟구쳤다. 이런 간단한 술법 하나 제대로 펼쳐지지 않자 열이 뻗쳤다. 더군다나 시체를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 만큼 어려운 때이지 않은가.

"젠장! 빌어먹을! 남자라 그런지 반응이 또 달라! 어휴, 시체를 또 어디서 구하지."

그가 펼친 술법은 죽은 자의 기억을 엿보는 난해한 술법이었다. 물론 죽은 자의 기억을 엿보는 것이 쉬울리 없다. 허나 기억 속 친우들은 너무나도 쉽게 해내던 술법이었다.

뚱보 사내는 임산부처럼 부풀어오른 자신의 배에 식칼을 그었다. 자해였다. 그러자 놀랍게도 붉은 피가 아닌 누런 액체가 걸쭉하게 흘러내렸다.

딱 한줌의 누런 체액.

움켜쥔 체액을 뇌가 터저버린 시체에 뿌리자 형체도 없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부글 부글.

거무튀튀한 돌바닥마저도 녹게 만드는 끔찍한 극독! 뚱보 사내가 몸에서 뽑아낸 것은 엄청난 극독이었다. 한 줌으로 성인 남성의 몸뚱이를 순식간에 녹일 정도. 그런 독을 몸에서 뽑아내고도 뚱보 사내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상처 난 뱃가죽을 쓰다듬을 뿐이었다.

"다음엔 여자 대가리를 뜯어봐야겠어."

또 한번의 실패에 좌절하던 그때, 찌푸려졌던 뚱보 사내의 표정이 일순 환하게 밝아졌다.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낀 탓이다.

뚱보 사내의 좁쌀만한 눈이 치켜 떠지며 언제 모습을 드러낸지도 모를 인물을 바라보았다. 온몸이 살로 뒤덮인 기괴한 모습의 뚱보 사내와 비견 될 정도로 괴상한 외양의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크큭, 한슨. 자네의 실력은 항상 그 자리군. 발전이 없는 멍청이!"

백발의 노인이었다. 나이를 가늠키 어려울 정도로 주름이 가득한 얼굴의 노인. 볼썽 사납게도 구십도로 꺾인 허리로 인해 코가 땅에 닿을 듯한 꼽추 노인이 서 있었다.

"늙어 뒈질 꼬부라진 놈이 주둥이만 살았구나. 크하하하. 이딴 건 내 전공이 아니지. 네깐 놈이나 열심히 하라고."

한슨이라 불린 뚱보 사내는 몸을 일으키며 비릿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의 눈에 어린 웃음기가 더욱 짙어졌다.

"이에르... 정말 오랜만이야."

한슨은 뒤뚱거리며 꼽추 노인, 이에르를 안았다.

"미친 노인네. 똥 오줌 못 가릴 나이인데도 아직 정정하구나!"

술법의 실패로 찌푸려진 미간이 활짝 펴졌다. 푸들거리는 볼살이 한껏 부푼 그의 기분을 말해주었다.

오랜만의 만남이었기에 한슨은 무척이나 기쁜 마음이었다. 과거의 기억을 공유한 몇 안되는 친우. 이렇게 살아서 얼굴을 다시 볼 줄은 더더욱 몰랐기에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실 줄을 몰랐다.

어둠 속에 숨어 시체나 만지는 네크로맨서.

한때 고결한 술사에서 지하에 숨어 목숨을 연명해야 될 쥐새끼로 전락한 그들이었기에 해후는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무려 칠년이다. 그날 이후, 악귀들의 습격이 있은 후 살아남은 몇 안되는 친우이자 형제와도 같은 이의 방문에 한슨은 모처럼 웃을 수 있었다.

"어쩐 일이우. 곧 보게 될거란 전갈을 요란스레도 보내더니 말이야. 크큭, 제일 먼저 뒈질 줄 알았던 노인네가 살아있었다니."

한슨은 뒤쪽에 매달린 가죽이 벗겨진 고기덩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눈알을 뒤집고 혀를 빼문 소 대가리가 눈동자를 굴리기 시작했다.

"키키킥, 재밌지 않더냐?"

이에르는 배를 잡고 웃어재꼈다. 눈물마저 찔끔 뽑던 이에르는 딱 소리를 내며 손가락을 맞부딪혔다. 그러자 눈알을 뒤룩이던 소 대가리가 입을 열었다.

"짓물 나는 돼지놈아! 명줄 꼭 붙잡고 숨어 있거라!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게다."

가죽이 벗겨지고 창자를 덜어 낸 소의 사체가 인간의 말을 뱉어냈다. 한슨은 괴팍한 이에르의 장난에 고개를 절레 저었다. 참 할 짓 없는 노인네지 않은가. 며칠 전 고기를 손질하다 놀라 자빠진 일이 떠올랐다. 토막난 고기덩이가 눈알을 굴리며 저딴 소리를 내뱉는데 누가 놀라지 않겠는가.

아직도 눈물을 찔끔거리는 이에르의 얼굴을 보며 한슨은 치밀어 오르는 욕짓거리를 꾹 참았다.

순간 매달린 소 대가리의 입 속에서 검은 연기가 빠져나왔다. 망령이었다.

망령!

육신을 잃고 혼을 잡아 먹힌 나약한 존재. 타락한 인간의 혼령이 술법에 의해 속박당한 가련한 존재들이다. 금지된 술법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망령은 공중을 한바퀴 휘돌더니 주인을 찾아 동체를 움직였다. 바로 이에르의 등 위로 말이다.

한슨은 눈매를 좁히며 이에르의 행색을 다시 한번 살폈다. 오래 전에 보았던 것보다 적어도 한 뼘이상은 더 등이 굽어 있었다.

"내일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늙은이가 무슨 욕심이 그리 많아?"

"걱정 말라구. 나도 이제는 한계야. 망령을 더 받아드렸다가는 내가 잡아 먹힐테니깐."

기실 이에르는 고위 술사였다. 그것도 혼을 부리는 혼령술사. 독과 시체 따위보다 혼을 부리는 법이 더욱 난해하고 어려웠다. 탐욕과 공포와 같은 부정적인 에너지만을 남긴 채 생전의 기억과 이지를 지우고, 암흑을 부여하는 일련의 작업들이 무척이나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그런 망령을 부리는 것에 특화된 곳이 헤르타 지파였다. 이에르는 그런 헤르타 지파의 살아남은 마지막 일원이었다.

더욱 굽은 이에르의 등은 그의 능력이 심후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수 백이 넘는 망령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 자신의 등에 술식을 새겨 넣은 이에르다. 과거보다 더욱 많은 망령들을 등에 태운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에르는 굴러다니는 고기덩이를 의자 삼아 앉았다. 허리를 두들기며 주위를 휘 둘러보았다. 천장에는 곧 매장에 진열될 손질된 고기들이 도열되어 있었다. 구석 한편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난잡하게 헤집어 놓은 고기덩이들도 보였다. 한슨네 푸줏간의 지하창고의 모습이었다. 푸줏간이라니... 시체를 항상 만지는 네크로맨서인 한슨이 제법 머리를 썼다. 피냄새와 썪은 시체의 냄새를 이곳만큼 그럴듯하게 숨길 곳은 없으리라. 언제 사냥당할 지 모르는 목숨인 그들. 일반인들 사이에 섞여 정체를 숨기는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란 것을 알았다.

"쯧쯧..."

씁쓸했다.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되었을까. 이에르는 아버지의 아버지, 스승의 스승으로부터 전해들었던 과거의 이야기가 떠오르자 입맛이 썼다. 불,물 따위의 원소술사들은 하찮은 놈들이라고, 인간의 생과 사를 다루는 네크로맨서들만이 오롯한 술사들이라며 호탕하게 가슴을 두드리던 스승의 얼굴도 스쳐 지나갔다. 더불어 악귀들의 할버드에 머리가 꿰어 죽은 모습도 스쳤다.

"이에르! 내 말 안들려?"

한슨의 목소리가 이에르의 상념을 깨웠다. 굳은 얼굴에 급히 웃음을 그리는 이에르.

"돼지 놈아. 간 떨어질 뻔 했다. 귓구멍 뚫려 있으니 조용히 말해."

한슨은 이에르의 표정이 삽시간에 변하자 가슴이 아렸다. 그의 아픔을 모를 리 없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를 리 없다. 한슨은 황급히 말을 이었다.

"좋은 소식이라더니. 칠 년만에 모습을 드러낼 만큼 엄청난 이야기겠지? 만약 잡소리나 지껄인다면 모가지를 돌려 놓지."

한슨은 짐짓 모르는 척 쉰소리를 했다. 차라리 걸쭉하게 농이나 지껄이는 게 그들의 밑바닥 감정을 건드리지 않는 방법이니깐.

표정을 바꾼 이에르가 말을 받았다.

"크크크큭, 정말... 정말 놀랄 소식이지! 목숨 줄 늘릴 수 있는 기회! 어쩌면 악귀 놈들 서넛과 지옥 구경할 수 있는 기회일지도!"

"......!"

한슨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형제와 일족의 원수. 단 한 놈이라도 같이라면 지옥불이라도 뛰어들고픈 악귀 놈들을 무려 몇 놈이나 죽일 수 있다니! 한슨의 부릅뜬 눈동자에 붉은 핏줄이 돋았다. 한슨의 반응에 이에르도 짙은 미소가 번졌다. 모두 같은 마음이다.

형제를 찢어 놓고 비루하게 숨게 만든 원수. 뼈째 갈아 마셔도 원한이 가 시지 않을 저주 받을 악귀들!

흥분에 몸이 떨렸다. 꽉 움켜진 주먹에 피가 흥건히 새어나왔다. 손톱이 살을 파고 들어도 한슨의 굳은 표정이 풀리질 않았다.

"한슨, 진정하게나. 아직 도착하지 않은 놈이 있어. 그 놈이 오면 그때 속시원히 얘기해 주겠네."

한슨은 볼살에 뭍혀 보이지도 않는 눈을 빛냈다.

"후우! 빌어 먹을 원숭이 놈도 온다 이거지? 그놈도 살아있었단 말이지?"

올 놈이래봐야 뼈잡이 원숭이 밖에 없다. 수 백이 넘는 악귀들의 습격에 살아남은 유일한 형제가 그놈 밖에 없으니 말이다.

한슨은 이에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칠 년의 시간동안 가슴 속 응어리를 키우며 숨어 살았다. 자신이 그럴진대 눈 앞의 친우들은 오죽하랴. 그런 친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피 끓는 분노와 원한이 심장에서 뿜어나왔다.

한슨은 식칼을 집어들었다. 더운 피가 몸을 달구자 눈물마저 왈칵 쏟아졌다. 반대로 뇌는 싸늘히 식어가자 기분이 더러웠다. 원한 때문인지 아니면 공포 때문인지 손끝마저 잘게 떨렸다. 굳게 움켜 쥔 식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파리하게 질려있었다. 분노보다 두려움이 앞선 것이다.

푹 푸욱!

매달린 고기덩이에 식칼을 휘둘렀다. 한슨은 한참을 애꿏은 고기덩이에 미친 듯 식칼을 휘둘렀다. 이러지 않고선이 도무지 분이 풀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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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5장 수정했습니다. 15.12.07 176 0 -
공지 연재 주기에 대해서 15.11.18 334 0 -
22 5장. 멸인대 (5) +4 15.12.09 264 6 12쪽
21 5장. 멸인대 (4) +1 15.12.09 254 4 11쪽
20 5장. 멸인대 (3) +2 15.12.07 199 3 12쪽
19 5장. 멸인대 (2) 15.12.07 205 5 7쪽
18 5장. 멸인대 (1) 15.12.07 236 5 16쪽
17 4장. 태동 (4) +3 15.11.25 352 7 9쪽
16 4장. 태동 (3) +1 15.11.24 315 10 11쪽
15 4장. 태동 (2) +1 15.11.23 330 11 13쪽
14 4장. 태동 (1) +1 15.11.22 396 12 8쪽
13 3장. 디그의 던전 (7) +1 15.11.21 417 13 12쪽
12 3장. 디그의 던전 (6) 15.11.20 392 11 9쪽
11 3장. 디그의 던전 (5) +1 15.11.20 427 10 9쪽
10 3장. 디그의 던전 (4) 15.11.20 396 9 11쪽
9 3장. 디그의 던전 (3) 15.11.19 355 10 8쪽
8 3장. 디그의 던전 (2) 15.11.19 380 13 8쪽
7 3장. 디그의 던전 (1) +2 15.11.19 520 13 12쪽
6 2장. 기묘한 일행 (3) 15.11.19 436 14 13쪽
5 2장. 기묘한 일행 (2) +1 15.11.18 426 12 9쪽
» 2장. 기묘한 일행 (1) 15.11.18 518 14 12쪽
3 1장. 깊은 잠을 자다 (3) +1 15.11.18 557 15 9쪽
2 1장. 깊은 잠을 자다 (2) 15.11.18 590 15 8쪽
1 1장. 깊은 잠을 자다 (1) 15.11.18 1,006 2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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