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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萬秀 님의 서재입니다.

베른 디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마안수
작품등록일 :
2015.11.03 19:34
최근연재일 :
2015.12.09 22:4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8,978
추천수 :
233
글자수 :
102,840

작성
15.11.24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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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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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장. 태동 (3)

DUMMY

하얗고 가는 손가락. 그 끝의 검은 손톱이 인상적이다. 꼼지락 대던 가는 손가락이 누렇고 물컹한 무엇을 후볐다. 뇌. 두개골이 열린 채 속을 드러낸 머리를 손가락이 누비고 다녔다.

"움 사하"

손가락을 뇌의 한 곳을 박아넣고는 진언을 욌다.

푸스스스!

진언을 욈과 동시에 검은 기운이 넘실댔다. 머리를 열고 죽은 시체의 얼굴과 몸을 검은 기운이 뒤덮었다.

쿤돌의 시체. 술에 취한 채 무사의 호위를 받으며 사라진 쿤돌이 시체가 되어 누워있었다. 끔찍한 표정으로 눈을 감지도 못한 얼굴이 분명 쿤돌이었다. 쿤돌의 몸을 뒤덮은 검은 기운이 더욱 진한 색을 띠었다. 거미가 사냥감의 채액을 빨 듯, 검은 기운이 쿤돌의 몸을 빨아들였다. 이윽고 검은 기운이 쿤돌의 몸을 벗어나고는 쿤돌의 뇌를 후비던 사내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남은 것은 미이라처럼 바싹 마른 쿤돌의 시체 뿐이었다.

검은 기운을 들이킨 사내, 지독히도 검은 그는 디그였다. 지하 깊은 곳에서 잠을 자던 그가 쿤 왕국에 모습을 드러냈다.

"움 라툴"

짧은 진언. 간단한 진언의 결과는 전혀 간단하지 않았다. 디그의 얼굴이 반죽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눈두덩이가 흘러내리더니 불룩 솟고 코가 뭉개지더니 뭉툭해졌다. 광대가 튀어나오고 턱이 앞으로 쏠리며 거친 각을 만들었다.

체형 또한 변했다. 관절이 삐걱되더니 키가 한뼘이나 커졌으며 피부색도 검어졌다. 불룩 불룩 근육들이 조밀해지며 탄탄해졌다. 바로 머리가 열린 채 죽은 쿤돌의 모습이었다.

"꿀꺽!"

외경을 목격했다. 쿤돌로 변한 디그의 뒤편, 이마를 땅에 대고 엎드린 기묘한 행색의 일행들이 상상치도 못한 광경에 침음을 삼켰다.

엄청난 살들에 파뭍힌 거구의 사내, 온몸에 기괴한 문신을 그려넣은 긴 팔의 원숭이 사내, 그리고 곱추 늙은이까지... 한슨과 마르코, 이에르가 사지를 벌리고 엎드려 디그의 술법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에르는 눈을 떼지 못했다. 아버지 디그, 죽음에서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자 네크로맨서의 모든 것! 그의 작은 손놀림과 진언의 음조까지 하나하나 눈과 귀에 새기고 있었다.

"마, 말도 안돼... 어떻게..."

한슨은 놀라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디그의 손놀림 하나에 수천의 시체가 일어서고 피 한방울에 강이 독으로 넘쳤다는 이야기를 어릴 적부터 들었다. 하나 어디까지 과장이 섞였다 생각했으나 눈앞에 디그는 전해진 이야기들보다 더한 듯 했다.

"아... 아아!"

디그는 달라진 음색이 마음에 드는지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뇌를 후벼 쿤돌의 모든 기억을 흡수했다. 그의 작은 습관들마저 말이다. 단순히 외모만 훔친 것이 아니라 쿤돌의 모든 것을 베꼈다. 수십년 보아 온 혈육이라도 결코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디그가 슬며시 손을 들었다. 그러자 이에르가 무릎 걸음으로 기어와 디그의 손에 들러붙은 피와 체액을 자신의 옷으로 정성스레 닦았다. 디그는 당연한 듯 이에르의 시중을 담담히 받았다.

"아버지시여! 저희들은 무엇을 하오리까!"

마르코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똑똑히 기억했다. 던전에서의 일을. 지옥의 악마들보다 더한 키메라 무리에게 목숨을 잃을 찰나, 그가 나타났다.

던전의 주인이자 키메라들의 주인. 그리고 자신들의 주인이.

저주스러울만치 끔찍한 키메라들이 디그를 향해 무릎을 굽히고 땅을 기는 광경을 보았다. 디그의 손짓 하나, 말 한마디에 그의 앞을 터주고 그의 뒤를 따랐다. 그 놀라운 광경을 잊을 수 없었다.

마르코는 디그에게 목숨을 맡겼다. 목숨이 아니라 더한 것도 내줄 수 있다. 검은 눈동자의 디그가 사지를 뚫리고 죽어가던 자신을 내려다보며 한 말을 절대 잊을 수 없다.

'복수를... 내가 해주지.'

마르코 뿐만 아니라 한슨과 이에르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강림이다. 몇남지 않은 네크로멘서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너희들도 해야 할 일들이 많아."

디그의 나른한 음성이 마르코의 상념을 깨웠다.

"복수의 시작은... 여기 쿤 왕국에서부터 시작하지."

쿤돌의 얼굴을 한 디그. 그의 눈은 저 멀리 쿤 왕국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


촤르륵!

암막을 걷자 따가운 햇빛이 눈을 후볐다. 창 틈사이로 상쾌한 공기가 스며들어 폐부를 찌르자 불쾌한지 눈살을 찌푸렸다. 창 밖으로 아래를 내려보니 바깥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미 해가 중천인지라 분주한 걸음의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제각기 삶을 이어가는 몸짓들이 하찮키까지 했다.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저들은 모를 것이다. 자기네들의 목숨이 바람 앞의 촛불이라는 것도.

쿤 왕국 제일의 가문 답게 시야에 가득차는 건물들의 배치가 묘했다. 성벽을 방불케하는 높이의 견고한 담벼락과 사위의 문들을 둘러싼 건물들의 배치가 전부 입구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큰 문을 중심으로 호리병 모양으로 배치된 건물들. 누구든 입구를 뚫고 진입하는 순간 에워싼 병력과 건물들 위에서 쏘아지는 활들을 먼저 맞이해야 할 것이다. 또한 건물들 하나하나가 고층이다. 삼층이하의 건물을 찾기가 힘들정도. 유리한 위치에서 적들을 맞을 절묘한 위치. 오로지 적이 들이닥쳤을때를 상정한 건물들의 배치다.

쿤돌의 눈이 건물들 너머 연무장을 향했다. 무려 네개의 너른 연무장이 보였다. 걔중 비어 있는 두 군데를 제외하고 나머지 연무장에선 묵빛 갑옷을 두른 기사들의 우렁찬 기합소리가 가문 전체를 떨어울렸다.

쿤 왕국 최고의 기사단이라는 철혈의 기사단. 오로지 쿠도룬의 명령에만 움직이는 전귀들이 바로 저들이다. 묵빛 갑옷을 두른 백여 명의 기사들이 진세를 바꾸어가며 칼을 맞대고 있었다. 언뜻언뜻 광휘가 비치는 것이 오러를 뿜는 것이리라.

쿤돌은 그 광경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희미한 미소가 감돌았다. 기사들의 무용이 그의 마음을 흡족케 한 것이다.

자신이 서있는 곳. 그 모든 것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가문의 중심. 칠층 높이의 거대한 저택이자 키나타르의 주인인 쿠도룬이 숨쉬는 곳이다. 비록 저택의 가장 외진 구석 방이 자신의 거처이긴 하지만 말이다. 쿤돌은 쿠도룬이 숨을 헐떡이는 와중에도 전혀 동요치 않고 칼을 갈고 있는 기사단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드르륵!

쿤돌은 문을 여는 소리에 고개를 꺾었다.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감히 허락도 없이 문부터 열다니...

차를 들고 문을 열고 들어오던 시녀는 쿤돌과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죄송합니다. 일어나신 줄 몰랐습니다. 술을 드시고 온 날이면 항상 주무시던 시간이라..."

놀란 시녀는 입술을 파르라니 떨었다.

"되었다. 두고 나가봐."

시녀는 건조한 쿤돌의 음성에 찻잔을 내려놓고 뒷걸음쳤다. 저 망나니 공자의 성격을 잘 아는 탓이다. 눈앞에서 더 얼쩡거리다가는 몸시중마저 들어야 할지 몰랐다. 하나 그런 생각들보다 우선한 것이 있었으니,

'공자님의 몸이...'

시녀는 경황 중에 얼핏 스친 쿤돌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잘게 갈라진 근육질의 몸매가 아른거렸다.

'검을 놓으신지가 몇년인데... 저런 몸이라니.'

이상한 일이다. 쿤돌의 벗은 몸은 매일같이 보다시피했다. 술에 취해 옷을 벗고 잠든 그를 볼때도 저런 몸은 아니었다. 며칠전 그의 잠자리 시중을 들때도 절대 아니었다. 용의 피를 이어받아 당당한 체격의 쿤돌이긴하나 술과 나태한 삶으로 기름기 가득한 몸매였다. 그런 쿤돌이건만 단 하루사이에 저런 몸을 만들다니! 있을 수없는 일이다. 시녀는 머릿속을 엉클이며 급히 몸을 빼려했다.

"잠깐, 제시."

시녀는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쿤돌이 자신의 이름을 부른 적이 있었던가.

"잠시 이리와보거라."

제시라 불린 시녀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쿤돌을 올려다 보았다. 구릿빛 피부에 아무렇게나 풀어 헤친 갈색 머리, 갈색 눈동자. 길게 찢어진 눈과 넓은 하관이 묘하게 편협한 인상이었다. 익숙한 얼굴이나 무언가 다른 느낌. 단단해진 몸과 더불어 볼살이 빠져 걍팍한 느낌마저 주었다.

제시는 머뭇거리며 쿤돌의 눈치를 살폈다. 조금이라도 그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불같은 매질이 뒤따를 것이다.

"이리로..."

쿤돌이 뱀의 그것같은 눈으로 제시를 위아래 훑어보았다. 그의 눈길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시는 충분히 알고도 남았다. 항상 있어왔던 일이라 익숙하기까지 했다.

제시는 입술을 굳게 악물며 쿤돌의 앞으로 다가갔다. 끔찍히도 싫다. 저 망나니 공자놈이야말로 백번은 죽어 마땅할 악마다.

"......!"

쿤돌의 억센 손이 제시의 뽀얀 목을 쓸었다. 아직 솜털도 가시지 않은 발그레한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얘졌다. 우악스런 손길이 그녀의 뒷목을 거세게 끌어당겼다.

제시는 느껴지는 더러운 시선에 눈을 질끈 감았다. 쿤돌의 더운 숨결이 얼굴에 닿자 머리칼이 쭈뼛 섰다. 진저리쳐지도록 힘들었다.

쿤돌의 손이 제시의 양볼을 잡아 누르고는 입술을 맞췄다. 매일 겪는 일이다. 눈 딱 감고 잠시만 참으면 된다. 그러나 제시는 그러질 못했다.

"우웁!"

제시는 황급히 쿤돌을 뿌리쳤다. 뜨겁고 끈적한 무엇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낯선 느낌에 본능적으로 쿤돌을 밀쳐 낸 것이다. 감히 상상도 못할 행동이다.

"제,제가 실수를..."

제시는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쿤돌의 몸을 밀치고 인상을 찌푸리다니. 그것만으로도 끔찍한 매질이 내려질 것이다.

하나 예상과는 다른 쿤돌의 반응이 이어졌다.

"되었다. 그만 나가봐."

"예,예?"

쿤돌은 제시의 되물음에 귀찮다는 듯 손짓으로 그녀를 물렸다. 그제서야 제시는 쿤돌의 뜻을 알아차리고는 황급히 문을 나섰다. 잠시라도 미적거린다면 피를 볼 것 같았다.

쿵!

"하아..."

제시는 방문을 거칠게 닫고는 떨리는 가슴을 쓸었다.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 방문 너머일 것이다. 제시는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크큭."

쿤돌은 제시의 기척이 사라지자 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결코 모를 것이다. 그녀의 목구멍에 집어넣은 검은 숨결을. 그리고 거칠게 머리를 당기며 슬쩍 두피에 새긴 술식 한자락을 말이다. 그녀가 미끼가 되어 잡아 올 고기가 대어이기만을 바랄뿐이다.

쿤돌은 옷을 갖춰 입고 방을 나섰다. 지나는 걸음마다 수근대는 소리가 들린다.

'핏줄만 믿고 까부는 애송이!'

'대공전하께서 쓰러지셨는데 밤마다 저러고 다니다니! 패륜아!'

쿤돌은 작게 속삭이는 가솔들의 음성을 들으며 저택을 나섰다.

우습다. 기억 속 쿤돌의 모습이 홍수처럼 머리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가진 것을 써먹지도, 그렇다고 지키지도 못한 멍청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하찮은 재능으로 주먹만한 권력을 가지려 아웅다웅하는 킨샤르와 쿠르나하의 기억도 떠올랐다. 그저 범이 없는 굴에 늑대가 설치는 꼴이다.

쿤돌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걸음을 옮겼다.


작가의말

 연재 주기는 화 금입니다. 쓰다보니 제가 봐도 진도가 느리군요. 그래도 이런 분위기의 글입니다. 혹시 볼만하시다면 추천 한방 박아주세요. 오늘도 뺑이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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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5장. 멸인대 (3) +2 15.12.07 199 3 12쪽
19 5장. 멸인대 (2) 15.12.07 206 5 7쪽
18 5장. 멸인대 (1) 15.12.07 236 5 16쪽
17 4장. 태동 (4) +3 15.11.25 352 7 9쪽
» 4장. 태동 (3) +1 15.11.24 316 10 11쪽
15 4장. 태동 (2) +1 15.11.23 330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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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3장. 디그의 던전 (7) +1 15.11.21 417 13 12쪽
12 3장. 디그의 던전 (6) 15.11.20 392 11 9쪽
11 3장. 디그의 던전 (5) +1 15.11.20 427 10 9쪽
10 3장. 디그의 던전 (4) 15.11.20 396 9 11쪽
9 3장. 디그의 던전 (3) 15.11.19 356 10 8쪽
8 3장. 디그의 던전 (2) 15.11.19 380 13 8쪽
7 3장. 디그의 던전 (1) +2 15.11.19 520 13 12쪽
6 2장. 기묘한 일행 (3) 15.11.19 437 14 13쪽
5 2장. 기묘한 일행 (2) +1 15.11.18 426 12 9쪽
4 2장. 기묘한 일행 (1) 15.11.18 518 14 12쪽
3 1장. 깊은 잠을 자다 (3) +1 15.11.18 557 15 9쪽
2 1장. 깊은 잠을 자다 (2) 15.11.18 590 15 8쪽
1 1장. 깊은 잠을 자다 (1) 15.11.18 1,007 2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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