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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萬秀 님의 서재입니다.

베른 디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마안수
작품등록일 :
2015.11.03 19:34
최근연재일 :
2015.12.09 22:40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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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74
추천수 :
233
글자수 :
102,840

작성
15.11.19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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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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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
13쪽

2장. 기묘한 일행 (3)

DUMMY

한슨과 마르코의 머리 속에 펼쳐지던 영상은 거기까지였다. 곧 그들의 입에서 빠져나온 망령은 유유히 이에르의 등 위로 자취로 감추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정적.

한슨과 마르코는 충격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지하광장이 보여준 압도적인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피겔이 지나치는 장면 하나하나마다 눈을 뗄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 술식들. 단 하나도 놓치기 아까운 보물이다. 하나 마지막 장면이 던져 준 충격은 앞선 광경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꿀꺽..." 한슨의 침 넘기는 소리가 정적을 조용히 깼다.

"룬터... 반 디그... 아버지 디그..."

한슨의 떨리는 음성이 그의 놀란 심정을 말해 주었다. 마르코가 이에르의 얼굴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궁금증에 몸이 달았다.

천천히, 은밀한 목소리로 이에르가 말했다.

"그래 아버지 디그.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우리는 천운을 맞은 게야."

한슨도 몸이 달아 올랐다. 스승이자 부친인 게르오르의 한 섞인 음성을 그는 잊지 않았다.

'아버지 디그. 모든 지파의 시조이자 유일한 마스터. 수천 수만의 망령을 부리고 미지의 독을 뽑아내어 생과 사마저 조율했다던 모든 술법의 시작이자 끝인 네크로맨서의 아버지. 만약 그의 술법이 온전히 전해졌더라면 이렇게 치욕스레 숨지는 않았을 거다.'

스스로 온몸을 난자하며 독수를 뿌리던 게르오르. 한슨은 부친에게 수없이 들었던 디그의 일화를 떠올리자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 우상의 던전이 나타났다!

이에르는 일행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 디그의 던전. 만약 피겔 그 배신자 놈이 가져온 정보가 사실이라면 우린 무조건 저곳으로 가야한다. 그의 술법을 익힌다. 그리고... 복수다."

까드드득!

마르코가 이빨을 부서져라 갈았다. 손바닥엔 흥건한 땀이 잔뜩 배었다. 솜털 하나하나까지 저릿저릿한 기분. 복수를 논하는 자체만으로도 피가 사납게 끓어 올랐다.

"복수... 내 누이의, 내 어미의 복수. 십 년전에도, 일 년전에도... 바로 어제도 생째 살을 뜯기던 자식의 얼굴을 꿈 속에서 보았다. 이에르! 저기가 어디지?"

"크크큭, 예르나할의 던전. 바로 그곳과 지척이다."

촤악!

마르코는 왼 팔뚝에서 뼈를 뽑았다. 오십 센치의 검은 빛을 띤 뼈. 역시 끝이 날카롭게 벼려 있었다. 이번에는 오른 팔뚝에서도 뼈를 뽑아냈다. 그렇게 사지에서 몇 개의 뼈를 더 뽑아내고는 한슨을 바라보았다.

한슨은 마르코의 뜻을 알았는지 임산부처럼 부푼 배를 내밀었다.

푸욱! 푸욱! 푸우우욱!

마르코는 뽑아낸 뼈를 한슨의 배에 꽂아 넣었다. 온몸이 극독인 한슨. 그의 몸 속에서 독을 머금은 뼈들은 끔찍한 놈들이 될 터였다.

"이에르. 당장 움직이자."

활활 타오르는 마르코의 시선을 받은 이에르는 짙은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복수! 신이 있다면 그도 복수를 원하리라.

"크크크, 가자. 아버지를 만나러."

이에르의 웃음 소리가 한슨의 지하창고에 잔잔히 울려 퍼졌다.


***


오 십년 전, 쿤 왕국의 북쪽 끝없이 펼쳐진 우림지대에 한 차례 폭풍이 휩쓸었다. 하늘을 찌르는 높은 나무도 지대에 뿌리를 내린 굳건한 암석도 재앙과도 같은 폭풍에는 견디지 못하고 속을 드러냈다.

뒤엎어진 대지.

모든 것이 휩쓸려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하나 폭풍이 지나간 뒤, 땅 밑에 숨겨졌던 예르나할의 던전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천운이었다.

디그의 마지막 제자라고 알려진 예르나할. 그의 던전에서 흘러나온 천외천의 술식과 술법들은 네크로맨서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주었다. 잊혀졌던 지식들이 미약하게나마 명맥을 이어받게 되었고 그로인해 악귀들을 피해 목숨을 연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은 속 밑바닥까지 파헤처져 남은 것이란 흙 밖에 없지만 말이다.


쌓인 모래가 바람에 휘날렸다. 수많은 인간들이 할퀴고 뒤집어 놓던 과거 이후로 저주 받은 장소로 불리게 된 이곳. 인간을 실험삼아 살육을 행했던 이곳을 감추기라도 하려는 듯 무심히 모래바람만이 오갔다.

피겔은 감긴 눈을 억지로 떴다. 그래야만 살 수 있다. 살을 뚫어 놓은 빌어 먹을 창이 끔찍한 고통으로 뇌를 후볐다.

수 년을 예르나할의 던전에 몸을 숨겼다. 한때는 고위 술사의 던전으로 알려져 셀 수 없을 많은 인원들이 오가던 곳이었지만 네크로맨서의 던전으로 밝혀진 이후 개미 새끼마저도 꺼려하는 금역이 되었다.

바로 이곳만큼 몸을 숨기기에 적당한 곳이 없으리라 여겼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었다.

"크으윽! 사, 살려줘..."

뼈가 갈리고 살이 찢기는 고통에 피겔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힘겹게 고개를 돌려 자신의 부서진 몸을 바라보았다. 검은 빛이 감도는 창으로 사지를 꿰어 벽에 꽂힌 끔찍한 모습. 피인지 눈물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액체를 쏟아내며 가뿐 숨을 몰아 쉬었다.

"마...마르코... 제발... 그만해."

피겔은 알고 있었다. 자신을 이 꼴로 만든 이가 누구인지. 모를 수가 없다. 몸을 뚫어 놓은 창이 뼈로 이루어진 골창임을 알아 본 순간 그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기다렸다. 수 년을 오늘을 위해 살아 온 것이니깐. 오히려 기쁘다고 표현해야 옳을 것이다. 그렇지만... 빌어먹을 고통을 기다린 것은 아니다.

"쿠 사르하."

"제, 제바알... 그만해..."

나즈막한 진언이 다시 들리자 피겔은 다급히 소리쳤다. 그러나 공포에 젖은 절규에도 끝내 진언은 멈주치 않았다.

까드드득.

"끄아아악!"

사지에 꽂힌 골창이 고막을 긁는 소리를 토해내며 비틀렸다. 살을 뚫은 것도 모자라 뼈마저 깎을 모양이다.

"마르코! 마르코오오! 제발, 제발 멈춰! 죽을 때 죽더라도 내 이야기는... 내 이야기는 들어봐야 할 것 아닌가!"

피겔은 피를 뿜어내며 소리쳤다. 끔찍하게 뒤틀린 얼굴이 더욱 심하게 일그러졌다.

촤르륵!

땅을 비집고 길다란 뱀처럼 거무튀튀한 무언가가 솟아 올랐다. 분절을 이룬 조각들이 길다랗게 이어 붙은 모습. 척추다. 끝이 날카롭게 갈린 척추!

땅에서 튀어 나온 척추의 끝이 향한 곳은 피겔의 미간. 몸서리처지도록 끔찍한 바람소리를 만들어내며 피겔의 미간을 향해 짓쳐 들었다.

피겔은 질끈 눈을 감았다. 이렇게 허망하게 죽으려 치욕스레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원통함이 폐부를 찌른다.

"그만..."

그때 늙수그레한 칼칼한 음성이 들렸다. 음성이 들리는 것을 보니 아직 죽지는 않은 모양이다.

"히익!"

피겔은 질끈 감은 눈을 슬며시 뜨고는 기겁했다. 자신의 바로 눈앞에 살기를 잔뜩 머금은 척추의 끝이 미간 바로 앞에서 멈춰 있었기 때문이다. 단 몇 센치만 더 움직였다면 뇌가 뚫렸을 것이다.

피겔은 침음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마르코 제발 살려줘! 내,내가 잘못했어. 그땐... 그땐 내가 미쳤었어. 용서를... 자네도 알지 않은가! 그 상황에서 제 정신을 가진 놈이 몇이나 되겠는가? 제발... 제발 마르코!"

눈에는 피눈물을, 역시 코와 입에서도 검은 피를 쏟아내는 피겔은 절규했다. 처참한 그의 얼굴에 피범벅을 하고 있으니 더운 끔찍한 몰골이었다.

"루 사루움."

휘이잉!

자욱히 시야를 어지럽히던 모래들이 쓸려 지나갔다. 좌우로 갈라지며 뿌연 모래들이 길을 만들자 세 명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묘한 모습.

돼지와 원숭이 그리고 꼽추까지. 이에르와 한슨. 마르코가 살기 가득한 얼굴로 서있었다. 그들의 눈은 오직 벽에 꿰인 사내 피겔을 향해 있었다.

칠 년만의 만남. 웃으며 농을 주고 받던 그때엔 이런식으로 만나게 될지는 상상도 못했었다. 이에르는 쓰디 쓴 침을 삼켜야만 했다.

"마르코..."

피켈은 마르코를 보자 눈시울을 붉혔다. 뚱보 한슨도 보인다. 농을 치면 독을 먹이겠다고 웃으며 받아치던 수더분하던 그도 살기 가득한 독사가 되어 있었다. 이에르도 보인다. 칼날처럼 서릿발 가득한 그의 얼굴에는 세월이 가득했다.

반가웠다. 너무도 반가웠다. 하나 한순간 실수로 웃으며 그들을 마주하지 못한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피겔. 살아있어 주어 너무나 고맙다. 내 손으로 네놈을 죽일 수 있게 해주다니..."

마르코의 음성에는 물기가 젖어 있는 듯 했다.

"미안하네! 용서해주게. 내가 미쳤었네."

"닥쳐! 네놈이 끝까지 자리만 지켰다면 내 아이들이 그리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르코는 잊고 싶지만 절대 잊혀지지 않는 얼굴이 떠올랐다. 피겔에게 맡겼던 자식들. 자신이 시간을 벌어주겠다 했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시간을 벌테니 아이들과 땅 속에 숨어 있으라 부탁했었는데...

"개새끼. 네 놈 혼자 살려고 내 새끼들의 피를 뽑아? 그 한 줌도 안되는 기운으로 제 혼자 살려고 도망을 쳐? 그것이! 그것이 친구라는 놈이 할 짓이더냐! 죽이리라! 더러운 배신자!"

마르코의 눈이 돌아갔다. 악귀에 대한 원한보다 저 피겔에 대한 원한이 더욱 컸다.

"으허어엉! 마르코! 내 말을 들어봐. 이,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나도 너희들 못지 않게 복수를 원해. 지옥에서라도 떳떳하게 죽은 형제들의 얼굴을 보고 싶단 말이다. 내가... 내가 살아 남은 것이 지옥이란 말이닷! 여기가 지금 이 순간이 지옥이라고! 으허어엉."

피겔은 울분을 토해냈다. 따지고 보면 피겔도 피해자였다. 악귀들의 공포를 눈앞에 둔다면 누구나 도망가리라. 공포로 이성을 잃어 땅 속에 몸을 숨기고 목숨을 부지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목숨을 건진 대가로 그는 지옥보다 더 깊은 죄책감에 하루를 살아야 했다.

"마르코... 제발 진정하게."

부들부들 떨리는 마르코의 어깨를 붙잡은 이에르. 마르코는 고개를 돌려 이에르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한이 서린 마르코의 눈빛이 이에르의 마음을 쓰리게 했다. 그렇다고 피겔을 죽이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다.

"우리가 복수를 해야 할 대상은 악귀들이다. 이성을 찾아. 저 한심한 놈의 목숨을 잠시만 붙여두게."

이에르의 조용한 음성이 마르코를 다독였다. 마르코는 입술을 짓이기며 분노를 달래야만 했다.

"그래, 네놈 말이 맞다. 그러나! 피겔 저놈은 꼭 내가 죽인다."

마르코는 낮게 으르렁대며 이에르의 손을 뿌리쳤다.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피겔의 코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차마 마르코의 얼굴을 마주 보지 못하고 피겔은 고개를 돌렸다.

"명심해라! 네놈은 친구도 동료도 뭣도 아니다. 그저 복수를 위한 도구! 그게 네놈이다."

마르코의 서슬퍼런 음성에 피겔은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한때 둘도 없는 친우에서 같은 하늘아래 머리를 두지 못할 원수로 변해버린 모습에 심장이 옥죄어 오는 것 같았다.

"알았다..."

피겔이 고개를 끄덕이자 거칠게 그의 몸에 꽂힌 골창을 뽑았다. 들러 붙은 살덩이가 피에 섞여 창의 거친 부분에 딸려 나왔다. 엄청난 고통이 뒤따를 텐데도 피겔은 입술을 악물며 신음소리를 삼켰다. 몸뚱이의 상처보다 죄책감이 마음에 내는 상처가 수 천배는 더욱 아팠기 때문이다.

쿠웅!

골창이 뽑혀 나가자 바닥을 구르는 피겔. 사지를 늘어뜨린 채 머리통을 흔들며 신음했다.

"쯧쯧,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리 만들어 놓누."

보다 못한 이에르가 눈알을 검게 만들며 손짓했다. 그러자 망령 한 마리가 피겔의 구멍난 오른팔로 스며들었다. 끊어진 힘줄과 꿰뚫린 살덩이를 메워주리라.

잠시 뒤 피겔은 오른팔을 움직일 수 있게되자 천천히 흙을 긁어 모았다. 그리고는 입속에 쑤셔넣고 우걱우걱 씹는다. 한참을 흙을 씹고 뱉어내자 붉은 빛을 띠는 흙덩이가 되어 있었다. 피겔은 불안한 눈으로 일행을 둘러보며 천천히 조심스레 구멍난 사지에 쑤셔 박았다. 그 모습을 이에르는 착잡한 눈으로 내려다 보았다.

"하아... 어쩌다 우리가 이리 되었누..."

비루하게 상처를 수습하는 피겔을 보자 이에르의 한숨이 더욱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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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5장. 멸인대 (5) +4 15.12.09 264 6 12쪽
21 5장. 멸인대 (4) +1 15.12.09 254 4 11쪽
20 5장. 멸인대 (3) +2 15.12.07 199 3 12쪽
19 5장. 멸인대 (2) 15.12.07 205 5 7쪽
18 5장. 멸인대 (1) 15.12.07 236 5 16쪽
17 4장. 태동 (4) +3 15.11.25 352 7 9쪽
16 4장. 태동 (3) +1 15.11.24 315 10 11쪽
15 4장. 태동 (2) +1 15.11.23 330 11 13쪽
14 4장. 태동 (1) +1 15.11.22 396 12 8쪽
13 3장. 디그의 던전 (7) +1 15.11.21 417 13 12쪽
12 3장. 디그의 던전 (6) 15.11.20 392 11 9쪽
11 3장. 디그의 던전 (5) +1 15.11.20 427 10 9쪽
10 3장. 디그의 던전 (4) 15.11.20 396 9 11쪽
9 3장. 디그의 던전 (3) 15.11.19 355 10 8쪽
8 3장. 디그의 던전 (2) 15.11.19 380 13 8쪽
7 3장. 디그의 던전 (1) +2 15.11.19 520 13 12쪽
» 2장. 기묘한 일행 (3) 15.11.19 437 14 13쪽
5 2장. 기묘한 일행 (2) +1 15.11.18 426 12 9쪽
4 2장. 기묘한 일행 (1) 15.11.18 518 14 12쪽
3 1장. 깊은 잠을 자다 (3) +1 15.11.18 557 15 9쪽
2 1장. 깊은 잠을 자다 (2) 15.11.18 590 15 8쪽
1 1장. 깊은 잠을 자다 (1) 15.11.18 1,006 2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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