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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礎(고초) 님의 서재입니다.

단천문(檀天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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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礎(고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22
최근연재일 :
2024.09.16 06:30
연재수 :
108 회
조회수 :
41,993
추천수 :
1,020
글자수 :
611,675

작성
24.07.30 06:30
조회
187
추천
9
글자
12쪽

10-9

DUMMY

분노의 외침이 몰 울을 타고 뜨겁게 터져 나왔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책벌레가 들어왔단 말이냐?

그 넓은 석실 내부를 샅샅이 훑었지만 썩어 진동하는 서책의 냄새만 있을 뿐 읽은 만 한 책도, 먹을 만한 음식도, 그 어느 것 하나 보이지 않았다.


털썩!

힘없이 주저앉은 팽욱, 망연자실 멍하니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허기진 배고픔의 고통은 이미 그의 뇌리에서 천리만리 떠났다.


어두컴컴한 석실 천장, 여기까지 오는 동안 참으로 많은 시간 고통과 외로움이 그를 괴롭혔다.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반드시 다시 만나야 한다는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힘들었지만, 단계 단계를 올라갈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배우며 깨우치는 즐거움(?)도 있었다.


마지막 5대 문주님의 석상을 뵈옵고 이젠 모든 고난이 끝났구나.


그래 부족하지만, 이분들이 그토록 염원하고 기다렸던 그것을 내 반드시 이루고 말리라 다짐도 했다.


그런데 이건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천년을 기다려온 서책들이 세상 빛도 보지 못한 채 어두컴컴한 동굴에서 썩어 삭은 채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지다니.


자신의 잘못도 아니건만 가슴이 미어터질 듯 답답하고 억울했다.


분통이 치밀었다.

쾅!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단단한 바닥을 거칠게 연속으로 내리친 그의 주먹. 죽은 과거가 묻힌 거대한 무덤은 그가 내치는 둔탁한 소리를 끝없이 반복해 외치며 오열했다.


피시~식!


그의 주먹을 이겨내지 못한 현무암은 맥없이 깨지고 부서지며 바닥에서 자신의 분신을 떨궜다.


그런데 이때 멀리서 쿠쿠 하는 진동이 작은 떨림을 전달했다.


“응? 이··· 이 무슨?”


자신의 주먹 소리만이 전부였던 실내에 기이한 소리가 들려온 건 바로 그때. 황급히 두리번거린 그의 시선, 그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훈 짐, 뜨거운 훈 짐이었다.


훈 짐은 그가 부서뜨린 돌 틈을 비집고 뭉클뭉클 흘러나왔던 것.


그제야 느낀 내부온도.


“뜨겁다! 왜 이렇게 뜨겁지?”


석실 내부온도가 이상하리만큼 높았던 것. 온도에 생각이 미친 순간 정신없이 사방 벽 틈을 훑어보았다.


아! 역시나 석실 구석구석 틈새에서 뜨거운 훈 짐이 연신 새 들어오고 있었다.


습하고 뜨거운 실내 온도. 모든 의문이 안개가 걷히듯 풀렸다.


‘그래, 그랬던 거야. 천둥산은 과거 천 년 전 활화산이었다고 했어. 우연히 쫓기다 갇히게 된 선조 어른들은 화산 내부에 형성된 수많은 동굴을 은신처 삼아 숨어 있다가 입구가 무너져 내리며 갇히게 되었고 결국 후손들을 위한 안배로 여기를 남겼던 것인데.’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구나, 후손에게 전해 달라 남기신 이 모든 것이 썩어 아무것도 남겨 줄 수 없는 상황이 되다니."


최소 백 년 전에 발견했더라면 이런 상황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텐데 너무 늦어 모든 것이 무(無)가 되었으니, 자신의 잘못도 아니면서 큰 죄를 지은 것만 같아 송구스러웠다.


망연자실 오랜 시간 석실에 철퍼덕 주저앉아 있었지만 결국 배고픔에 그는 힘없이 석실을 나와야 했다.


석실에서 막 출구로 나가려는 순간 석실 한쪽 구석에 무엇인지 모를 돌로 덮인 긴 상자가 눈에 띄었다.


"저게 뭐지? (혹시 먹을 것?)."


상자에 서둘러 다가간 그는 돌로 덮인 뚜껑을 열었다.

삐~걱!

둔탁한 소음과 함께 뽀얀 먼지가 흘러내렸다.

먼지를 치워내고 안을 들여다봤다.

안에는 비단 보자기에 기름종이로 쌓인 기다란 초의 덩어리가 발견되었다.


다행히 아무 손상도 입지 않은 상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켜켜이 쌓인 먼지를 훔쳐내고 몇 겹이나 싸인 기름종이를 벗겨 투명한 초 내부를 들여다보았지만,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깨부수어야 할까?"


깨다가 아까의 전철이 되풀이될까.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어차피 저지른 일, 시간 없다!"


결심을 굳힌 그는 초를 깨고 안에 든 물건을 꺼냈다.

고검!

깨고 나온 건 오래된 고검이었다.

칼자루의 길이가 1자 5치에 날의 길이는 4자이고 무게는 15근 정도에 크기가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고 적당했다.


검집을 틀어쥐어 올리는 순간이었다.

아무 방해도 없었는데 갑자기 손목이 힘없이 꺾였다.


“이, 이런··· 검조차 잡을 힘이 없다는 말인가?”


거기에 또 밀려드는 갈증과 허기, 겁이 덜컥 났다.

이러다 탈출도 못 하고 여기서 개죽음, 당하는 건 아닌지.

황급히 내력을 보충하는 팽욱. 납빛으로 창백했던 안색은 시간이 흐르며 점차 맑고 화사하게 변했다.


태양역근개운신공을 돌리기 무섭게 어디에 있었는지 장강과도 같은 도도한 기운이 단전에서 파도처럼 밀려 나오며 전신을 빠르게 돌았다.


“역시! 하하하!”


웃음이 절로 터졌다.

경황이 없다 보니 자신에겐 보통사람에겐 없는 내력이란 괴물이 있었다는 사실, 깜빡 잊었다.


바보 같은 놈.

일각 이상 잃어버린 힘을 보충시킨 그, 아까와는 판이한 별빛 같은 안광이 쏟아져 나왔다.


원초적인 육체적 배고픔을 지울 수는 없지만, 탈출에 필요한 여력은 확보된 듯싶어 다시 물건에 집중했다.


“아! 검!”


뽑다 만 검을 다시 잡고 힘껏 당겼다.

엥!

틀어 막혔는지 검이 검집에서 뽑혀 나오지 않았다.

잠시 당황한 그, 애꿎은 머리를 쥐어박았다.


“바보! 초가 녹아 틈새를 메우며 엉겨 붙었잖아! 멍청하긴···”


수줍은 검집이 속살을 내비치기 싫어 그런다고 생각했던 것.


“훗!”


스스로 우스워 풋 웃음을 터트렸다.

틈새의 초를 뜯어내고 달래듯 살살 전후좌우로 흔들며 천천히 뽑았다.


스르륵!

드디어 검집을 빠져나온 검.

순간 놀라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어, 어떻게··· 날이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을 수가 있지?”


아무리 초로 밀봉했다지만 900년이 된 검이다.

예사 검이 아닌 보검 중 보검이 분명했다.

날렵하면서도 묵직한 도의 형상에 의외로 가볍다.

일반 중국 도와는 형상과 무게가 달랐다.

검집은 후박나무로 만들어 가볍고 연하여 녹이 슬지 않도록 밀봉된 상태에 겉에는 붉은 칠에 상어 가죽으로 촘촘히 둘러싸여 있었다.


조심스레 검을 틀어쥔 그, 시험 삼아 내력을 가미해 움켜잡았다.


우웅!

검에서 우는 듯한 금속성 음이 그가 흘리는 내력을 따라 떨어 울렸다.


아울러 시퍼렇게 섰던 날의 끝에서 무형의 기운이 뻗치는 것이 느껴졌다.


“와아~ 이게 무슨 기운이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네!”


이때 그는 몰랐지만, 그의 허벅지 옷 겉으로 단도형상의 은은한 자색 빛이 검의 기운과 함께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가 검에 힘을 주면 줄수록 더욱 강해지는 자색 빛. 검에 정신이 팔려 그는 몰랐지만 경이롭고 놀라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마치 검과 단도가 한 형제라도 되는 것처럼 서로의 기운을 교차하는 모습, 검 끝에 시선을 집중했던 팽욱은 문득 시험해 보고 싶은 욕심에 정면의 석주를 목표 삼아 상에서 하로 힘차게 그었다.


차앗!

마치 용이 승천하듯 그의 기합과 호응해 검음이 터지며 검의 길이에 1척이나 더 긴 시퍼런 검기가 쭉 뻗어 나갔다.


“이, 이런 놀라운 일이··· 어떻게? 천년이나 된 고검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검기를 품어내다니 이, 이거 말이 되는 건가?”


분명 검을 그었건만 아무 소리도 흔적도 없는 석주. 직접 검날이 닿았던 것은 아니었기에 뻗었던 검기가 허상일 것이라 단정하고 히죽 웃으며 검을 회수했다.


하지만 뻗쳐나간 검기로 미루어 예사 검이 아닌 신비의 검이 분명했기에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음미하듯 검날을 바라봤다.


그런데 이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투두둑!


갑자기 앞 석실 기둥이 매끄럽게 쓸리며 동강이 나 후두둑, 무너졌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선 그.


우르르! 쾅!


석주의 붕괴에 이어 굉음과 함께 단단히 지지했던 천정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두부의 썰린 면처럼 매끄러운 단면을 보이는 천장과 기둥. 전혀 예상치 못한 붕괴에 그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헉! 이, 이게··· 이게 아닌데···."


모든 게 썩고 삭아 못쓰게 된 것이지만 선조의 피와 땀이 어린 소중한 장소인데. 오랜 세월 버티어 왔던 석실은 기둥과 천장이 무너지자 도미노처럼 연속으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콰르르!

구름처럼 일어난 엄청난 돌 먼지가 순식간에 시야를 가렸다.


속수무책, 어떻게 할 수 없는 재앙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본능적인 위기감에 검을 잡고 전력을 다해 빠져나왔다.

출구에서 십여 장 떨어진 곳에 다다른 그, 먼지와 돌로 가득 찬 석실을 넋이 빠진 시선으로 바라봤다.


다행히 무너짐은 석실 밖까지 이어지지 않고 멈췄다.


“아! 선조들의 천년 유물이 내 부주의로···”


털썩 주저앉은 그는 단단한 돌바닥에 머리를 쿵쿵 찧었다.


스스로 자책하며 자해하는 그.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용서되지 않을 것 같았다.


"크흐흑! 보존은커녕··· 파괴하고 쓸모없게 하다니··· 이 무지한 후손··· 전 죽어도 싼 놈입니다. 크흐흑!"


소수민족의 서러움을 어릴 때부터 받으며 자란 그.

이런 외딴 장소에서 위대한 선조의 위대했던 업적을 발견한 순간, 기쁨에 미칠 것 같았다.


수없이 많았던 고통의 순간이 환희의 순간으로 화했던 이 시간, 그러나 환희의 기쁨은 한 시진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한 줌의 재로 변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것도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 그의 이마엔 어느덧 붉은 선홍색 피가 흥건히 배어 나와 차가운 돌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으아아!”


찢어지는 절규가 석실에 퍼지며 끝없는 여운으로 번졌다.


눈물 반, 울음 반. 머리를 짓찧으며 절규하던 그, 점차 소리가 잦아들더니 어느 순간 혼절하고 말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무너진 석실 앞, 뼈만 앙상하게 남은 팽욱의 몸이 흔들 움직였다.


그리고 또 잠시 뒤, 이번에는 어깨가 들썩이다 머리가 움직이고 힘겨운 신음과 함께 바닥을 짚고 일어서는 그.


"휴우~, 이렇게 한다고 없어진 게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


호흡도 힘겨운지 헐떡이는 팽욱.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자학하며 내린 결론은 얼떨결에 물려받은 단천문의 이 모든 숙제를 자신이 이뤄내는 것만이 속죄하는 길이라 여겨 이 한 몸 희생하기로 결심했다.


다짐하듯 입술을 질끈 깨문 그는 출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무너진 맞은편, 열린 출구가 보였다.

일을 이렇게 만든 원수 같은 검이지만 선조께서 남기신 유일한 유물, 소중히 감싸 안고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출구 옆을 스치는 순간, 문득 기름종이가 눈에 띄었다.


두루마리 형태로 말린 기름종이. 칭칭 동여맨 가죽끈을 풀고 내용물을 펼치는 순간.


툭!


낡은 양피지 한 장이 바닥에 떨어졌다.

떨어진 양피지를 멍한 시선으로 보던 그.

검을 만지며 초래된 엄청난 사태의 트라우마에 감히 열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고민 끝에 마음을 다져 먹고 펼친 그의 손이 덜덜 떨렸다.


내용을 훑는 순간 커지는 눈.


“이건··· 이곳에 설치된 기관의 설계도? 이건··· 선조 할아버지의 행적에 대한 기록?··· 그렇구나. 설계도라면··· 살았다! 살았어!”


탄성을 터트리며 펄쩍펄쩍 뛰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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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제 14 장 흑천단과의 악연 24.09.12 100 8 12쪽
105 13-6 24.09.11 105 7 13쪽
104 13-5 24.09.10 110 8 13쪽
103 13-4 24.09.09 113 7 13쪽
102 13-3 24.09.06 123 8 13쪽
101 13-2 24.09.05 123 9 12쪽
100 13-1 24.09.04 131 8 11쪽
99 제 13 장 다시 만난 그리운 여인 24.09.03 140 10 12쪽
98 12-6 24.09.02 145 9 17쪽
97 12-5 24.08.30 161 9 17쪽
96 12-4 24.08.29 148 9 14쪽
95 12-3 24.08.28 142 8 12쪽
94 12-2 24.08.27 147 9 12쪽
93 12-1 24.08.26 150 10 11쪽
92 제 12 장 새로 찾은 조부(祖父), 그러나 24.08.23 173 10 12쪽
91 11-11 24.08.22 164 7 13쪽
90 11-10 24.08.21 165 8 16쪽
89 11-9 24.08.20 171 8 12쪽
88 11-8 24.08.19 166 9 12쪽
87 11-7 24.08.16 176 9 12쪽
86 11-6 24.08.15 180 8 12쪽
85 11-5 24.08.14 179 11 12쪽
84 11-4 24.08.13 181 11 11쪽
83 11-3 24.08.12 189 10 11쪽
82 11-2 24.08.10 186 11 11쪽
81 11-1 24.08.09 195 11 12쪽
80 제 11 장 깨진 반쪽 옥패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고 +1 24.08.08 213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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