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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礎(고초) 님의 서재입니다.

단천문(檀天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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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礎(고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22
최근연재일 :
2024.09.16 06:30
연재수 :
10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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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02
추천수 :
1,020
글자수 :
611,675

작성
24.08.22 06:30
조회
164
추천
7
글자
13쪽

11-11

DUMMY

* * *



"아씨! 이러시면 안 됩니다."

"유모, 제 성격 아시잖아요. 전 한다면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리고 제 한 몸 건사하지 못하겠어요?"


"아씨, 여인의 몸으로 혼자 다니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저도 무가의 여식입니다. 대단한 실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호락호락 당할 정도는 아니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방향이 짙게 풍기는 어느 내실, 두 명의 여인이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황보유미. 아름답고 당당한 여인 황보유미와 그의 유모인 중년 여인이었다.


그녀의 복장은 보통의 여인이 입는 옷이 아닌 젊은 남자가 입는 흑의 무복 차림이었다.


남장 차림이지만 타고난 여인의 아름다운 체취는 그대로 남아 미장부라 해도 속을만했다.





얼마 전 관아에서 발생했다는 화재 소식에 놀라 유모와 함께 황급히 찾아갔었다.


팽욱의 안위가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큰불에 대소전각 대부분이 주춧돌과 기와 등 석재만 남기고 모두 소실되어 사라졌다.


사람들 또한 많이 다치고 죽어 화재가 진압된 지 이틀이 지났지만, 아직도 메케한 연기와 코를 찌르는 악취가 진하게 풍겨 피부를 따갑게 자극했다.


관아 형옥 대부분이 불에 타 주저앉은 상태였고 갇혀있던 죄수의 반은 불길을 피하지 못해 타 죽었으며 남은 죄수의 1/4은 불을 이용 탈옥에 성공했지만, 나머지 반은 탈옥 중 붙들려왔던가 부상을 입어 주저앉은 이가 대부분이었다.


메케한 냄새로 눈조차 뜨기 어려운 감옥 앞.

수수한 복장의 그녀와 중년 여인, 두 사람의 앞엔 불에 탄 시신 대여섯 구가 거적때기로 덮인 채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일부는 시커멓게 탄 팔, 다리가 거적 밖에 삐져나와 있어 더욱 참혹했다.


평생 처음 보는 참혹한 광경에 차마 똑바로 볼 수 없어 곧 외면했다.

그녀를 안내한 형리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가 찾던 총각은 불길을 피하지 못해 저쪽 끝에 시신으로···"


차마 말을 잇지 못하겠던지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안타깝지만 어차피 죽은 사람, 아가씨의 충격을 우려한 유모가 대뜸 그녀의 팔을 잡아끌며 돌아가자 재촉했다.


"아씨! 총각은 죽었다지 않습니까. 그만 돌아가시지요.“

”하~아! 후~!“


떨리는 짧은 한숨이 그녀의 입에서 연신 쏟아져 나왔다.

여인의 말은 그녀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멍한 시선으로 보던 그녀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이윽고 주르륵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 그렇게 말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떨리는 한 마디.


"유모! 얼굴만이라도··· 한번 확인하고 가야 하지 않을까···."


연모의 정을 진작 알아보긴 했으나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던 중년 여인, 자신이 평생 키우고 보살핀 아가씨였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 본 모습이어서 크게 당황했다.


"정말 보시게요?··· 아씨, 시신이 불에 완전히 타, 본다 해도 전혀 알아보지 못하실 거예요.“


“저도 알아요. 하지만··· 하지만 너무 불쌍하잖아요.”


쓰러질 듯 비틀대면서도 거적때기에 덮인 시신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그녀. 혼자 그녀를 설득하기엔 역부족이란 생각이 든 유모는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는 형리에게 눈짓으로 도와달라 신호를 보냈다. 즉시 이를 알아챈 형리와 간수가 앞으로 나섰다.


"아가씨! 보셔봐야 누군지 알아볼 수도 없고 시신의 특징의 저희가 상호대조해 죽은 걸 정확히 확인했으니 굳이 보실 필요 없습니다. 그만 돌아가시죠."


"아닙니다. 이 사람은 제 잘못으로 억울하게 갇혔는데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죽은 겁니다. 제가 그 영혼을 위로해 주지 않는다면 이 분의 영혼은 아마 편히 극락왕생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원혼으로 남을 것입니다."


'10년 전부터 이어온 끊을 수 없는 인연이란 말입니다.'


차마 입 밖에 낼 수는 없었지만 황보 유미는 그를 자신의 천생배필로 여겼는지 몰랐다.


여러 사람의 만류에도 불구 그녀는 어느새 시체가 안치된 곳을 향해 다가갔다.


벌써 썩기 시작했는지 악취에 코가 진동했다.


"그분 어디에 있죠?"

"저기 위에서 세 번째 시신이 그 사람입니다."


어쩔 수 없다고 여겼는지 코를 틀어막은 간수 하나가 거적을 벗겼다.


드러난 사체, 시커멓게 타 버린 시신의 옷은 피부에 눌어붙어 있었고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살점은 처참하기 이를 때 없었다.


설마 했지만, 실제 타 죽은 시신을 대하자 강한 그녀도 보기에 힘겨웠는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아··· 어떻게 이렇게 참혹하게···.’


마음의 갈등이 그녀를 번민에 휩싸이게 했다.

여인의 몸으로 그것도 곱디곱게 자란 그녀가 참혹한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처음으로 정 아니 사랑을 느꼈던 사내에 대한 연민에 잠시 주저했던 그녀는 결심을 굳혔는지 옷소매로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는 시신 앞으로 다가섰다.


“부디 이생의 한을 풀고 저승에···.”


‘응?’


원혼을 달래며 기원하던 그녀, 문득 시신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아무리 불에 탔다고는 하나 그녀가 기억하는 그의 골격과 시신의 골격은 크기가 너무 다르다.


코를 막고 눈대중으로 길이를 재보았지만 역시나 그의 골격이 아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순간 그녀는 그가 객점에서 놀라운 무위를 보인 고수였다는 사실을 상기해 냈다.


‘불에 완전히 탔기에 그를 아는 사람이 아니면 알아볼 수 없는 건 자명한 사실 아니겠어, 분명 혼란스러운 와중에 다른 시신을 몰래 갖다 놓고 탈출한 것이 틀림없어. 그래 맞아!’


희망 섞인 상상에 하마터면 탄성이 터질 뻔했다.


'이 사실이 밝혀지면 그분은 관아의 추적을 받아야 할지 몰라.'


일부러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이 사람이 독방에 있던 그 사람 맞죠?"

"예, 아씨 그자가 분명 합니다."


독방을 감시하던 낯익은 간수는 자신이 화재 진압 후 독방에서 꺼낸 시신이 분명 맞다며 재삼재사 확인했다.


이들은 정말 모르거나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합을 맞춰야지.

침울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던 황보 유미는 마저 기원사를 끝냈다.


"극락왕생하시고 내세에는 좋은 인연으로 다시 환생하시길 빌겠습니다."


'누군지 모르나 당신도 부디 극락왕생하세요.'


시신을 향해 정성껏 절을 마친 그녀의 발걸음은 방금까지 애도하며 슬퍼하던 그녀의 발걸음이 아닌 가볍고 날렵한 걸음이었다.




처음 그의 존재를 확인하고 다음 날 다시 찾아가려 했으나 무슨 연유인지 오라버니와 아버지가 자신의 외출을 철저히 차단, 도저히 나갈 수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을 혼자 삭이며 지내길 5일여. 감옥에서 큰불이 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부리나케 유모와 함께 찾아가 확인, 죽지 않은 것을 분명 확인했으나 어디로 사라졌는지 행적이 오리무중, 알 길이 없었다.


그로부터 또 5일이 더 지났다.

그러나 그에 대한 소식은 여전히 오리무중, 아무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더욱 이상한 건 어린 총각의 행적조차 아리송하다는 사실. 눈치가 이상한 오라버니에게 묻기도 그렇고 혼자 마음 졸이며 애를 태울 수밖에 없었다.


누가 그랬던가. 행복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이렇게 방에 틀어박혀 소식을 기다린다는 건 답답했다.


집안 어른들의 만류로 그동안 홀로 돌아다닌 적은 없었지만 그를 향한 애틋한 마음은 그녀를 행동에 나서도록 만들었다.


유모에게만 은밀히 말하고 떠나려 했지만, 그녀의 완강한 말림에 여러 번 나서려다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5일이 더 지난 지금 누가 뭐라 해도 찾아 나서야 한다는 영혼의 속삭임에 결국 만류를 뿌리치고 길을 나섰다.


그것이 바로 오늘.

등에 자신이 평소 수련하던 짧은 검을 둘러매고 머리는 청색 건으로 긴 머리를 감춰 질끈 동여맨 이유다.


수중에는 유모가 마지못해 건넨 약간의 은전과 패물을 챙겨 들고 새벽 해가 뜨기 전 집을 나섰다.


"유모! 내 편지를 남겨 놓았으니 부모님이 찾으시거든 보여 드리세요. 그리고 제가 그 총각을 찾아 나섰다는 말, 절대 하시면 안 됩니다. 아셨죠!"


"예···."


유모는 말리지 못한 자신을 질책, 또 질책하며 힘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는 새벽닭 울음소리와 함께 떠났다.




"뭐! 유미가 떠났다고!"

"예, 가주 어른! 여기 아씨가 남긴 서찰이 있습니다."


황보유미가 떠난 지 4시진 후 그의 아버지 황보철웅은 소식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


황보철웅! 하남성 황보 무가의 현 가주다.

역시 검으로 일가를 이룬 명문가로 천하 5대 세가는 아니지만 나름 하남성에서 천무문, 소림사와 더불어 정파의 거두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다른 이와의 결투를 극히 꺼려, 수준을 가늠하긴 어려웠으나 자식들의 명성으로 보아 충분히 무림 50대 고수의 반열에 들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무림인들이 보는 일반적인 평가였다.


평소 권력과 재물에 욕심이 없어 이곳 등용현을 비롯한 몇몇 곳에서 무관을 운영하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던 황보철웅,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해온 관계로 그를 적대시하는 세력은 주변에 거의 없었다.


모든 세력에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며 평온한 상태를 유지해온 그였다.


겨우 아들 하나에 딸만 셋 두었는데 딸들은 한결같이 성격이 괄괄해 누가 데려가려 하지 않았다.


다만 막내딸 황보 유미만은 밖으로 돌지 않고 집안에 차분히 있어 좋은 혼처가 생기면 즉시 시집보내려 했는데 청천벽력도 이런 청천벽력이 없었다.


"어디 보자!"


빼앗듯 서찰을 집어 든 황보철웅은 내용을 다 읽고는 땅이 꺼져라, 큰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님, 어머님! 불효녀 유미는 뜻한 바 있어 세상에 나가려 합니다. 사정을 말씀드리고 나가면 절대 나가지 못하게 하실 듯싶어 이렇게 불쑥, 일을 저질렀습니다. 저는 아버님이 생각하신 당씨 세가와의 혼사가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혼사가 이루어지기 전 넓은 세상에 나가 마음껏 돌아보고 속박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늦어도 일 년 이내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저 자신 제 몸은 스스로 돌볼 자신이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다시 뵐 때까지 몸 건강히 안녕히 계십시오. 불효 여식 유미 올림.'



"피는 못 속인다더니 어찌 딸 셋이 이렇게 하나같이 나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지···. 그래도 막내 녀석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 싶었는데···. 으음."


제 위의 두 언니가 강호에서 여걸로 큰 명성을 떨치는 걸 항상 부러워했던 유미, 그런 그녀를 곁에서 지켜봤던 황보 철웅은 걱정이 앞서면서도 지금껏 참아 주었던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설궁이화(雪穹二花).

그들 두 언니 황보설화, 황보규궁의 강호 별호다.


눈꽃 하늘이란 별호가 말해주듯 눈송이처럼 깨끗하고 밝은 하늘처럼 넓은 뜻을 몸으로 실천하는 자매로 항상 정의롭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으로 무림 10대 여걸로 당당히 활약하니 그 능력이야말로 설명해 무엇하랴. 쉽게 말해 유난히 깔끔 떠는 깐깐한 성격이다.


'어찌 보면 유미가 언니들보다 더 활발한 성격에 무공수준 또한 그에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니 부모님 걱정에 지금껏 참은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지.'


하지만 부모로서 말만 한 처녀가 홀로 집을 나섰다는데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즉시 오빠 황보철군을 불러 동생을 찾아오라 지시했다.


"네가 직접 네 동생을 찾아오거라."

"알겠습니다. 아버님!"


아버님 명에 이의 없이 대답했던 황보 천군은 문득 동생을 사모하는 당무정 생각에 바로 건의를 드렸다.


그의 지극한 동생 사모를 고려한다면 점수를 딸 호기일 것 같았다.


"아버님! 당무정과 같이 찾아도 될는지 요."

"네 뜻이 그러하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여라."


동생을 사모하는 그의 마음도 마음이지만 무엇보다 당무정의 무위가 인정하긴 싫지만, 자신보다 한 수 위라는 사실 역시 존재했다.


아버지 황보철웅 역시 평소 생각해 둔 바가 있기에 별 거부감 없이 승낙했다.


이는 당무정도 마찬가지여서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아버님!”


경색된 얼굴로 아들과 당무정을 우두커니 바라보던 황보철웅은 그들의 인사에 아무 말 없이 돌아서 내전으로 들어갔다.


돌아서 걷는 두 사람, 그런데 당무정의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절뚝! 절뚝!


당무정은 황보 천군의 팔에 의지해 자리를 벗어났다.


‘왜! 다리를 절까?’


궁금했지만 굳게 경색된 그의 얼굴에선 마치 아무것도 해줄 말이 없다는 듯 차가운 냉기만이 무겁게 흘렀다.




<11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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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14-2 NEW 21시간 전 54 4 14쪽
107 14-1 24.09.13 85 6 12쪽
106 제 14 장 흑천단과의 악연 24.09.12 100 8 12쪽
105 13-6 24.09.11 105 7 13쪽
104 13-5 24.09.10 110 8 13쪽
103 13-4 24.09.09 113 7 13쪽
102 13-3 24.09.06 123 8 13쪽
101 13-2 24.09.05 124 9 12쪽
100 13-1 24.09.04 132 8 11쪽
99 제 13 장 다시 만난 그리운 여인 24.09.03 140 10 12쪽
98 12-6 24.09.02 146 9 17쪽
97 12-5 24.08.30 161 9 17쪽
96 12-4 24.08.29 148 9 14쪽
95 12-3 24.08.28 142 8 12쪽
94 12-2 24.08.27 148 9 12쪽
93 12-1 24.08.26 151 10 11쪽
92 제 12 장 새로 찾은 조부(祖父), 그러나 24.08.23 173 10 12쪽
» 11-11 24.08.22 165 7 13쪽
90 11-10 24.08.21 165 8 16쪽
89 11-9 24.08.20 171 8 12쪽
88 11-8 24.08.19 166 9 12쪽
87 11-7 24.08.16 176 9 12쪽
86 11-6 24.08.15 180 8 12쪽
85 11-5 24.08.14 180 11 12쪽
84 11-4 24.08.13 182 11 11쪽
83 11-3 24.08.12 189 10 11쪽
82 11-2 24.08.10 186 11 11쪽
81 11-1 24.08.09 195 11 12쪽
80 제 11 장 깨진 반쪽 옥패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고 +1 24.08.08 213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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