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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礎(고초) 님의 서재입니다.

단천문(檀天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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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礎(고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22
최근연재일 :
2024.09.16 06:30
연재수 :
10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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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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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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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675

작성
24.08.2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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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12쪽

12-2

DUMMY

다시 움켜쥔 노인의 손, 노인은 들었던 손을 내림과 동시에 등에 뭔가를 급히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너는 언제부터 이 은패를 차고 있었냐는 말이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에 은패는 왜?


"그건 제가 어릴 때부터 차고 있었던 것이오.”


(가슴에 있는 용 모양의 검은 반점은 언제부터 있었느냐?)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것이오.”


당연한 것 아닌가, 새삼스레 묻긴 왜 물어. 죽이려면 빨리 죽일 것이지. 이때 등에 머물던 노인의 손이 갑자기 뚝 멈췄다.


급작스러운 노인의 변화에 팽욱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괴팍한 저 노인네의 무력이면 자신을 죽이는 건 여반장 일터 그의 머릿속엔 지금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의 편안한 기운이다.


뚝!


이때 등에 뭔가 떨어진 듯한데 액체?

그것도 따스한 촉감의 액체다.

뭐야! 눈물?

괴이한 느낌에 돌아보니 노인의 주름진 노안에서 굵은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한동안 말없이 눈물만 흘리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너느 나으 하나 쁘이 소자이니라. (너는 나의 하나뿐인 손자이니라.)"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팽욱이 반문하자 노인의 거친 손이 등에 다시 와 닿았다.


가늘게 전달되는 떨림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진폭을 크게 키워 나갔다.


글자의 뜻이 어렴풋이 그의 뇌리로 전달되는 순간 그 의미가 주는 파장으로 인해 그의 두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너의 몸에 있는 이 반점은 네가 태어날 때, 확인했던 바로 그 반점이니라.)


회상하듯 지그시 눈을 감는 노인의 입과 손이 그의 놀람을 외면하며 이어졌다.


(이 은패는 네가 우리 천무문의 소문주임을 증명하는 증표다.)


믿을 수 없는 말이 떨리는 손끝을 타고 계속해 이어졌다.

그러나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망발이란 말이냐.

엄연히 내 부모님이 따로 계신 데. 할아버지 역시 어릴 적 돌아가셨고. 하긴 노인네가 토굴에 오랜 시간 갇혀 지냈으니 제정신이라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닐까?


얼마나 손자가 보고 싶었으면 이럴까.

일면 이해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다시 올까?

감성에 빠진 노인의 경계가 소홀해진 이 틈 절대 놓칠 수는 없다.


‘이 노인은 지금 날 진짜 자기 손자로 믿고 있다. 내가 진짜 손자가 아닐지라도 이 상황을 벗어나려면 무조건 인정하고 보는 것이 상책이지. 그러나 위기를 모면하겠다고 나의 정체성마저 부정한다는 건···. 안 돼! 절대, 절대 그럴 수는 없어!'


아무리 위태로워도 내 뿌리를 버릴 수는 없다. 그와 같은 상황을 인정하기는 죽기보다 싫은 일이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제겐 엄연히 살아 계신 부모님과 어릴 적 봤던 할아버지가 계시 단 말이에요!"


절대 그럴 리 없다며 언성을 높였다.

(그분들은 아마 너를 구해 키워 주신 분이 틀림없다.)

미친 노인네 같으니.


"아니, 그분들은 절대 그런 말을 하신 적이 없소.”


말도 안 되는 소리에 그는 반말로 항변하며 울먹였다.

(정말 없었느냐?)


재차 반문하며 이어진 노인과 둘의 엇갈린 대화, 겉도는 두 사람의 대화는 이후로도 거의 한 식경 이상 줄다리기하듯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럴 리가 없을 것이라 부인으로 일관하던 팽욱은 대화가 이어질수록 진지해지는 노인의 말과 투명한 눈빛을 읽고 그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자신을 몰아붙인다고 여길 수 없었다.


그건 그가 보았던 장씨 아저씨의 순수한 눈빛과 노인의 눈빛이 같은 닮은꼴이었기 때문이었다.


차츰 그는 노인의 반문을 되새기며 어릴 적 일들을 곰곰이 기억했다.



"아빠는 제가 친아들이 아닌가 봐요!"

"그래 인마! 너는 저기 파천교 다리 아래에서 주워 다 키웠다."


"정말 다리 밑에서 주워 키운 거 맞아, 엄마?"

"우리 집은 대대로 손이 귀해 나이 마흔이 넘도록 아이를 얻지 못했단다. 그런데 부처님이 도우사 너같이 귀엽고 앙증맞은 아이를 보내 주셨지···.”



9살인가 10살쯤 아버지가 꾸중하시며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사실 팽욱도 두 부모님의 행동에 이상했던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음을 기억해 냈다.


폐경기에 다다르신 어머니가 자신을 그 나이에 낳으셨다는 사실과 아버지, 어머니 모두 왜소한데 자신만 유독 큰 덩치를 물려받았다는 사실, 그리고 단천문의 무공을 익힐 때, 엇박자가 나며 진전 없이 엉뚱한 사고만 쳤던 사실. 어릴 적부터 갖고 있던 은패와 비단보자기들에 대해 말문을 닫으시던 두 분. 그 모든 정황이 이가 맞물리듯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아니야! 절대 아니야!


지금까지의 모든 사실이 단번에 뒤집힐 만큼 진실이라는 것도 쉽게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바로 아버지, 어머니 아니 양부모일지 모르지만 정확한 진실은 그분들을 찾아뵙고 사실 확인을 해야 한다.


그전에는 아무리 그것이 진실이라 할지라도 절대 인정할 수 없는 일이다. 절대.



"제 부모님을 찾아뵙기 전에는 절대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려무나, 난 어떻게 해도 좋다!)


노인과 팽욱 두 사람은 믿기지 않으면서도 믿어야 하는. 아니 믿고 싶은 마음에 서로 상대에 대한 의심을 조금씩 지우고 서로 대화의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먼저 묻고 싶은 것이 있구나.)


"말씀하십시오.”


(개봉에 있는 천무문을 아느냐?)


"친구들에게 들어 알고 있습니다. “


(지금의 문주가 누구인지 아느냐?)


"서문공유라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 서문··· 공유!)


갑자기 대화를 중단한 노인, 대뜸 주먹으로 철판을 연신 내리쳤다.


쾅, 얼마나 큰 분노가 담겨 있는지 두꺼운 철판이 우그러들며 쩌렁쩌렁 금속성 굉음을 질렀다.


주먹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왔지만, 노인은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지켜보던 팽욱은 안타까운 마음에 다급히 노인의 팔을 붙들었다.


“그만! 그만, 진정하세요.”


그의 만류에 부들부들 떨던 노인의 주먹은 갑자기 공기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지며 흐드러졌다.


그렇게 말 없는 침묵이 한동안 흐르고 난 뒤 노인의 입이 열렸다.


"그러게 되다 마이지···. (그렇게 됐단 말이지···.)"


무엇을 회상하는지 모르지만, 노인의 눈에서 또다시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


"서문공유란 분이 무슨 잘못이라도···.”

“아, 아니··· 다."


노인은 그의 말을 막으며 달아오른 감정의 골을 스스로 삭히더니 다시 팽욱의 등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직 인정하기 힘들겠지만, 날 할아버지라 부를 수 있겠느냐?)


“예?”


전혀 생각지 못한 말이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라···.’


잠시 머뭇거리는 동안 그의 안색에는 갈등의 어두운 빛이 쉼 없이 오갔다. 그리고 나온 힘겨운 한마디.


"할, 할아버지!"


핑 도는 눈물. 이 소리, 다시는 듣지 못할 줄 알았다.

그런데 무려 20년 만에 다시 듣게 되었다.

눈물, 인생의 단맛 쓴맛에 의미를 담은 눈물이 그 앞을 맴돌았다.


그건 결코 추해 보이지 않았다.

다신 만나지 못할 것이라 여겼던 혈육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진하게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지켜보는 그의 눈 역시 차츰 붉게 물들어갔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뜨겁게 서로를 부둥켜안은 두 노소, 따뜻한 체온이 격한 감동이 되어 두 사람 사이를 오갔다.


얼마의 시간이 더 흘렀을까.

노인은 다시 그의 등에 대고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달리 빠른 속도의 속사였다.


(이 할아비 이름은 손원(孫湲)이니라. 바로 개봉부 천무문의 태상 문주이자 네 아비 손정(孫正)의 아비이니라.)


놀라운 노인의 말에 팽욱의 입은 크게 벌어졌다.

천무문?

묻는 말이라 흘려들었는데 그 천무문의 문주가 아버지이고 이분이 할아버지라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개봉에 있는 그 천무문 말씀입니까?”


크게 반문하는 그를 보며 손원은 환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웃음 띤 해맑은 노인의 눈빛, 그 눈을 놀랜 눈으로 마주 본 팽욱은 그 눈에 어린 맑은 빛을 탁(濁)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너의 이름은 손권(孫權)이니라.”

“손. 권. 이요?”

“네 위로 형이 하나 있는데 이름은 손혁(孫赫) 너보다 8살 많은 녀석이다. 그 녀석은 너와 배···."


뭔가를 꺼내려다 닫고 마는 노인 손원, 손자라 여긴 그에게조차 말 못 할 무엇이 있나 보다. 빠르게 써내러 가던 글이 멈춘 것도 모르는 팽욱, 마치 꿈을 꾸는 듯 몽롱했다.


"그럼 어머니는요?"


어머니가 엄연히 계심에도 불구 존재에 대해 또 묻는 자신이 미웠지만 반 절 이상, 현실을 인정한 그의 궁금증은 그의 의사와 관계없이 어느새 입을 떠나 묻고 있었다. 어머니란 말에 잠시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멈춘 손원은 잠시 뒤 어쩔 수 없다는 듯 조용히 눈을 감더니 천천히 글 문을 이었다.


(너의 어머니는 남궁빈화(南宮彬花), 남궁가의 딸로 우리 가문과··· 아니다. 그것 역시 지금 알 필요는 없겠구나.)


팽욱 아니 손권은 할아버지가 자신의 형에 대해 말할 때도 말문을 흐리고 어머니에 대해 말할 때 역시 흐리는 것에 의아했다. 왜?



"할아버지, 왜 형과 어머니를 말씀하실 때 말끝을 흐리시는지요?"


(네가 알아야 할 사실과 몰라도 될 사실이 있어 말하지 않는 것이다. 피치 못할 사연이 있어 그러니 그 점에 대해선 더 묻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어떤 사연인지 모르지만, 자신이 알면 안 되는 중대한 사연이 세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듯해 더 물어볼 수 없었다.


(내가 여기 갇혀 있는 동안 가족들과 천무문에 어떤 변고가 생겼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수제자였던 서문공유, 그놈이 지금 천무문 문주로 행세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문파를 배신하고 그것도 모자라 네 아비와 가족들을 모두 죽였거나 아니면 어딘가에 유폐시켰을 것이 분명하다.)


“예?”


모두 죽었거나 유폐시켰을 것이라고?

이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란 말인가, 이제 겨우 정체성의 혼돈에 대해 받아들이려 마음먹었다.


또 한편으로 기쁘기도 했다.

모든 게 맞는다면 이제 자신은 당당한 한족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새로이 받아들였던 가족들이 모두 죽고 없을 것이란다. 팽욱은 연이은 충격적인 발언에 미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서문공유, 그자는 또 누구이기에 무엇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 형을 죽였단 말인가.


(그자는 신망이 두터워 누구에게도 의심받지 않았을 것이다.)


손원의 손끝에 어린 분노는 급속도로 그의 분노로 전이되었다.


‘서문공유! 이놈! 천하의 철천지원수!’


새롭게 알게 된 원수에 대한 분노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왜죠?"


(외모에서 풍기는 인자함과 후덕함, 그리고 부하를 아끼는 자애로움이 있어 따르는 자가 아주 많다, 그런 자가 그런 짓을 했으리라곤 그 누구도 상상치 못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


할아버지의 말을 듣는 순간 문득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산길에서 비급과 은패를 주고 갔던 기인, 후일 천무문을 찾아오라 하지 않았던가.


그때 느꼈던 인자함과 후덕함, 그리고 천무문, 그 두 가지 사실이 문득 떠오름은? 부르르, 순간 소름이 돋았다.


"할아버지, 혹 그 서문공유라는 사람, 키 6척에 용모는 선풍도골로 학자의 풍모와 위엄이 있고 오른쪽 코 옆에는 검은 사마귀가 있으며 금색 수실에 쌍룡이 각인된 4척 장검의 사내 아닌가요?"


팽욱의 질문에 오히려 놀란 사람은 할아버지 손원이었다.

네가 어찌 그 사람에 대해 그리 자세히 알고 있냐는 듯.


(맞다! 내가 말한 그자가 바로 서문공유라는 자다. 양두구육에 인면수심을 지닌 은혜를 원수로 갚은 자 말이다. 그 녀석이 용호신검(龍虎神劍)을 지니고 다녔다는 말이지···.)


쌍룡이 각인된 4척 장검이라면 문주의 상징인 용호신검(龍虎神劍)이다.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사실을 확인한 순간 혹시나 했던 제자에 대한 미련이 여지없이 무너짐을 확인했다.


“크으으···.”

"할, 할아버지··· 참으세요!"

"흠, 흠, 아게다.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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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14-1 24.09.13 85 6 12쪽
106 제 14 장 흑천단과의 악연 24.09.12 100 8 12쪽
105 13-6 24.09.11 105 7 13쪽
104 13-5 24.09.10 110 8 13쪽
103 13-4 24.09.09 113 7 13쪽
102 13-3 24.09.06 123 8 13쪽
101 13-2 24.09.05 124 9 12쪽
100 13-1 24.09.04 132 8 11쪽
99 제 13 장 다시 만난 그리운 여인 24.09.03 140 10 12쪽
98 12-6 24.09.02 146 9 17쪽
97 12-5 24.08.30 161 9 17쪽
96 12-4 24.08.29 148 9 14쪽
95 12-3 24.08.28 142 8 12쪽
» 12-2 24.08.27 148 9 12쪽
93 12-1 24.08.26 150 10 11쪽
92 제 12 장 새로 찾은 조부(祖父), 그러나 24.08.23 173 10 12쪽
91 11-11 24.08.22 164 7 13쪽
90 11-10 24.08.21 165 8 16쪽
89 11-9 24.08.20 171 8 12쪽
88 11-8 24.08.19 166 9 12쪽
87 11-7 24.08.16 176 9 12쪽
86 11-6 24.08.15 180 8 12쪽
85 11-5 24.08.14 179 11 12쪽
84 11-4 24.08.13 182 11 11쪽
83 11-3 24.08.12 189 10 11쪽
82 11-2 24.08.10 186 11 11쪽
81 11-1 24.08.09 195 11 12쪽
80 제 11 장 깨진 반쪽 옥패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고 +1 24.08.08 213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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