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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礎(고초) 님의 서재입니다.

단천문(檀天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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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礎(고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22
최근연재일 :
2024.09.16 06:30
연재수 :
108 회
조회수 :
42,001
추천수 :
1,020
글자수 :
611,675

작성
24.08.26 06:30
조회
150
추천
10
글자
11쪽

12-1

DUMMY

* * *



"이러나라 이누마! (일어나라 이놈아!)"


쩌렁쩌렁 울리는 호통,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끈지끈 맹맹한 머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 동공을 메웠다.


끙, 손에 힘을 주어보니 움직이는 상체, 다행히 아직 죽지는 않은 모양이다.


"깨어 나으며 나으 푸어라! (깨어났으면 나를 풀어라)”


환청으로 여겼던 소리가 생생하다.

귀가 찢어질 듯 엄청난 소리, 이건 보통사람이 아닌 절정 고수의 내력이 실린 소리가 분명했다.


거기에 밀폐된 공간이 소리를 증폭시키자 소리는 몇 배로 확장되며 큰 공포로 와 닿았다.


“으으으···”

‘여, 여기가 어디지?’


겨우 내지른 신음성, 예전 동굴에서 느꼈던 외로움과 공포와는 차원이 다른 두려움에 소름이 돋았다.


‘나, 나 죽은 거야?’


죽어서 저승사자 앞에 끌려와 심판받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머리를 힘껏 때렸다.


“아야!”


통증을 보니 아직 죽진 않은 모양이다.

얼마 전 단천동을 벗어났을 때만 해도 이 세상 겁날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짧은 밤사이 연이어 대책 없이 당하다 보니 두려움에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머 그러게 머처하게 보고 이느냐! 어서 와서 푸지 아고! (뭘 그렇게 멍청하게 보고 있느냐! 어서 와서 풀지 않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젊은이인지 늙은이인 도통 알아차릴 수 없는 괴음. 시간이 흘러 점차 환경에 적응되자 호통치는 자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리기 시작했고 차분히 되새겨보니 노인이 틀림없었다.


희미하지만 내부 모습이 점차 시야에 들었다.

육중한 철문, 좁은 쇠창살 그 너머로 희미한 한 줄기 빛이 비쳐들었다.


철문 옆 암벽에는 양 발목과 손목, 목에 손가락 굵기의 사슬이 칭칭 감긴 성별 구분이 안 되는 털로 덮인 자가 보였다.


전체 공간은 대략 10평 남짓, 사방은 온통 단단한 회색 암반에 덮여 있고 그 외의 물건은 전혀 없었다.


괴인의 행색은 사람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 몸에 걸친 옷이라곤 중요 부위를 겨우 가린 속곳 하나가 전부였고 뼈만 남은 몸엔 치렁치렁 길게 자란 허연 머리카락이 온몸을 하얗게 덮었다.


어떻게 저런 상태로 사람이 살 수 있는지 궁금했다.

물론 자신 역시 얼마 전 마찬가지 상태였지만.


‘세상에 살이라고는···.'


팽욱의 지금 상태는 그래도 처음 계곡에서 나왔을 때 보다는 훨씬 인간다움을 회복한 상태였지만 깔끔하다는 점 외에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인을 붙들어 맨 사슬 길이는 1장, 너무 짧아 철문과의 거리를 생각하면 가까스로 닿을 거리에 불과했다.


기껏 음식을 가져다 먹을 정도의 짧은 활동반경만을 허락한 상태, 그것도 모자라 사슬은 철판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어 인간의 힘으론 풀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한쪽 구석엔 움푹 폐인 구덩이가 보였는데 바싹 말라, 흔적이 전혀 없는 것을 보면 곡기를 끊어 놓은 지 오래됐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나마 죽기를 원하진 않았는지 벽 한쪽 바위틈에서 졸졸 물이 흐르는 것으로 미루어 저것으로 생명을 연장해 온 것이 틀림없었다.


’도대체 누가 이 노인을 이런 지하 깊은 곳에 가두었을까? 정말 악독하기 짝이 없는 자가 틀림없다.’


불쌍하고 안타까운 심정에 노인이 있는 벽 근처로 통증을 참아 가며 엉금엉금 기어갔다.


노인은 엉금엉금 자신에게 다가오는 팽욱을 보더니 한숨을 내 쉬었다.


"저 그머으 토해 드러오노 치고 저러게 비비 거리는 노으 처으이그나, 파짜도 차 더러지! (저 구멍을 통해 들어온 놈치고 저렇게 빌빌거리는 놈은 처음이구나, 팔자도 참 더럽지)”


뭐라 계속 말을 하긴 하는 데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근접거리까지 접근한 팽욱이 물었다.


"어르신! 여기 언제 들어오셨어요?"

"내가 이노마 이 카카아 도야지 우리가튼 고에 가쳐 이서느데 시가이 어바나 흐러느지 어찌 아게냐, 이노마! (내가 이놈아 이 캄캄한 돼지 우리 같은 곳에 갇혀 있었는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어찌 알겠냐. 이놈아!)"


“뭐라고요??”


벌린 입을 보니 이가 썩어 다 빠진 상태에 오랜 기간 대화상대가 없었는지 언어 구사 능력이 크게 쇠퇴해진 듯했다.


‘불쌍한 노인···. 얼마나 오래 갇혀 지냈으면 저 모양일까···.’


팽욱이 대꾸 없이 멍하니 보고만 있자 답답했는지 갑자기 완력으로 그의 몸을 돌리더니 등에 손을 대고 뭔가를 써 내려갔다.


완력을 쓰는 순간 깜짝 놀란 그였지만 이내 긴장이 풀렸으니 그건 등에 닿은 감촉이 왠지 낯설지 않아서였다.


처음 뭐라 쓴 것인지 도통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하자 노인은 자신의 머리를 탁, 치더니 역으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네 나이 지금 어떻게 되느냐?)

"예? 예, 지금 20살입니다."

(태어난 해는?)

"예, 갑자 원년입니다."

(머? 갑자 원년?)


노인의 육성이 다급하게 흘렀다.


"그, 그러··· 이시녀이 지나다느 야그? (그. 그럼. 이십 년이 지났다는 이야기?)”


격동에 부르르 떨던 노인의 손이 갑자기 등을 꽉 움켜잡았다.


"우왁!"


순간 엄청난 내력이 송곳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그는 큰 충격과 함께 튕겨 무려 1장 여나 붕, 반대편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또다시 가물가물 정신이 희미해졌다.


"저, 저부이, 이, 이이러나아···. (젊, 젊은이, 일, 일어나게나!)”


희미한 노인의 음성이 다시 들렸다.


"으으음!"

"미, 미아···. 하네. (미, 미안··· 하네.)"


실수로 청년을 죽일 뻔했다는 사실에 노인은 조심스러웠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팽욱은 갑자기 다정다감해진 그의 말투가 낯설어 얼떨떨했다.


‘마치 죽일 것처럼 고래고래 소치 치더니 갑자기 태도가 돌변한 이유가 뭐지? 으윽···’


움직인 순간 뼛골까지 치민 통증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으으, 뭐야! 무슨 깡마른 노인이 저런 엄청난 내력을 갖고 있지? 혹, 함정에 빠진 무림 노마두? 천하의 무림 공적?’


무림에는 살인을 밥 먹듯 저지르는 음흉한 자가 부지기수로 많아 그런 자들을 협객들이 사로잡아 영원히 땅속에 가두어 둔다는 것을 전설처럼 전해 들었었기에 괴노인을 마두로 생각한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이었다.


묻고 싶은 게 많았는데 멀찌감치 떨어진 청년이 경계에 눈만 껌뻑이자 노인은 답답했다.


"이바, 저부이 다시느 그러지 아으께 이리아바. (이봐, 젊은이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을 테니 이리와 봐.)”


"할아버지 전, 할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하겠어요.”


겁에 질린 그는 다가오기는커녕 오히려 버둥버둥 물러섰다.

이에 답답하고 초조했던 노인은 괴성을 지르며 손짓을 보냈는데. 그래도 반응 없이 바라만 보자, 갑자기 눈을 뒤집어 까더니 부글부글 입에서 거품을 품어냈다.


그리곤 풀썩 힘없이 쓰러지더니 부들부들 팔과 다리를 비비 꼬며 온몸을 비틀었다.


무려 한 식경이나 이어진 노인의 발작에 속임수라 여겨 접근치 않았던 그는 혹시 저러다 덜컥, 죽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에 마음이 흔들렸다.


‘아니야! 또 속을 수는 없지! 동정심을 유발해 날 잡아먹으려는 수작이 분명해.’


그는 노인이 자신을 먹잇감으로 여겨 저런 괴이한 짓을 한다고 단정했다.


이제 스무 살의 파릇파릇한 싱싱한 고깃덩어리라고. 그런데 상황은 심각하게 변해 흰자위만 남은 노인의 머리가 단단한 철판 바닥을 꽝꽝 찧기 시작했다.


요란한 소리가 여러 번 이어진 뒤 팍 터져 솟은 붉은 피가 노인의 정수리에서 샘물처럼 흘러내렸다.


“저, 저, 저러다···”


생사람 잡겠다는 생각에 그의 팔과 다리는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며 빠르게 노인을 향해 다가갔다.


다급한 마음에 통증마저 잊은 그는 벌벌 떠는 노인의 팔과 다리를 꽉 움켜잡았다.


그런데 그가 몸을 잡는 순간 노인은 언제 그랬냐 싶게 발작하던 동작을 돌연 멈추더니 그의 맥문을 꽉 움켜잡았다.


"네이노, 무어으 아라내려 수머드러느냐? (네 이놈, 무엇을 알아내려 숨어들었느냐?)”


노인의 무력에 순간 제압당해버린 팽욱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외마디비명과 함께 전력을 다해 손을 뿌리쳤다.

그러나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이냐, 마치 바닷물에 물을 부은 것처럼 내력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당황한 그의 얼굴은 순간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노인은 반항하는 청년의 생각지도 못한 괴이한 내력에 생각을 굳히며 공력을 배가시켰다.


“크아아···.”


수천 마리의 개미가 동시에 물어뜯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이노드, 이시녀이나 괴로펴스며 돼지 또 어마나 더 괴로피려고 드러와냐!" (이놈들, 20년을 괴롭혔으면 됐지 또 얼마나 더 괴롭히려고 이런 놈을 들여 보냈느냐!)


근 10여 년,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기껏 감시하는 조무래기 녀석들 외에는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젊은 녀석 하나가 토굴에서 떨어져 접근했다.

반신반의 경계하며 지켜보던 차, 자신도 알지 못할 괴이한 내력을 퉁겨냈다.


이는 분명 비밀을 캐기 위한 놈들의 첩자가 분명했다.

과거부터 놈들은 이런 수법을 종종 쓰며 정보를 빼내려 했기에 오는 족족 쳐 죽였다.


청년의 천령개를 박살 내려 손을 번쩍 치켜든 순간, 청년의 목에서 뭔가 번쩍하는 물건을 발견한 그, 살펴보곤 경악했다.


"아니! 이거스···.”


노인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이건 손자에게 내가 직접 채워준 물건인데 이걸 이놈이 왜!’


처음부터 이 패를 보이며 손자라 칭했다면 어쩌면 깜빡 속아 넘어갔을지 모른다. 나이며 패의 존재로 인해서 말이다.


하지만 만일 친손자라면 출처도 불분명한 이런 무공을 어디서 익혔단 말인가.


‘만에 하나 이놈의 내력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후~우!’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놈들의 치밀한 기만전술에 노기 탱천한 노인은 즉시 수도를 힘껏 내리쳤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팽욱은 엄청난 속도로 떨어지는 노인의 수도를 보고 죽을힘을 다해 몸을 뒤로 젖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은패로 인해 평정심을 잃은 노인의 수도는 아슬아슬, 머리를 스쳐 앞가슴을 훑고는 애꿎은 상의만 북 찢어 놓고 말았다.


일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분기탱천한 노인의 손이 재차 그의 천령개를 쪼개 갔다.


이번엔 마비된 혈도로 인해 도저히 피할 방도가 없었다.


‘이젠 꼼짝없이 죽었구나.’


팽욱은 아예 저항을 포기했다.

그런데 한참의 시간이 흘렀지만, 머리에선 아무 고통도 전해지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감은 눈을 살포시 치켜뜬 그는 깜짝 놀랐다.

노인이 손을 번쩍 든 상태로 그대로 멍하니 자신의 가슴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압박하던 내력 역시 그사이 느슨해졌음을 확인한 그는 기회다 싶어 뿌리치고 도망치려 버둥댔다.


"너, 너느 느그냐 (너, 너는 누구냐)?"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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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13-6 24.09.11 105 7 13쪽
104 13-5 24.09.10 110 8 13쪽
103 13-4 24.09.09 113 7 13쪽
102 13-3 24.09.06 123 8 13쪽
101 13-2 24.09.05 124 9 12쪽
100 13-1 24.09.04 132 8 11쪽
99 제 13 장 다시 만난 그리운 여인 24.09.03 140 10 12쪽
98 12-6 24.09.02 146 9 17쪽
97 12-5 24.08.30 161 9 17쪽
96 12-4 24.08.29 148 9 14쪽
95 12-3 24.08.28 142 8 12쪽
94 12-2 24.08.27 148 9 12쪽
» 12-1 24.08.26 151 10 11쪽
92 제 12 장 새로 찾은 조부(祖父), 그러나 24.08.23 173 10 12쪽
91 11-11 24.08.22 164 7 13쪽
90 11-10 24.08.21 165 8 16쪽
89 11-9 24.08.20 171 8 12쪽
88 11-8 24.08.19 166 9 12쪽
87 11-7 24.08.16 176 9 12쪽
86 11-6 24.08.15 180 8 12쪽
85 11-5 24.08.14 180 11 12쪽
84 11-4 24.08.13 182 11 11쪽
83 11-3 24.08.12 189 10 11쪽
82 11-2 24.08.10 186 11 11쪽
81 11-1 24.08.09 195 11 12쪽
80 제 11 장 깨진 반쪽 옥패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고 +1 24.08.08 213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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